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도 더 된 폐 광산. 6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눈앞에 귀신은 날 보며 인상을 살벌하게 찌그러트렸다.
공기가 따갑다.
먼지로 새카맣게 뒤덮인 작은 몸에서 뿜어내는 살기는 나를 바늘로 쑤시는 것만 같았다.
“아, 아저씨 농담 한 거예요. 일단 지, 진정하세요.”
방금까지 다리를 부여잡고 있던 아저씨가 피를 철철 흘리는 그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쁘드득. 쁘득. 드득.
하지만, 그 끔찍한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 네가 처음이야. 이 폐광산에 나를 보러 온 건 ]
나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눈을 뜨고는 계속해서 그 귀신을 주시했다.
이제야 그 다리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무언가에 짓눌렸는지 심하게 으스려져있다.
흐르는 핏물 옆에는 하얀 지방도 튀어나와 있었다.
작업하던 도중 무너져 내린 돌 더미를 맞은 것 같았다.
게다가 옷에 묻은 출혈 흔적으로 보아 과다출혈로···
그런데 그게 한이 돼서 여기 이대로 갇혀버린 걸까?
“저, 저를 계속 부르셔서 일부러 여기까지 와, 왔잖아요. 무슨 사연인지 들어보고 그 한 풀어 드릴 테니까 저한테 얘기해주세요! 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이에요!”
극심한 공포에 휘둘리니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저 이 순간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뱉은 건 아니었다.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한이 있다면 그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 ······ ]
아무런 대답 없이 내 얼굴 앞까지 다가온 귀신.
갑자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나를 죽일 듯 쳐다보던 눈빛을 가라앉혔다.
금방이라도 서러움을 토해낼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 정말이지? ]
그리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다, 당연하죠. 그러려고 제가 이곳에 온 거라니깐요!”
반은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다지만, 이러한 상황을 예상치 못 했던 것도 아니었다.
방송이 끊겨버린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후의 계획도 준비해놨다.
귀신은 힘없는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할 이야기가 많은 듯 보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신에게 얘기했다.
“잠시만요. 제가 방송하는 사람이거든요. 나중을 위해 이 영상을 그대로 남겨서 꼭 귀신 형님의 한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공유할게요. 그래도 괜찮겠죠?”
귀신이 고개를 카메라 쪽으로 슥 돌리더니 위아래로 끄덕인다.
시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귀신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토록 무섭기만 하던 귀신이 나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하는 경험은···
그만큼 특별했기에 이 모든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띠링.
[ 동영상이 시작되었습니다. ]
나는 카메라 앵글에 내가 잘 잡힐 수 있게 각도를 잡아 세워두었다.
동영상이 시작되자마자 귀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 내가 이곳에 얼마나 갇혀 있었는 줄 알아? ]
[ 그런데, 단 한 사람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어! ]
[ 밥 한 끼를 제대로 못 먹고 일만 죽어라 했는데 ]
[ 너네들이 어떻게 나를! 나를! 나를! ]
[ 다 죽여버릴 거야. 다 죽여버릴 거야! ]
이야기를 털어놓을수록 고조되는 감정.
한 맺힌 그 설움이 광산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이런 깊은 폐광산에서 귀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인지 사람들은 알까?
나는 그 목소리를 바로 눈앞에 두고 스테레오로 듣고 있었다.
바짝바짝 선 솜털이 좀처럼 가라앉을 틈이 없다.
귀신이 큰 소리 지를 때면 내 몸도 동시에 움찔움찔거렸다.
하지만, 나는 꾹꾹 참으며 귀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진심은 반드시 통할테니까.
문득 귀신의 이야기에서 왠지 낯설지 않은 한 인물이 떠올랐다.
[ 우리 엄마가 항상 정자에서 나를 기다렸는데··· ]
[ 아직까지 살아계시기는 하는 걸까 ]
엄마가 항상 정자에서 자신을 기다렸다고?
나는 이곳에 오기 전.
