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35화 (135/225)

50년도 더 된 폐 광산. 3

- 미쳤네. 저 바닥에 헤드스핀 하면 너 머리에 펑크나

- 헤드스핀이 아니라 데드 스핀이 될 것 같은데

나 역시도 막상 내기를 걸고 나니 뒤늦게 땅이 보인다.

보는 곳곳마다 죄다 울퉁불퉁.

도저히 머리를 댈 수 없는 뾰족한 돌 천지다.

게다가 습기 때문인지 밟으면 발이 쑥쑥 빠져 들어간다.

“형님들. 왜 제가 헤드스핀을 할 거라고 생각하시죠? 저는 내기에 무조건 이깁니다. 후훗.”

- 생각해 보니 쟤는 내기에 진 적이 없네

- 자신만만하니까 헤드스핀 하겠다는 거지

- 아냐. 저놈은 굉장한 착각을 하고 있다.

- 무엇을?

- 우리에겐 마라탕 형님이 있다는 걸 잊은 듯하다.

- 아하. 내기에서 져도 무조건 시키면 되는구나

- 유일하게 후원한테 지는 놈이다

- 그래도 무조건 귀신에 한 표

- 귀신임. 난 진짜 진심 못 들었음

- ㅇㅈ 나도

천천히 밟아 들어갈수록 음침한 내부가 점점 더 드러난다.

땅의 높낮이가 불규칙하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 4미터는 돼 보이는 천장이 있는 반면에 내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천장도 존재했다.

또, 햇빛 하나 없이 항상 묻혀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습하기는 얼마나 습한지.

셀 수 없는 벌레 떼가 켜놓은 헤드랜턴 쪽으로 사정없이 달려든다.

“어우. 형님들. 여기 벌레가 너무 많아요. 좀 있으면 박쥐도 나오겠···”

말하기가 무섭게 박쥐떼가 무언가에 쫓기며, 내 쪽 방향으로 일제히 날아왔다.

끼기긱. 찌직. 찌지지익.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잔뜩 움츠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어어어!”

그러다 문득 저 멀리 헤드랜턴에 비치는 무언가의 그림자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어? 뭐야? 사람이지 저거?

하지만, 내가 비추자마자 불빛에 의해 남아있던 실루엣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동굴 안쪽으로.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어? 형님! 아니. 저기요! 거기 누구 있으신가요?”

[ 있으신가요. 으신가요. 신가요. 가요. 요. ]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발자국 소리만 들려온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뭐지? 형님들. 방금 그림자 보신 분!?”

- 어? 시발. 진짜 사람 그림자인데?

- 말이 되나?

- 야 혹시 여기 또 누구 숨겨놓은 거 아니지?

- ㅅㅂ 덩치가 엄청 큰데?

- 괴물 같아

- 솔직히 말해라. 야생곰은 나락 가서 아닐 거고.

- 진짜 곰 아니냐

- 박필준이라도 섭외했나?

- 그놈 겁 많아서 절대 못 옴

- 사람 아닐 수도···

나는 그 곳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형님들. 저 오늘 여기 혼자 왔어요. 그리고 여긴 시청자 형님 추천받고 처음 온 곳이라고요···”

곧장 카메라를 쳐다보며 시청자 목록에서 한 사람을 찾았다.

“부릅 형님. 혹시 이 장소에 대해서 다른 거 아시는 건 없으신가요?”

- ㄴㄴ 그 할머니 얘기 밖에 들은 게 없음. 거기 사람들 안 가. 경찰들도 무서워서 안 간다니까.

할머니 얘기하니 아까 한참 반복적으로 중얼거리시던 그 말이 떠올랐다.

[ 그놈을 조심해. ]

[ 그놈이 원흉이야. ]

도대체 뭐가 원흉이라는 걸까?

다시 들려오기 시작하는 소리.

근데, 들을수록 미간이 찌푸려진다.

분명 나는 폐광산 안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저 깊숙한 그곳에서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만 울려 퍼진다.

그 때문일까.

