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09화 (109/225)

역으로 되갚아주기. 1

“어··· 네. 네.”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선녀보살님을 따라 신당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드르륵. 쿵.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알록달록한 무구들과 장식들.

게다가 기다란 장칼을 들고 있는 저 동상.

보자마자 또 그 무거운 위압감에 몸이 멈칫거렸다.

오랜만에 보아도 기운이 엄청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정중하게 절을 한번 올렸다.

그러자 선녀보살님이 활짝 웃으며 내게 중얼거렸다.

“하이고오. 예의 바른 놈. 또 왔네··· 라고 하시네요?”

“저를 기억하시는 건가요?”

“그럼요. 안 보여서 그렇지. 신령님은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 안녕하세요. 신령형님. 아니. 신령님.”

순간, 선녀보살님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다시 얼굴이 빨개질 만큼 활짝 웃으신다.

“하하하. 형님 소리에 신령님이 깜짝 놀라시는데요?”

“죄송합니다···”

하루 온종일 엄마와 쥐포보다 많이 내뱉는 단어이다 보니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리 앉아보세요.”

“넵!”

내가 자리에 앉자 선녀보살님은 이번엔 부채를 펼치고 또다시 눈을 감으셨다.

흔들흔들거리는 부채를 보며 내가 잠시 마른침을 꿀꺽 삼켰을 때.

선녀보살님은 입을 열었다.

“상대방 쪽에서 비방술을 한 것 같아요.”

“비, 비방술이요? 그게 혹시 뭔가요···?”

“우리 쪽 말로는 살을 날린다고 하죠. 말 그대로 저주를 내렸다고 보면 됩니다. 이 비방술은 일반인이 아무리 악한 마음을 가지고 해도 효과가 없어요. 즉, 강력한 기운을 쓰기 위해서는 그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신이 있어야 합니다.”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신이 있어야 한다고?

“어··· 이해가 잘 가진 않지만 혹시 그 말은···”

선녀보살님이 내 표정을 읽은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영적인 기운을 가진 사람이 지금 연우 씨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 되겠죠.”

대체 누가?

재난지원금 형님이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 형님은 그저 일반인일 뿐이잖아.

아니야. 내가 직접 보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일이지?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아니. 가만히 방송 잘 하고 있는 나를 왜 노리는 건데? 무슨 이유로!

“자, 제가 드린 부적 있죠? 그걸 한번 꺼내보세요.”

“부적이요? 잠시 만요. 이게 참 난감 한 곳에 부적을 꿰매놔서···”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바지 안을.

아니. 등을 돌려 바지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속옷에 꿰매놓았던 부적을 모두 떼내었고 선녀보살님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선녀보살님은 잠시 당황한 듯, 나에게 물었다.

“몸이 항상 지니기 위해 속옷에 꿰매놓은 건 정말 좋은 생각인데··· 크흠. 혹시 연우 씨. 속옷 하나만 입고 다니시는 건··· 아니죠?”

나는 피가 안 통할 만큼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댔다.

“저, 절대 아니죠! 저를 뭘로 보시고! 저 굉장히 부지런해요. 매일 같이 샤워하고 속옷에 꿰매서 다녀요!”

선녀보살님이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 일단 여기 앞에 통에 넣어주세요.”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통이었는데.

열이 가해져도 괜찮은 스테인리스 재질이었다.

선녀보살님은 내가 통에 부적을 넣자마자 그 부적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어? 그거 제 몸을 지켜주는 부적 아닌가요···? 그게 없으면 저는···”

“부적의 기운이 한결같이 유지되는 건 아니에요. 음식도 유통기한이 있듯이 부적도 기운이 다 떨어지는 기한이 있습니다.”

“이 부적은 이번 계기로 인해 기운을 다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선녀보살님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다시 눈을 번쩍 뜨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이건 저번 거와는 다르게 조금 더 강한 기운이 섞인 부적을 써 드릴 거예요.”

