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1
ㅡ 워··· 그건 뭔 희대의 개소리냐
ㅡ 경찰이 추적을 못 하는 걸 네가 어떻게 잡아
ㅡ 네가 무슨 수로 어떻게 잡을 건데?
ㅡ 고스트 박스로 잡냐?
ㅡ 아님 EMF 측정기로 잡을래?
ㅡ 님들 왜 연우 기를 죽이고 그러셈?
ㅡ 아니.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답답해서 그러지
ㅡ ㅇㅇ 말이 안 되자나. 그냥 포기해. 이런 일도 있는 거지
ㅡ 어쩔 수 없는 거야. 세상 일이 네 마음대로 되겠냥
ㅡ 속상해도 어쩔 수 없다. 포기하고 방송이나 열심히 하자
“···”
말을 내뱉자마자 입에 고구마를 처넣은 듯 말문이 도로 막혔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 대한민국 경찰도 잡기 힘들겠다는 범인을 일반인인 내가 어떻게 잡아.
정말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 어린아이의 표정과 엄마를 생각하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항상 솟구쳤던 하이텐션도 축축 처지는 상황.
나는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형님들. 그럼 죄송한 말씀이지만··· 방송을 조금만 쉬겠습니다. 그동안 몸에 피로가 너무 많이 쌓여서요, 안 좋은 꿈을 너무 자주 꾸기도 하고··· 다만, 그동안 에너지 충전 좀 제대로 하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물론 나는 쉴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방송을 켜고는 제한되는 것들이 많아 그랬을 뿐이다.
한 번 뱉은 말은 절대 주워 담지 말아야지.
무조건 잡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나쁜 놈은 이 사회에서 뿌리 채 뽑아내버릴 것이라 나는 다짐했다.
ㅡ 그래. 너무 쳐져 있진 마. 힘내라. 우리도 똑같은 마음이야. 잘 쉬고 돌아와서 보자.
띵동
ㅡ 남자가 그런 거에 기죽고 그럼 안 되지. 옛다. 치킨 사 묵고 힘내라 인마!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안 그래도 야생곰이랑 경쟁 붙었는데 넘 오래 쉬지 마라. 시청자 다 뺏긴다
“알겠습니다 형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연우! 다시 쌩쌩하게 회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시청자들과의 잠깐 이별을 통보하고 휴방에 들어갔다.
휴방 선언한 지 불과 1시간 후.
나는 어딘가로 이동하며 유트브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띄는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어? 야생곰?”
[ 전설의 폐 학교. 끔찍한 자살귀를 만나다 ]
도착하기 전까지 1시간 남았는데 잘 됐다 싶었다.
나는 어제 그토록 내 시청자들을 빼앗아가던 야생곰님의 영상을 틀어 관찰하듯 살펴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빠져나갔던 거야?
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여러분들. 여러분들! 지금 이 교실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여자 귀신! ]
야생곰님이 한 교실 안에서 놀란 듯 소리치고 있었다.
“어? 설마? 시··· 시벌. 허은정이 있는 3학년 1반을 간 건가?”
영상 속으로 비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야생곰님은 허공을 바라보며 온몸을 벌벌 떨어댔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귀신과 대치라도 했는지 잔뜩 놀란 표정을 지으며.
[ 와아악! 여러분들! 저기 여자! 길게 머리를 늘어트려놓은 여자가! 교실 안을 돌아다녀요! ]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계속 지켜보고 있는 이 교실 입구 팻말엔 3학년 1반이 아닌 3학년 8반이 붙어있다.
게다가 길게 머리를 늘어 트려 놓은 여자?
야생곰님이 말해주는 귀신의 생김새는 내가 학교에서 본 그 귀신과 너무 달랐다.
나랑 정 반대의 교실에서 나도 모르는 귀신을 발견하기라도 한 걸까.
듣기로는 영안이라고 하던데.
대단하다 정말.
영안에, 기획사에서 보조해 주는 연출, 컨텐츠. 등등.
역시 유트브 50만 명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ㅡ 옥상 좀 가달라고요
ㅡ 아까 정연우 유트버가 옥상에서 귀신 있다고 했잖아요
ㅡ 아씨. 아니 이 사람 자꾸 어디 감?
ㅡ 거기 아무것도 없다고! 반응도 없자나!
ㅡ 아시바 진짜 개노잼이네. 50만 명 어떻게 찍었냐
ㅡ 정연우한테 좀 배워라.
