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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뱉어내는 얘기에 섯다 형님은 그저 눈을 껌뻑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다.
귀신에게 남자친구를 만들어준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남, 남자친구요?”
내가 인형을 쳐다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갑자기 남자친구?
- 어? 나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아. 귀신 짝 만들어주는 거
- 와. 그냥 연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제로 쓰는 방법이구나?
- 진짜 그게 되는 거야?
- 근데 귀신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 ㅇㅇ 귀신도 눈은 있자너
- 맘에 안 들어하면 연우가 몸 희생하자
- ㅇㅋ 연우도 원할듯
그런데 이거 어떤 스타일로 만들어야 되는 거야?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일은 완전 젬병인데.
어떤 식으로 어떻게 만들어줘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온다.
“형님. 남자가 봐도 잘생긴 남자 인형을 만들어야 되는데 할 수 있으시겠어요?”
섯다 형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여자 인형은 자신 있는데 남자 인형은 저도 잘··· ”
그래도 어쩌랴.
최대한 정성을 다해 만들어는 봐야지.
귀신의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뒤에 가서 생각해 보자.
나는 섯다 형님에게 얘기했다.
“그럼 저를 모티브로 삼아서 만들어보죠. 날이 밝으려면 얼마 안 남았어요.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알겠어요!”
우리 둘은 최대한으로 인형이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연출해 줄 재료들을 모았다.
전의 인형과 마찬가지로 몸통은 기다란 베개와 솜을 이용했고, 머리는 마포걸레를 정교하게 갖다 붙였다.
하얀 걸레를 일일이 검은색으로 칠하고 가위질로 깔끔하게 커트했다.
게다가 왁스에 스프레이까지.
옷은 새하얀 셔츠를 이용해 앞에 단추 2개까지 풀었다.
- 워. 개 섹시
- 퇴폐미 오지네. 인형 맞냐 이거?
- 이게 연우를 모티브로 삼고 만든 거라고?
- 연우랑 정 반대 아니냐
- 뭔 인형머리에 왁스랑 스프레이까지 발라
- 그것보다 투블럭이 더 대박이네
- 진짜 걸작이다. 대박이여ㅋㅋ
- 야 남자의 상징이 없잖아?
- 앞에 고추라도 따와서 붙여놔라
- 연우가 이런 데에 소질이 있었구나?
- 예술 쪽에 소질이 있다니까
- 근데 지 스타일은 왜 그럼?
“형님들. 기가 막히죠? 제가 셔츠 입으면 딱 이런 느낌 날 듯.”
섯다 형님이 날 멍하게 쳐다본다.
그나저나 어떤 정신으로 만들었는지 몰라도 만들어놓고 보니 기가 막히게도 해놨다.
빵빵한 솜을 가슴에 넣어 근육질의 느낌을 더하니 남성미가 철철 넘쳐 흘러 보였다.
- 근데 이거 만들었다고 너네한테 해가 안 가는 거냐?
나는 곧장 대답했다.
“아니요. 섯다 형님에게서 저한테로 옮겨붙어버려서요. 틈만 생기면 분명 저한테 다시 달려들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 방법을 준비했어요.”
나는 색귀의 타깃이 확실히 인형으로 향할 수 있게 마지막 조치를 했다.
내 머리카락 몇 가닥과 손톱을 쌀과 함께 조그마한 종지에 감쌌다.
그리고 만들어놓은 인형의 몸속에 숨겨두었다.
이렇게 해야만 귀신이 인형을 나라고 착각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제 귀신을 불러내서 인형에 씌이게만 하면 되는데···
날이 밝기 시작할 시간이라 나는 서둘러 섯다 형님에게 얘기했다.
“형님. 이제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네. 아, 알겠어요!”
나는 잠시 후.
인형을 들고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곧장 섯다 형님의 방으로 들어가 구석 한 편에 인형을 세워두었다.
그 바로 옆에는 여자 인형을.
그리고 조그마한 과일상을 준비했고, 내 가방에 있던 초 두 개를 꺼내 켜고 나서야 이리저리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휘이이. 휘이. 휘이이.
