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78화 (78/225)

여고괴담. 6

뜬금없는 허은정의 고백에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인터넷에 도는 소문이랑은 정반대의 분위기잖아.

김영수 선생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은정이 너 지금 뭐라고···”

허은정은 다시 한번 당차게 얘기했다.

“저 선생님 좋아한다구요.”

김영수 선생님의 얼굴에 당혹함이 잔뜩 묻어났다.

생각지도 못한 고백이었던 것 같았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허은정을 빤히 바라보며 수차례 눈을 껌뻑거렸다.

하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 살갑게 얼굴이 풀어져서는 허은정을 귀엽게 바라봤다.

“선생님도 은정이 좋아하지. 제자로서.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제자라는 말에 허은정의 표정이 똥 씹은 듯 일그러졌다.

아이 다루듯 머리를 쓰다듬는 김영수 선생님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김영수 선생님에게 달려들어 입에 입술을 갖다 댔다.

“읍!”

화들짝 놀란 김영수 선생님이 허은정을 밀쳐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화난 얼굴로 허은정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허은정 너 이 녀석이 어딜 선생님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너희 부모님이 너 이러는 거 아시면···”

입술을 부딪혔다고 생각했지만 갖다 박은 수준과 같았다.

김영수 선생님의 입술과 허은정의 입술에 금세 빨갛게 멍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버럭 화를 내는 선생님 앞에서도 허은정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부모님 여행 가셨어요. 집에 올 일이 없어요.”

“······너 그럼 거짓말을···”

“네. 거짓말이에요.”

선생님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급하게 집을 나섰다.

그러자 그 뒷모습을 보며 허은정이 소리쳤다.

“저 선생님 포기 안 할 거예요. 전 가지고 싶은 건 가져야 되는 성격이거든요.”

[ 오늘은하나도안무서워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얼음 땡! 땡! 땡! 이 새꺄! 정신 차려라!

순간, 울려대는 후원창에 정신이 또 번쩍 들었다.

아니 이런 스읍···

뭔가 엄폐된 사연이 풀려가는 느낌인데···

나는 벙찐 얼굴로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아니 형님! 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리고 입은 웃었다.

“만 원 감사합니다요오오오! 사랑합니다요오오!”

ㅡ 그건 뭔 표정이야?

ㅡ 입만 웃고 있어

ㅡ 그나저나 너 요즘 따라 왜 자꾸 멍 때리냐

ㅡ 무슨 상상이라도 하는 거냐

ㅡ 난 또 가위 걸린 줄 알았다

ㅡ 이제 귀신한테 그만 좀 져라

그렇게 감사 인사를 끝낸 후.

나는 사진을 다시 집중해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형님들··· 흠. 머리가 상당히 어지럽네요.”

너무나 애매한 기억을 읽어버렸다.

도대체 이 기억들은 뭐야?

김영수 선생님이 여 학생들한테 찝쩍댔다고 보기에는 허은정이 너무 적극적이었는데···

둘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허은정이 자살까지 선택했을까?

[ 치지지익- 끄아아아악 치지익- 꺄아아악 치지지익- 씨발 ]

고스트 박스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흘러 나왔다.

중간에는 욕도 함께 흘러 나왔다.

“워어어어! 깜짝이야! 시발 뭐야 이거···”

ㅡ 아 놀래라 씨발 진짜

ㅡ 비명소리 뭐야 개소름 끼쳐

ㅡ 와 온몸에 닭살 돋음 왜 저래?

ㅡ 오늘 고스트 박스 역대급으로 정신없다

ㅡ 그러니까. 갑자기 도망가질 않나. 소리를 지르질 않나

나는 고스트 박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동안 계속 지켜봤지만, 비명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

학교 건물 전체에 여성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온몸에 돋아 오르는 닭살이 내 몸을 석상처럼 굳게 만들었다.

그렇게 3분간을 소리를 질러댔을까.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었는데···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이번엔 갑자기 액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영수 선생님의 액자가.

“와아악! 시발 형님들! 액자가! 액자가!”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마른침을 연달아 삼키며 그저 눈을 부릅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발··· 도대체 이게 무슨···”

한참 흔들리던 액자는 기어코 그 자리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고스트 박스의 음성이 또 멈춰버렸다.

아니. 마지막으로 음성을 내뱉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 치지지익- 슬프다 치지익- 자살 치지지익- 한다 ]

“어? 뭐야 씨? 귀신 누님? 귀신 누님! 계시면 대답 좀!”

아까와 같은 느낌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EMF 측정기를 또 확인했다.

3단계 반··· 3단계··· 2단계 반···

측정기의 반응이 또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하··· 미치겠네. 형님들. 또 어디로 사라진 것 같아요.”