슥. 슥. 스스슥.

거침없이 써나가는 선녀보살님.

나는 그저 진지한 표정을 하고 그 순간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뭐야?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번에는 좀 많죠? 연우 씨가 아직 사회생활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많은 도움 되시라고 여러 가지를 써드리는 거예요.”

“아··· 진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 선녀보살님. 근데 이게 혹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웃으며 선녀보살님이 말을 끊었다.

“무슨 뜻이냐고요?”

마지막 부적까지 정성스럽게 완성한 선녀보살님이 고개를 살며시 들어 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첫 번째 부적은 모든 일이 상서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는 만사대길부 ( 萬事大吉符 ). 두 번째. 돈을 당기는 강력한 힘을 지녀 일 번창에 매우 효과가 좋은 재수대통부 ( 財數大通符 ). 세 번째. 믿고 맡기는 이의 바라는 바를 모두 이루어 준다는 관음성취부 ( 觀音成就符 ). 네 번째. 사물과 상황을 판단하는 지식과 지혜를 갖추도록 천신의 위력으로 돕는 총명부 ( 聰明符 ). 다섯 번째. 자신감을 촉발하며 내면의 위대한 잠재성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하는 득자신부 ( 得自信符 ). 여섯 번째. 천신의 도움으로 심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집중되어 목표를 쉽게 달성하도록 돕는 학도희선부 ( 學道希仙符 ).”

그저 듣기만 해도 엄청난 의미가 담긴 부적들이었다.

그 외에도 강력한 영의 기운을 막는 부적들까지.

근데 이거 엄청 비싼 것들 아니야?

전국, 아니 세계를 돌아다닐 만큼 유명한 선녀보살님이 써주신건데···

“허··· 선녀보살님. 근데 이거 비싼 거 아닌가요?”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값어치로 따지자면 몇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할 수 있는 부적들이죠?”

나는 금방 손사래를 치며 얘기했다.

“우워어어어! 수, 수천만 원이요!? 저는 이런 거 살 돈이 없는데, 이거 혹시 대출 같은 건가요? 엄마가 대출은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순간, 선녀보살님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하하하하!”

그러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며 얘기했다.

“조상님들한테 고마워하세요. 생전에 자식분들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셨네요. 이건 애쓰신 조상분들을 위해 그냥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 말에 나는 선녀보살님의 두 손을 꼭 붙잡고 흔들었다.

“와아아아아! 조상분들? 음··· 누군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있으면 저 흉가 가도 아무 일 없는 거죠! 귀신이랑 싸울 수도 있는 건가요!”

“아니요. 기운을 담아 쓴 부적이라지만, 모든 상황에 100% 작용이란 없어요. 이건 극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언제나 조심하셔야 합니다.”

잠시나마 좋았던 기분이 조금 사드라들었지만, 그게 어디랴!

누구도 감히 받을 수 없는 수천만 원짜리 부적을 지금 내가 받았다.

“선녀보살님. 자꾸 물어봐서 죄송하지만, 그럼 혹시 제가 집을 사려고 하는 것에는 좀 도움이 되겠죠?”

“그럼요. 잠시만요.”

선녀보살님이 가만히 눈을 감고 한참을 있었다.

잠시 후. 몸을 부르르 떨더니 웃으며 내게 얘기했다.

“구촌동. 올해가 가기 전에 지금 사시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좋은 집을 구할 거라고 하시네요. 바다가 보이고 햇볕이 잘 드는 단독주택··· 그리고 예쁜 파란 지붕을 가진 집···이라고 하시는데?”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나는 두 손깍지를 끼고는 위아래로 흔들며 벌벌 떨어댔다.

“진짜 그렇게 되는 게 제 소원입니다. 도와주세요 신령님.”

“하하하.”

나는 그 뒤로 선녀보살님이 직접 집까지 데려다주시는 시간 동안 몇 가지 금기사항과 해야 할 일을 새겨들었다.

