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도 더 된 폐 광산. 4
“하하하. 제가 좀 빨빨거리며 잘 돌아다녀요!”
한참을 그렇게 떠들다 채팅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잔뜩 신난 내 분위기와는 다르게 냉랭한 채팅창 분위기.
상황 판단이 안 되는 나는, 아저씨들을 뒤로하고 채팅창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형님들. 무슨 말씀 하세요. 버젓이 여기 계시는데···”
그리고 손짓과 함께 아저씨들이 있던 곳을 다시 바라봤다.
순간, 사고가 정지됐다.
불과 3초 전만 해도 내 앞에 있던 시커먼 얼굴의 아저씨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있었던 흔적조차. 아니, 먼지조차 남기지 않고 없어졌다.
나는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소름과 함께 괴성을 질러댔다.
“우와아아아악! 시바아아알! 뭐야!?”
- 거봐. 이 새끼 홀렸다니까
- 야. 너는 백날 수련해도 그 모양이냐
- 어쩐지 왠지 들떠있더라.
- 우리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
- 도대체 뭘 본 건데?
- 아냐. 근데 아까 소리는 명확하게 들렸잖아?
- 일단 얘기나 한 번 들어보자
나는 아저씨들이 있던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른 침도 크게 삼켰다.
난 홀리지 않았다.
방심도 하지 않았다.
허구한 날 헛것을 보고 기겁하는 내가 이런 경우의 수를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었다.
아저씨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에도.
EMF 측정기를 확인했다.
1단계도 아닌 겨우 0.5단계를 왔다 갔다 하는 수치.
또, 가방을 뒤적거리는 척하며 소금, 팥, 복숭아 나뭇가지도 매만졌다.
물론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었다.
그런데도 방금 내가 본 게 헛것이라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니야. 진짜 아니야 형님들. 전 진짜 사람을 봤어요. 진짜 봤다니깐요!!!”
평소보다 더 강하게 내 판단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 설마 이것 때문에 그렇게 고집부리는 거냐? 옜다. 이제 사람 아닌 거 맞지?
나는 눈을 꿈뻑거리며 다시 중얼거렸다.
“사, 사람이 아닌가···?”
아니. 다시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외쳤다.
“아냐! 정말 사람이었어! 아저씨들 옷에 새겨진 각자의 이름표도 봤다니깐요!?”
정확히 다섯 명.
먼지를 뒤집어쓴 얼굴이라 일일이 구분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한 사람은 기억하고 있었다.
[ 정해수 ]
그래. 정확하게 그 이름이었다.
서로 멀뚱멀뚱 나를 놀랜 눈으로 쳐다볼 때, 그 사람이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시커먼 손으로 악수도 청했다.
순간,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곧장 헤드랜턴으로 내 손을 내려다 비추었다.
“워어어어어! 시발!”
언제 올라탄 걸까.
내 오른손에는 수많은 잡 벌레들이 시커멓게 기어 다녔다.
- 워 시발!
- 벌레 개 징그러워. 뭐야?
- 오잉. 허공에 대고 손 흔든 거 밖에 안 보였는데 뭐지?
- 갑자기 벌레 마술?
- 워메. 생각할수록 귀신이고칼로리네
- 야 거기 좀 이상하다.
- 나까지 귀신 홀리는 것 같다
천천히 숨을 고르게 하고, 이리저리 다시 둘러보지만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나는 다급하게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뚜벅. 뚜, 뚜벅. 뚜벅. 뚜, 뚜벅.
마음이 급하니 보폭도 일정하지 않다.
그저 누가 따라오는 건 아닐까 두려워 뒤를 힐끔 거리며 도망치듯 걸었다.
- 야. 어디 가?
“시, 시벌··· 형님들 일단 이 여길 나가서 맑은 공기를 좀 마시고 생각을 좀···”
좁은 동굴 안에서 탁한 공기를 마신 탓일 수도 있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나아질 것 같았다.
