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34화 (134/225)

50년도 더 된 폐 광산. 2

“아··· 강원도가 생각보다 엄청 멀구나.”

땅끝 마을에서 정 반대의 땅끝 마을 왔으니 먼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하필이면 도착하기도 전에 12시를 넘어버릴 줄이야.

이 정도면 시청자가 말해줬던 그 할머니도 정자에 없겠는데.

이걸 어떻게 찾아서 가야 하지?

수많은 잡걱정을 하며, 나는 미리 방송을 켰다.

안 되면 핑계 대고 근처 낡은 폐가나 들어가서 방송 때우기를. 으흐흐···

[ 안졸리나졸리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형님드으으을!”

양옆이 풀로 잔뜩 뒤덮여있다.

그 위로는 새카만 암흑이 둘러싸인 새하얀 아스팔트를 걷고 있는 중이다.

중간중간 아주 가느다란 전봇대도 하나씩 서있다.

언제나 그랬듯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길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길의 끝인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5킬로는 더 들어온 것 같은데···

- 오. 오늘 좀 늦었네?

- 머리에 그건 뭐냐? 헤드랜턴? ㅋㅋ

- 폐광산에 맞춰서 스타일링 한 겨?

- 굿 잡. 항상 손전등 들고 다녀서 내가 더 불편했다.

나는 머리에 낀 헤드랜턴을 이리저리 비추며 뿌듯하게 중얼거렸다.

“거금 주고 구입했습니다. 무려 3만 8천 원! 이게 그냥 파워가 아니에요 형님들. 16코어 우주최강 밝기를 자랑하는 LED 헤드랜턴입니다요. 해루질! 등산! 낚시! 라이딩까지! 아주 다양한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죠! 그런데 난···”

갑자기 생각해 보니 암울해진다.

취미생활이나 놀러 갔을 때 용도로 사용되는 이 헤드랜턴을 나는···

순간, 입이 삐죽거린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휴··· 흉가를 찾아올 때 쓰고 있다니···”

- 너 뭐 조울증 같은 거 있냐?

- 억울해?

- 뿌듯하게 자랑하더니 왜 금세 침울해지는 건데

- 표정 겁나 웃기넼ㅋㅋ

- 너 일부러 우리 웃기려고 그러는 거지?

- 야 표정 풀어. 왜 그래? 시작도 전에 텐션 떨어지게

- 3초 안에 잇몸만개 하면 만 원.

반사적으로 눈에 흰자까지 보여가며 잇몸을 훤히 드러냈다.

하지만 금세 내 표정은 다시 암울해졌다.

- 방송 웃으면서 해야지?

후원창이 울림과 동시에 내 입은 귀에 걸렸다.

눈은 아주 가느다랗게 마치 가자미처럼 찢어졌다.

“형님들. 저는 언제나 형님들과 함께여서 너무 행복합니다. 다들 잘 아시죠?”

- ㅉㅉ

- ㅅㅂ 내 만 원이 초라해지는군

- 역시 저넘은 가격에 따라 사람대우도 다르다니까

- 근데 투턱 만들라는 소리는 없었는데

- 아우 얄미워. 저 얼굴을 어떻게 해야 하지?

- ㅋㅋ 그게 연우의 매력이지

저 멀리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혼자 동떨어져 있는 낡은 정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는데.

“어 형님들 정자! 어라? 사람이 있는 것 같은···”

헤드랜턴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300m가 떨어진 곳에서도 아주 적나라하게 보인다.

분명히 사람인데?

설마 저 사람이 시청자가 말했던 할머니인가?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그 예상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간다.

그와 동시에 내 미간은 점점 모아졌다.

현재 시각 12: 40분.

한눈에 보아도 80은 넘어 보이시는 할머니다.

새하얀 머리에 군데군데 섞여있는 검정 머리.

무엇보다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아 산발이었다.

아니. 일부러 머리를 이렇게 잡아 뜯으신 걸까?

혀, 형님들. 저기 할머니가 계신 것 같은데··· 이 시간에 왜...”

불빛이 강한 헤드랜턴을 약하게 밝기 조절하고 땅으로 떨궈놨다.

그리고 멀리서나마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지켜봤다.

분명 내 불빛이 신경 쓰였을 법도 한데, 눈길 한 번을 주지 않는다.

그저 넋이 나간 눈빛으로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계신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여기 폐 광산이 있다던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역시나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조금의 미동조차도 없이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다.

- 귀신?

- 미친. 멀쩡한 사람한테 귀신이라니

- 근데 진짜 분위기가 귀신같긴 하네

- 와. 새벽에 흉가 갔다가 이런 할머니 보면 나도 식겁하겠다

- 분위기가 왜 이렇게 살벌하지?

- 근데 이 할머니 유명한 할머니라고 하지 않았나?

- ㅇㅇ 동네에 알 사람은 다 아는 것 보니···

폐광산은 아직 들어가기도 전인데, 마른침이 꿀꺽 넘어간다.

아니. 순간 할머니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흠칫 놀랐다.

뭐야? 이 할머니···

혹시 안 보이시는 건가?

눈이 이미 생명을 다 했는지 초점이 없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수정체가 혼탁해져있다.

할머니의 고개가 슥 내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탁하고 쉰 목소리로 내가 아닌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리셨다.

“그놈을 조심해.”

“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할머니에게 천천히 여쭈어보았다.