정자에 계시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설마···
“아, 혹시 쌍꺼풀이 없으시고 키가 150조금 넘으시는 할머니 말씀하시는···”
그 말을 들은 귀신이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내 두 어깨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 우리 엄마. 우리 엄마야! 아직도 살아 계시는 건가!? ]
내 몸을 붙잡고 흔들자 차가운 한기가 고스란히 몸에 전해진다.
“네. 누, 눈이 조금 아프시긴 하는데··· 지금도 항상 정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것 같아요. 이곳에 오기 전에도 제가 봤거든요. 그 분이···”
두 입술을 움찔거리던 귀신은 결국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도 정말 서러울 땐 애처럼 꿀럭이는 울음을 토해내는데.
딱 그 울음이었다.
귀신은 다리가 으깨진 그 상태로 두 손을 모으고는 하염없이 울어댔다.
[ 흑흑흑··· 기다리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그나저나 할머니는 분명 그놈이 원흉이라고 하셨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신거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일단 나는 귀신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진심으로 위로했다.
콜록. 콜록.
기침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상하게 호흡이 빨라졌다.
머리도 살짝 아파오는 것 같았다.
그 증상을 본 귀신이 울음을 그치며 걱정하듯 내게 얘기했다.
[ 이제 너 나가야겠다. 산소 부족 증상이야. ]
[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 돼.]
그리고 어느샌가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하고서는 내게 웃으며 얘기했다.
[ 고맙다. 내 얘기를 들어줘서. ]
[ 처음이야. 다 도망가기 바빴는데. ]
나는 괜스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처음이에요. 귀신 새끼. 아니. 형님이랑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은 건···”
아주 잠시 동안 귀신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리고 내가 나갈 준비를 하자 귀신이 내 팔목을 덥석 붙잡았다.
순간, 놀란 눈으로 멀뚱멀뚱 귀신을 쳐다봤다.
[ 다름이 아니라 마지막 부탁을 하나 더 들어줬으면 하는데. ]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마, 말씀하세요.”
귀신은 저 구석에 있는 벽을 가리켰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별 특징이 없는 멀쩡한 벽이었다.
귀신이 중얼거렸다.
[ 저기에 내 유품이 묻혀 있어. 저걸 꺼내서 우리 엄마한테 전해줄래 ]
[ 내가 아무리 쳐봐도 벽이 도통 파이질 않아 ]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흔쾌히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죠.”
방송이 끊기고 30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빨리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곧장 옆에 준비되어 있는 낡은 곡괭이를 들었다.
그리고 그 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캉! 캉캉! 캉캉!
50년도 더 된 폐광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폐 광산이었지만.
그런 걱정 따윈 전혀 하지 않았다.
선녀보살님의 말에 따라 귀문(鬼門)이 많이 열린 탓일까.
아님, 이 타고난 본능적인 감각 때문인 걸까.
이 귀신이 나에게 해로운 존재가 아니란 건 처음부터 느꼈었으니까.
그렇게 5분이 지났을까.
아무런 문제 없이 나는 귀신이 말한 유품을 찾을 수 있었다.
조그마한 손가방이었다.
그 안에는 가족 사진이 여러 장 섞여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래치 하나 없이 보존되어 있는 가죽 팔찌가 들어 있었다.
보자마자 감탄이 흘러나온다.
직접 만든 수제 팔찌 같았는데 솜씨가 엄청 뛰어나 보였다.
매듭 하나하나가 아주 깔끔한 게 돋보였다.
“지, 직접 만드신 건가요?”
[ 내가 만들었는데 엄마한테 주지도 못하고 사고로 죽었어. ]
[ 꼭 그걸 우리 엄마에게 전해줬으면 좋겠어 ]
나는 가족사진과 가죽 팔찌를 그대로 손가방에 넣어 내 가방에 보관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데.
덥석.
귀신이 내 손을 또 붙잡았다.
시벌. 왜, 왜. 왜 그러는데 도대체.
잡힐때마다 온몸이 얼음이 되어버린다.