ㅡ 정연우 방송 보고 온 사람?
ㅡ 저요! ㅋㅋ 매번 대박 스릴 넘침
ㅡ 인정! 화장실 문도 귀신이 흔 드는 것 같이 진짜 실감 났음.
ㅡ ㅅㅂ 이 새끼는 엉뚱한 데만 자꾸 가네
ㅡ 주작질 하려고 그러는 거냐
ㅡ 아니면 개 쫄보라서 그러는 거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댓글을 살폈다.
뭐야. 이거···
“아니. 남의 방송인데 왜 이렇게 내 이름이···”
나를 칭찬하는 채팅이 자주 보인다.
내심 나를 치켜세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흐뭇하긴 했지만, 반사적으로 표정관리가 되었다.
어디까지나 내 방송이 아닌 곳에서 자꾸 언급이 된다는 건 그리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니까.
마치 라이벌 구도를 형성시키는 것 같았다.
야생곰님이 카메라에 대고 말을 했다.
[ 여러분들. 제가 컨텐츠 준비한 게 있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정연우 씨보다 훨씬 재밌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 방송에서 타 유트버 언급하지 마세요. 추방합니다. ]
기분이 얹짢은 듯이 카메라를 보고 진지하게 말을 뱉는 야생곰님.
그런 야생곰님이 잠시 후.
시청자들의 요청에 못 이겨 씩씩대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올라가자마자 옥상의 광경을 쭉 비추며 투덜대듯 얘기했다.
[ 자. 여러분들이 원하는 옥상에 올라왔습니다. 살펴볼게요. 시커멓게 곰팡이가 핀 옥상 시멘트들. 난간, 그리고··· 봐봐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
야생곰님은 작은 한숨까지 내쉬며 시청자에게 말을 이었다.
[ 여러분 보세요. 여기는 흉가입니다. 귀신으로 인한 현상들이 한두 번이 아닌데. 정연우 씨랑 제 상황이 다를 수 있잖아요. 자꾸 이렇게 물타기 하시면 곤란합니다. 자. 그럼 저는 저한테 느낌이 오는 장소로 다시 옮길게요. ]
그렇게 말을 내뱉고 곧장 옥상 밑으로 터벅터벅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ㅡ 잠깐. 기다려 봐! 기다리면 귀신 나온다!
ㅡ 기달! 정연우 방송 보던 중 여기서 발자국 소리 들음
ㅡ 자꾸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멈추라고 시발!
ㅡ 거기는 아무것도 없잖아!
ㅡ 왜 아무것도 없는 이상한 곳에 가려고 하는 건데
ㅡ 여긴 정연우가 이미 인증해놓은 곳이라니까?
ㅡ 하. 이 새끼 이거 주작질 해놓은 곳에 데려가는 거 아님?
ㅡ 시발 인정. 그런 거네. 자꾸 시청자 말 안 듣고 세는 거 보니까
ㅡ 맞지? 맞지?
“내 방송이나 다른 방송 사람이나 매한가지구나.”
저 마음 이해하지···
야생곰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채팅창의 분위기가 마치 자신이 사기꾼이 되는 것 처럼 흘러가자, 내려가던 계단을 멈추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쿵. 쿵. 쿵.
화난 발걸음이 결국 옥상에 도달했고.
야생곰님은 표정 없는 얼굴로 카메라를 이리저리 갖다 대며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 말해보세요. 정연우 씨가 귀신이 어딨다고 말했는데요? 말해보세요. ]
ㅡ 난간!
ㅡ 난간이요.
ㅡ 여 학생 귀신이 떨어지고 다시 올라오고를 반복한다 했음
ㅡ 기다려봐요. 귀신 나올지도 모르잖아
ㅡ 정연우가 저 난간 앞에 걸쳐서 귀신이랑 실랑이했음
ㅡ ㅇㅇ 실제로 여학생 발자국도 보임
ㅡ 그래! 나도 봤어 시발! 기다려 봐! 기다리면 나온다니까!
ㅡ 보고 싶다. 무서운데 또 보고 싶다.
ㅡ 혹시 모르니까 난간에서 바닥 비춰봐요
야생곰님은 짝다리까지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5분이 흘렀을까.
아무런 현상도 없자 성큼성큼 난간까지 다가가 바닥을 비추더니 얘기했다.
