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다. 4
앞에서 휘둘러대는 날카로운 메스질을 가까스로 피하며 난 고민했다.
진짜 때려잡아?
그래도 빙의된 이 여자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
그저 기가 약해서 귀신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혀, 형님들! 근데 이 여자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요! 빙의된 거라고요! 게다가···”
하필이면 떨군 휴대폰이 우리 둘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의 발언이다.
모든 시청자들이 저 여자가 빙의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까?
결국, 내가 방송에서 연약한 여자를 때려눕히는 모습이 방송을 타고 나가기라도 한다면···
난 대한민국 유트브계의 파렴치한 남자로 남겠지.
그리고 애초에 난···
“전 사실 사람 못 때려요! 형님들!”
- 전과 24범 때려잡은 놈이 그런 말 하니 안 믿어지네
- 근데 몸은 왜 맨날 단련하는 거임?
- 귀신한테서 빤스런 하려면 체력이 돼야 하니까
- 아 ㅅㅂ 그러네 ㅋㅋ
- 상황 파악이 안 되냐?
- 자칫하면 네 목숨이 날아가는데 뭐라는 거야?
- 정신 안 차려?
- 그럼 안 다치려면 제압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 그래. 그럼 때리지 말고 제압이라도 해!
하지만, 그 채팅창이 보일 리 없었다.
한 눈을 팔았다간 그 메스가 내 맨살을 생선처럼 도려낼 것이다.
여자가 요리조리 피하는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쥐새끼처럼 잘 피하네. 그래도 넌 결국 죽어.”
시벌··· 죽겠냐!
유트브 흉가 컨텐츠 하다가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잖아.
“미, 미친 소리 하시네! 난 아직 젊거든! 열아홉 밖에 안 먹었다고!”
여자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섰다.
내 얼굴을 보고.
아니 내 몸을 훑어보며 활짝 웃었다.
“어쩐지··· 싱싱해 보여. 흐흐흐흐.”
“시, 시벌. 왜 그렇게 웃는 거야 재수 없게!”
괴상하게 웃어대며 다가오는 그 여자를 피하는 것 말고는 도저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만 가고.
피하는 데 온 신경을 쏟은 내 몸은 어느새 땀 범벅이 되었다.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여자는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의 입은 더 찢어져만 갔다.
나를 보며 즐기는 것 같았다.
이게 빙의된 사람의 힘인가.
시벌.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는데.
나는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한창 공부했던 귀신 퇴치법을 떠올렸다.
1. 과일과 더불어 식물 중에서 양기가 가장 강하다는 복숭아나무로 퇴치하는 방법.
준비해왔지만 아쉽게도 가방 안에 있다.
2. 빛.
당연한 퇴치법이지만, 지금 암흑 속에 갇혀있는지라 양기가 모두 삼켜진다.
3. 인간 본체.
인간의 몸에서도 늘 양기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미약한 수준이라 3대 흉가의 원귀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 같다.
4. 감성 자극.
두려움에 떨수록 더 한 음기가 팍팍 방출된다고 했다.
그래서 공포를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방법.
5. 닭 울음소리를 내자.
닭 소리는 여명을 밝히는 소리로 귀신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소리라고 했다.
퇴치법을 종합해 봤을 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4번. 5번.
하지만 4번마저도 마라탕 형님이 다신 부르지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했으니.
남은 건 5번인데···
닭 울음소리를 어떻게 내지?
- 야. 저 여자 뭐라는 거야?
- 연우 보고 싱싱해 보인다고 지금
- 미친. 연우를 먹을 것으로 보는 거야?
- 식인종 추장 딸이야 뭐야?
- 그나저나 이게 뭔 소리야? 닭 울음소리인가?
정말 기적 같게도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꼬끼오오오오.
뭐야? 닭이 있어?
순간, 야생곰과 이곳에 와서 새 소리를 가지고 내기를 했던 게 생각이 났다.
맞지? 이 건물에 처음 왔을 때 들었던 그 괴상한 소리는 닭이 맞았다고!
새벽에 폐 정신병원에서 울려대는 닭 소리는 소름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반가웠다.
하기야. 옛 선조들은 새벽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가 돌아가고, 잡귀가 모습을 감춘다고 했었다.
제사를 지낼 때는 닭 우는소리를 기준으로 하였다고 그랬던가.
