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2
“집? 집에 가야지.”
못되다 못해 사악하기까지 해 보였던 작은 삼촌의 얼굴이 금세 풀어졌다.
두 입가를 귀까지 활짝 올려서는 자신의 품에 안긴 지훈이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지훈아. 그럼 삼촌이 엄마 데리고 올 테니까 잠깐 이 아줌마 말 잘 듣고 있어.”
지훈이가 무당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무당이 활짝 웃어 보였다.
하지만, 뚜렷하다 못해 기괴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그 얼굴과 화장은 아이한테도 거부감을 일으켰다.
작은 삼촌의 팔깃을 잡고 꼭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무당이 먹을 것을 내밀었다.
맛있는 딸기 사탕이었다.
입술을 잔뜩 오므리던 지훈이는 사탕을 잠깐 쳐다보더니 이내 손을 내밀어 그 사탕을 건네받았다.
“저기 가면 맛있는 거 잔뜩 있어. 지훈이 혼자 다 먹을 수 있는데.”
손가락으로 입 주위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지훈이의 머리를 작은 삼촌이 쓰다듬었다.
“100초. 100초 세고 있으면 삼촌이 올 거야. 그러니까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아이고 착하지.”
그 말에 지훈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삼촌은 그런 지훈이를 두고 무당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집 밖을 나서려는데.
지훈이에게 다시 붙잡혔다.
“삼촌. 약속해.”
삼촌이 내려다 본 시선에는 지훈이의 손가락이 보였다.
삼촌은 그 약지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고서는 대답했다.
“그래. 약속.”
그렇게 지훈이와 약속까지 한 작은 삼촌이 끝내 뒤돌아섰다.
그리고 회사 점퍼로 보이는 옷을 하나 걸쳐 입었다.
뒤돌아선 작은 삼촌은 표정을 싹 지우고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내 앞 시야가 자연스럽게 밝아졌다.
나는 눈앞에 북이 보이자마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쏟았다.
“시바아아알! 짐승만도 못한 새끼!”
분노가 극에 달하니 자꾸 눈물이 나려 한다.
한참을 감정에 목이 메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 한 가지가 떠올랐다.
이런 악질스러운 짓을 저질러놓고 무당은 왜 이곳을 떠난 걸까?
나는 일단 휴대폰을 켜 검색창에 단어 하나를 입력했다.
선우산업.
작은 삼촌이라는 사람의 옷가지에 걸려있던 회사 이름이었다.
검색창의 결과에 동일한 이름의 회사가 15개가 떴다.
지금 이 검색창에 떠있다는 것은 망하지 않았다는 증거.
즉, 작은 삼촌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면 이것조차도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어렵게 얻은 단서.
나는 일단 이름이 같은 가까운 곳부터 쑤시고 다니기로 했다.
학교까지 조퇴해가며 3일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열심히 전국을 찾아헤매던 나는.
드디어 작은 삼촌의 회사를 찾았다.
무당집에서 무려 40km 떨어진 지역의 시골 회사였다.
내 앞에 면도를 안 했는지 턱수염이 거칠거칠하게 난 50대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말했다.
“이진호 그놈을 왜 찾아? 조카야?”
“아. 그분이 저희 아버지한테 돈을 빌려 가고 선 소식이 끊겨버려서요.”
원활한 대응을 위해 거짓말을 좀 섞었다.
“쯧쯧. 못 받아 그거. 포기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야.”
“그게 무슨 일인지···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조카뻘 되는 애한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네. 그놈 여기저기 빌리고 다닌 돈으로 술이랑 도박질에 다 쏟아부었어. 아마 지금 폐인처럼 집에 처박혀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겠지.”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돈 때문에 어린 조카까지 팔아먹더니 결국 도박과 술 때문이었어?
나는 순간 표정관리가 안 되는 걸 들킬까 표정을 지우고 아저씨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그분 지금 어디 사시는지 아나요?”
“모르지. 그만두고 이사 갔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찾지.
떨떠름하게 앞에 있던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 서려는 그때.
아저씨가 흘리듯 중얼거렸다.
“사람들 말로는 저기 산골 동네 오좌동으로 이사했다던데.”
