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싸고 좋더라. 4
“아니 형님들. 얘기 좀. 형님들? 방송이 꺼졌나 혹시.”
ㅡ 야. 시발 네 머리에 손가락! 손가락! 손가락!
ㅡ 여자 머리카락도 있다. 여자 머리카락!
그제야 귀에 울려 퍼지는 후원 창 소리에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머리를 훑었다.
하지만 만져지는 건 없었다.
“에이 형님들! 장난치지 마세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나저나 머리 빠진 줄 알았네! 아직 성인도 안 됐는데! 시벌! 대머리 된 줄.”
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계속해서 후원창을 쏴댔다.
ㅡ 어? 손가락 사라졌다. 근데 머리카락은 아직 있어! 야 저걸 못 느낀다고?
ㅡ 야 시발! 빨리 눈 떠보라고!
보채는 시청자들 때문에 나는 다급하게 머리에 묻은 샴푸를 씻어냈다.
나는 거울에 비치는 머리카락을 보고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갑자기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씩 웃어댔다.
긴 머리카락은커녕 내 머리 멀쩡히 그대로였으니까.
ㅡ 뭐야? 실성한 건가?
ㅡ 접신된 거 아냐?
ㅡ 야 정신 차려! 왜 그래 그러지 마!
ㅡ 뭐야 머리카락. 그대로네?
난 거울을 보고.
아니. 카메라로 얼굴을 돌려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여주며 얘기했다.
“냐햐햐햐! 형님들 제가 그런 거에 속을 줄 알았습니까! 아주 우리 형님들 단합만큼은 아주 조기축구회 같으십니다요!”
ㅡ 이런 시발놈이 진짜라니까···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쓸어내렸다.
멀쩡했다. 내 머리 그대로.
왠지 뭉텅뭉텅 빠진 것 같은 느낌도 그냥 착각 같았다.
“형님들. 샴푸가 눈에 들어가서 눈을 감고 머리를 감았더니 진짜 그렇게 느껴져서 깜짝 놀랐네요. 우후후.”
ㅡ 쟤 뭐라는 거야?
ㅡ 우리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ㅡ 얘는 왜 항상 반대로 가?
ㅡ ㅅㅂ 우리는 널 방송 내내 지켜보고 있다고!
ㅡ 그거 진짜 딱 봐도 여자 머리였다. 갑자기 길어졌다고!
ㅡ 아니 그건 그렇다 쳐. 손가락은? 손가락도 주작이라고?
ㅡ 시발. 그래 손가락도 보였다고!
ㅡ 야. 네 머리 뒤에 손가락도 보였다니까. 그것도 주작이라고?
나는 준비해온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다 털어냈다.
그리고 카메라를 껌뻑껌뻑 쳐다보며 얘기했다.
“아따 시원하네. 손가락요? 웬 손가락? 에이 형님들. 손가락이었으면 분명 저한테 느낌이 났겠죠!”
검지를 카메라에 대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한쪽 눈썹을 꿈틀꿈틀 대기까지 하며 비아냥거렸다.
“흉가 방송 짬밥이 지금 몇 개월인데, 그런 거짓말 절대 안 믿습니다 형님들. 후훗.”
ㅡ 아니 진짜라니까 미친놈아!
내 두 눈이 부릅떠지며 입에서 광기 어린 괴성이 터져 나왔다.
“시버어얼! 형님 진짜예요!?”
ㅡ 누가 돈미새 아니랄까 봐 ㅅㅂ 후원 주니까 믿냐
ㅡ 진짜 너답다
ㅡ 너 죽기 전에 누구한테 방송이나 부탁해놔
ㅡ 조의금 말고 후원금 쏴줄 테니까
ㅡ ㅋㅋ 레알 장례식장에서도 후원받을 놈임
ㅡ 아니. 그나저나 EMF 측정기 켜봐 빨리.
나는 다급하게 카메라를 조정했다.
물론 챙겨온 속옷과 옷을 미리 입은 뒤였다.
곧장 EMF 측정기를 꺼냈고 전원을 켰다.
“어? 시, 시벌··· 이거 또 왜 이래?”
나는 EMF 측정기를 연달아 툭툭 건드렸다.
말도 안 되는 반응이 계속 떠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4단계.
그 와중에도 한 번씩 4단계 반을 왔다 갔다 깜빡이고 있다.