“지금 뭐라고 하신···”

할머니의 한쪽 입가가 올라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놈이 원흉이야.”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할머니는 나에게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로 가면 돼.”

잔뜩 찝찝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일단 할머니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네,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만수무강하세요.”

그리고 헤드랜턴을 다시 세워 할머니가 말씀하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스팔트 길이 끊어지고, 비포장길이 이어진다.

양옆으로 이어진 풀과 나무들이 점점 우거지기 시작했고, 결국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산속으로 들어섰다.

“형님들. 여긴 우리 동네보다 훨씬 더 분위기가 삭막한데요.”

하지만, 그건 약과였다.

불과 300m도 가기 전, 드디어 도착한 폐광산 앞에서 더 깊은 무게감을 느꼈다.

커다란 버스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큰 동굴.

그 입구 앞에 떡하니 서있으니,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끝없는 터널 안에서 무겁고 탁한 공기가 흘러 나온다.

“우와··· 시벌. 폐 광산이 이런 곳이구나.”

실제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인 폐 광산.

세월의 흔적을 다 이겨내고 하얗게 벗겨진 돌무더기들이 폐광산 입구를 떡하니 버텨주고 있다.

그 주위로는 죽은 나무뿌리들이 입구 전체를 덮어 가리고 있다.

마치 아주 커다란 무덤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무섭다기보다는 섬찟하다.

이것이 폐광산.

어른들은 빛 하나 없는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서 12시간을 넘게 일을 하셨다니.

정말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 우와 대박이다 진짜

- 어우,저 죽은 나무뿌리들이 아까 할머니 머리랑 똑같아 보이는 건 나뿐이냐

- 헐. 나도 그 생각 했음.

- 그냥 입구만 보는데도 개 소름 돋네

- 이거 오늘 방송 괜찮겠지?

- 50년을 더 버텼는데 연우 왔다고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 ㄴㄴ 무너져도 연우 가고 나서 무너지겠지

- 쟤 뒤에는 아주 강력한 산신령이 붙어있다

- 절대 죽게는 놔두지 않아. 죽을 만큼만 괴롭힌다

폐광산 깊숙한 안쪽에서부터 희미하게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온다.

캉! 캉캉!

“어 뭐야? 형님들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내려치는 소리 같았는데.

망치··· 그래. 망치였다.

누군가가 안에 있는 건가?

- 뭔 소리? 안 들렸는데? 벌써부터 시동 거는 거냐?

나는 미간을 잔뜩 모았다.

“아닌데, 분명히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진짜예요 형님들.”

환청 따위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히 무언가를 망치로 내려치는 소리였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구 안쪽으로 발걸음을 살짝 옮겨 다시 귀를 기울였다.

캉! 캉캉! 캉!

왠지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잔뜩 돋아 오르며, 내 두 눈은 토끼처럼 잔뜩 커졌다.

“거, 거봐! 형님들! 이번엔 들었죠! 들리잖아요!”

얼마나 크게 소리를 냈는지 내 목소리가 일제히 폐광산 안쪽으로 메아리쳐댔다.

[ 들리잖아요. 리잖아요. 잖아요. 아요. 요. ]

나는 황급히 밖으로 다시 나와 안쪽 상황을 살폈다.

내가 지른 소리 때문인지 동시에 소리도 멈춘 것 같았다.

- 야. 거짓말 안 치고 하나도 안 들렸어

- 뭔 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 맨날 지 혼자만 사플하네

- 너 FPS 선수 출신이냐?

- 내 앞에 발소리 한 번만 해줘

- 네 목소리는 아주 크게 잘 들렸다

- 벌써 보청기 끼는 거 아니지?

“진짜 안 들렸다고요? 저 정말 연기하는 거 아니에요. 폐 광산이라 소리가 얼마나 울리는지 숨소리까지 들린다니까요?”

그저 다른 소리와 착각했다면 이런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깊숙한 어느 곳에서부터 퍼져 들려오는 그 망치질 소리는 정말 뚜렷하게 내 귀에 꽂혔다.

그것도 일정한 박자를 맞추는 것까지 아주 완벽하게.

- 그동안의 이력이 있으니까 웬만하면 인정하겠는데 나도 진짜 못 들었다.

답답할 노릇이다.

정체모를 이 소리를 또 내 스스로 확인을 시켜줘야 한단 말인가?

그래. 뭐 어차피 탐험하러 온 거 한번 가보지 뭐.

아니. 이왕 들어가는 거 보험은 미리 들어놓고 가자.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그럼 저랑 내기 한판 하시죠. 안에 사람이 있다. 없다.”

언제나 내가 느낀 그 느낌이 틀린 적이 있던가.

본능적으로 몸에 와닿는 그 느낌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 누구보다 감은 뛰어나다고 자부하니까.

- 미친. 이 새벽에 여기 사람이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잖아.

- 당연히 없다지. 근데 왠지 있을까 봐 무섭긴 하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눈에 흰자까지 뒤집으며 허세 부렸다.

“정말 내기 한판 하실 까요 형님들!?”

- 오. 내기 좋지. 그럼 난 없다에 30만 원 건다. 넌 무엇을 걸래?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폐광산 안쪽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주 깊숙한 그곳에서부터 내 승리를 확인시켜주듯 반복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치?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차라리 사람이어라. 이런 음산하고 축축한 동굴 속에서 귀신같은 건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자신 있게 카메라를 보며 외쳤다.

“그럼 전 있다에 맨땅 헤드스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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