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싸고 좋더라. 6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입이 본드를 붙인 것처럼 굳어버렸다.
축축 처지는 남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방금 전, 고스트 박스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와 똑같았다.
나는 몸이 굳은 채로 눈동자만 살며시 옆으로 돌렸다.
내 눈이 점점 더 옆을 향할수록 낡은 옷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탄 냄새와 누린내도 코로 진하게 흘러들어왔다.
있다.
누군가가 있다.
“와아아악! 시바아아알!”
순간, 나는 기겁하며 그 창고를 뛰쳐나왔다.
“우와아악!”
부엌으로 나오자마자 다시 한번 내 걸음이 뚝하고 멎었다.
온 사방에 물이 흥건하다.
자세히 보니 고르지 못한 발자국 모양이 사방에 찍혀있다.
게다가 문 앞에는···
“시, 시, 시, 시발! 존슨··· 도대체 네가 왜 여기 있어.”
분명히 화장실 세면대에 담가놓았던 인형이 배가 터진 채 날 보고 있었다.
또다시 울려대기 시작한 고스트 박스.
[ 치지지익- 찾았다 치지지익- 여기 치지지익- 히히히 ]
소름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 느낌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경기를 일으키듯 발버둥 쳤다.
“워어어어억! 어떡해 시발! 형님! 형님들!”
ㅡ 집 밖으로 도망쳐라 빨리
순간, 울리는 후원 창 말에 따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우어어어어어어! 시발!”
그리고 한참을 뛰었다.
타다다다다닥.
ㅡ 야··· 저 발자국들 뭐야?
ㅡ 아니. 방금 카메라에 대고 속삭인 거 누구?
ㅡ 고스트 박스 남자 목소리랑 똑같았는데···
ㅡ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 누가 설명 좀
ㅡ 시발. 이거 강령술 진짜로 되는 거였어···?
ㅡ 보통 카메라 켜면 귀신이 모습을 잘 드러 낸다고 하던데이건···
ㅡ 시발. 소름이 너무 끼쳐서 팔이 터질 것 같아
ㅡ 근데 이거 이렇게 도망쳐도 되는 거야?
ㅡ 금기사항 아냐?
ㅡ 아니 저 큰손 형님은 왜 도망치라고 후원까지
가방도 버려둔 채 핸드폰과 손전등만 들고 100m를 멀어졌다.
저 멀리 내가 열어두고 온 집 대문을 바라보며 시청자들에게 소리쳤다.
“시발! 어떻게 저런 집에 귀신이!”
ㅡ ㅇㅋ 잘했다. 자 후원금.
순간, 울리는 후원창에 반사적으로 만세 삼창을 하며 소리질렀다.
“우워어어어어! 재난 형님! 소중한 후원금액 정말 감사합니다아아아아아! 사랑합니다아아!”
근데 잠깐만··· 이거 이대로 끝인 건가?
보통 강령술을 진행하면 마무리 단계에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 무언가 조치를 할 텐데.
그냥 이렇게 놔둔다면 뭐 잘못되는 거 아니야?
나는 감사 인사를 끝내자마자 카메라에 대고 물었다.
“형님. 근데 이거 강령술 끝난 건가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ㅡ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백만 원 줬잖아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에에!? 형님. 그래도 이거 강령술인데 뭐 조치하는 방법이라도 알려주세요. 이대로 놔두면 저 귀신 씌이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아니. 이 형님 뭐야?
후원하고 나니까 태도가 확 달라지네.
이런 위험한 강령술을 시켜놓고 나 몰라라?
나는 다급하게 카메라를 쳐다보며 남은 시청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형님들. 혹시 이 강령술 끝내는 방법 아시는 분?”
ㅡ 모르는데
ㅡ 야 근데 너 괜찮냐?
ㅡ 애초에 집 밖으로 나오면 안 되지 않나?
ㅡ 귀신 불러놓고 그냥 도망쳐도 됨?
ㅡ 너 표정이 안 좋다. 식은땀 왜 이렇게 흘리냐
ㅡ 그러게. 이러다 귀신 씌이는 거 아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어깨가 뻐근한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올라타고 있는 느낌이 든 달까.
아니. 몸에서 갑자기 누린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ㅡ 헐. 야 이거 링크 좀 들어가서 얼른 확인해라. 너 강령술 금기사항 다 어겼는데? http:// xxx···
나는 멍하니 채팅창을 바라봤다.
