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속의 폐 기도원. 4
방 안을 둘러보자마자 나는 경악했다.
이게 죄다 무슨 자국이야?
“시··· 시벌 형님들···”
정면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큰 십자가.
아니. 그것보다 내 시야를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이유 모를 손톱자국이 방 전체에 잔뜩 새겨져 있다.
대체 뭐지?
어찌나 필사적으로 긁어댔는지 손톱자국에는 피처럼 보이는 자국도 난자했다.
ㅡ 워··· 손톱자국 개 소름 돋는다
ㅡ 아니 근데 아까 그럼 덜컥 소리는 뭐지?
ㅡ 시벌 사람이 없잖아. 그럼 귀신 소리였다는 거?
ㅡ 그나저나 여긴 무슨 감방 독방 수준이네
ㅡ 이런 곳에 사람이 갇혀있었으면 치료가 아니라 더 미치지 않겠냐
ㅡ 저기 밧줄도 있네. 묶어 놓는 용도로 쓴 듯
ㅡ 그 와중에 임아린 눈 감고 있는 거 봐. 개 귀엽네
ㅡ 얼마나 세게 힘줬으면 코까지 찡그려 ㅋㅋ
ㅡ 햄스터 같다. 키우고 싶어
나 역시 임아린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아직도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아 진짜 귀엽···
아니지. 정신 차려라 연우야. 난 폐 기도원에 와 있다.
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사장님. 저 눈 떠도 될까요?”
나는 입에 남아 있던 미소를 재빨리 지우고 얘기했다.
“네. 마음 단단히 먹고 놀라지 말아요.”
임아린이 살며시 눈을 떴다.
동시에 온 사방에 있는 손톱자국을 보고 놀래 소리쳤다.
“꺄아악! 시벌 사장님! 누가 손톱으로 긁어 놨어요! 짐승인가!”
동시에 임아린을 빤히 쳐다봤다.
시벌···? 임아린이 욕을?
임아린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방방 뛰었다.
“아아악! 욕 죄송합니다. 시청자분들! 저 욕 안 하는데! 진짜 안 하는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ㅡ 저 욕 페티시 있어요
ㅡ 계속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ㅡ 아. 욕도 사랑스럽다 미치겠다
ㅡ 제 주머니 속으로 들어와 주세요
ㅡ 미친놈들 정신 차려라. 연우 여자 아니냐
ㅡ ㅅㅂ 사랑은 언제나 움직이는 거야. 유명한 대사도 모르냐
ㅡ 옘병. 그럼 나도. 아린아 사랑해!
나는 시선을 돌려 방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구석에는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 쓰인 것 같은 밧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밥그릇으로 보이는 그릇, 아주 얇은 담요 하나···
어 잠깐만.
저거 밥그릇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조심스럽게 그 그릇으로 다가가 자세히 비추어보았다.
“우악! 냄새. 시벌!”
“왜, 왜요 사장님?”
“밥그릇에서 웬 꾸리꾸리 한 냄새가 나지?”
“그 여기 있던 나쁜 사람들이 상한 걸 줘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 그런가?”
밥그릇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쉰내가 퍼져 흘렀다.
물론 시간이 흘렀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기사의 쓰여있던 내용들을 대충 가늠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것만 봐도 여기 있던 사람은 감옥에 갇힌 것처럼 엄청 괴로웠을 것 같아요··· 아마도 TV에 나왔던 것 이외에도 정말 끔찍한 일들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일이 있었으려나···”
ㅡ 그게 오늘 네가 할 일이다.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형사 꿈나무가 밝혀내야지
“당연하죠 형님! 그래서 제가 필살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가방 속에서 나는 주섬주섬 고스트 박스를 꺼내며 임아린에게 물었다.
“아린 씨. 혹시 지금 EMF 측정기 몇 단계예요?”
그때, 임아린이 세상 징그러운 것을 들고 있기라도 하듯이 EMF 측정기를 나에게 쭉 내밀었다.
“으아악! 3단계 반 떴어요!”
나는 이를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방송으로 보셨죠? 이제 어떤 소리가 들려도 놀라지 마세요.”
“네! 사장님.”
아린이가 주먹을 꽉 쥐고 흔드는 모습을 보고 난 고스트 박스를 켰다.
“안녕하세요. 여기 계시는 영가 분?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폐 기도원 안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듯한 소리만 터져 흘렀다.