왠지 모를 밀폐된 동굴 속에서의 공간은 폐가, 흉가와는 다르게 또 다른 공포감을 내게 선사했다.

쓱싹, 슥슥, 스스슥. 슥삭.

게다가 20m쯤 들어오니, 함께 들리기 시작한 이 소리.

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나를 피해 일부러 도망가는 건지, 아님 정말 내가 환청을 듣고 있는 건지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렇게 고작 1분을 걸었을까.

갑자기 내 걸음이 뚝 하고 멎었다.

“어? 이런···”

길이 나누어져 있다?

입구 위에는 이곳에 있던 누군가가 걸어놓은 낡은 펫말도 있었다.

[ 제1길 ] [ 제2길 ]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턱을 잡고 고민했다.

“형님들. 소리가 또 뚝 끊겼어요. 어디로 가야 되지?”

곧장 EMF 측정기를 꺼내 확인해 보지만, 역시나 반응은 없다.

“여긴 EMF 측정기도 반응이 없어요. 귀신이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 뭐냐 이건

- 그렇지. 이런 큰 폐 광산이 한 길로만 이어져있을리 없지

- 연우는 어디를 택할까?

- 난 개인적으로 1이 더 땡기는데

- 그것보다 사람이 있다는 곳을 가겠지

- 아니. 뭔 사람이야. 그거 귀신이라니까

- 그건 모르는 일임

- 우리한텐 안 들려도 연우한테는 들리나 봄

- 쟤 요즘 진짜 무당 같다니까

- 오 저거 봐봐. 뭔가 보여줄 것 같은데?

나는 휴대폰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두 손바닥을 붙이고 기를 모았다.

“형님들. 그럼 선녀보살님에게 혹시나 해서 배워온 신 기술을 여기서 한 번 선보이겠습니다.”

- 헐? 선녀보살이 가르쳐줬다고? ㅅㅂ 도대체 뭔데 그게?

- 설마 무당처럼 기 같은 거 집중해서 느끼고 그러는 건가?

나는 아주 매서운 눈초리를 했다.

곧이어 왼 손바닥을 재빠르게 내밀었고, 그곳에 내 입에 모아둔 천연로열젤리를 뱉었다.

“퉤!”

동시에 오른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쳤다.

척!

순간, 튀어 오른 천연로열젤리가 향하는 방향을 놓치지 않고 주시했다.

“좋았어. 왼쪽이야.”

- 이런 ㅅㅂ색갸. 난 또 뭐 멋있는 거 보여주는 줄 알았네

[ 포카리시멘트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걸 선녀보살님이 가르쳐줬다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데

나는 두 손을 모아 선녀보살님께 감사를 전했다.

손에서는 진하고 꾸릿한 냄새가 흘렀지만, 참으며 얘기했다.

“제 방식으로 조금 바꿔 봤습니다. 형님들.”

그렇게 들어간 제1길.

길이 나누어진 탓에 처음 왔던 공간보다 현저히 크기가 작아졌다.

그래도 워낙에 폐 광산이 큰 탓에 사람 대 여섯 명은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내가 제1길에 들어서기 시작하자 다시금 들리기 시작하는 소리.

이번에는 망치로 무언가를 두드려대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다.

[ 이제 다 왔어. ]

[ 조금만 더 힘내라고. ]

[ 우리가 여태 한 고생이 결실을 맺을 때야. ]

놀라움과 반가움의 감정이 들이닥치자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로 카메라에 대고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혀, 혀, 형님드을! 들었죠! 지금 방금 사람들이 속삭이는 거 들으셨죠!”

- 헉! 레알? 사람이 있네?

- 우와. 이건 내가 반박을 못 하겠다.

- 지금 방금 뭐라고 한 거지?

- 뭐. 조금 더 힘내라고 그런 말 한 것 같은데

- ㅇㅇ. 여태 한 고생이 결실을 맺을 때라고도 했음

- 아니. 여기 폐광산 된지 오래됐다고 하지 않았어?

- 근데 사람이 왜 있지? 이 새벽에?

