50년도 더 된 폐 광산. 7
일단, 그 정자에 계셨던 할머니를 찾아뵙는 게 우선이다.
사실 확인도 하고, 그 귀신 아저씨가 전달하지 못했던 이 유품을···
- 그게 뭔데?
나는 낡은 손가방을 바라봤다.
내가 사실대로 말하면 시청자들이 믿을까?
분명 날 미친놈 취급할 텐데.
고민했지만, 결국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형님들. 방송이 끊긴 이후에 처음에 봤던 그 아저씨를 만났어요.”
- 미친놈.
- 또 지랄한다
역시··· 시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 미친 소리를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 너 허공 보고 대화할 때 봤다던 그 사람들?
- 그 사람들을 또 봤다고?
- 쟤 귀신 보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다들 왜캐 민감하게 반응함?
- 근데 솔직히 구라라고 하기에도 믿기 힘든 게 많아
- 인정. 나는 반은 믿는다
- 나는 반의반
- 난 발톱에 때만큼
- 그럼 존나 믿는다는 거 아님?
- 저기요?
“네. 맞아요. 근데 나머지 사람들은 없었어요. 저한테 먼저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던 그 사람을 만났어요. 이름은 정해수.”
[ 생갈치1호의행방불명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구라 치지 마.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아?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모든 이목이 생갈치1호의행방불명 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시청자에게 쏠렸다.
- 무슨 상황이야 이거
- 저 사람이 돈 떼먹고 도망감?
- 도시락 몰래 까먹는 범인임?
“네··· 형님? 왜 갑자기 욕을···”
- 네가 폐광산에서 만난 사람 이름이 진짜 정해수였다고? 진심으로?
분명 그 사람의 옷에는 정해수라는 이름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하얀 실로 박음질을 해놨던 터라 유독 눈에 띄어 기억할 수 있었다.
- 그 사람 폐광산에서 죽은 지 30년 도 더 된 사람인데···
순간, 알고 있으면서도 내 몸에 소름이 쫘악 흘렀다.
그래. 시청자들이 이제야 좀 내 말을 믿어주려나?
나는 시청자의 말을 보태었다.
“형님들.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고요. 이제 믿으시겠어요? 시벌···”
괜한 서러움이 복받친다.
날 연말 대상 연기자 후보 취급하고, 맨날 후원에 미친놈 취급하고···
- 에이. 그래도 이건 아니지
- 애초에 조사하고 간 거 아니냐?
- 아니면 생갈치 저 사람 미리 섭외해놓은 거 아냐?
- 그것만 가지고 인정하기에는 너무 뻔하잖아
- 다른 거 없냐?
- 우리가 한 마디도 반발 못 하게 할 증거 같은 거
시벌. 그런 게 어딨어.
다만, 간접적으로 증빙할 자료들은 있었다.
지금 내가 가져온 이 손 가방에 든 물건들. 그리고 사진들.
나는 작은 손가방에 있던 사진들을 몇 장 꺼냈다.
그리고 그 귀신이 사람일 적 만들었다던 팔찌도.
한눈에 보아도 낡은 흑백사진.
“이거··· 그 귀신 형님이 자신의 유품이 있다고 파보라고 해서 제가 꺼낸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나는 가방에 있던 조그마한 덩어리들도 살짝 꺼내어 비추었다.
“그 귀신 형님이 고맙다고 저한테 선물로 준 건데요···”
바로 반짝반짝한 빛나는 금덩어리.
- 헉 시발?
- 금 아니야?
- 실화인가 이거? 도대체 몇 개야?
- 그냥 봐도 몇백만 원은 되겠는데?
- ㅅㅂ 이제 네 말 무조건 믿을 테니 한 개만!
- 아니. 그냥 네 말이 무조건 다 맞아! 한 개만 줘!
- 야 난 애초부터 믿었으니까 세 개 줘!
- 레알 너 혼자 다 가질 거 아니지?
- 미쳤네 진짜
이런 속물들이···
나는 얼른 손가방에 다시 물건들을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슬슬 피로가 몰려오는데 할머니가 정자에 나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되나?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를 넘어 6시를 향해가고 있는 시간.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대고 물었다.
“혹시 이 방송 보시는 형님들 중에 정자에 계시는 할머니의 신상을 좀 알고 계시는 분 있나요? 그분을 좀 봬야 하는데···”
- 그 할머니는 왜?
“폐광산에서 안타깝게 돌아가신 그 정해수라는 분이 할머니에게 이 유품을 전달해달라고 하셨어요.”