[ 치지익- 치지지지익- 치지지익- ]
어디론가 사라진 걸까.
하지만 나는 임아린이 들고 있는 EMF 측정기를 보며 다시 물었다.
“여기 계신 거 다 압니다. 괜찮습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거라면 기도라도 해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말 좀 해주세요.”
옆에 있던 임아린도 사방을 살펴보며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요! 저희가 억울한 한을 풀어드릴게요!”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반응이 없다.
현재 시청자 수. 1093명.
놀라운 시청자 수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무반응에 점점 허탈함과 지루함이 모여드는 듯 사람들은 불만이 잔뜩 쌓인 채팅만 올려댔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꺄아아악!”
임아린이 소리를 질러댔다.
나도 덩달아 놀라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워어어어어!왜! 왜! 왜!”
임아린이 한 손으로 내 옷깃을 잡고 벽지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가리켰다.
“휴··· 깜짝이야. 아··· 아린 씨 겨우 바퀴벌레··· 와아아악! 시발 왜캐 커!”
ㅡ 너네 콩트 찍냐?
ㅡ 고스트 박스 대답 없으니까 왠지 콩트로 때우는 느낌인데
ㅡ 다른 방 큰손 형님 오셨는데 이러면 안 되지
ㅡ 근데 진짜 왜 이렇게 조용하지?
ㅡ 이런 적이 없었는데 희한하네
ㅡ 소문 듣고 왔는데 영 아니네.
큰손 형님이 아무런 진전이 없는 방송 내용에 살짝 지루함을 느낀 듯 싶었다.
후원창이 울리자 나와 임아린이 화들짝 놀라 카메라를 보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형님! 원래 안 그러는데 오늘 왜 그러지?”
“아니에요 형님. 아니 재난님.”
그나저나 진짜 이상하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분명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에 있다.
옆에서 임아린이 조심스럽게 EMF 측정기를 비추어보지만 3단계 반.
역시나 그대로다.
내가 심령현상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니, 엄마 나 미쳐 가나 봐.
“하··· 이상하네요 형님들. 분명 3단계에서 3단계 반이 계속 왔다 갔다 하거든요. 천장 위로 대면 3단계 반. 보통 3단계까지는 계속 뜨는데···”
이 바닥이 천당과 지옥을 한순간에 왔다 갔다 하는 곳이다. 시청자들은 재미가 없거나 흥미가 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바로 떠나 버린다.
ㅡ 큰손 형님 뒤로 가기 누르는 소리가 들리네.
ㅡ 이러다 큰손 형님 나가는 거 아니냐?
ㅡ 뭐라도 해 봐!
ㅡ 됐고. 아린이 좀 비춰줘
ㅡ 아린이랑 결혼하려면 후원 얼마?
“형님들 다른 곳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나는 고스트 박스를 켠 채로 복도로 나왔다.
쏘아대는 시청자들 때문에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1층 방을 나와 남은 방들을 여기저기 다 들어가 이 물건 저 물건 할 것 없이 다 손을 댔다.
기억이라도 읽어서 이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할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했다.
매일같이 나와서 화들짝 놀래킬때는 언제고 왜 갑자기 조용해졌냐고!
뼈가 부러진 귀신, 피를 흘리는 귀신.
눈에 보이는 귀신이 나타나질 않아 비교적 안심하고는 있지만.
다른 의미로 날 두렵게 만든다.
ㅡ 흠. 처음에 쐈던 내 지원금이 좀 아깝게 느껴지는데
“꺄아아아악! 사장님! 저기! 저기!”
“워어어어! 뭐예요! 어디!”
하지만, 임아린이 가리킨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뭐야. 뭘 본 거지?
힐끗 쳐다본 임아린의 손에 들린 EMF 측정기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괜찮으세요? 잘 못 본 것 같은데 괜찮아요.”
나는 임아린을 안심시키기 위해 엄지를 척 들어 치켜세웠다.
“상남자가 앞에 있잖아요.”
장화신은 고양이 얼굴을 하고 있는 임아린이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네, 네!”
말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몇 걸음 더 가다 말고 계속해서 임아린이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악! 사장님 저기 뭐가 지나간 것 같아요!”
“꺄아악! 의자가 움직인 것 같아요!”
“꺄아아악! 누가 제 몸을 건드린 것 같아요!”
비명소리를 내는 임아린의 행동을 조심히 살폈다.