- 야 온 지 1시간도 안 됐다. 천 명이 지켜보고 있는데 벌써 나간다고?
그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형님들. 자, 잠시만요. 아주 잠시만 나가서 생각 좀 하고 올게요.”
현재 시청자 수 1039명.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한 명이 아니고 무려 다섯 명이었다.
게다가 나에게 전혀 위협적이지도 않았으며 지금까지의 느낌과는 정 반대였다.
당황스럽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럽다.
사람이 아니었다고?
그렇다고 하기엔 손의 감각이 무지 따뜻했···
순간, 벌레가 훑고 지나간 흙 손바닥을 털어내자 하얀 손바닥이 보인다.
마치 얼음장같은 차가운 물건을 만졌을 때 혈액순환이 일시적으로 잘 안되는 것처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악수를 하지 않은 왼 손바닥을 들자 명확하게 비교되었다.
내 왼손은 붉게 물들어 피가 잘 통하고 있었다.
[ 연우 학생. ]
[ 아니. 그새를 못 참고 또 어딜 그렇게 가는 거야. ]
[ 좀 쉬었다 천천히 가지. 우리 심심하게. ]
슥삭. 슥슥삭. 쓱쓱. 슥삭.
그 아저씨들이 있던 방향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
발에 못이 박힌 듯 고정되어 그 자리에 멈췄다.
“혀, 형님들···”
- 허?
- 시발··· 방금 연우 부르지 않음?
- 뭐야? 또 아까 들렸던 소리도 또 들리는데?
- 이번엔 더 안쪽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래. 아까도 이 소리가 가까워지고 나서 연우가 혼자 떠들었다고
- 이 소리의 정체가 뭐지?
- 망치로 뭔가 두드리는 소리 같은데
- 톱 가는 소리도 들리는데?
- 무서운데 개 궁금하네. 도대체 뭐야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환청이 이렇게나 뚜렷하게 들렸던 적이 있던가?
그것도 나 혼자만의 환청이 아니라, 이렇게 공개적인 방송에서 모두에게 들릴 만큼?
순간, 선녀보살님의 말이 떠올랐다.
[ 신령님께서 소리를 조심하라고 하시네요.]
그 말···
설마 방금 같은 상황을 대비하여 말씀해 주신 건가?
굳었던 내 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다. 이건 아니야. 일단 나가자.
뚜벅. 뚜벅. 투다닥. 투다다다닥.
나는 빠른 걸음에서 뜀박질로 변경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거기서 스탑.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울상을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마라탕 형니임···?”
그리고 쉬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 마요. 하지 마요 마라탕 형님. 여긴 머리가 어지럽다고!
처음 겪는 공포감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초조함에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 터널 끝까지 갔다 오면 삼백만 원.
동시에 뒤늦게 내 두 눈도 부릅떠졌다.
시벌··· 뭐? 얼마? 삼백만 원!?
- 싸늘하다.
-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놈은 후원으로 공포를 이겨내니까
- 당신들은 무엇에 걸래?
- 나는 무조건 들어간다에 한 표
- 그럼 나는 무조건 들어간다에 손모가지
- 나는 부랄 두 쪽 다 걸겠음
- 어? 님 이제 남은 부랄 없지 않음?
- 드, 들킴?
하··· 사람들의 질타가 그려진다.
백날 무섭다고 얘기하면서 후원이라면 무조건 하는 놈.
후원이라면 무덤까지도 들어가는 놈.
죽을 것 같은 위기 속에서도 후원이라면 잇몸만개 할 놈.
“잠시만요 형님. 고민 좀 할게요.”
그래 맞다.
부정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돈에 쫓겨왔고,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돈이 절실했다.
아니.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아파 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것 때문일까?
월등한 신체능력을 선물받고 나서부터는 돈이라면 본능적으로 몸이 앞선다.
어차피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집! 집! 집!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집에서 엄마와 아늑하게 보내는 거다!
그래.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몸뚱어리.
시벌. 달려보즈아!
