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다. 5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야생곰? 아직도 집에 안 간 거야?
나는 밑에서 울리는 그 소리에 잠시 귀 기울였다.
이리저리 소리를 질러대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온다.
타다다다닥. 타다다다닥.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죽어! 다 죽어!”
누군가가 뛰고, 그 뒤를 정신없이 쫓아가는 소리들이었다.
“혀, 형님들··· 저긴 아직 전쟁 중인가 본데요.”
- 어유 멧돼지 세 마리가 뛰어다니니까 건물이 울리네
- 야. 거기 엽총 같은 거 없냐? 사살해야지
- ㅅㅂ 겁나 시끄럽네. 왜 저런다니?
- 스텝들, 야생곰보다 나이 어리지 않았냐? 근데 왜 야라고···
- 아주 총체적 난국이구만
- 근데 뭐라고 소리 지르는 거야?
괴상한 소리를 해대는 탓에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소리가 가까워지니 무슨 소린지 명확하게 들려온다.
“시발! 닭! 닭 어딨어! 빨리 다 잡아 죽여!”
- 야. 쟤 내기 져가지고 분해서 빙의 된 거 아니지?
- ㅋㅋ 방송 최초 아니냐? 내기 져서 빙의 된 건?
나는 곧장 눈앞에 여자를 바라봤다.
난리 치던 건 멈췄지만, 이젠 반대로 이 상황을 혼란스러워했다.
원래의 본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나를 보며 오히려 겁에 질린 듯했다.
다시 도망치려 눈치보는 여자를 보며, 적어도 나는 이 여자를 안전하게 경찰에게 데려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자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으세요?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방송하는 사람이에요.”
카메라까지 보여주며 나는 여자를 안심 시켰다.
읽기도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창을 읽으며 눈을 껌뻑이는 여자.
상태가 이상했다.
노숙자도 노숙자지만, 무언가 사람을 무서워하는 같은 느낌이랄까.
- 여자 눈빛이 갑자기 착해졌네
- 연우 앞에서는 모든 게 평등해짐
- 그래도 여자라서 안 맞은 게 다행
- 저 여자 전과자였으면 지금 바닥에 거품 물고 있었을 듯
- 근데 대인기피증 같은 거 있나 봐
- 노숙자들이 약간 그런 게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 상처받은 사람들이 약간 그런 게 있지
- 안쓰럽다.연우야 경찰한테 잘 데려다 줘
- 이참에 새로운 인생을 사세요!
- 아직 젊으신 거 같은데! 파이팅!
노숙자들이 갈 곳이 없어 이런 폐가나 흉가에 많이 찾아온다는데.
다신 이런 곳을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다.
다시 오게 된다면 또 귀신에게 이용 당할테니.
“형님들. 이 분은 제가 경찰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고 생활비도 조금 챙겨드리겠습니다.”
[ 참치마요가먹고싶으면참치마요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것도 보태주세요. 파이팅!
[ 호이가계속되면둘리인줄안다 님이 4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오우 좋은 일 하시네! 이것도 띵 까먹지 말고 잘 좀 보태주세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이··· 이런 걸 위해서 얘기 한 건 아닌데! 형님드으을! 수수료떼··· 아니 금액 그대로 잘 전달해드리겠습니다요!”
나는 여자를 보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1층에서 아직 난리 중인 야생곰과 경찰 상황을 살피며 여자를 그쪽으로 안내했다.
내려가자마자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그만하세요! 멈추세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씨발! 다 죽어! 건드리지 마!”
“형! 제발! 왜 그래요 진짜! 이거 기사 타고 나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냥 완전히 나락이라고!”
야생곰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입 주위에는 도대체 뭘 먹은 건지 검붉은 핏 자국이 가득했다.
건장한 경찰 두 명과 스텝이 옆에서 뜯어말리고 있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감당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살짝 몸을 숨기려는 그때.
기가 막히게도 야생곰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꼈다.
솜털이 곤두서는 것도 모자라 등줄기에 가시가 돋는 것처럼 소름이 잔뜩 타고 올랐다.
