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무당집. 2
저 사람··· 귀신을 볼 줄 안다고 했지?
그게 어디야.
내 앞에 귀신이 있냐 없냐만 알아도 확실하게 대처를 할 수 있잖아.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카메라에 들이밀었다.
“도사 형님. 그럼 정말 믿고 가보겠습니다.”
ㅡ 네.
ㅡ 분명 따지는 말투 같았는데
ㅡ ㅇㅇ 당신 소리까지 나옴
ㅡ 근데 왜 대답은 따르겠다 함?
ㅡ 후원 때문에 태세전환 한 거지
ㅡ 돈미새 새끼. 후원해 주면 원수도 따를 듯
ㅡ 에라이 새꺄 문이나 열어라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이 싸늘한 공간 안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내게 큰 희망이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무당집.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전셋집.
전셋집을 얻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오늘 이후로 큰 손 형님이 출장을 가버린다면 다시 이런 후원금액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카메라를 보고 얘기했다.
“형님들. 학교에 이어 폐 무당집입니다. 천천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입구에 묶여있던 오색천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젖혔다.
드르르륵. 끼익.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잔뜩 낀 먼지에 걸려 억지로 열리며 신음을 토해냈다.
“워··· 이게 다 뭐야?”
나는 문을 열자마자 그 광경에 놀랐다.
현관부터 엄청난 짐과 쓰레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탄가스부터, 프라이팬, 모기 쫓는 모기약, 헌 사복들, 봉지 등등.
종류를 다 말하려면 하루 종일 떠들어도 모자랄 만큼 온갖 쓰레기 잡동사니가 다 모여있다.
걸음을 옮겨 거실을 들어가 봤지만 마찬가지다.
온갖 쓰레기 천지라 발 디디기가 힘들 정도.
“형님들··· 짐이 그대로 다 있어요. 뭐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작은방을 살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자는 공간으로 보이는 오른쪽 조그마한 방에는 멀리서 보아도 쓰던 침구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누렇게 변색된 하얀 침구들.
그 외에도 알록달록한 침구들이 옆 가구에 잔뜩 쌓여있다.
혼자 지냈던 게 아닌가?
“짐이 너무 많아요 형님들. 혼자 지냈다고 보기에는 베개도 많고 이불도 많고···”
무엇보다 너무 지저분하다.
정리가 안 돼있다.
ㅡ 무당이 아니고 쓰레기 수집가인가
ㅡ 근데 원래 귀신은 더러운 곳 좋아하지 않음?
ㅡ 그건 잡귀가 그렇지
ㅡ 여긴 깨끗한 귀신을 모시는 곳이잖아요
ㅡ 신을 모시기는 했을까?
ㅡ 의문스럽네 집 분위기가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더러운 곳에서 신을 모실 수가 있을까?
내가 신이었어도 이런 곳엔 오기 싫겠다···
“도사 형님. 이 사태에 대해서 뭐 좀 아시나요? 아시면 얘기 좀.”
ㅡ 환경을 보아하니 신을 버리고 도망갔을 수도 있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빤히 쳐다봤다.
“그렇지 않으면요···?”
ㅡ 도중 사망했을 수도
마른침이 절로 꿀꺽 삼켜졌다.
뭐야 시발. 사망이라니.
이거 뭐 또 집 안에서 시체 발견되고 그런 건 아니겠지?
물건을 그대로 두고 몸만 갔다고 하기엔 환경이 너무 기이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조심스럽게 냄새를 깊게 들이마셔 보았다.
스읍.
하지만 향냄새 말고는 다른 썩은 냄새는 일절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냥 집을 놓고 도망간 쪽 같네요. 이곳에는 썩은 냄새도 전혀 없고 향냄새만 가득하거든요.”
주위를 살펴보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도사 형님. 그럼 혹시 무당이 왜 짐 하나도 챙기지 않고 도망을 갔을까요?”
ㅡ 일반적으로 신을 모시기 싫어 포기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아요. 무당으로서의 삶은 평탄치 않으니까.
나는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된다.
인터넷에서도 TV에서도 그런 사연들을 들어본 적이 있다.
타고난 운명 덕분에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 말이다.
받고 싶지 않아도 거부하게 되면서 생기는 사고들.
몸이 아프다거나 심하게는 사망까지 하는 경우들도 기사로 보았다.
그나저나 여긴 얼마나 방치되어 있었던 거지?
