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14화 (114/225)

역으로 되갚아주기. 6

두꺼운 철문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뱉어내며 열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암흑 속에 감춰져 있던 병실 안의 모습이 천천히 드러났다.

나는 살며시 열린 그 문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안을 비추어보았다.

침대, 갈기갈기 찢어진 벽지··· 그리고···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며 수많은 얼굴들이 문안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기겁하며 문에서 떨어졌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중 덩치가 산만한 한 명이 내 카메라 시야를 가리며 앞으로 나섰다.

“어우 미안해요. 생각보다 겁이 많으시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연우 씨.”

바로 야생곰이었다.

이 사람이 여기 왜 있어?

ㅡ 뭐야 이 한라산 멧돼지 같은 새끼는

ㅡ 얘가 얌생곰인가 걔야?

ㅡ 워. 곰말고 스모 선수 아님? 등치 무엇

ㅡ 근데 얘는 왜 여기 있어?

ㅡ 일부러 연우 놀래키려고 2층에 숨어있던 거 같은데

ㅡ 그런 것 같네.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잖아

“안녕하세요. 근데 여기서 뭐 하세요?”

“방송하러 왔죠.”

“방송이요? 오늘 다른 흉가 가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야생곰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얘기했다.

“아··· 저희 큰손 형님께서 이곳을 추천하셔가지고 왔어요.”

“큰손 형님요?”

큰손 형님이라면 재난지원금?

시벌. 일부러 나 놀려주려고 미리 이곳으로 부른 거구나?

나는 시청자 목록을 살폈다.

재난 형님은 목록에 그대로 있다.

오호라. 방송을 두 개 켜놓고 모니터링까지.

ㅡ 이야 잘나가는 흉가 유트버 둘이 모였네. 오늘 진짜를 가려보자!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합방만은 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이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니. 어찌 보면 예상한 대로 상황은 잘 만들어진 걸까.

나한테 무슨 이유로 비방을 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니까.

나를 비추며 웃고 있는 야생곰 방향으로 몸을 틀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형님들! 흉가 컨텐츠를 진행하고 있는 정연우 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야생곰이 한 손을 흔들며 내게 얘기했다.

“반가워요 연우 씨. 이 정신병원에는 언제 오신 거예요?”

“한 30분 전에요. 야생곰 님은요?”

“저희는 한 시간 정도 전에?”

“3대 흉가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맞아요?”

“네. 처음이에요.”

“괜히 3대 흉가가 아니에요. 이곳 굉장히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연우 씨 담력으로는 힘들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세요. 하하.”

매사가 지옥이었던 터라 이젠 잘 모르겠다 시벌.

아 맞다.

나는 깜박하고 잊고 있던 EMF 측정기를 먼저 들어 확인했다.

어라··· 내가 잘못 본 건가?

다급하게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어보지만 고양이 털로 이어진 길도 그대로 있었다.

“야생곰 님. 혹시 이곳에 오셔서 뭐 보신 거 없으세요?”

야생곰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피식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아직요. 얘네들 내가 왔더니 무서워서 숨었나 봐요. 푸하하.”

ㅡ 허이구. 연우 허세는 허세 축에도 못 끼겠네

ㅡ 하긴 얘는 3대 흉가도 많이 다니고 해서 짬밥이 있으니까

ㅡ 그리고 영안이라던데?

ㅡ 아니. 근데 얘는 등장하자마자 연우 깔보냐 얘는?

ㅡ 이 새끼 이거. 일부러 이러려고 온 것 같은데?

ㅡ 연우 잘나가는 거 보기 싫어서 저격하려고?

ㅡ 그럼 오늘 연우한테 신나게 줘터지고 가겠네

ㅡ 한라산 멧돼지 잡는 거 보여주나

야생곰이 얘기했다.

“이곳에 원귀가 셋 있어요. 그 정도는 아시죠?”

“네. 재난 형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다 남자 영가들이라고.”

“오 다행히 아시네요. 맞아요.”

아니. 말투가 왜 이래?

같은 흉가 bj이라 나를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저번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나를 견제하는 듯한.

아니. 괜히 나를 깔보려는 느낌까지 든달까.

나는 금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상태를 보아하니 야생곰은 아직 그 여자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근데 분명 고양이 털은 이 병실 앞에서 끊겨 있었는데.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데 제가 사실 아까 1층에서 올라오기 전에 사람을 한 명 봤거든요.”

“사람이요? 에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저희가 들어와서 이미 다 살폈는데,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던데.”

“아니요. 제가 분명히 봤어요.”

야생곰이 웃으며 물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어땠는데요?”

“흰옷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인데요···”

야생곰이 내 말을 끊으며 작게 폭소했다.

옆에 있던 스텝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내게 얘기했다.

“푸하하하. 연우 씨 헛것 보신 거 같네요. 요즘 세상에 흰 소복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이 어딨어요? 게다가 이 새벽 정신병원에?”

나는 장난기 하나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진짜 봤어요! 그 사람이 고양이를 뜯어 먹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연우 씨 말은··· 귀신도 아닌 어떤 여자가 흰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상태에서 고양이를 뜯어먹고 있었단 말이죠? 도대체 어디서요?”

“2층 올라오는 1층 계단에서요.”

ㅡ 아무도 못 봤잖아. 맨날 자기 혼자만 보고 얘기해 쟤는. 야생곰아 네가 선배니까 오늘 제대로 좀 가르쳐줘라

동시에 야생곰의 얼굴에서는 비릿한 웃음이 흘렀다.

야생곰은 내 얼굴과 카메라를 번갈아 쳐다보며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형님. 연우 씨가 기가 약해서 헛것을 많이 보는 것 같으니까. 오늘 제가 이 영안으로 제대로 된 선배의 위엄을 보여주겠습니다.”

