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구독 이벤트. 8
강아지처럼 맑고 예쁜 눈.
윤기가 흐르는 칼 단발의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앞에 그것을 보고 말까지 더듬거렸다.
“이, 임아린!?”
[ 오빠 이리와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바라봤다.
틀림없이 임아린이다.
충격적인 임아린의 옷 상태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몰라 괜한 먼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 너 옷차림이···”
화이트와 블랙이 어우러진 리본을 머리에 꼽았다.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짧은 검정 원피스에 하얀 레이스가 부분 장식되어 있다.
무엇보다 시선을 강탈하는 건···
그 청순하고 부끄럼 많이 타는 임아린이 쇄골라인과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날 찐득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거 메이드복 아니야?
- 이놈 왜 이래?
- 이 새끼 몽유병 있었나?
- 갑자기 임아린?
- 허공에 귀신이라도 보인 거야?
- 근데 얼굴은 왜 새빨개짐
- 바지 중간이 이상하게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
- 아침이라 이건가
- 저놈 후원꿈이 아니라 임아린꿈을 꾼 거네
- 이 새끼 변태 같은 놈. 해명해라
- 그나저나 이 자식 남자네···
- 오우 지져스!
날 바라보고 있던 임아린이 갑자기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혓바닥으로 입술을 이리저리 핥기까지 했다.
저, 저게 뭔 짓이야 도대체!
나는 눈앞에 보이는 그것이 내게 다가올 때마다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아, 아린아! 나 아직 준비가 더, 덜 됐거든···? 잠깐만 아린아. 잠깐만 나 씻고···”
나는 꿈인가 싶어 내 뺨을 후려갈겼다.
아린이가···
짝! 짝!
그래, 시벌 저건 아린이가 아니다.
아린이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 저건 색귀다. 색귀가 분명하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혀, 형님? 섯다 형님! 할머니!”
내 옆에 있던 섯다 형님도 할머니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뭐야 시벌! 다 어디 갔어?”
다급한 나머지 나는 눈앞에 그것을 보며 소리쳤다.
“뭐야! 섯다 형님이랑 할머니 어떻게 했어!?”
하지만, 눈앞에 그것은 자신의 말만 뱉으며, 나를 계속해서 잡으려 들었다.
[ 오빠. 가만히 있어. 내가 황홀하게 해줄 테니까 ]
나는 방안 곳곳을 혼비백산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섯다 형님과 할머니를 찾았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귀신 퇴치해 주러 왔는데 나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 야 뭐해? 네 시청자 할머니 모시고 새벽장 보러 갔어. 너 맛있는 거 해준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 다행이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구석에서 어둠에 묻혀 있는 그것을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분명히 그 귀신이었다.
“네가··· 섯다 형님을 그렇게 괴롭혔던 색귀(色鬼)?”
임아린의 모습을 한 색귀가 날 보며 씩 웃는다.
[ 들켰네 ]
식은땀이 흐른다.
등줄기에 닭살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의문점이 떠올랐다.
설마··· 잡귀가 아니었던 거야?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곧장 EMF 측정기를 꺼냈다.
“시, 시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귀신의 기운이 제일 셌던 그 시간에 확인했을 땐 3단계 반이 끝이었는데.
어떻게 지금 아침이 다가오는 이 시간에도 4단계가 나올 수가 있는 거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앞에 있던 색귀가 사라졌다.
아니 내 뒤에서, 귓가로 숨소리가 들려왔다.
[ 하아······ ]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가방에서 천일염을 꺼내려 몸을 움직였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못으로 고정해놓은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웁···”
손길이 지나가는 그 부위마다 소름이 잔뜩 돋아 오른다.
이전과는 다르게 더욱더 과감하게 내 몸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다.
가슴, 배, 그리고··· 소중한 어딘가에 그곳.
색귀가 그곳을 터치하는 순간, 내 몸이 심하게 움찔거렸다.
“아앗, 거긴..."
- 얘 오늘 왜 이러냐
- 이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는데?
- 그 색귀인가 뭔가 하는 애랑 싸우고 있는 거 아니냐
- 임아린 이름은 왜 나옴?
- 색귀가 좋아하는 이상형 얼굴로 변한다고 함
- 그래서 지금 저놈 입이 저렇게 찢어져 있는 거야?
- ㅇㅇ 백퍼 즐기고 있는 듯
- 야 인마! 색귀 홍보 방송이냐고!
- 19금 걸고 우리도 좀 보여 달라고!
- 제발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동시에 묘한 쾌감이 내 온몸을 자극하며 내 심박수를 빠르게 움직인다.
어느샌가 걸려온 보조폰 벨소리에 내 앞에 있던 색귀가 흠칫거렸다.
[ 반야용선 내여 보네 염불중생 접인할제 팔보살이 호위하고 인로보살 노를 저어 제천음악 가진풍류······ ]
갑자기 내 몸을 탐하던 손길을 떼더니, 블랙홀처럼 훅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제야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나는 재빨리 보조폰을 확인했다.
선녀보살님.
나는 허겁지겁 전화를 받아 울먹이듯 소리쳤다.
“서, 선녀보살니이임!”
-연우 씨. 괜찮아요? 내가 화경으로 지금 뭔가를 봤는데 신경 쓰여서 전화했어요
“으어어어! 하마터면 19년간 지켜온 내 수, 순결을 잃을 뻔 했···
그리고 선녀보살님이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뚝.