- 캬. 아무리 선녀보살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한다지만, 무당 냄새나는데?
- 내가 보기엔 담만 키우면 그냥 무당 해도 됨
- 하긴 짬밥이 어마어마 하잖슴?
- 그동안의 미션 생각해 보면 개 소름 아님?
- 영안실 냉동고랑 무덤 들어가기 등등 ㅋㅋ
- 난 돈 받고도 절대 그 짓 못함
- 누구든 그럴 듯ㅋㅋ
- 하지만 연우는 간절함이 있잖아
- 그게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지
귀신을 부르는 주문을 한지, 10분쯤 지났을까.
내가 미리 켜두었던 고스트 박스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 치지지익- 자기 치지지익- 어디야 치지지익- 나불렀어 ]
순간, 치솟는 EMF 측정기의 반응을 바라보며 나는 섯다 형님에게 신호를 주었다.
우린 동시에 귀신에게서 정체를 감추기 위해 복숭아 나뭇가지를 하나씩 들었고.
입에는 천일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EMF 측정기가 점점 반응이 솟구친다.
2단계. 2단계 반.
서서히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섯다 형님과 짜디짠 천일염 맛을 이겨내며 숨까지 참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거짓말처럼 EMF 측정기의 반응이 높아질 때마다 온몸에는 터져 오를 것 같은 닭살이 돋아 올랐다.
섯다 형님도 마찬가지 같았다.
소금을 찔끔찔끔 삼키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전달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채로 색귀가 등장했다.
[ 치지지익- 어딨지 치지지익- 오빠 치지지지익 나야 ]
순간, 섯다 형님과 내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멀쩡히 서있는 인형 앞이 마치 물속을 들여다 보는것처럼 일렁인다.
저게 설마 색귀에 진짜 실체인가?
눈동자가 마치 핏기가 서려 있는 것처럼 새빨갛다.
신기한 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내 눈이 시려오는것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그 때문에 모여드는 침과 천일염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조금씩 삼켜진다.
이제 색귀가 남자 인형을 나라고 착각하고 사랑을 즐기기 위해 여자 인형 몸에 들어가기만 하면 끝이 나는데···
조금만 참자. 조금만!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입에 머금고 있는 천일염이 목으로 넘어갔는지 온갖 인상을 찌푸리는 섯다 형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놀란 나머지 나는 섯다 형님의 입을 재빨리 틀어막고 색귀의 반응을 살폈다.
아주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우리 쪽을 쳐다보는 색귀.
나는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섯다 형님에게 신호를 주었다.
죽을 것 같아도 참아야 했다.
한번 들키게 되면 다신 돌이킬 수 없다고!
다행히도 이리저리 고개를 꺾어 사방을 살피던 색귀가 다시 남자 인형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고스트 박스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음성이 터져흘렀다.
[ 치지지익- 찾았다! 치지지익- 여기있었네 치지지익- 오빠! ]
잠시 후, 색귀가 여자 인형 몸속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요지부동이던 여자 인형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남자 인형 쪽으로 몸이 기울고는 결국 가슴팍에 픽하고 쓰러졌다.
섯다 형님과 나는 말도 안 되는 그 광경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
- 어 씨발. 뭐야?
- 방금 여자 인형 움직이지 않았어?
- 어! 어!? 저거 봐! 지금 방금 팔 움직였어!!!
- 에이. 걍 무게중심 틀어져서 옆으로 쓰러진 거 아님?
- 아니 멀쩡히 앉은 자세로 세워둔 게 왜 움직이냐고
-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 너무 의미 부여하는 거 아님?
- 어? 어? 저거 봐! 여자 인형이 남자 인형 몸에 안겼잖아! 방금!
놀랍게도 색귀가 깃든 여자 인형은 아주 미세하게지만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남자 인형 몸을 이리저리 쓰다듬기도 하고 입을 가져다 비비며 온갖 스킨십을 해댔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퉤퉤! 섯다 형니이이임!”