말과 동시에 복도에서는 다시 낡은 목재를 밟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ㅡ 뭐해? 빨리 따라가야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 소리를 또 따라가라고?

진짜 미치겠네···

잠시 동안 망설이던 나는 결국 걸음을 옮기기 위해 몸을 틀었다.

아니. 서랍에 부딪혀 걸음이 멈춰졌다.

“어? 이건 뭐지?”

내 고개가 자연스럽게 서랍에 달린 무언가에 집중되었다.

“자물쇠···?”

인상이 자동으로 찌푸려진다.

서랍에 달려있는 자물쇠는 마치 오래된 피가 묻어있는 것처럼 녹이 쓸어있었다.

이 책상은 분명히 김영수 선생님 책상일 텐데.

“형님들 잠시 만요. 이 책상에 자물쇠가 달려 있는데요?”

ㅡ 헐 뭐야. 웬 자물쇠?

ㅡ 어? ㅅㅂ 거기 비밀스러운 거 있는 거 아니냐

ㅡ 열어봐 빨리

ㅡ 열었는데 진짜 뭐라도 있으면 대박인 거다

ㅡ 뭐가 있기는 무슨. 아무것도 없다에 손모가지 건다

ㅡ 인정. 나도 부랄 두 쪽 건다

ㅡ 님. 저번에도 걸었다가 지지 않음?

진짜 중요한 단서라도 있는 걸까.

나는 잠깐 동안 머리를 굴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설마 미쳤다고 범죄의 증거를 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교무실에 놔뒀을까?

단지 자물쇠 하나 잠가서?

“에이. 설마요. 형님들이 범죄자라면 혹시나 그런 증거를 사람들 많은 교무실에다가 숨겼겠어요?”

나는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ㅡ 그럼 열어서 확인해 보면 되지

나는 진지하게 거절했다.

“안돼요. 아무리 여기가 버려진 폐가라지만 자물쇠까지 걸어 놓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함부로 건드리면 안되죠.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 귀신빤스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그런 사람이 돼봐.

내 시선이 곧장 자물쇠로 향했다.

손전등을 입에 물었고, 커다란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그리고 강한 기합과 함께 손날로 자물쇠를 후려쳤다.

“으라차차!”

오래된 자물쇠의 고리 부분이 힘 없이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닫혀있던 서랍도 살며시 열렸다.

슥···

ㅡ ㅅㅂ 그걸 맨손으로 부실 줄은 상상도 못 했네

ㅡ 저 당수치기로 저번에 마네킹 머리 분리 시켰잖아

ㅡ ㄷㄷㄷ 저 새끼 귀신보다 더 무서워

문득 열린 서랍 안에 내용물 중 내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신기함에 그 물건을 집어 들고 얘기했다.

“어 형님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긴 한데···”

그것은 커다란 사탕 통이었다.

록데. 사랑반선물 캔디.

ㅡ 캬 추억의 캔디

ㅡ 저거 안 먹어본 사람이 없지

ㅡ ㅋㅋ 할머니 집 가서 저 통 열었는데 바늘 실만 잔뜩 있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ㅡ 인정 ㅋㅋㅋㅋㅋㅋ 개 공감

ㅡ 근데 그게 왜 거기 들어가 있냐?

ㅡ 그래도 먹을 거는 주는 좋은 선생이었나?

ㅡ 지 혼자 처먹었을 수도

ㅡ 속에 뭐 없냐? 확인 좀

시청자의 말대로 나는 그 통의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엥··· 그냥 반 학생들이 써준 편지인가 본데요?”

사탕 통안에는 수많은 종이들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작은 쪽지부터 시작해 긴 글자가 담긴 편지까지.

ㅡ 뭐야 별거 없었네

ㅡ 난 또 좋은 거라도 들은 줄

ㅡ ㅅㅂ 괜히 기대했네

ㅡ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나 했다

ㅡ 스읍. 내 느낌엔 남교사가 범인 맞는데

ㅡ ㅇㅇ 나도 그렇게 생각함

ㅡ 자살시키고 교장이 아빠니까 입막음 철저하게 시키고

ㅡ 야 됐고. 빨리 EMF 측정기 들고 발자국이나 쫓아가

“하··· 알겠습니다. 형님들.”

나는 편지가 든 사탕 통을 살며시 다시 내려놓았다.

아니. 문득 궁금해져 편지를 하나 꺼내보았다.

“잠시 만요. 그래도 꺼낸 김에 하나만 읽어볼까요?”

그렇게 첫 쪽지를 꺼냈다.

아니. 꺼내자마자 다시 집어넣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지. 아니지.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편지인데 제가 함부로 읽으면 안 될 것 같죠? 형님들.”