그럼 지금 벌써 날이 밝고 있는 거야?
정말 신기한 건 내 앞에 있던 여자가 그 닭의 울음소리에 반응을 한다.
고개를 이리저리 틀어가며 닭의 위치를 찾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기가 흐트러진 지금 이 순간이라면 문을 열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떨어진 휴대폰을 잽싸게 주워들고.
“으아아아아아! 시버어어어얼!”
나는 있는 힘을 다 쏟아 문을 잡아 뽑았다.
천천히 덜컥이던 문은 어느 순간.
낡은 손잡이가 부서지며 동시에 문이 열려버렸다.
놀란 여자가 뒤에서 나를 쫓아오려 몸을 움직였지만, 내가 한 발 더 빨랐다.
흉가 컨텐츠를 해오면서 도망가는 데에 있어서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숙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빤스런의 제왕.
나는 잽싸게 옆방으로 가서 가방에 있던 복숭아나무 먼저 꺼냈다.
선녀보살님께서 손수 챙겨주신 작은 나뭇가지였다.
“시벌··· 오지 마. 이거 하루 종일 양기를 받은 복숭아나무다!”
그 나뭇가지를 보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여자.
격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쉽사리 내게 다가오지는 못했다.
효과가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몸에 액세서리를 몸에 둘렀다.
- 헐. 좃댔다
- 아이템 장착 끝났네. ㅅㄱ요
- 야. 근데 저 여자 진짜 귀신들린 거 맞나 봐. 반응하는데?
- 아니 ㅅㅂ 귀신 들리지 않고서 저 옷차림으로 저길 왜 오겠냐고
- 옘병. 우리 꿀잼 주려고 연출 한 걸 수도 있자나
- 유트버 주작하는 게 뭐 한 둘이야?
- 헐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 숨 막힌다 시벌
- 경찰서에 신고했으니까 얼른 도망가든지 연우야!
닭이 계속해서 울어주고 있다.
상황은 점점 나에게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닭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 거리는 여자.
난 여자의 몸짓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제압하지?
일단 나에게 정말 위협적인 저 메스부터 빼앗자.
나는 선녀보살님이 써주신 부적을 매만졌다.
부적의 효과 때문인지 아까보다 정신이 집중되어 심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이제 그 몸에서 나오지? 시간문제야. 경찰도 올 거고, 너는 내가 어떻게든 그 몸에서 떼어낸다. 시벌!”
아니 그냥 튈까?
지금이 기회일 수 있었다.
이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여자가 메스를 들어 자신의 팔을 쓱 그었다.
“이리 와.”
여자가 이번엔 복부로 메스를 가져간다.
“안 오면...”
지···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에 나는 반사적으로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런 미, 미친 새끼가 멀쩡한 사람 몸에 무슨 짓이야!”
- 헉 시발. 내가 뭘 본 거야 지금
- 지금 저 여자 칼로 손 그은 것 같은데
- 미쳤어. 진짜 미쳤어. 피! 피! 피다!
- 야 이거 뭐야? 어떻게 해!
- ㅅㅂ 야 이거 방송이고 뭐고 빨리 119부터 불러라
- 빨리! 선지곤 정신병원!
내게로 기울었던 상황이 또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다.
내 마음이 다급해졌다.
귀신에게 빙의된 저 여자의 몸을 한시라도 빨리 구출해 내야 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 야 선입금이다. 정신 차리고 저거 얼른 빨리 때려눕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순간, 눈이 하얗게 까뒤집은 채 배에 메스를 가져갔던 여자가 배를 그으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아, 알았어! 갈게. 알았다고!”
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 내 모습에 여자가 히죽 웃는다.
“지금 시키는 대로 가고 있어. 움직이지 마.”
이내 2미터 이상 근접하자, 메스를 든 여자의 손이 지체 없이 나에게 날았다.
내가 순간적으로 무릎을 굽히자 메스를 든 여자의 손이 내 어깨로 넘어갔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여자의 손을 낚아채 업어쳤다.
나는 넘어진 여자의 몸을 억지로 돌려 뒤를 장악했다.
양팔을 뒤로 꺾고 몸무게로 힘주어 여자를 고정했다.
다행히 메스로 자해한 팔의 상처는 깊지 않아 다행이었다.