“이거 말이 안 되는데··· 이런 집에서 4단계라니···”
인정할 수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을 했어도 부정하고 싶었다.
이 집. 꼭 내가 살고 싶은 집이라고···
귀신 따위는 없어야 한다고!
나 설마 진짜 오늘 귀신이랑 싸워야 되는 거 아니지?
두려움이 잔뜩 앞선다.
“형님들. 아무래도 EMF 측정기가 잘못된 것 같아요. 이거 스읍··· 거금 주고 산 건데 벌써 고장이···”
ㅡ 귀신 들린 집이라니까
ㅡ 아니 왜 이렇게 오늘 부정을 해?
ㅡ 평소에는 우리가 부정해도 귀신 있다고 떠드는 놈이
ㅡ 이 집이 마음에 드니까 그러는 거지
ㅡ 님 같으면 님이 살집에 귀신 있으면 좋겠음?
ㅡ 개 좋은데
ㅡ 미친놈임?
[ 벌써벗은임금님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아니 진짜 귀신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도대체 뭐가 맞는 말이야?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대고 얘기했다.
“있···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 역시 찜찜한 부분이 마음 한구석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 재난지원금받고삽니다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귀신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까?
순간, 후원창에 울리는 말에 내 눈이 번뜩였다.
“정말요? 그게 뭔데요 형님?”
ㅡ 주위에 있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강령술을 하는 거야
강령술?
강령술이라면 설마 그···
순간, 예전 폐 병원에서의 둘리와의 기억이 떠오르며 온몸에 소름이 스쳤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카메라를 향해 중얼거렸다.
“으으으으. 시벌. 설마 형님. 그 분신사바 같은 거 인가요?”
ㅡ 해봤냐?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그때 염라대왕이랑 하이파이브 하러 갈 뻔했어요.”
장난스럽게 말은 했지만.
가위에 눌려서 온몸을 못 움직일 때, 검붉은 핏물을 뚝뚝 흘리는 남자가 다리를 끌고 내게 다가오던 그 모습은···
으아악!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그때, 누군가가 그 귀신에게 호통을 쳐주지 않았다면 난 분명히···
근데 이제야 생각이 드는 거지만.
그건 누구였을까?
선녀보살님이었을까?
나는 하던 생각을 접어두고 카메라에 대고 말을 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죄송하지만 형님. 그 강령술은 제가 해봤고, 너무 위험한 걸 알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 안 할 겁니다.”
ㅡ 아! 아! 왜···
ㅡ 우린 보고 싶다고
ㅡ 네가 공포에 벌벌 떠는 모습을
ㅡ 이거 미친놈들인가? 너네 변태냐?
ㅡ ㄴㄴ 싸이코패스지
ㅡ ㅅㅂ 넘들 너네는 왜 정상인인척하냐?
ㅡ 너네는 안 보고 싶어? 솔직히 말해봐
ㅡ 존나 개 보고 싶어
ㅡ 이거는 다른 거야. 분신사바 같은 거 아니다
순간, 솔깃했다.
아니. 내가 이걸 왜 솔깃한 거지?
그래봐야 어차피 강령술인 거잖아.
위험하다. 그런 강령술들에 대해 솔직히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너무 위험해.
“형님. 그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강령술, 자칫했다가는 제 몸에 귀신이 실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귀신이 실리게 되면 제가 아니라 귀신이 제 몸을 빌려 살아가는···”
ㅡ 그냥 하라고는 안 하지. 들어보니 너 후원이면 다 한다며? 내가 시키는 강령술 하면 백만 원.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백만 원이라는 소리에 눈이 부릅떠지며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향해 절을 올렸다.
“하이고오오오오. 재난 형님! 그까짓 거 빈난한 제 몸뚱어리 귀신한테 기꺼이 대여 해주겠습니다요오오오!”
ㅡ ㅡ..ㅡ
ㅡ 기어코 그 백만 원에 강령술을 또 하는구나
ㅡ 그런데 그때 그거랑은 다른 거라며. 뭐지?
ㅡ 나도 강령술은 하는 거 보기만 했지. 잘 모름
ㅡ 아는 사람?
ㅡ 나도 잘
ㅡ 나도
나는 활짝 잇몸 만개한 얼굴로 두 손을 마주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도대체 뭡니까 그 강령술이란 거! 얼른 하고 싶습니다yo!"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돈이나 잔뜩 벌자.