내가 지나쳐왔던 정자가 보이기 시작하며, 곧이어 한결같이 앞을 바라보고 계시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어? 할머니 지금 정자에 계시네요? 잠시만요.”
마침 잘 됐다 싶어. 나는 얼른 그 정자로 뛰어갔다.
하지만, 남다른 포스의 할머니 옆에 자리를 하자마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실례되는 말일지는 몰라도 정말 살아있는 귀신같다.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내가 용기 내어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하, 할머니. 일찍 일어나셨네요. 저 혹시 기억하시겠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천천히 내 쪽으로 슥 돌린다.
하지만 역시 잘 보이지 않으시는지 눈을 잔뜩 찡그리신다.
“저 어제 저녁에 여기 지나가면서 길 물었던 학생입니다.”
할머니는 감정 없는 그 얼굴로 작게 중얼거리셨다.
괜스레 머쓱해진 내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할머니. 혹시 그 원흉이라는 게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저놈.”
할머니가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폐광산을 가리킨다.
폐광산?
원흉이라는 게 사람이 특정한 게 아니라, 저 폐광산을 말씀하신 건가?
“폐광산이요?”
할머니가 힘없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내 아들을 훔쳐 갔어.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
그렇게 무서웠던 할머니의 표정이 살갑게 변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무릎을 탁탁 치시더니, 울분을 토하셨다.
“그렇게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가서 이 어미 속을 썩이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는 입술을 잔뜩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진정이 된듯한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근데 그쪽은 누구요?”
“아··· 아까 말씀드렸는데 기억을 잘 못하시는···”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셔서 약간의 치매도 있으신 듯했다.
“안녕하세요. 저 어제 여기서 인사드렸던 정연우라고 합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물었다.
“우리 아들 좀 찾아 줘. 우리 아들. 집 안에 아들 물건이 하나도 없어.”
- 할머니가 치매가 있으시네
- 근데 그 사람 시신 못 찾았어?
- ㄴㄴ 이미 사고 후에 시신 양도받음
- 그럼 할머니가 기억을 못 하시는 거구나
- ㅇㅇ 안타깝지만, 아들 잃으신 후에 상태가 안 좋아지심
- 이미 마을에서도 아는 사람은 다 암
나는 조금이나마 위로를 더 해드리기 위해 작은 손가방을 꺼냈다.
“할머니. 아드님 성함이 정해수 맞으시죠?”
순간, 할머니의 몸이 갑자기 움찔거렸다.
그 이름 세 글자에 기억이 돌아오신 듯 얼굴 표정이 멀쩡하게 변했다.
갑자기 나를 잡으려는 듯 허공에 두 손을 휘젓더니 결국, 내 몸을 붙잡고 버럭 소리쳤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어딨어? 어딨어!”
어찌나 세게 흔드시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이 휘청댔다.
-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 신장개업 풍선 아님?
- 레알 똑같네
- 갓 잡아 올린 주꾸미 같기도 하고···
- 할머니 그러다 우리 연우 죽어요. 그만 흔들어요
- 위로해 주러 온 거 맞지?
- 근데 연우가 봤다는 귀신이 할머니 아들이 맞아?
나도 모르게 내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어간다.
마을의 지금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
하지만, 굉장히 낯익은 모습의 할머니.
아니. 조금은 젊은 듯한 할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지금의 눈과는 전혀 다른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계셨다.
할머니는 폐광산 앞에 잔뜩 모여 수군거리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다급해 보였다.
신발이 한 쪽이 벗겨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폐광산 앞으로 뛰어간다.
“위험하니까 비켜주세요!”
폐광산 앞에 다가가자 하얀 천을 씌운 무언가를 구급 대원이 들고 나온다.
할머니는 그것을 보고 두 손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들것에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이에요···?”
“어? 어! 이러시면 안 돼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뜯어말렸지만, 막지 못했다.
결국은 들것에 씌워진 흰 천을 들어 올리고 나서야 세상을 다 잃은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술을 깨물며 할머니를 위로했다.
옆에서는 할머니를 지켜보며 마을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글쎄 갑자기 천장이 무너져서 저 할머니 아들이 땅에 깔렸대요. 그런데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다들 쉬쉬하고 몇 달이 되도록 손도 못 대다가 결국 이제야 시신을 수습하는거라네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내미가 참 효자였는데 쯧쯧···”
“어휴 그러게요. 이걸 어쩌면 좋아··· 아들이 사고 당한 날이 하필이면 할머니 생신이었다지 뭐야.”
할머니는 멍하니 들것에 실려가는 아들의 시신을 바라보다 결국, 쓰러지시고 말았다.
“어? 어! 할머니! 할머니!”