[ 이거 보세요. 아무것도 없죠? 여러분. 정연우 씨가 귀신 봤다고 하면 진짜 귀신이 있는 건가요? 서로 다른 귀신을 봤을 수도 있잖아요. 자꾸 이렇게 타 유트버 언급하면서 제 방송 흐름에 악영향을 주시는 분들. 이제 강력 추방하겠습니다. ]
야생곰님은 그 말을 던지고 다시 2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ㅡ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니까! 아!
ㅡ 지 맘대로야 맨날
ㅡ 아니. 결국 가서 이상한 컨텐츠나 하려고 하는 거 아님?
ㅡ 백퍼 주작 만들어놓은 장소 데려가는 거임
ㅡ ㅅㅂ 짜증 나네. 재미도 없고
ㅡ 영안이라더니 귀신 볼 줄 아는 거 맞음?
ㅡ 아무리 봐도 뻥인 듯.
ㅡ 집안에 무당 있다는 것도 개 구라야 저거 ㅅㅂ
채팅창을 한참 쳐다보던 야생곰님이 결국 폭발했다.
굉장히 감정이 격한 목소리로 카메라을 보더니 얘기했다.
[ 운영자님들. 지금 정연우 씨 언급하거나 주작 소리 하는 사람들 죄다 쳐내주세요. 아니. 그냥 아예 차단해 주세요. ]
눈이 휘둥그레지는 광경을 보고 난 후.
나는 방송을 껐다.
그리고 괜한 머리를 긁적였다.
왠지 모르게 내가 죄인이 된 느낌이 드는 건 뭐지?
나 잘못한 거 없는데···
그렇게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나는 도착한 곳에 내렸다.
30분을 더 걸어서야 그 목표 장소가 눈에 보였고.
여전히 살벌한 한기를 내뿜고 있는 집 앞에 멈춰 섰다.
바로 어제 방문했었던 그 폐무당집.
나는 들어가기 전 폐 무당 앞에 서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쳐져 있는 폴리스라인.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빨간 깃발과 하얀 깃발.
자연스럽게 떨려오는 몸을 꽉 붙잡고 나는 중얼거렸다.
“시벌··· 오늘 증거 하나라도 찾을 때까지 이곳에서 안 나간다 내가.”
그렇게 성큼성큼 무당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안의 환경은 달라진 게 없었다.
여기저기 경찰들이 뒤섞어 놓은 물건들이 있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
나는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집기 시작했다.
수많은 무구들, 무당 칼, 부채, 방울 등등.
눈까지 감고 나니 모든 기억들이 흑백영화처럼 흘러간다.
사람들에게 점사를 봐주는 장면들, 굿을 하는 장면들, 그리고 내 눈살을 잔뜩 찌푸리게 만드는 아이와의 첫 만남의 모습들.
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답답하다.
얼른 찾아야 할 텐데.
“잠깐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뒷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숨겨진 창고 문도 곧장 열었다.
그리고 열린 채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장독대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분명히··· 모든 걸 버리고 떠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다. 얘야. 날 좀 도와줘. 어디, 어떤 곳에 그 사연이 담겨 있을까.”
“워어어어!뭐야?”
순간 창고 깊숙진 구석 모퉁이에서 북소리가 또 들려왔다.
나는 그곳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잡다한 물건들이 나온다.
그런데 도저히 찾아도 숨겨진 북은 없었다.
아니. 찾았다.
한 구석에 처박아 놓아 먼지가 잔뜩 쌓인 북.
나는 그 북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조심스럽게 북을 한번 쓰다듬듯 만졌다.
순간, 내 몸이 자동적으로 움찔거리며 앞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어갔다.
요란한 북소리와 칼날의 소리가 겹쳐서 들려온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기이한 외모의 무당이 제 자리에서 방방 뛰며 칼춤을 추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옆에는 새로운 인물도 있었다.
누구지?
근데 왠지 모르게 낯익다.
아닌가?
무당이 그 남자에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심상치가 않았다.
“지훈이 엄마는 확실하게 따돌린 것 맞아? 시간이 얼마 없어. 신령님한테 버림받지 않으려면 얼른 해야 한다고.”
남자가 입구 문 쪽을 눈치 보듯 살펴보더니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만 원이나 꼭 보내줘.”
지훈이. 기억 속에서 읽었던 어린아이의 이름이었다.
시발. 공범이 있었다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한 아이가 미닫이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지훈이었다.
지훈이는 문을 열고 들어와 남자에게 폭삭 안겼다.
“작은 삼촌. 우리 언제 집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