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다. 2
내 발언에 시청자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 뭐? 이 미친놈 정신 못 차렸나
- 강령술 따위는 바라지도 않아
- 불과 며칠 전, 악몽을 겪고서 또 그 짓을 한다고?
- 그때 그거 연기였냐?
- 몰라. 죽어도 책임 안 진다
- 그럼 오늘 차라리 장례식장을 또 가지 그랬냐
- ㅇㅇ 거기서 바로 장례 치르게
귀신을 부르는 주문.
그것은 무속인들이 얘기하길.
게임이라고 하기보다는 주술에 가깝다고 얘기했다.
예를 들면 내가 폐 병원에서 처음 시도했었던 강령술.
중개사를 통해 잠시 들어갔었던 빨간 지붕 집에서의 강령술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 고생을 하고도 내가 미션을 위해 다시 강령술을?
머리에 총을 맞지 않는 이상은 그런 짓 안 하지!
“아이 형님들. 저 역시도 사람인지라 학습능력이라는 게 있는데 또 그 위험한 짓을 반복하겠습니까? 무슨 제가 단세포 동물인 줄 아시나···”
- 매번 반복하지 않았냐?
- 따져보면 넌 단세포도 아니야
- 그냥 세포가 자체가 없는 듯
- ㅇㅇ 돈만 있음
- 돈만 주면 기계처럼 움직이니까
- 연우를 움직이게 하는 주원료는 후원
쿵! 쾅!쾅!
까아아악! 까아악!
나는 사방에서 울려대는 잡소리에 몸이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검지를 내밀어 이리저리 흔들었다.
“워어어씨! 저 소리 뭐냐고··· 형님들. 당분간은 절대 강령술 안 합니다. 누가 3백만 원 이상 주면 모를···”
순간, 말을 내뱉고 나서도 흠칫거렸다.
동시에 후원창을 눈치 보며 살폈다.
시벌 맞다. 우리 마라탕 형님 돌아오셨지.
3백만 원이건 4백만 원이건 금액 상관없이 시킬 사람이다. 저 사람은.
후원창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후원창 내용이 읽히기도 전에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시벌. 아니에요. 절대 안 해···”
- 나 없는 사이에 강령술도 했었냐? 근데 그 미션 별로 재미없다.
“아··· 난 또 휴··· 감사합니다. 형님. 그냥 감사합니다.”
- 이거 피해의식 같은 거지?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ㅋㅋ
- 쫄보녀석. 그새 쫄아가지고
- 아니 그럼. 귀신을 어떻게 부르겠다는 건데?
- 어여 해봐 그럼
나는 채팅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형님들 혹시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귀신은 자기 얘기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는 걸요.”
흔히 말하는 학교 괴담부터 시작해 인형 괴담, 엘리베이터, 공동묘지, 화장실··· 등등.
말하자면 끝도 없이 나오는 괴담들.
그중에서도 귀신 이야기를 하면 항상 빼먹지 않고 나오는 소문 중 하나였다.
물론 나 역시 어렸을 적 경험해 봤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오싹한 경험을 자랑삼아 내 앞에서 떠들어댔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던 기억.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 느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 야. 그거 그냥 괴담 아니냐? 설마 너 또 그 메소드 연기로 때우려고 하는 거 아니지?
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에요 형님. 이게 처음이 아닙니다. 실제로 귀신도 목격했었어요.”
친구들과 말도 섞지 못할 만큼 쑥스러움을 많이 타던 사춘기 시절.
가끔씩 보이는 귀신들이 나를 빤히 쳐다볼 때면 얼마나 섬뜩했는지 모른다.
[ 얘 방금 우리를 쳐다본 것 같지 않아? ]
[ 분명히 날 쳐다본 것 같은데 ]
[ 너 일부러 안 보이는 척 하는 거지 ]
혹시나 몸에 돋아 오른 소름이 들킬까 봐 일부러 딴청을 피우고, 자리를 피했던 경험도 수없이 많았다.
ㅡ 이건 아까 미션금. 일단 해봐 봐. 네 말이 사실이라면 50만 원 더 준다.
오우. 시벌.
순간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 팔을 올리고 절을 하며 소리쳤다.
“우어어어어! 우리 마라탕 형니임께서 50만 원을! 알겠습니다요 형님! 만약 제가 귀신을 못 부른다면 컴백하신 기념으로 빙의라도 해서 제가 귀신이 되겠습니다!”
ㅡ 오바하지 마. 시간 끌지 말고 고고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스트 박스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희미하게 이상한 감탄사만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 치지지익- 새 치지지익- 날아간다 치지지익- 같이가 ]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킨 나는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먹음직한 과일은 반을 쪼개어 놓고··· 그리고 혹시 몰라 사탕도.
가방에 든 모든 걸 다 꺼내 수술대 앞에 가지런하게 놓았다.
마치 제사를 지내듯이.
그리고 기억 속에서 보았던 그 여자를 생각하며 천천히 두 번 절을 올렸다.
“이곳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한 분을 위해 인사 올립니다. 부족하지만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려 왔습니다. 저와 얘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비록 무당은 아니지만, 그 한 맺힌 얘기라도 들어 줄 생각이었다.
- ㅋㅋ 되겠냐 그게
- 이 자식. 강령술 무서우니까 제사를 지내네
- 하긴 때마다 지내는 제사도 귀신을 불러들이는 의식이니까
- 머리 좋네 연우. 성스러운 의식을 택했다.
- 근데 이거 가지고 귀신이 올까?
-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다른 귀신들이 오면 어떡해?
- 헐.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리되면 연우 오늘 살아서 집 못 갈 듯
- ㅇㅈ 여기 크기를 봐라. 귀신이 한 둘이겠나
내 마음과는 다르게 반응은 없었다.