설마 이 여자 몸에서 빠져나가서 그쪽으로 옮겨 간 거 아니지?
“혀, 형님들. 느낌이 안 좋은데요···”
내가 말을 뱉음과 동시에 야생곰은 나에게로 전력질주했다.
달려오는 그 순간에도 바닥에 떨어진 깨진 유리조각을 집었다.
날 죽일 생각이야?
나는 다급함에 말까지 더듬으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어. 어? 겨, 경찰 아저씨들! 사, 살려주세요!”
- 저 미친놈 눈빛 봐
- 야 저 눈빛 아까 옆에 있던 저 여자 눈빛인데
- 귀신 들렸어! 살인마 눈빛이야
- 야 도망쳐! 도망쳐! 시발!
- 아니! 때려눕혀! 때려눕혀!
- 뒤돌려 차기 옆차기 앞차기 시벌! 뭐든 차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달려드는 바람에 도망치지도 못했다.
그 자리에 멍하게 서있던 나는 멧돼지처럼 달려오는 야생곰을 바라봤다.
시, 시벌. 온다. 온다!
타타타탓!
뒤쫓던 경찰 아저씨가 한 발 빨랐다.
야생곰의 몸에 테이저 건을 쏜 것이다.
“으으으그그으그그!”
야생곰의 눈알이 뒤집히며 온몸이 오징어처럼 흘러내렸다.
식은땀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며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휴우··· 감사합니다. 경찰 형님. 아니. 아저씨들.”
그런데, 아주 소름 끼치게도 야생곰은 금방 의식을 되찾았다.
테이져 건을 떼자마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번엔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씨발! 너도 죽어! 다 죽어!”
퍽! 퍽! 퍼퍽!
다행히도 유리를 놓치는 바람에 육탄전으로 이어졌지만, 경찰들이 몹시 버거워했다.
구급 대원들은 거친 그 몸 싸움에 끼어들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그야 당연한 게 180에 100킬로그램의 거구가 인간 같지 않은 힘으로 미쳐 날뛰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되지?
스텝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옆에서 입술만 쥐어뜯고 있다.
- 야 연우야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냐
- 와 씨. 저 멧돼지 같은 놈 힘이 왜 저렇게 세냐
- 온몸에 붙은 지방 덩어리가 힘의 원천인가
- ㅅㅂ 미친 지방은 걍 비계일 뿐
- 귀신 들려서 그렇지 뭐
- 귀신 들리면 사람이 저렇게 힘이 세진다고 하더라고요
- 저러다가 경찰 잡겠다! 연우야 네가 나서야 될 때다!
- 빨리빨리 일 커지기 전에!
채팅창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야생곰이 경찰의 얼굴과 목을 할퀴어댔다.
옷과 머리를 잔뜩 잡아 뜯겨 완전히 엉망진창이 돼가고 있었다.
나는 구급 대원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얘기했다.
“이거 잠깐만··· 그리고 이 여자분 상태 체크 좀 해주세요.”
그 말을 뱉고 난 후.
경찰들과 힘을 합쳐. 아니. 이제 흉가 방송도 끝났겠다 남은 온 힘을 다해 야생곰의 몸을 제압했다.
야생곰의 다리를 걸어 땅바닥에 넘어트렸고, 경찰들이 팔을 뒤로 꺾게끔 도와주었다.
피가 잔뜩 묻은 입으로 나를 물으려 애썼지만, 요리조리 요령껏 피해 가며 완벽하게 야생곰을 구속했다.
기어코 수갑까지 채우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잠잠해진 야생곰.
경찰은 그런 야생곰을 차에 태우며 내게 얘기했다.
“감사합니다. 죄송한데 진술을 위해 서에 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벌. 결국 또 경찰서행이구나.
이 정도면 전생에 경찰이랑 뭐 연관이 있던 삶을 살았던 거 아니냐.
나는 차를 타기 전.
카메라를 건네받아 시청자들에게 인사했다.
“혀, 형님들. 3대 흉가는 이렇게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요! 나중에 봬요!”
- 그래 진짜 고생했다.