“어디요? 오좌동이요?”
오좌동.
이 넓디넓은 시골 동네를 일일이 다 쑤시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2시간이 넘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송을 켰다.
위험을 방지할 수도 있었고, 요즘 부쩍 늘어난 시청자와 그 인맥을 통해 범죄자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나는 방송 제목도 미리 바꿨다.
[ 살인 범죄자 추격 방송. ]
그리고 거치대 없이 핸드폰 화면을 들어 올려 시청자들을 맞이했다.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ㅡ 워어~ 컴백! 연우!
ㅡ 3일 만이네. 근데 얼굴이 왜 땀 범벅이냐
ㅡ 제목은 뭐고?
ㅡ 살인 범죄자 추격 방송?
ㅡ 뭐야 여기? 어디야
나는 일단 시청자들에게 일단 크게 인사를 올렸다.
“아이고오오 형님들!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이죠! 다름이 아니라 오늘 형님들에게 도움을 요청드리고자 방송을 좀 켰습니다.”
ㅡ 뭔데?
ㅡ 흉가가 아니네. 무슨 개 수작을 부리는 거냐
ㅡ 설마 후원 부탁은 아니지?
ㅡ 여자친구 부탁이면 못 들어준다
“그게 아니라 형님들. 요 3일 동안 쉬지 않고 폐 무당집에서 있었던 사건을 좀 파헤치고 있었거든요.”
ㅡ 뭐? 그걸 파헤쳐? 네가?
ㅡ 헐. 장래희망이 탐정인가
ㅡ 그걸 네가 어떻게 파헤쳐
ㅡ 네가 경찰도 아니고 그걸 왜
ㅡ 아니 그래서 뭐 증거 좀 찾았냐?
나는 웃음기를 싹 지우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범인의 꼬리를 잡은 것 같아요. 바로 이 동네에서 범인을 본 사람이 있거든요.”
백 프로 확실한 증거는 아니지만, 최근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살았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카메라를 보며 조심스럽게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 오좌동에 사시는 형님들 계실까요? 사시는 분 계시면 이진호라는 이름 들어본 형님들 있나요?”
방 제목이 어그로가 끌렸는지, 시청자 수는 어느새 900명을 넘어섰다.
이제 천 명을 바로 앞두고 있는 상태.
하지만, 이 동네 근처에 사는 시청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사람들 중 이진호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네를 더 돌아다녔다.
일일이 보이는 사람들을 다 붙잡았고 물어보았다.
“혹시 여기 사시는 이진호 씨라고 아시나요?”
“아니요.”
“죄송하지만, 여기 동네 사시는 이진호 씨라고 아실까요?”
“몰라요.”
어찌나 돌아다녔는지 몸에서 땀이 뻘뻘 흐른다.
그 이후로 30분을 온 힘을 다 쏟아 돌아다녔지만, 역시나 성과는 없었다.
이진호가 여기 사는지조차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허탈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아이와 어머니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이제 하늘도 어두컴컴해져 사람 얼굴도 잘 식별이 안 될 시간.
나는 어쩔 수 없이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하··· 형님들. 그 범인이 지금 여기 근처에 산다고는 했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오늘은 아무래도 여기서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ㅡ 범죄자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ㅡ 괜히 경찰이 못 잡는다고 생색냈겠냐
ㅡ 그래도 이 정도면 열심히 했다
ㅡ 그래. 이제 그만해. 시발. 무슨 찾아다니는 것만 5시간을 방송하냐 개색갸
ㅡ 그 와중에 시청자 수는 천 명 넘음ㅋㅋ
ㅡ ㅋㅋ 그게 레전드. 존나 신기방기
ㅡ ㅇㅇ 근데 설마 내일도 사람 찾는 방송이냐
ㅡ 아니 이게 TV는 사랑을 싣고냐 개색갸
ㅡ 흉가는 언제가 ㅅㅂ
아쉽지만,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려는 그때.
내 눈앞에 검정 모자를 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운동복에 슬리퍼를 끌고 한 손에는 병이 부딪혀 나는 소리가 들렸다.
깡. 깡.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 사람을 붙잡았다.