금기사항을 어겼다고?
난 그저 재난 형님이 시키는 데로 했을 뿐인데···
내 애청자가 올려주는 링크를 보조 폰을 이용해 들어가 확인하였다.
“헐··· 이게 무슨···”
강령술 혼숨 금기사항 및 지켜야 할 규칙.
1. 인형에게 사람의 이름을 붙이지 말 것.
2. 날붙이로 인형을 찌르지 말 것.
3. 인형을 찾은 후 입에 머금은 소금물을 인형에게 뱉고 내가 이겼다는 말을 세 번 외칠 것.
4. 도중에 물을 삼키거나 인형에게 들키지 않을 것.
5. 놀이를 완벽하게 끝내야 하며 도중에 끊기거나 관두거나 마음대로 집 밖에 나가지 말 것.
나는 그 규칙을 보자마자 두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내가 어겼던 규칙을 하나씩 세어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런 시벌! 규칙을 다 어겼잖아.”
그리고 곧장 카메라를 보며 억울하다는 듯이 따졌다.
“아니 재난 형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이런 위험한 강령술은 규칙을 잘 지켜야 하는데 이런 걸 말 안 해주시면 어떡해요 형님.”
ㅡ 어쩔? 그 정도 후원해 줬음 됐지. 아님 다시 뱉어낼래?
이런 개자식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 형님. 처음부터 이 모든 걸 계획하고 나한테 시킨 거지? 그런 거지?
누가 야생곰 방 큰손 형님 아니랄까 봐.
아니 잠깐. 이 형님 이거 일부러 나 저격 온 거 아니야?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쩌지.
이대로 도망갈까?
아차 근데 가방을 안방에 두고 왔잖아.
게다가 지금 이 강령술을 끝내기 위해서는 인형을 불태워야 한다고 쓰여있다.
인형을 찔렀던 칼도 처리해야 한다.
마음을 다 잡자.
아직까진 내 몸에 이상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크게 문제는 안 생긴 듯하다.
“아니요 형님. 시벌! 너무 감사해서 그렇죠! 언제 이런 몰래카메라를 준비하셔가지고··· 형님들에게 큰 꿀잼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흥분돼서 미치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
ㅡ 이렇게 하면 누가 귀신 씌인다고 하던데··· 근데 너 안 들어가냐?
순간, 후원 창 내용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귀신 씌인다고 했다고?
순전히 본인의 의지로 미션을 나에게 준게 아니라는 소리처럼 들리네.
그나저나 누가 그런 소리를 했을까?
일단은.
“당연히 들어가야죠! 그래서 일부러 안방에 제 가방도 두고 왔잖습니까!”
ㅡ 일부러 두고 온 거였냐
ㅡ 걍 무서워서 도망치느라고 못 챙긴 건 아니지?
ㅡ 입만 열면 구라가 술술 나와 아주
ㅡ 근데 다시 들어갈 생각하니까 무섭긴 한가보다
ㅡ 저놈 지금 몸 떨고 있는 거 맞지? 추워서 그런 거 아니지?
살 떨리는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긴장된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 듯 떨려댄다.
용기. 용기가 필요하다.
저 집에 들어가고도 내 정신을 똑바로 유지할 수 있는 용기.
하나님! 좀 도와주십쇼!
부처님! 좀 도와주십쇼!
ㅡ ㅇㅇ 빨리 좀 들어가. 너 망가지는 거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많다
“하하? 정말요? 그게 누굴까요?”
왠지 모르게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재난 형님을 보며 나는 침착하게 반응했다.
ㅡ 엄청 많아. 딴 방송에서도 그렇고. 그렇죠 님들?
ㅡ 난 아닌데요
ㅡ 망가지는 거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호들갑 떠는 거 보고 싶은 건데
ㅡ 망가진다는 건 뭐 방송이 망가지는 걸 원하시는 건가 저 형님?
ㅡ 누가 야생곰 방 큰손 형님 아니랄까 봐. 일부러 이 방송 와서 꼬장 부리는 거임?
ㅡ 일부러 후원하고? 강령술 미션 주고 일부러 금기사항 다 어기게 하고?
나를 생각해 주는 시청자들과 의견이 대립되자 채팅창 분위기가 이상해져간다.
