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8
마주친 눈에는 빨간 핏물이 잔뜩 고여 있다.
머리에서 터져 흐른 핏물이 점점 눈알을 침식해가는 중이었다.
나를 노려다 본다.
금방이라도 내 입에서 게거품이 흘러나올 것 같다.
어지럽다.
현기증이 심하게 온다.
갑자기 시야가 검게 물든다.
비틀.
나는 검은 시야와 함께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는 것을 느끼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후우! 후우!”
정신을 차린 나는 뒷걸음질 치며 핸드폰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혀, 형님들! 근처에 있으신 분 나 좀 도와··· 왔어! 야 왔어! 빨리 와 이 개색갸! 왔어! 워어! 워어어어어!”
ㅡ 뭐야? 왜 저래?
ㅡ 영화 패러디 하냐 지금
ㅡ 상황을 알아야 살려주든 죽이든 할 거 아냐
ㅡ 핸드폰 내팽개치고 ㅅㅂ
ㅡ 어? 발소리 들리지 않음?
ㅡ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ㅡ 걍 환청임. 정신 차리셈 다들
그녀가 괴기스럽게 발을 질질 끌며 점점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차박. 차박.
그렇게 한참을 뒤로 밀려났을까.
갑자기 내 몸이 무언가에 의해 멈춰 세워졌다.
난간의 벽이었다.
가슴까지 올라온 벽이 내 몸을 막아주곤 있지만, 자칫 밀리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발! 이러다가 떠밀려서 진짜 죽는 거 아냐?
나는 고개 너머의 바닥을 재차 바라보며 가픈 호흡을 내쉬었다.
후우. 후우. 후우.
정신 차려. 정연우.
[ 영수··· 선생님? ]
어느 순간 코앞에까지 다가온 여 학생의 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나를.
아니. 내 얼굴을 잡아 확인하려는 듯 피가 흥건한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겁하며 허공에 팔을 휘둘러댔다.
“와아아아악! 저리 가! 저리 가! 나 아니에요! 영수 선생님 아니라고! 시발!”
ㅡ 저 새끼 또 왜 호들갑이야
ㅡ 거기 옥상 난간이야 미친놈아!
ㅡ 연기하는 건가?
ㅡ 여자 목소리 들리지 않아?
ㅡ 거봐! 이 새끼 여자 섭외했다니까!
ㅡ 이 상황에 대체 뭔 상황극을 하는 거야?
ㅡ 영수 선생님 아니라고 했던 것 같은데
ㅡ 선생과 제자 상황극?
ㅡ 시발 미친놈. 위험하니까 하지 마 그런 거
순간, 내 말을 들은 그녀의 손이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멈칫거렸다.
뭐, 뭐야?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다.
[ 영수 선생님! 영수 선생님! 꺄아아악! ]
내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메슥거리기까지 했다.
여 학생이 내 몸을 도망치지 못하게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난간 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 영수 선생님 ]
여 학생의 힘이 아니었다.
내 몸에 닿는 그 몸의 감각은 무엇보다 싸늘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시체의 몸을 껴안는 느낌이랄까.
온몸에 솜털이 곤두서고, 잔뜩 긴장된 그 순간에 피까지 안 통하는 것만 같았다.
난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잡힌 몸을 있는 힘껏 흔들어댔다.
“와악! 시발! 내가 왜! 윽! 이거 놔아아아아아! 시바아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힘에 못 이겨 내 몸은 질질 끌렸다.
이대로 놔둔다면 나는 휩쓸려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어 젖혔다.
그리고 여 학생이 꽉 붙잡고 있는 손이 내 소중한 부위.
아니. 속옷에 닿게 몸을 움직였다.
“읍! 시이··· 바! 난 저얼대 안 주욱어어어!”
온갖 부적을 다 꿰매놓은 내 속옷.
그 속옷에 여 학생의 손이 닿는다면 분명히 힘이 약해질 것이라 믿었다.
거기엔 요번에 새로 산 귀신 퇴치용 부적도 함께 꿰매놓았으니까.
ㅡ 쟤 혼자 뭐 하냐
ㅡ 불판 위에 오징어를 연기하는 건가?
ㅡ 옥상 난간 앞에서 뭐 하는 짓임
ㅡ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가 없네
ㅡ 야 그 괴상한 춤 좀 그만 춰. 멈춰!
열심히 몸부림치던 내 몸에서 그녀가 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 타이밍에 난간에 놓여 있던 장비를 챙겼다.
다시금 내게 무언가를 중얼대며 걸어오기 시작한다.
[ 영수 선생님 가지 마 이번엔 같이 죽어 ]
순간, 호흡을 담아 나는 큰 소리로 건물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시발! 내가 왜 죽어 이 귀신 새꺄! 나 영수 선생님 아니라고 이 시바아아알!”
그녀가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었다.
뼈가 부러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난간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뭐야 시발? 뭘 하려는 거야.
아니 뭘 하든 상관없다.
“혀··· 형님들, 좀 달리겠습니다!”
나는 옥상 출구로 향해 뛰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더 이상 이곳에 머물렀다가는 나 역시도 큰일을 당할 것 같았다.
십자가, 기도문.
모든 것이 효과가 있기는커녕 귀신의 화만 더 불러일으킨 것 같은 느낌.
옥상 출구 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또다시 걸음을 멈췄다.
무언가가 땅에 부딪히며 큰 충격음을 토해내는 바람에 몸이 굳어버렸다.
“시··· 시발!”
무거운 물건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그 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말하기가 무섭게 1층에서는 또다시 맨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시발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옥상에서 뛰어내려 1층.
아니. 내가 멈칫한 순간에 3층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탈골되어 뼈가 튀어나온 그 몸으로.