- 3대 흉가 어마어마하네
- 이야 이제 야생곰 백 프로 나락 가겠네
- 지가 저주 건 거 돌려받아서 계속 귀신 빙의나 되며 살겠지
- 그 저주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게 소름이다
- 연우가 당했으면 우린 이게 마지막 방송이었겠지
- ㄷㄷㄷ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 놀릴 사람이 없어서?ㅋㅋ
- ㅇㅇ ㅋㅋㅋ
- 그나저나 쟤는 끝까지 질리지도 않고 이빨질 해대네
- 귀신이 빙의된 게 아니고 피라냐 빙의된 거 아니냐
- ㄴㄴ 죠스 아님?
“그만해요 이제! 하. 이 사람 왜 이래 도대체! 미치겠네.”
방송을 끄려는 그 와중에도 야생곰은 차에 타지 않으려 있는 힘껏 발악을 해대며, 자신을 붙잡은 경찰들에게 입질을 해댔다.
“으아아윽! 아아윽! 으으으으!”
다사다난한 하루가 드디어 끝이 났다.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할 때 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혹시나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보호자를 먼저 찾지는 않을까.
이제 나름 꽤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지라 이 사실이 엄마에게 흘러 들어가지는 않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경찰 아저씨들이 의리 하나는 끝내 준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아픈 가정사까지 털어놓으며 바지를 붙잡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으니까 망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랴.
경찰 아저씨들은 나를 응원까지 해주셨다.
다만, 흉가는 안 다니면 안 되겠냐는 말과 함께.
노숙자 여자분은 다행히 보호시설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라던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립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여 이들의 건전한 사회복귀와 복지증진에 책임을 진다고 하니 내 마음이 다 뿌듯하다.
제발 다신 그런 곳을 들락이질 마시길···
그런 곳에서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요.
시벌··· 고스트 박스가 아니라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걸 들었을 땐 정말 온몸이 냉동고에 들어간 것처럼 굳어버렸다.
오죽하면 차라리 귀신을 보는 게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나저나 이 3대 흉가를 다녀옴으로써달라진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 내 유트브가 떡상을 하고 있다.
왜냐?
나름 인지도가 높은 회사에서 배출해낸 유트버 야생곰이 경찰을 때렸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담고 있는 링크영상이 내 영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과하게 노골적인 핏자국 등은 임아린의 센스로 모자이크 되었지만.
누가 봐도 경찰을 폭행하고 생난리를 피우는 사람은 야생곰이란게 티가 날만큼 절묘하게 편집했다.
게다가 내 영상에 남겨진 야생곰의 파렴치한 주술들.
이 몹쓸 짓들은 네티즌들을 통해 전국방방곡곡에 알려졌다.
[ 라이벌을 없애기 위해 무당을 통해 짚신 인형과 온갖 부적들을 사들인 범인 A&S 소속 흉가 유트버 야생곰. 과연 이 주술은 효과가 있는 걸까 ]
[ 요즘 핫하다는 정연우 유트버를 위험에 빠트리게 한 주술. 강령술의 위험성과 그 의미. ]
[ A&S 에이전시 흉가 유트버 야생곰 폐 정신병원에서 경찰 폭행 ]
[ 구독자 50만 흉가 유트버 야생곰. 닭을 생으로 잡아먹는 끔찍한 장면 ]
[ 흉가 유트버 야생곰. A&S 에이전시 이사가 시켰다. 진실 토해냈다. 사실인가 ]
이로 인해 야생곰은 어딘가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거라고 들었다.
동시에 완벽하게 나락행 열차를 타게 되었다.
구독자는 하루 만에 30만 명까지 바닥을 쳤고.
그 와중에도 만 명이라는 놀라운 구독자 수가 계속해서 썰물처럼 빠지고 있었다.
이 덕분에 나에게 갈아타는 시청자들이 늘어났고.
결국. 나는 구독자 ‘40만 명’을 달성했다.
그렇게 선지곤 정신병원을 갔다 온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오늘.
난 40만 명을 기념하는 방송을 켰다.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게 들어오는 시청자들을 지켜보았다.
[ 문희열리네요순재가들어오죠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난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형님들! 연이루! 연우 왔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