내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자, 귀신이 중얼거렸다.
[ 네 발 밑에 거기도 한 번 파 봐. ]
나는 살며시 고개를 땅으로 떨궈 귀신이 말한 곳을 바라봤다.
내가 여기 땅 파러 온 건 아닌데···
하지만 마음속으로만 삼키고 군말 없이 그 땅을 파댔다.
“헉!”
내가 파낸 그곳의 무언가가 드러났을 땐.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 그 자리에서 입만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시벌?
손톱만 한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는데 어두컴컴한 그곳에서도 자신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 그건 내 선물이다. 가져가 ]
나는 한참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합쳐보니 손바닥만큼 커진 금덩어리.
그건 값어치로 계산해도 셀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시, 시벌.
놀란 마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 옆에도 곡괭이질을 해댔다.
결국.
[ 이제 없어. 그게 끝이야 ]
라는 말을 듣고 순순히 곡괭이를 내려다 놓았다.
금을 보는 순간, 눈이 헷가닥 돌았다.
이래서 돈이 무섭구나.
그저 집에 갈 생각도 잊은 채 빙의된 것처럼 곡괭이질을 해댔다.
나는 빠른 사과를 끝내고 귀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금을 본 순간부터 더 가빠진 호흡 때문에 서둘러 인사를 건넸다.
“만수무강하시고, 꼭 천국 가세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지만, 어느샌가 나는 귀신에게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수레를 타고 작동 시켰다.
혹시나 움직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내 옆에서 지켜보는 귀신이 고개를 까닥이자, 정말 마법처럼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끼이이.
정말 영화 같고 만화 같은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벙한 상태로 귀신의 마중을 바라보며 그저 수레에 몸을 맡겼다.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른 수레.
50m를 가는데도 그 장소에서 벗어나질 못해 귀신에게 계속 손을 흔들고 있을 때.
방송이 제멋대로 다시 켜졌다.
“형님드으으을! 제가 돌아왔습니다아아아!”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었던 터라.
까맣게 먼지를 뒤집어쓴 것도 잊은 채 카메라에 대고 반갑게 소리쳤다.
- 어? 방송켜졌다
- 살아있네?
- 뭐야 이거?
- 누구?
- 땅굴에서 사시는 분인가?
- 아니. 도시락 까먹는다는 쥐 아냐?
나는 채팅창을 살펴보다 핸드폰으로 나를 비췄다.
동시에 폐광산이 떠나갈 듯 괴성을 질러댔다.
“와아아아악! 시버어어어얼!”
그리고 3초 뒤.
나인걸 깨닫고 다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형님들에게 물었다.
“형님들 쥐라니요! 연우입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끊기는 걸 알고 들어갔으면 안 됐는데!”
나는 보조 폰으로 찍은 폐광산 끝자락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방송이 끊어져서 혹시나 인증이 안 될까 봐 사진도 찍어왔습니다. 형님들. 이것 보십쇼.”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주자마자 후원창이 울렸다.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3,0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못 봐서 아쉽지만. 인정. 고생했다. 담엔 방송 꺼지면 죽는다.
나는 후원창이 뜨자마자 수레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아! 마라탕 형님께서 소중한 3백만 원으으으을! 아주 평생을 바치겠습니다요오오!”
- 평생 뜯어먹겠단 소리로 들리네
귀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긴장이 풀린 나머지 눈썹까지 들썩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당연하죠. 형님과는 Always. Forever입니다요!”
- 야. 그나저나 방송 끊겨서 우린 아무것도 못 봤다고
-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 우린 너 죽은 줄 알았어
- 난 설마 해서 신고도 했는데···
- 근데 실수로 우리 동네에서 부름.
- 미친. 네 시청자도 정상이 아냐
- ㅋㅋ 얘기나 좀 해봐 봐
- 궁금하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씩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제가 형님들에게 보여드리려고 영상을 찍어왔습니다. 근데 그전에···”
나는 가방 안에 있는 작은 손가방을 꺼내어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