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싸고 좋더라. 9
나는 가방에 넣어놓고 깜빡하고 있던 인형을 바라봤다.
인형?
맞다. 아까 선녀보살님이 인형을 꼭 챙겨두라고 하셔서 가져왔지?
근데 이걸 왜 챙겨오라고 하신 걸까?
“어··· 음··· 네. 근데 무슨 일인지 알려주···
ㅡ 빨리요! 귀신한테 몸을 빼앗기기 전에
후원창을 보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몸을 빼앗긴다고?
끝난 거 아니었어?
때마침. 저 멀리 빈 택시 하나가 마을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50m 남짓한 거리였는데, 나는 급하게 그 택시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저기요! 저기요! 택시 아저씨! 여기 여기!”
손을 이리저리 흔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뛰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잡히는가 싶더니 갑자기 다시 택시가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30m쯤 멀어져서야 날 발견했는지 그 자리에 떡하니 멈춰 섰다.
“시벌! 다행이다.”
나는 다급하게 뒷좌석에 올라타 아저씨에게 얘기했다.
“아, 아저씨! 저기 신좌동 좀 가주세요 빨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저씨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한참 쳐다봤다.
그러고는 마지못해 다시 엑셀을 밟으며 얘기했다.
“뭐여. 귀신인 줄 알았네. 뭔 놈의 달리기가 택시보다 빠른 겨.”
“죄, 죄송합니다. 급해서 그만···”
ㅡ ㅅㅂ ㅋㅋ 존나 웃기넼ㅋㅋ
ㅡ 택시 아저씨가 못 본 게 아니고 보고도 도망간 거였구나?
ㅡ 기겁할만하지. 택시를 따라잡는 미친놈이 어딨겠어
ㅡ 잠깐 상상했는데 나도 놀라서 도망갔을 듯
ㅡ 그나저나 달리기 진짜 겁나 빠르네 워···
ㅡ 파파파박 땅에 흙 튀기는 소리 살벌했다.
나를 귀신 보듯 힐끗힐끗 쳐다보는 아저씨를 뒤로하고 채팅창에 집중했다.
ㅡ 강령술 진행한 지 얼마나 됐어요?
“어··· 12시 조금 전이었으니까 지금 한 1시간 정도 된 것 같아요.”
현재 시각 12시 44분.
현재 시청자 수 1093명.
ㅡ 거기 귀촌동 맞죠?
ㅡ 오십 분 안에 도착해야 해요. 시간이 아슬아슬한데··· 시간이 지체되면 영혼이 뒤바뀔 수...
뭐요? 영혼이 뭐요?
그리고 다급하게 택시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아, 아저씨! 거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50분은 더 걸리지. 뭔 일인데 그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나머지 나 역시도 횡설수설했다.
“귀, 귀신을 홀렸어요 제가!”
“잉? 그건 또 뭔 소리여.”
“부탁드립니다!
50분 말고 어떻게 안 될까요?!”
“이건 총알택시가 아니여. 그리고 뭔 일 인지는 모르것지만, 급할수록 천천히 해야 하는 겨.”
나는 지갑에서 현금 만 원짜리를 몇 장 꺼내어 들며 소리 질렀다.
“아저씨! 건방지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따, 따블 미션! 후원해드릴게요!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토록 얌전했던 아저씨의 표정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내가 지름 길을 알고 있제!"
동시에 택시의 엔진 소리가 터질 듯 동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저씨! 여기 후원금!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아이고고오오오. 그려! 고마워 학생.”
나는 시청자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방송을 끄고 내렸다.
역시 돈의 힘은 위대했다.
네비에 찍혀있던 50분이라는 시간을 무려 13분이나 단축시켰다.
덕분에 나는 여유 있게.
아니. 내려서 헐레벌떡 선녀보살님의 집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침 저 멀리 집 앞 커다란 나무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선녀보살님.
손에는 커다란 나뭇가지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선녀보살님! 저 왔습니···”
내가 다가가자마자 선녀보살님은 내가 들고 있는 존슨을 빼앗았다.
그리고 곧장 옆에 있던 쓰레기 더미에 말없이 툭 하니 던져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선녀보살님의 표정에 나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인형이 형체도 없이 다 타버렸을 때쯤.
“선녀보살님. 이제··· 끝난 건가요?”
선녀보살님이 나를 매섭게 홱 돌아보더니.
이번에는 가지고 있던 나뭇가지로 나를 매질하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에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펄쩍펄쩍 뛰면서 5분간을 맞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쫓아와! 어서 썩 몸에서 떨어져서 사라지지 못할까!”
“으아아아아악! 아파요! 아파요!”
체력이 좋아진 이후로는 선생님의 사랑의 매도 아무런 고통 없이 맞았던 나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 거지?
마치 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도 같고, 살 속 깊이 뼈가 아린 느낌도 든다.
혹시나 해서 선녀보살님이 때리는 나뭇가지를 살펴보지만, 전혀 아플만한 굵기도 아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맞았을까.
갑자기 굉장히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 뭐야?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그 증상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결국, 내 입에선 희멀건 액체가 뱉어져 나왔다.
“읍. 웁. 웨에에엑!”
탁! 탁! 탁!
재빨리 내 등을 두드려 주는 선녀보살님.
한차례 뱉고 나니 다시 온화한 미소로 돌아온 선녀보살님의 얼굴이 보였다.
“으으. 저 죽는 건가요 보살님? 이게 대체...”
“뭐긴요. 귀신 쫓아낸 거지요. 연우 씨.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연우 씨 몸이 귀신의 것이 됐을 수도 있었어요.”
"증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정말이었다.
특별하게 내 몸에 증상이 없었는데?
선녀보살님의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댄다.
그리고 내 소중한 부위를 나뭇가지로 살며시 가리켰다.