그렇게 모든 조언을 듣고 집과 조금 떨어진 가로등 앞에서 내린 시간이 무려 새벽 4시.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선녀보살님! 진짜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연우 씨 파이팅!”

벌써 새벽 4시가 넘는 시간이었지만.

저 멀리 선녀보살님이 사라진 그 모습을 보고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선녀보살님이 해주신 말을 곰곰이 떠올렸다.

[ 상대가 연우 씨에게 보낸 살을 우린 되돌려 줄 거예요. ]

“어떻게요?”

[ 그러니까··· ]

나는 선녀보살님의 말을 들으며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기싸움에서 밀린다면 이 부적들은 그저 의미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된다.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유야 어쨌든 내가 포기하거나 무너진다는 것은 나를 무시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옳았다고 박수를 쳐주는 꼴이 될 테니까.

다음 날 오후.

점심이 조금 지난 2시.

나는 대박 중개사를 다시 찾았다.

문에 달린 자그마한 종이 요란한 소리를 울리자 중개사 사장과 미리 온 손님들이 반사적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 어? 어제 그 학생이네.”

“안녕하세요. 사장님.”

중개사 사장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어떻게 잘 잤어요? 마침 전화하려던 참인데.”

“네. 뭐 그럭저럭이요.”

나는 곧장 그 집의 열쇠를 건넸다.

그리고 중개사 사장이 내 열쇠를 받으며 옆에 있던 손님을 보며 얘기했다.

“이 학생이 지금 그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온 거예요. 보세요. 싸다고 다들 의심하시는데 갔다 온 학생이 너무 좋다잖아요.”

좋다고 한 적은 없는데.

“사장님. 이거 방송 켜놔도 괜찮나요?”

중개사 사장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 그럼요. 얼마든지 해요 방송.”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본격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근데 사장님. 그 집, 귀신 나오던데 왜 미리 말 안 해주셨나요?”

“제가 무당이거든요. 그 집에서 자다가 온몸이 다 타서 살이 뚝뚝 떨어지는 남자를 봤어요. 그 집에서 화재로 죽은 남자라던데. 그리고 아실지 모르겠지만 목매달고 자살한 여자가 또 있었거든요.”

순간, 손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활짝 웃고 있던 중개사 사장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아니. 살짝 굳었다가 다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무슨 소리예요 하하. 그 집 며칠 전까지 사람이 살다가 나간 집인데··· 학생이 기가 허해서 헛것을 본 거 아닌가?”

역시나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뻔뻔함이 무기였다.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거기 동네 할머니분을 만났는데, 며칠이 아니라 5년 전부터 비워져 있던 집이라고 하던데요? 들어왔다 하면 사람이 죽어나가서 아주 유명한 집이라고요.”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크흠. 할망구가 노망이 들었나. 무슨 그런 소리를··· 손님 이 말 믿지 마세요. 거기가 남향에 리모델링까지 얼마나 돈을 많이 들인 집인데··· 귀신 따위가 있을 리가···”

“앞으로도 그 집을 들어갈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들어갔다 하면 죽을 테니까.”

나는 옆에 있던 손님에게 진지하게 얘기했다.

“정말이에요. 그 귀신 둘 말고도 잡귀가 무지하게 많아요. 넷? 다섯? 아주 깜짝 놀랐다니까요.”

옆에 있던 손님 눈치를 보던 중개사 사장이 버럭 소리쳤다.

“어린놈이 어디 어른 가지고 장난질을··· 나가! 이놈아! 어디 남의 장사질 다 망쳐 먹을라고.”

ㅡ 사장님 개새끼!

ㅡ 사기꾼 시벌놈아!

ㅡ 에라이! 가위나 눌려라!

연달아 터지는 후원창에 나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변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사람 죽어나가는 집 팔려고 거짓말 일삼는 중개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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