나는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숨을 완전히 죽이고, 벽에 등을 기대며 그냥 지나쳐 주기를 바랐다.
‘제발. 제발···’
그 기도가 먹혔던 걸까.
그녀는 내가 있는 주변에서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옥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바로 재빨리 2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하지만 2층 계단에 도착했을 무렵, 또다시 몸이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또 올라오고 있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내 속도를 넘어섰다.
그저 내가 한 층을 내려갈 때마다 여 학생은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다시 올라오는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숨죽인 채 벽에 숨듯 기대고 있는 나를 지나치는 그녀.
조금이라도 소리를 냈다간 고개를 홱 돌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형님들. 이 순간만큼은 조용히. 아무 후원도 하지 마십쇼. 제발.’
ㅡ 뛰어내려간다더니 왜 이렇게 기어가는 거야?
이런 시발!
그녀가 고개를 홱 돌아 나를 쳐다봤다.
좃댔다···
나는 이제 남은 1층을 향해 사정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내 옆에 있었던 여 학생이 1층 입구에서도 마주쳤지만 그대로 지나쳐 달렸다.
“와아아아아악! 시바아아아알!”
사람만 한 수많은 풀을 헤치고 흙을 튀겨가며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운동장에 세워져 있는 동상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렇게 빛살같이 뛰어 정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검고 큰 그림자와 확 맞닥뜨렸다.
“와아아악! 시발 뭐야!”
나는 핸드폰이 고정된 삼각대를 마구 휘둘렀다.
검은 그림자가 소리쳤다.
“아아아아악!”
나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누구··· 세요······?”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나처럼 삼각대에 카메라를 늘어트리고 있는.
덩치가 산만한 남자였다.
놀라 욕지거리를 뱉었던 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를 위아래로 쳐다봤다.
“아 저 흉가 유트버인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생곰님?”
A&S 회사에 소속 된, 구독자 50.4만 명인 유트버.
야생곰님이었다.
야생곰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가방과 여럿 장비를 짊어진 사람도 여럿 보였다.
“어? 연우님?”
야생곰님도 나를 알아봤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흉가 방송 중이셨구나. 그런데 웬 땀이 그렇게······.”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네. 그런데 야생곰님 여기 안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미친 귀신이 있어서······.”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미친 귀신이요?”
“네. 옥상에서 자살 반복하는 귀신이 있는데···.”
눈을 깜빡거리던 그가 내 방송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행을 감추듯 내 옆으로 와 내 카메라에 얼굴을 비췄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야생곰입니다! 뜬금없지만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ㅡ 야생곰 업!
ㅡ 누구냐 이 돼지는?
ㅡ 얌생곰 아니냐?
ㅡ 야 여기 웬만하면 가지 마라.
ㅡ ㅇㅇ 연우가 빤스런 한 곳은 웬만하면 가지 마라 생곰아
ㅡ 이렇게 합방을 한다고?
ㅡ 설계 지렸고 렛잇고
ㅡ 설마 이 상황 둘이 만나서 이야기했던 거냐?
ㅡ 주작이여 날아오르라
“아닙니다! 형님들! 진짜 그런 거 없었고! 오늘 처음 뵌 분입니다!”
야생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작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데 괜찮으세요?”
야생곰이 땀에 절어 있는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아, 네. 이제 괜찮아요.”
야생곰이 정문 너머로 학교를 바라봤다.
“귀신이 자살을 반복한다고요?”
“네. 웬만하면 가지 않으시는 게···.”
야생곰이 으스스하다는 듯 두 발을 문질러댔다.
그러나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옥상을 한 번······.”
딩동.
ㅡ 엮이지 말고 갈 길 가라. 주작충들 또 설칠라.
“아이고! 마라탕형님이 십만 원을! 알겠습니다!”
나는 카메라에 대고 꾸벅꾸벅 고개를 숙인 후, 야생곰님에게 말했다.
“그럼, 조심하세요.”
야생곰님이 카메라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네. 걱정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형님들, 오늘 만나 봬서 반가웠고 야생곰 많이 찾아 주십시오. 충성! 충성!”
나는 카메라 화면을 바로 전환했다.
괜히 야생곰님과 같이 온 사람들이 화면에 비추어져, 긁어 부스럼이 생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마라탕 형님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괜히 더 엮여 이상한 말이 나올 수도 있었으니까.
야생곰님과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섰을 때 문득 나를 찾아왔었던, 야생곰님이 소속된 A&S 에이전시에서 나왔던 김현성 팀장이 떠올랐다.
‘흉가 장소, 흉가 안의 콘텐츠, 심령 장비, 적재적소 하게 대본까지 만들어 제공해 드립니다.’
야생곰님 뒤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이고 있던 장비들.
역시 개인과 회사는 달랐다.
ㅡ 소풍 왔어?
“아···.”
그제야 나는 입을 꾹 닫고 걷기만 하면 내 앞만 보여주었던 걸 자각했다.
“아 형님들,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학교에 있는 귀신···.”
ㅡ 됐고, 네 걱정이나 해. 마지막 피날레 장식해라.
“예? 형님 무슨 피날레요?”
ㅡ 앞 좌측에 안 보이냐?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약 10미터 전방의 좌측을 바라봤다.
가정집으로 보이는, 아니 벽이 다 허물어져 대문을 지나치지 않고 마당으로 진입할 수 있는 한 폐가가 보인다.
그런데 저 깃발은 뭐란 말인가.
마치 무당집이었다는 것을 알리는 듯, 갈기갈기 찢어진 깃발이 밤하늘에 펄럭이고 있었다.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들어가 봐.
기가 다 빨려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다.
시부레······. 나 좀 쉬자.
아니 좀 살자.
ㅡ 빨리 안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