시벌. 선 넘네···

ㅡ 아쭈 공개적으로 깔보겠다 이거지?

ㅡ 너네 주작하다 걸리면 손모가지고 발모가지고 다 작살낸다

ㅡ 괜찮. 주작할 게 없잖아?

ㅡ 모르지. 저 새끼들이 먼저 왔으니 뭐라도 준비해 놓은 거 아니냐?

ㅡ 헐. 그럴 수도 있겠네

ㅡ 근데 연우야 괜찮냐?

ㅡ 아까 그 여자 진짜 본 거 맞지?

나는 채팅창을 보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진짜 봤어요.”

전체적으로 나이대가 높아 보이는 야생곰 식구들.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러는 건지 몰라도 은근히 깔보는 듯한 말투와 행동들이 풍긴다.

후원창이 사라지자 야생곰이 큰 덩치를 세워 성큼성큼 앞장섰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한 시간을 넘게 있었는데 그런 소리가 들렸으면 분명 내 귀에 들렸지. 내가 귀가 얼마나 밝은데.”

하지만 야생곰은 복도에 나가자마자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직 바닥에 남아있는 고양이 털.

핏기가 굳지 않아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자국들이었다.

“그, 그게 제가 말한 거예요.”

야생곰이 피로 얼룩진 바닥을 이리저리 세심하게 살폈다.

“뭐야 이거? 이건 고양이 털이고 옆에 이건··· 피 인가? 여러분들 잠시만요. 피가 여기 왜 떨어져 있어?”

뒤에서 카메라와 조명을 비춰주고 있던 스텝들도 카메라에서 얼굴을 떼어내고 바닥을 연달아 쳐다보며 눈을 부릅떴다.

일단 야생곰도 정말 모르는 눈치다.

이로써 확실한 건 이 상황이 저놈들 주작도 아니라는 거지.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꿀꺽꿀꺽 절로 넘어간다.

야생곰이 바닥에 떨어진 핏기를 거침없이 만지며 냄새까지 맡아본다.

그리고 금세 얼굴을 찌푸리며 발작하듯 소리쳤다.

“웁! 시발! 이거 진짜 피 냄새야!”

“진짜라니까 그걸 왜 굳이 만져서 냄새까지···”

ㅡ 야생곰 쟤 좀 모자라는 것 같아

ㅡ 멀리서 맡아도 피라는 걸 몰라?

ㅡ 머리가 크다고 그만큼 똑똑한 건 아니더라고요

ㅡ 그럼 머리에 든 거 저거 근육이냐 지방이냐

ㅡ 아무것도 든 거 없음

ㅡ 웁. 미친 스텝 옷에 몰래 닦았어

“뭐지? 우리가 여기 한 시간 동안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야생곰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본인이 숨어있던 코앞에 떨어진 이 고양이 털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모양이다.

이리저리 계속해서 살펴보던 야생곰이 고양이 털이 떨어진 바닥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와 야생곰의 스텝들도 곧이어 따라붙었다.

“뭐야 이게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야생곰이 나를 힐끗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곧이어 내 손과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혹시나 묻은 핏자국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 같았다.

시벌. 나랑 눈싸움하면 뭐가 나오냐?

그렇게 복도 끝 2층 계단을 도착하자 야생곰이 1층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고양이 털이 떨어진 곳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따라가다 몸을 움찔거렸다.

“워! 시발! 여러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고양이 사체가···”

“시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야생곰이 그 온통 바닥에 피로 얼룩진 현장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뭐지 그럼···”

움직이는 발소리가 일절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피로 얼룩진 저 고양이 털의 발자취가 끝까지 남아있지도 않았다.

맨발인 걸까?

아니.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걸까?

순간, EMF 측정기에 램프가 반짝이는 걸 확인했다.

1단계.

나는 다급하게 EMF 측정기를 들어 사방에 팔을 들어 가져다 댔다.

앞은 아니다. 그럼 옆···

옆도 아닌데.

그럼 뒤··· 어? 반응한다.

4단계!?

그 여자인가? 아니 귀신인가?

하지만 그마저도 조금씩 줄어든다.

멈춰 있는 우리 무리들과 점점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EMF 측정기만 바라보며 천천히 가까워지는 반응을 따라 움직였다.

바로 3층이었다.

“위에서 EMF 측정기가 반응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해요. 분명 고양이를 먹던 건 사람 이었는데···”

귀신이라면, 이렇게 물리적으로 생명도 헤칠 수가 있나?

야생곰이 3층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먼저 앞장서며 투덜댔다.

“사람이면 벌써 인기척이 느껴졌겠지. 아~ 연우 씨. 이제 보니 야생동물 같아요. 고양이를 잡아먹을 정도에 발소리가 안 나는 거 보니··· 천연기념물 삵이 유력하겠네요. 삵이 생각보다 덩치도 크고···”

나는 야생곰의 말을 끊으며 곧장 부정했다.

“제가 본 건 진짜 사람 형체였어요 진짜라니까요!?”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왜 내 말을 안 믿는 건데?

야생곰이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

“그럼 우리 내기할까요?”

“내기요?”

야생곰이 날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중얼거렸다.

“개인 사비로 백만 원 빵 내기. 어때요? 자신 있어요? 난 지금이라도 당장 줄 수 있는데.”

ㅡ 저 미친놈 ㅉㅉ

ㅡ 지금 돈미새 앞에서 돈내기 신청한 거?

ㅡ 지가 지 무덤을 파고 아예 겨 들어가기까지 하네

ㅡ 연우 표정 바뀌는 거 소름

ㅡ 웃참 하는 거지 지금?

ㅡ 돈 벌 생각에 잇몸만개중임

ㅡ 내기 가즈아! 박살 내버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