마치 내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해 주는 듯한 선녀보살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힘이 솟았다.
나는 지금 벌어진 상황을 일일이 다 보고 하기 시작했다.
“분명 비방술을 제대로 다 해놨는데, 자고 일어나니 그 색귀가 다시 들어와서 절 덮쳤어요.”
-흠··· 저도 방금 그걸 화경으로 보고 연락드렸어요.
“어떻게 하면 되죠? 제힘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선녀보살님이 와주시면···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너무 멀리 와있어서 사정상 가질 못해요. 그러니 지금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선녀보살님이 말을 이었다.
-제가 보기엔 아직 다 치우지 않은 물건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물건에 귀신이 씌여 있습니다. 그걸 찾아야 해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나는 선녀보살님에게 되물었다.
“어!? 제가 섯다 형님이랑 아까 다···”
[ 형님. 이게 끝인가요? 하나도 빠짐없이 태워야 해요. 안 그럼 소용이 없습니다. ]
[ 네. 저, 정말 이게 끝이에요. ]
분명 그랬는데?
설마 뭘 숨기고 있던 게 있던 건가?
선녀보살님이 내게 말했다.
-그 물건을 찾아서 꼭 태워야 합니다. 단, 그냥 태우면 안 돼요.
“그, 그럼요···?”
나는 마지막 선녀보살님이 해주신 설명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지?
[ 참치마요가먹고싶으면참치마요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연우 괜찮니?
“이, 일단 형님들. 저 빨리 움직여야 해요. 안 그럼 진짜 내 순결을 오늘 잃을지도 시벌···”
나는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형님. 도대체 어디에 뭘 숨겨 놓은 거야.
신당은 이미 물건 하나 없이 싹 다 정리했기에 없다.
섯다 형님의 방. 아무리 찾아도 가구, 침구 외에는 별다른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 야 뭘 찾는 건데?
- 남의 집을 그렇게 허락 없이 뒤져도 되는 거냐
- 누가 보면 집에 도둑 든 줄 알겠다 색갸
- 아니 근데 쟤 바지 중간 아직까지 안 가라앉았네
- 이 자식. 에너자이저···?
- 연우 체력이 좋구나
그렇게 한참을 찾고 있을 때 누군가가 집 문을 열었다.
섯다 형님과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방 안을 뒤지고 있는 나를 보며 흠칫하셨지만, 이내 다시 웃으시며 물었다.
“아이고··· 우리 손자 친구분 일어나셨네. 잘 잤어유?”
나는 일단 할머니에게 얼른 고개를 숙였다.
“네. 잘 잤습니다.”
그리고 섯다 형님을 매섭게 째려보며 물었다.
“섯다. 아니. 기훈이 형님. 혹시 저한테 뭐 숨기시는 거 없으세요?”
섯다 형님이 눈을 껌뻑이며 뒤로 주춤거렸다.
곧이어 마른침을 삼키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설픈 대답을 해왔다.
“네? 뭐 어, 어떤 거를··· 전 모르겠네요.”
나는 한 발짝.
아니. 섯다 형님의 얼굴 앞까지 머리를 들이밀며 할머니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어떤 거든지요. 정말 숨기는 거 없으세요? 형님. 솔직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안 그럼 형님 정말 큰일을 당하실 수 있어요. 잠깐의 쾌락 때문에 목숨을 버리실 생각입니까?”
- 다 들려 이색갸
- 지금 연우 협박 중임?
- 보통 저런 속삭임은 몰래 하는 거 아니냐
- 카메라를 주둥이 옆에 대고 속삭이네
- 곧 죽어도 방송인이여
- ㅅㅂ 40만 유트버는 다르구만
- 그 와중에 섯다 형님 개쫄았다
- 뭘 숨겼다는 거야?
안절부절못하고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는 섯다 형님.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할머니를 미리 집 안으로 모셔두고 나와서 내게 대답했다.
“차, 창고. 창고에 있어요.”
나는 빠르게 시선을 뿌렸다.
그리고 섯다 형님이 말한 창고를 찾았다.
집 뒤에 숨겨진 조그마한 창고.
다급하게 그곳으로 다가가 창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사람 크기만큼 큰 무언가가 내 눈에 띄었다.
바로 인형이었다.
이것이 선녀보살님이 말했던 숨겨진 물건.
그 인형을 보자마자 난 할 말을 잃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 사람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지푸라기를 머리처럼 만들어 길게 늘어트려놓았고, 몸은 베개솜을 이용해 인간의 형상처럼 정교하게 만들어놨다.
무엇보다 소름이 끼치는 건.
정말 사람의 몸같이 모든 ‘부위’를 아주 자세하게 만들어놓았다는 것.
충격에 휩싸인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있자, 섯다 형님이 내게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제,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섯다 형님을 질책하기보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 헉 이게 뭐야?
-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 정말 사람이랑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 귀신한테 얼만큼 홀려야 이렇게 될 수 있는 거냐
- 진짜 빙의가 맞긴 하네
- 너무 심각하다
- 인형 공장 사장임?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섯다 형님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이걸 빨리 불태워야 합니다. 다만···”
나는 이리저리 창고 안의 물건들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이 인형을 다시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섯다 형님이 나를 멍하게 쳐다본다.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저 인형에 귀신이 씌여 있습니다. 그냥 불태워버리면 분명 계속 저주가 이어질 거예요.”
나는 인형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인형. 아니 저기 씐 귀신에게 남자친구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귀신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남자친구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