여자는 몸을 기우뚱기우뚱 거리며 쉬지 않고 말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혀, 형님들! 경찰차! 구급차! 혹시 부르셨나요! 후원창으로 빨리 얘기 좀!”
- 불렀어!
- 워 시벌. 살벌하네.
-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 아니 저 여자 눈빛 봐··· 너무 섬뜩한데
- 귀신한테 홀렸다는 건 눈빛만 봐도 알겠다···
- 그나저나 연우. 범죄자를 제압해 봐서 그런가. 안정감 오지네
- 경찰 꿈나무 무시 ㄴㄴ
- 쫄보처럼 보여도 개기면 난리남
- 근데 저 여자한테서 귀신 어떻게 빼내요?
그게 문제였다.
열중쉬어 상태로 바닥에 짓눌려있는데도 불구하고 반항이 너무 거세다.
나보다 덩치가 2배나 큰 야생곰이 뒤척이는 느낌이다.
그 때문에 내 몸이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놀이 기구처럼 들썩인다.
어떻게 하지?
나는 일부러 겁을 주기 위해 떠들었다.
“끝까지 버티겠다 이거지? 넌 성불 시킬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서 그냥 아예 소멸시켜버려야 돼.”
그 말에 여자는 미친 듯이 웃으며 날 조롱했다.
“너 같은 게 나를? 낄낄낄낄.”
나는 잠시 고민하다 가방에 있는 부적을 한 장 꺼냈다.
액세서리를 구입하면서 따로 구입했던 귀신 퇴치용 부적이었다.
효과가 있을 리 모르겠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멀쩡한 여자를 기절시킬 수는 없었으니까.
난 고이 접어놓은 부적을 활짝 펼쳤다.
그리고 여자의 입속에 그대로 처넣어버렸다.
“퉤! 낄낄···”
여자가 뱉어낸 부적은 전과 같이 새카맣게 메말라버렸다.
마치 불에 탄 것처럼.
순간, 여자가 살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년의 몸뚱어리. 이만 죽여버려야겠어.”
그 말을 들은 내가 흠칫했다.
뭘 하려는 거야?
나는 다급하게 복숭아 나뭇가지를 여자의 입에 잔뜩 물렸다.
여자가 자신의 혀를 깨물어 또 자해를 하려는 것 같았다.
“으으ㅇ으ㅡ그그ᅟᅳᆼㄴㄹ.”
역시나 내 예상과 같이 가까스로 입에 물린 복숭아나무 덕분에 다행히도 돌발 상황은 막았다.
“이게 진짜 미쳤나!”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에 맥이 다 빠진다.
이제 체력도 빠질 만큼 빠졌고, 더 이상 괴물 같은 힘의 여자를 구속할 힘도 많이 남아있질 않은 상황.
신기하게도 복숭아나무를 물린 순간부터 여자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뭐야? 갑자기?
동시에 어디선가에선 또 닭 울음소리가 울려댔다.
꼬끼오오.
그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몸에서는 완벽하게 무언가가 빠져나가 듯 움찔거렸다.
그리고 쥐 죽은 듯이 아주 얌전해졌다.
뭐지? 저 닭소리에 진짜 뭐가 있는 건가?
어떻게 나타난 건지 이유 모를 저 닭 울음소리가 영향이 되어 위험한 상황을 몇 번이나 모면했다.
나는 얌전해진 여자의 손목을 지혈을 하면서 보조 폰으로 닭에 대한 설명을 살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띄는 한 구절을 발견했다.
[ 닭은 오덕(五德) 을 지녔다 했다. 닭의 붉은 볏은 문(文)으로 선비의 벼슬을 나타내고, 날카로운 발톱은 무(武)이고, 용(勇)은 적을 만나면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기백, 먹이가 생기면 서로 불러 나눠 먹는 인(仁), 그리고 밤을 지키며 때를 놓치지 않고 새벽을 알리니 신(信)이라 했다. ]
닭이 이렇게나 대단한 동물이었어?
늦지 않게 경찰차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119 구급차 소린데···
다행히도 경찰차를 이어 구급차 소리가 마저 들려온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경찰차, 구급차가 차를 세운 그 소리에 맞춰 건물 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도록 크게 소리쳤다.
“여기에요오오오! 사람 좀 살려주세요오오오!”
아래층에서 야생곰 스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정신 좀 차리라고! 왜 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