“저기 죄송한데, 이 동네에 혹시 이진호 씨라고 아시···”
남자가 숙였던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토록이나 찾았던 그 남자.
기억속에서 보았던 그 작은 삼촌이었다.
“누구···”
내 얼굴은 금세 새빨개졌다.
분노로 인한 혈압 상승으로.
숨도 거칠어졌다.
나는 흥분으로 인해 말까지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시··· 시벌! 혀··· 형님들!”
갑자기 눈치를 살피던 이진호가 쥐고 있던 봉지를 내팽개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 어? 거기 서! 시벌넘아!”
나는 이진호의 뒤를 젖 먹던 힘까지 쏟아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술래잡기.
산골 동네라 그런지 집과 골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유 때문에 도통 거리가 좁혀지질 않았다.
지리를 잘 아는 이진호가 도망치기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놓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뒤에 따라붙었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밟고 넘어져도, 보지 못한 벽에 부딪혀 살이 찢어져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ㅡ 웩웩! 화면 존나 어지러워
ㅡ 도대체 왜 이런 걸 방송 켜고 하는 건데 시발
ㅡ 무슨 영화의 한 장면 보는 것 같네
ㅡ 시발. 그만 뛰어 야 이 개색갸!
ㅡ 차라리 화면 보지 말고 소리만 들으셈
ㅡ 이런 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초짜처럼 왜들 이러셈
ㅡ 이게 애청자와 신입 시청자와의 클래스 차이
ㅡ 근데 이거 신고 안 해도 되냐?
ㅡ 저기 어딘지 모름
ㅡ 게다가 범죄자인 거 확실함?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드디어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진호가 어디론가 숨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길가에 내다 버린 폐 가구들이었다.
의자, 침대, 그리고 큰 냉장고까지.
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난 그 물건들이 쌓여있는 방향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시벌. 아저씨. 자··· 자수하세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핏줄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 놓고도 잠이 오시냐고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상황을 대비해 거리를 두고 난 턱 끝까지 차오르는 호흡을 뱉어냈다.
하지만 기다려도 대답은 없었다.
주위는 고요하게 정적만이 흘렀다.
나는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키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거기 있는 거 다 압니다. 얼른 나오시죠!”
ㅡ 뭐야. 진짜 범인이야?
ㅡ 에이 설마. 도대체 얘가 어떻게 그걸 찾아냈는데?
ㅡ 근데 핏줄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얘긴 뭐야
ㅡ 야 너 생 사람 잡는 거 아니지?
ㅡ 괜히 설레발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앞에 그림자가 움직이는 게 눈에 띄었다.
그와 동시에 이진호가 어디서 주웠는지 깨진 유리 파편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하. 괜히 쫄았네. 이렇게 나이가 어린데 짭새 일리가 없지···”
내가 이를 꽉 깨물며 이진호에게 물었다.
“무당 어딨어요?”
“무당?”
“그래요. 무당. 당신이 지훈이를 팔아넘겼던 그 무당.”
순간, 이진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굉장히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이진호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정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생판 모르는 어린놈의 입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몸이 움찔거렸다.
이진호는 깨진 유리 파편을 살며시 들며 내게 말했다.
“설마 그 무당 년이 다 불었냐? 씨발 사이비 같은 년이 돈도 안 주고 도망가더니 날 이렇게 또 엿 먹여? 근데 어떡하냐? 증거가 없을 텐데?”
이진호가 내게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다.
유리 파편을 내 몸에 휘둘렀는데 닿지 않았다.
아니. 순간 떠오른 생각에 나는 일부러 팔을 스칠 수 있게 가져다 댔다.
경찰서에서 있을 구속 문제에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곧장 이진호에게 순식간에 다가가 내 기다란 발을 꽂았다.
명치에 정확하게.
퍼억.
“웁!”
숨이 턱 막히는지 이진호가 유리 파편을 놓치고 배를 감싸 안았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진호의 뒤로 돌았다.
그리고 두 손을 꺾어 땅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바닥에 짓눌린 이진호를 바라보며 나는 살며시 방송화면을 보였다.
“증거? 지금 저한테 만들어 주셨네요. 이거 생방송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