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구독 이벤트. 4
그토록 점잖아 보이던 섯다 형님이 변했다.
그 모습에 나는 움찔거리며 한 발짝 물러섰다.
뭐야? 뭐가 보이는 거야?
나는 얼굴을 쥐어싸고 있는 섯다 형님 곁에 EMF 측정기를 꺼내 조심스럽게 들이댔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역시 그랬군.
“혀, 형님. 괜찮으세요?”
나한테 손바닥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상태가 좋지 않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말을 이어붙였다.
“정말 힘들겠지만, 지금 그 귀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실시간으로 얘기해 줄 수 있으신가요?”
적어도 귀신 퇴치를 하려면 사연과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퇴치가 수월해질 테니까.
나는 무당이나 퇴마사가 아니다.
적어도 기운이 세지 않은 귀신을 대화로서 한을 풀어주고 성불시켜주려는 의미였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던 섯다 형님이 입을 열었다.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이게 시작이에요. 이제 곧···”
섯다 형님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차례대로 학대했다.
마치 기어 다니는 벌레를 잡는 것처럼.
퍽! 퍽퍽!
“하지 마! 오늘은 안 돼! 씨발!”
오늘은 안 돼?
도대체 뭘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거야?
“만지지 마! 내가 왜 네 거냐고! 이 몸은 내 거야!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나는 안되겠다 싶어 가방에 있는 천일염을 꺼냈다.
그리고 크게 한 줌을 건넸다.
“자, 일단 이거 입에 무세요.”
섯다 형님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안 돼요. 그거 해봤지만, 하나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도 나는 그 천일염을 굳이 계속 들이밀었다.
“대 낮에 바깥마당에 널어두었던 거예요. 양기를 잔뜩 받아놓은 거라고요. 절 믿고 일단 한번
입에 물고 있어보세요.”
마지못한 섯다 형님이 내가 건네준 천일염을 한가득 입에 물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듯 너덜너덜 거리는 몸을 보이는 섯다 형님.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섯다 형님께 말했다.
“퇴치가 된 건 아니에요. 그냥 잠시 몸에서 떨어트려 놨을 뿐이에요. 아주 잠시.”
- 워. 우리 연우 뭐가 무당 같았다잉
- ㅅㅂ 무당 꿈나무
- 포스 지리는데
- 그나저나 저 사람 엄청 심각하네
- 저건 어떻게 퇴치를 시켜야 한다냐
- 님들 날마다 예쁜 귀신이 덮쳐주면 좋은 거 아님?
- 차라리 나한테 와서 덮쳐줬으면 좋겠다
- 미친놈
나는 채팅창을 살펴보다 섯다 형님과 시청자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이 귀접이라는 것은 절대 사람이 먼저 원해서는 안 돼요. 정말 위험한 짓입니다.”
귀접이 정말 위험한 이유.
귀신과의 접촉은 무엇을 의미할까?
살아있는 인간의 몸을 귀신에게 준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귀접을 응하게 되면 귀신은 인간이 자신을 허락했다고 강제 이해해버리게 된다.
그게 시작이다.
“죽은 사람에게 마음과 몸을 주는 것은 이승에서의 내 삶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형님들을 노리고 있는 귀신들이 정말 원하고 있는 거라고요.”
- 야 너 오늘 좀 멋있어 보인다 진짜. 소름 돋는다 다른 의미로
나는 잇몸이 보일 만큼 활짝 웃었다.
“하이고오오! 오늘은하나도안무서워엄마랑자야지 형님이 피 같은 3만 원으으을!”
그리고 다시 급 정색하며 섯다 형님을 쳐다보았다.
“형님. 이제 소금을 뱉으시고, 입을 헹구세요. 그리고 얼른 시청자들에게 남은 사연을 모두 얘기해 주세요.”
가글가글. 캭 퉤.
