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구독 이벤트. 1
방송을 켠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다르게 해가 중천이었다.
흉가를 가는 것보다 40만 명을 기념해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담은 방송을 하고 싶었다.
나는 오랜만에 옆에 데려온 초대손님을 카메라에 비추며 말을 이었다.
“형님들. 오늘 정말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오랜만입니다. 막내 쥐포 씨.”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 다리에 몸을 비벼대는 쥐포.
냐아아옹.
- 오. 쥐포 오랜만
- 완전히 다 컸네 이제
- 근데 연우가 진짜 애정을 많이 쏟나 보다
- 얼마나 좋은 걸 먹여 댄 거야?
- 누가 보면 고양이 아니라 삵인 줄 알겠다
- 되게 귀엽게 잘생겼는데?
- 근데 어떻게 줄도 없이 저렇게 강아지처럼 잘 따라다니지?
- 나중에 방송할 때 함 데려가!
“오우 형님. 말도 마세요. 쥐면 쥐, 파리면 파리, 뱀이면 뱀. 보였다 하면 그냥 원샷 원킬이에요. 안 그래도 나중에 한번 데려갈 생각입니다. 괜찮지 쥐포?”
- 오. 근데 너 지금 뭐 하고 있냐?
나는 내 주위를 쭈욱 비춰주며 얘기했다.
“형님들. 제가 오늘 색다른 장소에 와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어딘지 아시겠나요?”
- 여기가 어디야? 설마 용산 갔냐?
나는 씩 웃으며 얘기했다.
“오! 어떻게 아셨어요 형님. 제가 오늘 온 곳은 용산입니다. 휴대폰으로는 방송 촬영이 한계가 있어 정말 큰 마음먹고 액션캠을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 오호. 그거 좋은 생각이다
- 그래. 휴대폰 들고 다니느라 힘들었을 것 같아
- ㅇㅇ 보는 우리도 답답하고 힘들었다
- 이제 가슴에 딱 차고! 편하게 방송하자ㅋㅋ
- 우어어어 이제 고화질로 보는 건가?
- 근데 저거 결국 우리 돈으로 사는 거 아니냐
- 그치. 연우가 우리한테 악착같이 뜯어간 후원금으로
- 우리한테 감사 인사 안 하냐
나는 반사적으로 두 무릎을 땅바닥에 꿇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 보듯 희한하게 쳐다봤다.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팔까지 번쩍 올려 절까지 하며 소리쳤다.
“하이고오오오 형님들. 다 우리 형님들 덕분입니다! 시골 촌놈이 용산까지 와보고 출세했습니다요. 감사합니다!”
- ㅅㅂ 빨리 일어나 창피해
- 남자 새끼가 무슨 틈만 나면 무릎을 꿇어 젖혀
나를 이렇게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꿇을 수 있었다.
나는 무릎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방송화면을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요 형님들. 제가 촌놈이라 아무것도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 어디를 들어가야 액션캠을 파는 건가요?”
- 그냥 디지털, 전자. 쓰여있는 거 아무 데나 들어가면 다 있다.
이 정도면 인간 네비 아닐까.
그 말 그대로 주위를 쭉 훑어보는데 내가 온 그곳에는 모든 간판에 디지털이 붙어있었다.
“대박. 그럼 제가 아주 딱 잘 찾아 왔는데요 형님들.”
그나저나.
난 이런 고가의 제품들을 한 번도 사본적이 없는데···
혹시나 하는 걱정에 나는 방송화면을 보고 중얼거렸다.
“형님들. 저 뭘 사야 하는지 형님들이 좀 비교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서···”
- ㅅㅂ 이제는 별걸 다 시키네
- 내가 네 꼬붕이냐
- 너 왜 맨날 우리 부려먹냐
- 이 정도면 최저임금이라도 챙겨주든가
“서운하네요 형님들. 이게 다 형님들 꿀잼 드리려고 일부러 큰 마음먹고 온 건데··· 꼬붕이라니, 부려먹느니, 최저임금이니···”
큰 한숨까지 내쉰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냥 쭉 휴대폰으로 방송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방송은 이만하고 집으로 돌아···”
- 농담이야 인마.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 같은 게 무슨 액션캠입니까. 저는 그냥 평생 휴대폰으로 방송을···”
[ 호이가계속되면둘리인줄안다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에이 왜 그래. 우리가 그냥 장난친 거야
나는 마지못해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들. 정말 그런 거 아닌 거 아시죠? 형님들이 보내주신 피 같은 후원금 알뜰하게 모으고 있습니다. 진짜 돈 허투루 쓰는 남자 아닙니다. 믿어주십쇼.”