“여기 사람 살려! 사람 살려주세요!”
짧은 순간이 스쳐 지나가며 내 마음에는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났다.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나는 진정된 할머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할머니 아드님이 정말 효자셨나 봐요. 할머니 생신 선물 사드리겠다고 정말 열심히 일하신 것을 보니···”
그리고 안아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정말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
나는 곧장 작은 손가방에 있는 가족사진들과 팔찌를 꺼내어 보여드렸다.
“이거 받으세요.”
어느샌가 멀쩡해진 표정의 할머니는 내가 건네준 가족사진과 팔찌를 건네받았다.
곧장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자마자 손을 덜덜 떨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저는 흉가 방송하는 사람인데요. 폐광산에 들어갔다가 정해수 아저씨의 유품을 찾았어요.”
할머니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갑자기 서러움을 토해내셨다.
“아이고오! 해수야! 우리 해수! 해수야!”
- 가슴 아프다
- 흉가 방송을 보다 보니 이런 날도 생기는구나
- 휴. 결국 그 귀신이 이 할머니 아들이 맞는 거네?
- ㅇㅇ. 그리고 선물까지 사놨는데 안타깝게 생신날 돌아가셨다는 건가
- 대박이다. 연우 진짜 무당 다 됐네
- 이것도 기사화해야 되는 거 아니냐?
- 영상만 올라가도 대박일 것 같은데?
그리고 곧이어 선물로 받았던 금까지 내어드렸다.
“이것도 받으세요 할머니. 아드님 유품이 있던 곳에 같이 묻혀있던 겁니다.”
할머니는 한참을 서글프게 우시다 다행히 진정이 되셨다.
그리고 손으로 금덩어리를 매만지더니 오히려 도로 내게 내밀었다.
“괜찮아요. 학생 거예요. 난 이것만 있으면 돼요.”
가족사진과 팔찌였다.
한참을 실랑이했지만 계속 거절하시는 할머니.
나는 안되겠다 싶어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고 일단 마을을 내려왔다.
그리고 카메라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형님들. 혹시 제 구독자분들 중에 금은방 하시는 분 없나요?”
그 말을 꺼내자마자.
- 나한테 가져와. 내가 다른 데보다 비싸게 쳐줄게.
아침이 되는 시간이라 시청자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 600명이라는 사람이 내 방송을 보고 있었다.
혹시나 사기당할 염려를 우려해 나는 방송을 끄지 않고 곧장 시청자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1시간 거리에 있었던 시청자.
그나저나 이거 진짜 금이 맞을까?
띠링. 띠링.
마침 내 방문에 맞춰 출근했는지 가게 불을 켜고 있던 이웃집또털어 시청자.
안경을 쓰고 배까지 불룩 나온 푸근한 아저씨였다.
“반가워. 팬이야.”
닉네임과는 맞지 않은 인상이지만, 나 역시도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웃집또털어형님.”
- 야. 네 시청자들은 도대체 닉넴이 왜 그러냐
- 무슨 도둑놈이 도둑질해서 금은방하는 느낌이야
- 그러는 님은 무슨 일하시는데요?
- 비뇨기과···
- 항문의영광. 님도 만만치 않은데요?
- 그나저나 시청자들이 많으니 별의별 직업이 다 있네
- 크흠. 여하튼 사기 못 치게 우리가 지켜볼게
나는 가방에 있는 작은 금덩어리들을 모두 앞에 털어놓으며 시청자에게 물었다.
“형님. 혹시 이거 다 얼마일까요?”
셀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개수에 눈에 휘둥그레지는 시청자.
사고가 정지된 듯 나를 멍하게 쳐다보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지 한참을 뜸을 들이던 시청자는 내게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다 해서 7백만 원 나오겠는데··· 와. 진짜 이거 실화인가.”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건물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뭐, 뭐라고요!? 7백만 원!?”
생각보다 엄청난 액수에 입에서 침이 흐를 정도다.
[ 이렇게귀한곳에누추한분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왜. 갑자기 금액 들으니 생각이 바뀌냐? ㅋㅋ
처음 할머니를 뵀을때부터 이 금을 어떤 곳에 사용해야 할지 결심했었다.
“형님들. 이 금은 할머니 눈 치료와 생활비로 그냥 다 드리겠습니다.”
금을 현찰로 바꾸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 나는 좋은 시청자 덕분에 절차를 많이 밟지 않고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제 방송 많이 봐주시고, 돈 많이 버셔서 후원도 많이 해주십쇼!”
“어, 어 그래···”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한 번 더 쳐다보며 물었다.
“형님들. 혹시 제 구독자분들 중에 병원 하시는분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