섯다 형님이 가글을 끝내고, 힘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 처, 처음엔 꿈인 줄 알았어요. 정말 예쁜 여자가 찾아왔거든요. 제가 정말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여자가.”
- 시벌. 어떤 여자인데요!
- 자세히 좀 말해주세요!
- 김태희? 아이린? 수지?
-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군
- 귀접 하는 방법 좀
- ㅅㅂ 육하원칙에 의해 자세히 설명 좀!
이런 미친 형님들.
정말 그게 궁금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이 귀접 현상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거야?
섯다 형님의 입가에 갑자기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훠, 훨씬··· 훨씬 더 예뻤어요! 비교도 안 될 만큼.”
말문이 막힌다.
이 형님 처음에는 그 현상을 즐겼군.
당연한 이야기다.
귀신은 자신의 얼굴이 아닌,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얼굴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환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게끔 말이다.
그건 완벽하게 속고 있는 거라고!
“섯다 형님. 그 현상이 지금 얼마나 지속되셨다고 했죠?”
“1년쯤인가···”
1년이라면 굉장히 오랜 기간인데.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아니지. 혹시 모르는 거다.
이미 미쳐있을지도.
“이게 위험한 빙의 단계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무서운 건 처음엔 합의하에 진행이 되었다고 해도 나중에는 본인의 의지랑은 무관하게 강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님들.”
- 워. 너 공부도 엄청 많이 했나 보네
- 멋있다. 뭔가 다른 느낌이야
- 장래희망이 귀신이냐? 왜캐 잘 알아
- 이게 40만 구독자의 위엄인가?
-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그래야 흉가 유트버 아니겠어?
- 그래서 그 귀접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데?
- 방법 좀 제발
나는 섯다 형님을 보며 물었다.
“그렇죠 형님? 형님이 원하지 않을 때도 귀신이 형님의 몸을 탐하는 경우가 많아졌지요?”
섯다 형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네. 네. 맞아요···”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몸의 접촉.
사람의 에너지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필요 이상으로 쓰이게 된다면.
그리고 그 횟수가 계속해서 많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내 앞에 있는 섯다 형님처럼 되는 것이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도 모자라 몸의 기운이 없어지고, 모든 의욕을 잃는다.
나는 섯다 형님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제가 보기엔 지금 섯다 형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중독이 돼버리신 것 같아요. 자의에 의해서 끊어낼 수 없는 정도의 단계까지 오신 거죠.”
섯다 형님이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나는 이 귀접 현상의 심각성을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형님들. 이 귀접 현상의 정말 크나큰 문제점이 뭔지 아십니까?”
- 너무 좋아
- 그냥 좋아. 개 좋다는 거!
- 님들 드디어 미침?
- 이거 뭐 죄다 귀접 해보겠다고 줄 서겠네
- 귀접 홍보 영상임?
- 그래서 연우 선생. 문제점이 뭡니까?
“일반 사람과의 접촉이 꺼려진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즉, 귀신과의 접촉이 이루어지면 일반적인 감각을 초월해버리기 때문이지요.”
단순히 귀접을 하고, 몸을 섞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과의 접촉도 꺼려지고, 기피하게 된다.
이것조차도 그 귀신이 사람을 사회로부터 도태시켜 몸을 서서히 빼앗기 위한 행동이다.
내가 섯다 형님을 보며 물었다.
“형님. 연애 안 하신지 얼마나 되셨죠?”
“어··· 음··· 그게.”
섯다 형님이 갑자기 천장을 쳐다보더니 곰곰이 생각한다.
그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 해질 정도라니.
귀접을 겪은 건 1년째지만, 아마 귀신이 괴롭히기 시작한 건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일 것이다.
확실해.
내 느낌이 말해준다.
현재 시각 11시 44분.
귀신의 기운은 점점 세지고 있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더 강한 기운으로 다시 섯다 형님을 덮치겠지.