무서워서 그러는 것 같긴 해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대고 자꾸만 소리를 질러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이리저리 내 방송화면을 살피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설마······ 지금 날 위해서 방송 살리려고 그러는 건가?
아 뭐야··· 남편 기도 잘 살려 줄 것 같은···
ㅡ 임아린이 방송 다 하네
ㅡ 얼굴도 예쁘게 생긴 게 마음씨도 예쁘네
ㅡ 방송 재미없다고 뭐라 하니까 혼자 리액션 채워주는 거야?
ㅡ 진짜 대박이다 쟤는
ㅡ 그래도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거다
ㅡ 오늘 방송 역대급 재미없네
내 눈에 EMF 측정기가 특정 위치에서 요동치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만요 아린 씨.”
“꺄아아악! 응···? 네?”
나는 임아린이 EMF 측정기를 건네받아, 천장의 위치에다 들어 올렸다.
“워어어어! 형님들. 역시. 아까 저 방에서부터 고스트 박스와 EMF 측정기가 어설프게 반응했었는지 알아챘습니다.”
ㅡ ???
ㅡ 뭔데
ㅡ 괜히 구라 치는 거면 죽는다
“보십쇼 형님들. 지금 EMF 측정기 단계를.”
EMF 측정기는 4단계를 요동치고 있었다.
아니. 그마저도 지금 4단계 반이 넘어가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벌. 그래. 1층이 아니었어. 천장에서 반응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건 무조건 2층이다.
비밀스러운 장소 및 사건은 모두 2층에서 주로 이루어진 거야.
[ 데들리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오순도순 손잡고 올라가
나는 두 눈을 껌뻑거리며 채팅창을 쳐다봤다.
ㅡ 데들리 미친 새끼야! 범죄 아니냐?
ㅡ 범죄? 둘 다 미성년잔데?
ㅡ 시발 내 마음이 용서 안 할 텐데?
나는 채팅창에서 시선을 빠르게 떼며 임아린을 쳐다봤다.
“그··· 아린 씨 미션이··· 그게···”
“아아··· 미션···”
나는 먼지라도 묻어 있을까 오른손을 바지에 슥슥 문질렀다.
“안 하셔도 되는데··· 미션이 그게···.”
내 입술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덥석.
임아린이 내 손을 먼저 잡았다.
얼굴을 살짝 내린 그녀의 머리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목소리는 씩씩했다.
“미션이잖아요!”
“아 네! 가시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데들리 이 고마운 새끼··· 아니 고마운 은인!
나는 보디가드처럼 임아린을 경호하듯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점점 더 무섭다.
임아린이 쿵쾅대는 소리를 들을까 봐.
나대지 마라 심장아.
나는 컴컴한 복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보기엔 2층은 뭔가 더 나올 것 같거든요. 뭔가 보인다 싶으면 제 뒤로 바로 숨으세요!”
또 다르게 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마른침이 절로 넘어가며 올라가기도 전에 솜털이 곤두섰다.
그래 이 반응. 몸이 기억하고 있다.
분명히 MAX다.
뚜벅. 뚜벅. 뚜벅.
[ 치지지익- 오지마 치지지익- 나가 치지지익- 죽인다- ]
켜진 고스트 박스에서 갑자기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머리카락까지 쭈뼛쭈뼜서는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그곳으로 다가갔다.
2층 복도 끝. 예배당이라고 쓰여있는 방이었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나는 임아린과 눈짓을 주고받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돌렸다.
“어? 시벌? 뭐야 이거···”
문 손잡이를 잡자마자 내 의식이 흐려졌다.
곧 흑백으로 물들어가더니 내 앞에서는 여럿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
“아멘.”
온 사방에 촛불이 켜져 있다.
그 안에선 무언가의 의식을 치르는지.
새하얀 옷을 입은 남성과 여성들이 바닥에 꿇어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게 보였다.
굉장히 엄숙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숨소리 하나조차 세어 들리지 않았다.
그 들의 나이는 대중이 없었는데.
10대 소년 소녀부터 시작해 40대.
아니. 50대까지 다양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앞에 잔뜩 쌓여있는 하얀 더미들을 향해 정성스럽게 기도를···
어 저게 도대체 뭐지?
이상했다.
쌓여있는 더미들이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 더미들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등에 얼음 물을 끼얹은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돌담처럼 쌓여있는 그 더미들은 인형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의 시체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무언가를 밟았다.
바스락.
순간, 그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 기도를 올리고 있던 사람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동시에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