나는 숙였던 고개를 살며시 들며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마라탕 형님. 오케이 코오오올!”
나름 비장한 표정을 했지만, 떨리는 몸은 주체할 수 없었다.
[ 뒤돌아보지라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ㅇㅋ. 고고
- 비장한 얼굴과 상반되는 연약한 몸뚱어리.
- 개다리춤 춤은 전국에서 네가 1등이야
- 벌써 지린 건 아니지?
- 맨날 검정 바지 고집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듯
- 삼백만 원 미쳤다 진짜. 나도 하고 싶다
- 님도 지금 얼른 가서 하셈. 제가 드림
- 그, 그냥 말만 해본 거야···
- 저걸 어케 해 시벌. ㅋㅋ 동네 폐가도 살 떨리는데
- 연우니까 하는 거라니까
- 인정. 저놈 진짜 악바리 같은 게 있어
“후··· 후··· 후웁!”
나는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하고, 다시 등을 돌려 안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죽지 않아. 이런 곳에서 죽겠냐 내가!
선녀보살님이 챙겨주신 비싼 부적들도 있고, 무엇보다 정체 모를 저 사람들.
아니 저 귀신들에게서는 단 1%의 위협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 누구세요! 사람인가요? 대답 좀!”
사연이 있는 거라면 들어주기라도 할테니 대답 좀 해라!
귀신이냐! 사람이냐!
곧이어 다시 도착한 두 갈래의 길.
나는 바닥에 미리 떨궈 놓은 소금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다시 그 속으로 몸을 들였다.
“형님들. 제 느낌엔 분명히 사람이었어요. 제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는 걸 꼭 확인시켜드릴게요.”
나름 내 머릿속에 그들을 착한 존재라 되새기며, 걷고 있었다.
똑. 똑. 똑. 똑. 똑.
아까 아저씨들을 마주쳤던 그 장소를 지나고나니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한곳이 아니었다.
천장 사방에서 떨어진 물들이 사방에 고여 있었다.
게다가 녹슨 쇠사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건 뭐 하는 용도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만져보았는데.
“워어어. 형님들. 이 쇠사슬 엄청 무거워요. 10kg은 넘겠는데요? 아니. 그것보다···”
왜 이렇게 차가워?
어느샌가 온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내가 내뱉은 숨이 눈에 보일 정도로 하얗게 퍼져 흐른다.
빛이 없는 곳이라 그런 건가?
“엄청 추워졌어요 형님들. 이것 좀 보세요··· 헐.”
아직 가을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폐광산 안쪽에는 하얀 고드름이 여기저기 매달려있다.
- 와우. 한 겨울이네 여기는
- 한기 아냐?
- 귀신이 살기 딱 좋은 환경이잖아
- 습하고 춥고
- 그럼 그건 진짜 귀신이었다는 게 확실해졌네
- 그걸 말이라고 하냐. 무조건 귀신이지.
- 순간 이동 쓰는 사람 봤음?
- 연우는 후원해 주면 할 수도
나는 점점 좁아지는 길을 보며 조심스럽게 외쳤다.
“저기요! 거기 진짜 사람 계시는 거죠?”
[ 계시는거죠. 시는거죠. 는거죠. 거죠. 죠. ]
하지만, 어느샌가 소리는 뚝 끊겼고 안에서는 그저 물 떨어지는 소리만 가득 퍼져 흘러왔다.
걱정 반, 의심 반.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시벌. 이걸 가? 말아?
내 고민 해결을 도와주려는 듯.
갑자기 무언가가 무너지는 큰 소리와 함께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끄아아악! 살려줘어어! 사람 살려어어! 연우 학생! ]
공중에 점프를 할 정도로 기겁한 내가 소리가 나는 그곳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분명 사람 목소리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채팅창을 둘러봤지만.
- 뭐야? 시발 깜짝 놀랐네!
시청자 귀에도 전달됐다.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다급한 사람 목소리다.
아니.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잠깐만···
난 내 이름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부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