“그쪽에 부적을 숨겨두셨죠? 몸에 간직하길 정말 잘하셨어요. 아까 화장실에서도 그렇고, 문 앞에서 허공에 대고 소리 질렀을 때. 그때 불이 꺼진 것처럼 보였죠? 방송을 보는 우리 눈에는 온 방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즉 연우 씨가 귀신한테 홀린 거라는 뜻이죠. 중간중간 어지럼증 느끼신 거 없어요?”
아니. 그게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거라고?
생각해 보니 분명 이상한 누린내와 탄내.
그리고 어지러움을 동반으로 느끼며 그 귀신 현상들이 보였던 것 같은데···
선녀보살님이 살짝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내게 얘기했다.
“참 특이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부적이 있다 해도 보통 이 정도 되면 쓰러지거나 이미 귀신이 들려서 아예 딴 인격이 나와야 정상인데··· 이걸 둔하다고 해야 할지, 기가 세다고 해야 할지. 참 저로서도 의문스럽네요. 아니면 제 부적이 정말 대단했던 걸까요···”
“하하···?”
나는 눈만 껌뻑거리며 선녀보살님을 바라봤다.
물론 강령술에 대한 심각성에 대한 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한번 경험해 봤으니까.
하지만 이번 강령술은 도대체 뭐였던 거지?
내 몸에 진짜 귀신이 붙었었던 건가?
“연우 씨. 연우 씨가 한 이번 혼숨이라는 것은 전에 말했듯이 주술에 가까워요. 자신에게 자신을 죽이게 하는 주술이죠.”
“네!? 정말요?”
시벌.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선녀보살님이 말을 이어갔다.
“영이 모이기 쉬운 장소에서 진행해야 하기에 화장실이 적합했을 거예요. 인형 안에 솜은 내장, 실은 혈관의 의미를 갖습니다. 정말 다행인 건 미션을 준 사람이 잘 몰랐던 건지 연우 씨의 피까지는 요구 안 한 것 같더군요. 피를 넣었다면 아무리 제 부적을 갖고 있는 연우 씨라도 몸이 성치 못했을 거예요. 주술자의 피는 최고 위험성을 갖는 단계. 생명을 뜻하니까 인형, 아니 영가에게 아주 강력한 생명을 불어넣는 거죠. ”
그저 설명만 듣는데도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마른 침만 꼴깍꼴깍 넘기며 선녀보살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칼로 찌르는 거는요?”
선녀보살님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칼 역시도 최고 위험성을 갖는 준비물이었어요. 그 칼로 인형을 찌른다는 건 생명을 불어넣는 동시에 다시 빼앗는 게 되는 거죠. 그럼 찔린 영혼에겐 상처를 주는 것과 동시에 아픔, 원한이 남게되는 거예요.”
“후··· 후··· 시벌. 아니 죄송합니다. 근데 그 형님이 이 사실을 알고 그런 걸까요? 후원을 해주는 것 보니 그런 사람 같지는 않은데···”
선녀보살님이 고개를 다시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 주술의 특징은 2시간 안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2시간을 넘긴다거나 아니면 거기서 잠드는 일이 생긴다면 아주 완벽하게 금기사항을 어기게 되는 거죠. 어땠나요 그분은? 연우 씨를 이유 없이 계속 집으로 떠밀고 많은 후원금까지 주면서 그 집에 머물게 만들었지 않았나요?”
그러네. 환불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나를 압박했었지.
진짜 그걸 다 알고 그런 거였어?
이런 시벌. 도대체 왜?
진짜 야생곰 때문에 나를 저격 온 거야?
“선녀보살님. 혹시 저한테 더 해주실 말 없나요?”
선녀보살님은 잠시 뜸을 들였다.
심각하게 고민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그저 화경으로 본 것들이에요. 연우 씨, 제 말 잘 들으세요. 연우 씨 주변으로 미래에 흐릿하게 한 사람이 보여요. 안경을 쓰고···.”
“헐, 귀신인가요?”
“아니요. 사람이에요. 40대 후반?”
“여잔가요?”
“아니요 남자. 그 사람이 연우 씨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어요.”
사지?
그동안 나를 사지를 몰아넣던 건 시청자들뿐이 없는데?
아니 오늘 내 걱정해 줬잖아?
“연우 씨가 최근에 새로 안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새로 알았다라······.
어 시벌?
재난지원금?
아니야. 그렇다면 야생곰?
야생곰도 안경을 쓰지는 않았는데···
아 도대체 누구냐고!
“선녀보살님.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녀보살님은 나를 한참 빤히 쳐다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실 거죠?”
다른 방법이 없나.
지금 애청자들이 나를 사랑해 주는 이유도 다른 컨텐츠가 아니라 흉가 컨텐츠였다.
게다가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몰려드는 시청자 역시도 마찬가지.
흉가 덕분에 나를 찾아와 준 고마운 분들이다.
무섭고 힘들지만 그만한 보람이···
“네. 전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다. 70, 80, 될 때까지요.”
선녀보살님이 피식 웃었다.
“걷기도 힘드실 텐데 그 나이 되시면··· 크흠.”
나를 보는 건지, 내 뒤에 누군가를 보는 건지.
시선이 굉장히 바쁘시다.
한참을 보고 온화하게 웃으시던 선녀보살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조만간에 가실 곳이 병원 쪽인가요?”
순간,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아 오르며 몸이 움찔거렸다.
“으힉!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선녀보살님은 별다른 대답 없이 눈을 살며시 감았다.
가녀린 눈썹이 갑자기 움찔움찔거렸다.
정리가 끝난 듯 보이는 선녀보살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니 우리도 마땅한 준비를 해야겠네요. 자 연우 씨. 안으로 들어오세요. 제가 그 방법을 알려 드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