- 사정이 있겠지

- 스읍. 존나 의문스럽네

나는 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 연우 씨. 혹시 모르니까 입구에 표식 같은 것 좀 남겨두고 가요

나를 걱정하는 후원창을 보자마자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에 가지고 있던 소금을 눈에 띌 만큼 입구에 뿌려두었고, 카메라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고맙습니다 형님.”

그래 맞아. 조심해야지.

특히나 이런 폐광산은 너무 어둡고 길이 복잡해서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잠시나마 방심하고 있었던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구일까? 이 시간에?

[ 딴 생각은 하지 마. ]

[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

[ 앞으로 한 발짝. 그래 한 발짝 남았어. ]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목소리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왠지 모를 반가움은 점점 더 커져간다.

이 새벽에 이런 폐 광산에서 사람을 마주친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아니. 나는 문득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나 왜 이렇게 즐거운 거지?

평소라면 기겁했을 상황인데···

- 얘 왜 이렇게 싱글벙글이야

- 폐 광산에서 사람 만나니까 기분 좋은 갑지

- 아니. 저거 사람 아닐 수도 있잖아

- 50년도 더 된 폐광산에 새벽에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 귀신이라기에는 그림자가 있었잖아?

- 귀신한테 그림자 생기는 거 봄?

- 아니. 그것도 그렇긴 한데···

- 스읍. 얘 방송 보면 나까지 미쳐가는 것 같다니까 ㅅㅂ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나 오늘 왜 이렇게 들떠있는 것 같지?

저 목소리 때문인가?

그저 듣기만 해도 평온해지는 저 목소리의 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이 편한 데다 목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나긋나긋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동네 푸근한 아저씨처럼.

“형님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나는 헤드랜턴 밝기를 반으로 낮추었다.

혹시나 내 등장에 놀랄 사람들을 위해.

스슥. 스스슥삭. 슥슥. 쓱싹.

그렇게 10m··· 5m··· 2m.

왠지 모르게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고, 괜스레 식은땀까지 난다.

나는 긴장감에 얼굴에 땀을 한번 훔쳤다.

사람 맞지? 분명히 사람이지?

가려진 벽 하나를 넘어 드디어 그 소리의 정체와 맞닥뜨렸다.

흰 자만 보이는 검은 정체들이 나를 일제히 쳐다보며 벙찐 얼굴을 했다.

내가 비추는 헤드랜턴이 눈부셨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흠칫 놀라 했다.

순간. 나는 모든 의심과 경계를 풀었다.

그저 지금 내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나는 눈부셔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단 헤드랜턴 각도를 낮췄고.

곧장 싱글벙글 웃으며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우워어어어! 거봐요 형님들! 제가 말씀드렸죠! 사람이라고요!”

잔뜩 들떠서 그런지,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도 이어했다.

일하느라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아저씨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방송하는 사람인데요! 오늘 여기 폐 광산 탐험하러 왔어요! 혹시 인터뷰 좀 가능하실까요?”

30초간을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던 사람들.

빛의 각도를 조절해 주자마자 호의적으로 변했다.

나를 향해 웃기 시작했고, 다가와 악수까지 청했다.

“그럼요. 그런데 용캐 왔네요. 이 안까지.”

나는 잇몸까지 훤히 보여주고 머리까지 긁적이며 반갑게 대답했다.

“제 느낌에 딱 여기에 사람이 있을 것 같더라니까요.”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학생,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어디서 왔어?”

나에게 서서히 모여들며 말을 거는 아저씨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좀 멀리서 왔는데······.”

주고받는 편한 대화에 동네 놀이터라도 온 듯 화기애애해졌다.

- 쟤 뭐 하는 거야?

- 야 너 도대체 누구랑 대화하는 거야?

- 네 앞에는 지금 아무도 없어

- 얘 지금 귀신한테 홀린 거 아냐?

- 정신 차려 이 새꺄!

- 또 시작인가?

- 아닌데? 오늘은 느낌이 좀 달라.

- 연기하는 것 같지가 않다고

- 뭔데 그럼? 진짜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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