먼지가 쌓인 상태로 봤을 땐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은데.
둥. 둥. 둥.
“워어어어어! 뭐야?”
갑자기 뜬금없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문에 내 고개가 반사적으로 왼쪽 방으로 돌아갔다.
“형님들. 어. 어? 북소리. 북소리 들으신 분!”
ㅡ 확실히 들음
ㅡ 텅! 텅! 텅! 세 번 맞지?
ㅡ 시발 뭐지?사람이 살고 있었나?
ㅡ 그랬으면 벌써 뛰쳐 나왔지.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데
ㅡ 그럼 뭐지?
ㅡ 확인해 봐야지 ㄱㄱㄱ
시벌. 뭐야?
나무로 된 문을 양옆으로 열고 닫게 만든 문이었는데.
중간은 어설프게 비치는 유리 재질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안쪽 유리면에는 뭘 잔뜩 붙여놨는지 하얗게 다 가려져 있었다.
“시··· 시발. 설마 저 방이···”
나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은 신을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 방.
즉, 신당인 것 같았다.
마른침이 절로 꿀꺽 삼켜진다.
ㅡ 그 설마의 방. 얼른 드가라 ㄱㄱ
일단 고개는 끄덕였다.
그리고 그 앞에 방까지 성큼성큼 걸어간 후.
EMF 측정기를 먼저 꺼냈다.
측정기를 꺼내자마자 3단계가 요동친다.
“시벌! 형님들 3단계! 3단계! 방 들어가기도 전에 3단계에요!”
ㅡ 그놈의 벌. 요즘에 많이 찾는다 너
ㅡ 괜찮아. 열고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ㅡ 일단 열어 봐
ㅡ 어차피 들어갈 거잖아 ㅅㅂ 뜸 좀 들이지 마. 네가 밥솥이야?
ㅡ 헐 아재개그
ㅡ 자기 전 이불 덮으면 웃길 걸
나는 땀에 젖은 손으로 미닫이 손잡이를 잡았다.
여고에서 땀을 그렇게 흘려 댔는데, 아직 나올 땀이 있나 보다.
마른 오징어가 되어 쥐어짜지는 기분이랄까.
나는 문을 천천히, 조금 열었다.
“워어어어! 형님들!”
문틈으로 살짝 보았을 뿐인데, 수십 개의 눈이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극한의 공포.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형님들! 저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무서워요 시벌! 제 심장 뛰는 것 좀 보세요.”
ㅡ ㅅㅂ 그걸 어떻게 봐
ㅡ 자세히 볼 수 있게 꺼내봐 봐
ㅡ 문도 열기 전에 뛰쳐나온 것 같은데
ㅡ 옘병 넘 빨라서 연지 안 연지도 구분 못하겠음
ㅡ 우리 농락하냐 지금
ㅡ 하. 쫄보 새끼
나는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저 문을 살짝 열어 확인했을 뿐인데도 심장이 요동친다.
ㅡ 장난하냐 얼른 드가 ㄱㄱ 오늘 마지막이라니까
“하. 이건 아닌데 진짜···”
나는 큰손형님에게 못 이겨 다시 한번 방 안을 슬쩍 훔쳐보았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곳을 향해 걸으면서도 속으로 되새겼다.
그래. 얼른 돈 벌어서 집 사야지 연우야.
엄마와 쥐포랑 넓은 공간, 더 깔끔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기로 했잖아.
이 까짓것 여태까지 많이 겪어왔다.
다 똑같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렇게 문을 조심스럽게.
아니. 열기도 전에 심장을 부여잡고는 중얼거렸다.
“잠시만요 형님들. 저 심장이 너무 뛰어요. 아까 학교에서의 여운이 아직도··· 위험해서 안 될 것 같아요.”
[ 오늘은하나도안무서워엄마랑자야지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ㅅㅂ 그럼 얼른 심장 가라앉혀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드르르륵!
“안녕하십니··· 워씨!”
방 안의 광경이 적나라하게 내 눈에 맺혔다.
새빨간 연꽃들로 도배가 된 벽지.
천장에는 연등이 잔뜩 붙어있었고, 수많은 달마 그림과 붓으로 적은 뜻 모를 글씨 액자들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정면을 지키는 커다란 불상 하나와 그 옆 조그마한 불상들이 수두룩하게 앞에 나열돼있었는데.
하나같이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시··· 시벌.”