- 삐졌던 거 맞지?
- 보통 허탈하게 웃을 때 가벼운 웃음을 짓지 않냐
- 방금 잇몸 만개 아니었음?
- 어금니까지 보이던데
- ㅊㅋㅊㅋ 돈미새에게 또 낚이셨음
나는 조심스럽게 마음을 가다듬고 첫 매장에 들어갔다.
브라운 재킷을 입은 아주 깔끔하게 생기신 아저씨 한 분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세요.”
나는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하며 물건들을 구경했다.
종류가 다른 물건들이 수도 없이 진열되어 있다.
“우와···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 혹시 제가 지금 방송 촬영 중인데 괜찮을까요?”
“아. 그럼요. 얼른 오세요.”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광경.
우리 동네는 해봤자 한두 개 가져다 놓고 파는데.
이건 뭐 온 세계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다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가격도 천차만별.
저렴한 건 30만 원부터 500만 원이 넘는 것까지.
내가 정신없이 두리번거리자 아저씨가 방긋 웃으며 내게 물었다.
“뭐 보러 오셨어요?”
“아, 저 유트버 촬영하는데 쓰려고 액션캠을 보러 왔는데···”
말을 꺼내자마자 아저씨가 나를 안내했다.
그러자 유트브로만 봐왔던 신세계의 물건들이 쭈욱 내 눈에 들어왔다.
곱프로를 시작으로 손희, 들온, 징벌, 팩디자인···
들어만 본 물건들을 비롯해 별게 다 있다.
제품을 보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나를 캐치한 아저씨가 물건 하나를 들이밀며 얘기했다.
“지금 이게 방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일 잘나가는 제품인데요. 동영상 해상도, 프레임은···”
제품 사양에 대해 아저씨가 열심히 떠들어대지만, 나는 도통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게 딱이에요. 제가 싸게 해드릴 테니까 이거 사시면 돼요.”
“아. 정말요? 얼마인데요?”
아저씨는 아무도 없는 양옆을 눈치 보더니 내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90만 원 짜린데··· 음··· 80만 원에 드릴게요.”
워. 시벌.
90만 원짜리를 10만 원이나 깎아준다고!?
나는 바닥에 떨궈놓고 있던 카메라에 대고 살며시 물었다.
“혀, 형님들. 어때요 이 제품?”
- 저 제품이 80만 원이라고?
- ㅅㅂ 인터넷 쳐보니까 30만 원인데?
- 아무리 오프라인이지만, 거품 50만 원은 오바잖아
- ㅅㅂ 새끼 눈탱이 치는 거 같다
- 우리 연우 어리버리 하다고 지금 얕보는 것 같아
- 존나 열받네 출동하자
채팅창을 읽기가 무섭게 후원창이 울려댔다.
[ 연쇄할인범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아저씨. 지금 시청자 천 명이 보고 있습니다. 사기 치시면 안 돼요.
갑자기 울려대는 후원창에 아저씨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해댔다.
“크흠. 어디 가서 이 가격에 못 사요.”
어리둥절한 내 앞으로 또 하나의 후원창이 울렸다.
- 죄송합니다. 그럼 다른데 좀 둘러 보고 올게요라고 하면 만 원
눈만 껌뻑거리던 나는 후원창을 듣고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그럼 다른데 좀 둘러보고 올게요.”
미간을 찌푸리던 아저씨는 말까지 더듬으며 나를 붙잡았다.
“거기 가도 똑같을 건데? 아니면 내가 좀 더 싸게 해줄게요.”
내 몸이 멈칫거렸지만, 올라오는 채팅창을 확인하고 그대로 옆 매장으로 옮겼다.