막상 이 집에 귀신이 있다 해도 잡귀 아니겠어?
흉가나 폐가처럼 집이 낡아서 주변 환경 때문에 위험한 일이 생길 일도 없을 것 같고.
정신만 바짝 차리고 있음 문제없겠지.
ㅡ 혼숨이라는 건데 말야
“혼숨이요?”
그건 또 뭐지?
난 처음 들어보는 건데?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그게 뭔가요 형님? 설명 좀.”
ㅡ 혼자서 숨바꼭질하는 거다. 귀신이 술래가 되어서 널 찾는 거야.
어?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다.
“형님. 제가 잘 모르니 자세한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ㅡ 일단 인형이 있어야 한다. 그 인형의 배를 갈라서 너의 머리카락을 집어넣고 꿰매는 거야. 그리고 물에 담가. 담근 다음에는 칼로 그 배를···
설명을 듣고 있는데 뭔가 과정 자체도 끔찍하다.
1. 인형의 배를 갈라 쌀을 넣을 것.
2. 쌀을 넣은 후, 배를 꿰맬 것.
3. 배를 꿰맨 인형을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채워 담글 것.
4. 인형에게 이름을 정해주고 12시가 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릴 것.
5. 12시가 되면 인형을 다시 찾아가 인형의 배를 뾰족한 칼로 찌를 것.
6. 그렇게 칼로 찌른 인형에게 술래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주입할 것.
7. 준비를 마친 주인공은 소금물을 입에 물고 들키지 않을 곳에 숨을 것.
“오우 형님. 준비 과정만 해도 뭔가 굉장히 섬뜩한데요? 이거 근데 강령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ㅡ 그냥 귀신이랑 술래잡기 하는 거야. 연우 정도면 이런 건 뭐 껌이잖아?
시벌··· 네가 해봐라.
넌 지금 의자에 팬티만 입은 채로 앉아있잖아.
아니. 그나저나 큰손들은 다 하나같이 변태들인가?
죄다 이런 것만 시키냐.
“당연하죠 형님. 제가 귀신보다 빠릅니다. 아 그나저나 형님. 준비물이 없는데 어떡하죠?”
ㅡ 네가 구해와야지. 구해 오면 오십만 원 줄게.
헉. 이 형님 스케일 도대체 뭐야?
구라 아니야 이거?
뭐 하나 할 때마다 후원금을 이렇게 팍팍 주는 거야?
아니. 야생곰 방 큰손 형님이라는 거 보니 인증은 됐다는 건데.
나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형님. 이 밤에 어디서 인형이랑 바늘, 실을 구해와요. 거기다 칼까지.”
ㅡ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하지만 나는 곧장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햅쌀, 인형, 바늘, 실, 그리고 칼까지.
“마침! 저한테 있지요오오오! 미션 성공이죠 형님?”
ㅡ 아니 이 미친놈 도대체 정체가 뭐야?
ㅡ 햅쌀은 그렇다 치고 인형이랑 나머지 것들은 도대체 왜 가지고 있는 건데?
ㅡ 인형은 딱 봐도 쥐포 건데 바늘 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ㅡ 아니. 가방에 칼을 가지고 다닌다고? 무서운 새끼네 이거
ㅡ 연우는 그럴만함
ㅡ 범죄자 다이다이 깨고 그러잖아요
ㅡ 시발. 너 설마 미래예지능력이라도 있는 거냐?
ㅡ 난 하도 봐서 놀랍지도 않다 이제
ㅡ 너 혹시 보따리 장사같은 거 하냐?
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얘기했다.
“이건 쥐포 인형인데 마침 쥐포 인형이 찢어져서 제가 꿰매려고 바늘과 실을 샀거든요. 칼은 배고플 때 과일 깎아 먹으려고···”
정말 뜻하지 않게 준비해왔던 준비물들이 딱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그렇게 시청자들에게 해명을 하고 모든 준비물들을 꺼내놓았다.
인형의 배를 갈랐고 거기에 햅쌀을 넣고.
배를 꿰매 세면대에 물을 채워 담가놓았다.
이제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나미? 로빈? 음··· 형님들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데 이름 추천 좀.”
ㅡ 숙희
ㅡ 정숙
ㅡ 미영
ㅡ 경희
나는 시청자들 의견을 보다가 인형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래. 넌 이제부터 존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