기에 눌린 다는 건 이럴 때를 두고 쓰는 말인가.
그저 공기가 무겁다.
누가 위에서 내 어깨와 머리를 사정없이 짓누르는 것 같았다.
동시에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듯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전등으로 주위를 살피면 살필수록 닭살이 터질 듯이 올랐다.
다시 버퍼링이 잠깐 생겼다.
“어. 어? 형님들. 버퍼링이···”
나는 순간, 그 타이밍에 핑계 삼아 다시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신당이 흘리는 묘한 이질감과 압박에 어지러워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나와서는 반사적으로 입을 중얼거렸다.
“형님들. 형님들! 버퍼링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이거 방송 못 하겠는데···”
ㅡ ㅅㅂ 다시 잘 나오는데 왜 뛰쳐나와
ㅡ 너 일부러 핑계 대고 나온 거지
ㅡ 하 쫄보새끼 자꾸 이럴 거냐? 두 번째다 지금
ㅡ 진짜 한 번만 더 뛰쳐나오면 방송 안 본다
ㅡ 큰손 형님도 빡쳤다 지금
ㅡ 야. 시청자 수 빠지는 거 안 보이냐?
ㅡ 야생곰한테 다 뺏기고 있다.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청자의 말대로 다급하게 시청자 수를 확인했는데.
현재 시청자 수. 752명.
뭐야 시벌! 거의 200명이 줄긴 했다.
나는 눈을 껌뻑이며 중얼거렸다.
“어? 다들 주무시러 간거 아닐까요?”
이미 3시를 향해 가는 시간이었으니까.
다들 잘 시간일 텐데.
ㅡ 아뇨. 다 야생곰님 방송에 있던데요. 제가 지금 확인하고 왔음
뭐? 시벌.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야?
“지금 야생곰님 방송은 시청자 수가 몇 명인가요?”
ㅡ 900명 정도 되네요.
시청자 수가 비슷했구나.
와. 그런 인지도 높은 유트버랑 시청자 수가 같다니 뭔가 뿌듯한데.
아니 잠깐.
도사 형님 말대로라면 내 시청자가 그쪽으로 지금 빠졌다고 했지?
그 말은즉슨, 그 시청자가 내게로 채워졌을 땐 내가 더 많았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
그 시각.
ㅡ 헐. 시청자 수 계속 빠져나간다
ㅡ 700명··· 600명 됐어
ㅡ 뭐야? 왜 어디 간거야
ㅡ 야생곰한테 빠져나가는 듯
ㅡ 지금 야생곰 천명 가까이 찍을 기세
ㅡ ㅅㅂ 뭐 하길래 우리 연우가 지는데?
“형님들. 괜찮습니다. 야생곰님은 원래 베테랑 유트버잖아요. 저보다 시청자 수가 많은 게 맞는 거죠.”
ㅡ 그걸 왜 인정해. 여긴 전쟁터야.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죽을 거냐? 더 불 태워야지
나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웃었다.
고개도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님들. 저는 저를 끝까지 지켜봐 주는 형님들이 있으면 그걸로 됐어요. 욕심은 없습니다.”
그래. 큰 회사의 도움까지 받는 유트버를 어떻게 이겨.
600명이라. 아니. 500명까지 떨어지고 있지만.
이 정도만 돼도 나는 성공한 거다.
내 방송을 이렇게까지 봐줄 거라고도 생각도 못 했는데 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성큼성큼 자리를 옮겼다.
무당집의 현관을 넘어 거실을 그대로 지나쳤고, 곧장 신당 안으로 들어갔다.
ㅡ 야 무섭게 왜 그래
ㅡ ㅅㅂ 무섭다는 거 뻥카 아님?
ㅡ 저 새끼 시청자 뺏겼다니까 화났다
ㅡ 이 가는 소리 들린 것 같은데
신당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알록달록한 무당옷이 잔뜩 걸려있는 옷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얀색, 빨간색.
여러 가지 옷들이 달려있었지만, 나는 그중에 제일 튀는 옷 하나를 거침없이 꺼냈다.
그리고 그 옷을 내 몸에 둘렀다.
촤라락.
끝이 아니었다.
옆에 놓여있던 무당 칼까지 집어 들고는 나는 크게 소리쳤다.
“시벌. 그래서 말인데요 형님들··· 감사의 인사로 시원하게 칼춤 한 번 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