- 그냥 가
- 저긴 나가리여
- 첨부터 싸게 해줬어야지 그럼
- 눈탱이가 아니라 밤탱이얼탱이 있는 눈탱이는 다친다 저긴
- 절대 가지 마 옆집 가
“죄, 죄송합니다.”
혹시 몰라 켠 방송이지만, 정말 이럴 때는 한없이 큰 도움을 주는 시청자들이다.
나는 자신감을 만땅인 채로 매장을 돌았다.
물론, 시청자들 덕분에 모든 매장을 다 돌았다는 게 흠이었지만···
그래도 내 눈이 동태 눈깔이 되어갈 때쯤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구매한 제품은 곱프로.
유트버 사이에서도 꽤나 많이 쓰인 다는 제품.
가격도 저렴하게 잘 샀다.
50만 원.
방송할 때 편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가슴 스트랩과 헤드라이트 및 잡다한 악새서리까지 다 구매하고서야 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형님들··· 쇼핑이 이렇게 힘든 거였군요.”
흉가를 갔다 온 것처럼 맥이 다 빠진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것도 경험일 테니, 다음에는 혼자서도 잘 구입할 수 있겠지.
나는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모든 제품들을 만지작거리며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 야 너 구독자 40만 명 달성했더라. 축하한다. 앞으로 50만, 100만 가즈아!
내가 액션캠을 사느라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맞다. 나 오늘 40만 이벤트 기념 이벤트 공지해야 하지.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진짜 감사합니다. 형님들 덕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님들. 구독자 40만 명 기념 이벤트를 해볼까 합니다.”
다른 유트버들처럼 무언가를 선물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 내가 구독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뭐가 있을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낸 이벤트.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씩 웃었다.
“귀신으로 인해 피해를 보시고 계시는 구독자분들을 위해 제가 직접 찾아가 퇴치해 드리는 이벤트를 해보려 합니다.”
- 오? 대박인데?
- 구독자 집에 찾아가서 직접 귀신 퇴치라?
- 너 이번 3대 흉가 다녀오더니 좀 세졌다?
- 그때는 우연의 일치 아니었냐
- ㅋㅋ 네가 귀신을 퇴치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구독자 집에 가서 같이 도망 댕기는 거 아니지?
- 귀신 때문에 고생하는 구독자. 찾아가서 고민 더 늘려드리기 뭐 그런 거냐
- ㅋㅋ개 꿀잼일 듯
사람이 멀쩡히 살고 있는 집에 있는 귀신이라면, 악귀보다는 잡귀에 가까울 것이다.
그 정도라면 내가 가진 이 재료들과 장비 가지고도 충분히 퇴치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보다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컨텐츠를 할 수 있고.
구독자분들은 그런 나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일석이조였다.
“혹시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아프시다거나 환청이나 헛것이 보이시는 분들. 제가 깨톡 아이디를 하나 남겨 드릴 테니 그쪽으로 많이 신청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럼 우리 집부터 귀신 있나 확인 좀
- 우리 엄마 맨날 소리 지르는데 빙의 된 건지 확인 좀
- 저도요! 우리 오빠 새끼 맨날 게임만 하는데 빙의된 것 같아요
“후훗. 형님들. 선녀보살님이 말씀하시길 제가 귀문이 많이 열렸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즉, 기가 점점 세지고 있고 이제 귀신들과의 접촉이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는 말이죠!”
사실 3대 흉가에서 너무나 큰 사건사고가 있었던지라 휴식도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마냥 쉬기에는 지루했다.
이것도 몸에 변화가 온 후에 달라진 내 삶이랄까.
집에 가만히 있는 것도 곤욕이었다.
“형님들. 정말 귀신 때문에 힘든 형님들, 누님들은 사연 적어서 제 아이디로 보내주십쇼! 저는 그동안 귀신 퇴치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놓겠습니다.”
- 우리 집도 가능하냐? 마당이 좀 큰데. 2천 평.
눈이 번쩍 떠지는 후원창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그럼요! 형님! 우워어어어! 2천평! 쌉 가능합니다요! 신청만 해주십쇼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