나는 재빨리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 무슨 소리 하십니까 형님들. 그러지 마세요. 재난 형님 그런 분 아닙니다. 정말 능력 있고 착하신 분이에요. 그렇죠 형님.”
ㅡ ㅇㅇ 당연하지 푸하하하
에라이 관종 또라이놈아.
나는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님. 뭐 기가 막힌 미션 없나요? 더 더 더 주십쇼 미션. 어떤 것이든 다 하겠습니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션이나 더 받아서 돈이나 키우자.
ㅡ 뭐? 미션을 또 달라고? 후원 귀신 들렸나 이거
“맞습니다 형님! 이미 지금 제 몸에 귀신이 붙어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형님이니까 그런 미션도 주시고 후원도 해주시고 하는 겁니다요! 그렇죠? 우리 애청자 형님들! 그런 김에 재난 형님 업 한번 해주세요! 재난 형님 업!”
ㅡ 업! 업! 업! 업!
ㅡ 재난 업! 재난 업!
ㅡ 저분 회장님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ㅡ 워어어!! 재난 회장님 개 멋있다! 졸라 능력자!
ㅡ 재난 새끼 업!
ㅡ 시벌 업! 업! 업! 업! 업! 업!
ㅡ ㅇㅋ 너 귀신 들린 저 집에서 아침 8시까지 버티면 이백만 원
커헉 그건 좀···
애초에 잠방을 하려고 왔지만, 귀신이 있다는 걸 확인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시벌. 내가 저 섬뜩한 집 안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
한 시간? 두 시간? 아니. 삼십 분이나 버틸까?
그저 간단한 미션만 후다닥 끝내고 빠져나올 셈이었는데.
“흠··· 잠시 만요 형님.”
시바 어쩌지···
저 형님. 확실히 나를 귀신 씌이게 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집에 아예 나를 가두겠다는 거잖아.
게다가 저 귀신. EMF 4단계를 요동쳤던 귀신 중에 하나다.
사람한테 영향을 충분히 끼칠 수 있는 영가라는 것이다.
내가 저 집에서 멀쩡히 버티고 살아 나올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
ㅡ 후달리냐? 야생곰이었으면 이미 벌써 들어갔을거다. 넌 걔보다 확실히 깡이 좀 딸리네
하쭈?
이젠 노골적으로 야생곰이랑 비교까지 하네?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도 동요하지 말자. 침착해라.
나는 카메라를 보고 웃으며 얘기했다.
“아 형님. 제가 어떻게 베테랑 유트버 야생곰님을 따라가겠습니까. 아직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죠.”
“그래서 말인데요 형님···”
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미션··· 저는 미션금 받으면 용기가 샘솟거든요. 미리 선입금해 주시면 제가 지금이라도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ㅡ 미친놈?
ㅡ 진짜 들어가서 잘 셈이냐?
ㅡ 아니 새벽까지 귀신이랑 싸울 셈?
ㅡ 귀신 들린 집에서?
ㅡ 강령술 너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
ㅡ 이 새끼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ㅡ ㅅㅂ 다 생각이 있겠지 뭐
ㅡ 오늘 귀신이랑 다이다이 깨나?
[ 재난지원금받고삽니다 님이 2,0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그래. 한번 해봐. 만약 아침 8시 전에 집 밖으로 나오면 여태 준 후원 전부 환불이다
오우 시벌.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지만, 반사적으로 일단 크게 떠들어댔다.
“그럼요. 물론이죠!”
시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강령술도 해결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저 오싹한 기운이 맴도는 집에서 아침까지 정말 눈뜨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해보자. 아니 무조건 하자.
이 기회에 저 집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클린한 우리 집으로 만드는 거야.
하지만, 막상 다짐했음에도 자신감이 금방 뚝뚝 떨어졌다.
그러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귀신이라도 들려서 우리 가족을 해치기라도 하면?
걱정거리가 한 둘이 아닌 상황에 한숨만 절로 나온다.
ㅡ 빨리 들어가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던 그 순간.
문득, 방송 시청자 목록이 내 눈에 띄었다.
아니. 정확히는 방금 입장한 시청자 한 명이.
곧이어 내 몸에는 이유 있는 자신감이 대폭 상승하기 시작했다.
마치 든든한 흑기사라도 만난 듯 금방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그 시청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선녀보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