“퉤! OK!!!”
나는 여자 인형에게서 색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준비했던 오색천으로 인형을 칭칭 감아댔다.
그리고 다 감자마자 곧장 마당으로 인형을 후다닥 들고 나왔다.
“빨리! 빨리요 섯다 형님!”
마침, 미리 때워놓은 불길.
나는 그 때워놓은 불길 속으로 여자 인형을 있는 힘껏 세게 처박아 넣었다.
철퍼덕!
정말 사람을 던져놓은 효과음이 터져 흐른다.
곧이어 섯다 형님이 들고 있던 남자 인형도.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집 안의 고스트 박스 음성에서는 마치 여자의 비명소리처럼 들리는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 치지지지익- 끄아아악! 치지지지익- 뜨거워! 치지지지익- 꺼내줘! ]
- 헐? 여자 비명소리지 이거?
- 와. 타이밍 한번 죽이네
- 인형 태우니까 동시에 고스트 박스에서 나오는데?
- 이제야 남자새끼 둘이서 하는 인형놀이가 다 끝났나 본데?
- 인형을 태움으로써 연우가 말했던 남자친구 만들어주고 강제 성불 시킨 거 아님?
- 보통은 말로 살살 꼬드기는데 연우는 얄짤없네
- 남자친구 만들어주자마자 걍 저승 고속열차 태워 보내네
인형은 마치 휘발유를 끼얹은 것처럼 활활 잘 타올랐다.
나는 섯다 형님의 어깨를 감싸 안고 인형이 남김없이 재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흔적도 없이 까만 가루가 되어 공중에 휘날리는 것을 보며 섯다 형님께 중얼거렸다.
“하··· 시벌. 이젠 정말 끝인 것 같네요.”
“······그러게요.”
1년간을 고통 속에서 괴롭힘당해온 섯다 형님이었다.
그동안의 온갖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지, 애매한 표정을 보인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호하게 중얼거렸다.
“형님. 이 앞으로 절대적으로 관리를 해주셔야 합니다. 아시죠?”
애매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섯다 형님에게 나는 물었다.
“설마 지금 색귀 퇴치한 거 아쉬워서 그런 표정 짓는 거 아니죠 형님?”
잔뜩 놀란 섯다 형님이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오우, 아, 아니에요! 진짜! 그냥 그동안 힘들었던 게 생각이 나면서 허탈한 감정도 들고···”
나는 흐뭇하게 끝난 이 상황을 쭉 돌아보며 다시 섯다 형님 얼굴 앞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럼 1년 동안 함께 했던 형수. 아니. 색귀에게 영상편지 한번 하시죠.”
나를 보며 한참 눈을 껌뻑이던 섯다 형님.
마지못해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카메라를 향해 중얼거렸다.
“크흠. 어 내가 너 때문에 1년 동안 힘들···”
- ㅋㅋ 미친놈인가
- 1년 동안 힘들게 했던 귀신한테 영상 편지를?
- 저 새끼 입 틀어막고 혼자 쪼개는 거 봐라
- 잇몸 보인다. 이 색갸.
- 넘 좋아하는데?
- 맨날 지가 하다가 남 시키니까 희열을 느끼나 보지
- 쟤 정상 아니라니까
나는 섯다 형님의 진심 어린 마지막 영상편지를 마지막으로 아침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형님들. 그럼 저는 이만 방송을 끄고 집으로 가겠습니다. 모두들 좋은 꿈. 아니. 아침밥 드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뿅!”
흉가유트버로써 일을 하며 첫 귀신 퇴치였다.
쾌감이 엄청나다.
매일 같이 귀신에게 쫓겨만 다니다가 반대되는 입장을 겪어보니 너무나 짜릿했다.
시벌. 다음에 폐가 가서도 한번 해볼까?
나는 괜한 자신감에 버스 안에서 다음 찾아갈 장소를 검색했다.
그러다 문득 한편에 뜨는 인터넷 기사 중 눈에 띄는 이름을 발견했다.
“이게 뭐야? 야생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