그저 고요하게 정적만이 흘렀다.
게다가 중간중간 반복되는 저 소리들.
쿵. 쾅! 쾅!
까아아악! 까아아악!
도대체 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자꾸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뭔가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 치지지익- 맛있는 치지지익- 냄새다 치지지익- 과일 ]
“어? 형님들? 지금 고스트 박스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한 거 들으셨죠!?”
나는 다급하게 EMF 측정기까지 꺼내 확인했다.
2단계 반.
온 건가?
내 호흡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괜한 제사상차림으로 인해 다른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한가득이다.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반응이 조금 약한데?
왠지 내 주위에서 계속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시벌···
반응이 약하다고 아쉬워하고 있는 처지라니.
점점 미쳐가는구나 정연우.
- 야. 귀신 언제 부르는 건데? 내일? 다음 생애?
“스읍. 형님들. 정말 제 개인적인 감이지만, 왠지 귀신들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고 계속 제 주위를 배회하는 느낌이에요. 왜 그러지?”
정말 그런 느낌이다.
왜 그런 거지?
- 설마 너 몸에 지닌 부적이랑 그 아이템 때문 아니냐?
순간, 머리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번뜩였다.
어?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어쩐지 내가 산 귀신 퇴치용 악세서리와 선녀보살님의 부적까지 더해지니, 요즘 과한 증상들이 많이 줄었단 말이지.
덕분에 위험한 순간들도 많이 피해 갔던 것도 같고.
정말 그런 이것들의 효과 때문인 건가?
그럼 더더욱 빼기 싫은데.
“형님. 왠지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 제 기가 이제 좀 세진 게 아닐까요? 우하하하.”
- 드디어 미쳤다
- 설마 야생곰 빙의된 건가?
- 살아있는 인간도 빙의가 됨?
- 저거 일부러 말 돌리는 거야. 누가 미션 좀
- 기가 세진 건지는 우리가 직접 확인해 봐야지
- 1분 안에 몸에 악세서리랑 부적들 다 떼서 안 보이는 데다가 숨겨놓으면 십만 원
시벌. 자객 새꺄!
적어도 아까 야생곰같은 상황은 막아야 할 것 아냐?
이미 혼자가 돼버려서 살이 떨려올 정도로 무서워 죽겠는데. 그나마 나를 지켜주는 이것들까지 빼라니!
하지만 내 몸은 이미 반사적으로 악세서리를 다 분리시켰다.
부적들도 다 빼내어 가방에 차곡차곡 넣어 내가 있는 반대 방에 놓고 왔다.
“미션 완료했습니다 형님. 어차피 굵고 짧게 갈 거! 확실하게 해보겠습니다!”
[ 오늘은하나도안무서워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ㅇㅋ 잘했다. 이제 너는 자연인이다
입술을 깨물며 고개까지 끄덕였다.
[ 치지지익- 과일 치지지익- 먹어도돼? 치지지익- 맛있는과일 ]
한층 더 커진 고스트 박스의 음성에 놀랐다.
뭐야? 그거 벗어던져놓고 왔다고 바로 반응이 온다고?
정말 그것 때문이었던 거야?
“어! 형님들. 왔어요! 왔어요! 네! 마, 마음껏 드세요. 제가 준비했습니다!”
시벌. 살다 살다 이제 귀신을 내가 반기게 될 줄이야.
EMF 측정기는 4단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놀랍게도 고스트 박스에서는 정말 과일을 먹고 있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왔다.
[ 치지지지익- 쩝쩝쩝 치지지익- 맛있어 치지지익- 서걱서걱 ]
눈이 휘둥그레지는 상황에 나는 숨죽이며 고스트 박스 음성에 집중했다.
- 헐? 뭐야? 먹는 소리?
- 진짜 이런 음성이 튀어나오니까 먹는 것같이 들린다
- 와. 진짜 미스터리다. 우연이라고 해도 상황이 너무 딱 들어맞네
- 사람이 먹는 것처럼 소리가 똑같아
- 그것도 밥도 아니고 정말 눈앞에 있는 과일
- 이거 주작 가능?
- ㅅㅂ 어떻게 주작함?
시벌. 혼자 남은 폐 정신병원에서 귀신이 과일 먹고 있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아주 희미하게지만, 내 눈앞에 과일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상해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새하얗던 배의 안쪽이 벌서 진한 갈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마른 침은 계속 연달아 삼켜진다.
이제 어쩌지?
뭐라도 물어봐야 하는데.
나는 한참 동안 고스트 박스에서 들려오는 개걸스러운 식사 소리에 귀 기울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여기서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이 맞나요?”
[ 치지지익- 꺄아아악! 치지지익- 하지마! 치지지익- 꺄아아악! ]
고스트 박스에서는 갑자기 여자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자연스럽게 고스트 박스에서 멀어졌다.
그 비명소리가 어찌나 큰지 건물 내를 송곳처럼 찌른다.
“시, 시벌. 형님들. 이 영가 갑자기 왜 그러죠?”
이유를 알 수 없는 비명소리에 나는 벙찐 얼굴로 고스트 박스를 살폈다.
[ 치지지익- 꺄아아악! 치지지익- 싫어! 치지지이익! 하지마! ]
한참 동안 울려대는 비명소리.
본능적으로 왠지 모르게 나 역시도 위험을 감지했다.
귀신이 모여든 걸까?
반사적으로 EMF 측정기를 확인했지만 0단계부터 5단계까지.
정신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동시에 척추를 따라 개미가 기어오르는 느낌이 든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다급하게 미션을 어겨서라도, 먼저 부적을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옆방에서는 문이 닫혀버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내 등 뒤에서는 아주 차가운 살기가 흐르며 내 귓가에 대고 사람의 음성이 전해졌다.
[ 이제 혼자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