“잘 기억 안 나시죠? 아마 오래되셨을 거예요. 일단 그것보다···”
나는 집 안 곳곳을 살펴보며 섯다 형님에게 물었다.
“형님. 귀신이 보이시죠?”
섯다 형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첫 여자 귀신과 접촉을 하게 되면서 귀문 (鬼門)이 점점 열린 것 같아요. 이제는 아마 주위에 있는 귀신들에게도 전달이 됐을 겁니다. 마치 사람들이 소문을 내는 것처럼요. 그래서 이젠 하나가 아닌 둘, 셋. 그 이상이 형님을 찾아오는 거예요.”
- 헐. 귀신도 소문을 내냐
- 저 집 맛집이다. 뭐 그런 소문?
- 이런 시벌 귀신넘들이
- 귀신 입장에서는 개 이득이지
- 몸도 빼앗고 기도 빼앗고
- 무료 쉼터 같은 거네 이 집이
- ㄷㄷㄷ 개 심각
- 그나저나 연우 공부 진짜 많이 했네
- 왠지 다른 사람 같아
- 왜 그래 어색하게
- 그럼 그 귀신 숫자가 많아도 네가 퇴치할 수 있냐?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장담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노력은 해봐야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능력과 책임의 문제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쇠약해지는 섯다 형님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가 꼭 퇴치해 드려 보겠습니다 형님들.”
그나마 다행인 건 빙의가 되는 건 잠시.
귀신이 아직 섯다 형님의 몸을 완벽하게 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섯다 형님이 정신을 유지하며 귀신과 맞서고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섯다 형님. 형님은 귀신과 맞서 싸우는 걸 멈추시면 안 돼요. 아시죠? 기가 꺾여버리는 순간, 모든 게 끝입니다. 귀신에게 승기를 쥐여주는 꼴이죠.”
분명히 이 근처에서 다시 배회하고 있을 터인 그 첫 여자 귀신이 다시 들이닥칠 시간이 온 것 같은데···
섯다 형님이 몸을 움찔거렸다.
현관 쪽을 바라보며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안절부절못했다.
“여, 연우 씨. 그, 그 여자가 다시 왔어요.”
내가 손에 들고 있는 EMF 측정기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한층 더 세진 기운으로.
3단계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몸이 많이 쇠약해진 섯다 형님을 이 집에 두었다간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귀신이 사람을 배척하는 현상이, 그대로 비추어져 폭력적으로 변하는 섯다 형님에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짧은 순간 고민했다.
그리고 섯다 형님에게 주섬주섬 무엇을 건넸다.
귀신 퇴치에 도움이 되는 복숭아나무와 현금이었다.
“섯다 형님. 혹시 오늘 이 집을 비워주실 수 있을까요? 형님은 여기 계시기엔 너무 위험한 것 같습니다. 이거 가지고 할머니와 오늘 편한 곳에 가셔서 주무세요.”
눈이 동그랗게 커진 섯다 형님이 내게 대답했다.
“그, 그럼 연우 씨는.”
나는 비장한 모습으로 섯다 형님에게 말했다.
“제가 오늘 여기서 하룻밤을 자겠습니다.”
- 헐? 이 새끼. 시청자 보내고 혼자 뭐하려고
- 체험삶의현장 뭐 그런 거 하는 거냐
- 나도 갈게!
- 미친
- 수지랑 아이린보다 예쁘다잖아! 넌 싫어?
- 개 좋아
- 연우도 그걸 노린 걸까?
- 그것보다 연우 오늘 컨셉이 뭔가 낯설다
- 너 임아린한테 이른다?
- 합법적인 바람이야
여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봐오면서 느낀 건 딱 한 가지다.
귀신과는 정면 대결이다.
부딪혀서 굴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큰 한숨을 내쉬고 이를 꽉 깨물며 얘기했다.
“형님들. 섯다 형님을 일단 보내드리고, 본격적으로 귀신 퇴치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