ㅡ ㅅㅂ 첨부터 보여주질 말던가

ㅡ 개색갸 밀당 오지네 진짜

ㅡ 하. 이 새끼 일부러 그러는 거임

ㅡ 아 제발 제발 보여줘 제발

ㅡ 궁금해 미치겠어 미쳐버릴 것만 같아

나는 채팅창을 살며시 바라봤다.

“형님들. 궁금하세요?”

ㅡ 어!!

ㅡ ㅅㅂ 빨리 보여 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내가 카메라를 보며 중얼거렸다.

“궁금하면 오 백원.”

[ 귀신빤스 님이 5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ㄱㄱ

나는 곧장 사탕 통 안에 든 편지 하나를 꺼내집었다.

혹시나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을까.

나 역시도 내심 궁금했던 터였다.

그렇게 첫 편지를 펼쳐 시청자들에게 읽어주었다.

[ 선생님. 오늘 저한테 뽀뽀한 거 애들한테 다 말하고 다녔어요. ]

from 허은정.

첫 편지를 읽자마자 나는 이 편지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허은정.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들의 비난은 속출했다.

ㅡ 거봐 남교사가 문제네

ㅡ 미친놈 자기 제자한테 뽀뽀를 해?

ㅡ 완전히 상 변태 중에 상 변태 새끼구만?

ㅡ 그 어린애를 ㄷㄷㄷ

ㅡ 다음 거! 다음 거!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허은정이 쓴 편지라고?

나는 놀란 마음에 다른 쪽지, 편지들을 차례대로 펼쳐.

아니. 편지를 집어 들고 얘기했다.

“형님들. 궁금하면 오백 원.”

[ 오늘은하나도안무서워엄마랑자야지 님이 5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그래도 양심 있네. 오백 원. ㄱㄱ

종이가 오래되어 상태가 좋진 않았지만,

읽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차례대로 읽어나가는데.

읽어나갈수록 편지의 내용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 편지지에 쓰여있는 이름은 단 한 명이었다.

“뭐야 시벌··· 형님들. 이거 죄다 허은정이 쓴 편지예요···”

[ 선생님. 오늘 너무 멋있어요.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

[ 어제 꿈에서 선생님이 나왔어요. 너무 좋았어요. 선생님은 무슨 꿈 꿨어요? 내 꿈 꿨으면 좋았을 텐데··· ]

[ 선생님은 제 첫사랑이에요. 사랑해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

[ 너무 보고 싶어요. 너무 보고 싶어 미치겠어요. 저 어떻게 하면 좋죠? ]

솜털이 곤두선다.

소름이 온몸을 타고 올랐다.

김영수 선생님은 도대체 이 편지를 왜 모아둔 거지?

설마 진짜 허은정이랑 사귀기라도 했던 걸까?

잠시 후. 그 밑에 있는 편지들을 펼쳐 확인하는 순간.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선생님. 왜 오늘 절 피하셨어요? 저 너무 속상해요. ]

[ 박현숙을 죽일 거예요. 선생님은 내 건데 왜 자꾸 선생님을 유혹하는거죠? ]

[ 제발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 왜 제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거예요? 선생님도 저 좋다고 하셨잖아요··· ]

[ 계속 저를 피하시면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저와의 사이를 소문낼 거예요. ]

[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잤다고 소문을 퍼트렸어요. 이제 저를 어떻게 하실 거예요? ]

[ 저 진짜 선생님 때문에 죽을 것 같아요. 가슴이 너무 아프다구요. ]

[ 이래도 절 봐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저 정말 죽어도 괜찮으시겠어요? ]

[ 오늘 죽으려고 손목을 그었어요. 너무 아파요. 근데 왜 나 살아있는 거죠? ]

숨이 턱 막혔다.

이제야 뭔가 실마리가 풀려가는 느낌이다.

그래. 내가 기억에서 봤던 그 느낌.

허은정이 강제로 입을 맞추고 선생님이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건 연기가 아니었어.

정말 당황스러웠던 거야.

“형님들··· 시··· 시벌. 편지 내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은데요···”

ㅡ 뭐? 말도 안 돼

ㅡ 무슨 내용의 편진데

ㅡ 그냥 연애편지 같은 거 아냐?

ㅡ 뭔데 뭔데? 시발 궁금하다

ㅡ 빨리 읽어줘 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편지를 하나 집어올렸는데, 문득 눈에 띄는 편지가 하나 보였다.

나는 무심결에 그 편지를 먼저 집어 들었고.

편지를 펼치자마자 흠칫 놀라 바닥에 떨어트렸다.

“시발···”

멈춰있었던 고스트 박스에서 다시 한번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 치지익- 꺄아아악! 치지지익- 읽지마 치지지익- 끄아아아악! ]

동시에 벽에 걸려있던 액자들이, 내 상태와는 다르게 무심하게 떨어졌다.

챙그랑. 챙그랑.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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