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3
내 두 눈에 보이는 그것은 갸날픈 여자의 발.
핏기 하나 없는 여자의 맨발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문 반대편 벽에 바짝 붙어 소리쳤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형님들! 저거 누구세요!”
ㅡ 이 새끼 또 시작
ㅡ 뭘 보고 그러는 거임?
ㅡ 글쎄요
ㅡ 발자국 비슷한 소리 들린 것 같은데?
ㅡ 잉? ㅋㅋ 웬 발자국 소리
ㅡ 쉿! 그냥 감상 하셈. 우리 연우 연기하는 거
ㅡ ㅋㅋ 미션 시키면 매번 하는 건데 새삼스럽게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거 사람 아니지?
물론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확신의 이유는 있었다.
이 새벽에 학교를 찾아올 확률.
내가 있는 화장실 네 번째 칸을 곧장 찾아올 수 있는 확률.
무엇보다 작은 소리 하나도 크게 울려 퍼지는 이 고요한 학교에서.
닫혀있는 문의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똑. 똑. 똑.
“와아악! 시발! 사람 있어요! 딴 칸 들어가세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내가 있는 화장실 문 앞에 서서 고요한 정적만을 지켰다.
그리고 10초 후.
“와아아악! 누구시냐고요 시발! 사람 형님이세요!? 아님···”
밖에 있던 그 여성이 대답을 해왔다.
아니. 문을 잡아 뜯을 듯이 쳐댔다.
덜컥! 덜컥!
“와아아아아아악! 시바아아아아알!”
나는 발작을 일으키듯 화장실 안에서 몸부림쳤다.
그리고 빠르게 펌핑 되는 심장을 부여잡고.
내 옆에 서있는 플라스틱 빗자루를 무기 삼아 집어 들었다.
쫄지 말자.
내 몸에는 각종 아이템들이 잔뜩 둘러져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긴 해도, 허세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
“두루와! 두루와 봐! 시발! 나 무기 들고 있···”
하지만, 그 허세는 1초도 안 돼 꺾였다.
문이 더 세차게 흔들렸다.
덜컥! 덜컥! 덜컥!
“와아아아악! 시발! 죄송! 들어오지 마세요! 장난이에요!”
ㅡ 왁! 시발! 깜짝이야
ㅡ 누구야? 누가 문 흔드는 거야?
ㅡ 저 새끼가 발로 차고 있는 거 아냐?
ㅡ 원맨쇼 개 웃기넼ㅋㅋㅋ
ㅡ 영화 좀 봤냐? ㅋㅋ 뭘 두루와
ㅡ 보통 빗자루 들 때 저렇게 헤드 부분을 잡나?
ㅡ 상식이라는 수준을 벗어난 놈임
ㅡ 1초 만에 태세전환ㅋㅋ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뭘 해야 되지? 뭘 해야 되지?
맞다 시벌!
때마침 생각난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이템을 장착한 것만으로 안심하지 않았다.
맨날 당하기만 하는 그동안의 수모를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 달달 외운 기도문이었다.
나는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잡아 앞으로 내밀고 눈을 감았다.
“전능하신 하나님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오니 약속의 말씀처럼 마귀와 귀신들을 결박하시고 하나님의···”
덜컥! 덜컥! 덜컥! 덜컥!
“와아악! 제게서 추방하여 주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더러운 귀신아 떠나가라.”
나는 극한의 공포가 사무치는 그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기도문을 외웠다.
그렇게 3분이 넘는 기도문을 1/4쯤 읽었을 때.
갑자기 문밖의 소동이 멈췄다.
그 때문에 나 역시도 기도문을 읽다 말고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차박. 차박. 차박. 차박.
뭐야? 효과가 있는 건가?
그렇게 발자국 소리가 문에서 멀어지는가 싶더니 결국 사라졌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 장비들을 챙겼다.
손전등을 입에 물었고 플라스틱 빗자루 헤드 부분을 꽉 잡고 조심스레 문을.
아니. 허세를 잔뜩 장착한 채로 문을 확 열어젖히며 크게 소리쳤다.
“어디이서 나와 ㄱ새갸.”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빗자루로 위협하듯 휘익 휘익 저어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ㅡ 미친놈
ㅡ 빗자루 들고 뭐 하냐
ㅡ 그걸로 누굴 때리려고?
ㅡ 기세는 좋다. 근데 도대체 누구랑 싸움?
ㅡ 이 정도면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님?
ㅡ 항상 하던 연기한 거야 얘들아 ㅅㅂ
ㅡ 그러니까 그냥 그러려니 칭찬 좀 해줘
나는 채팅창을 읽자마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엥? 형님들. 방금 맨 발자국 소리 못 들었어요? 문 흔들리는 것도?”
ㅡ ㅇㅇ 그 기세로 다음 장소 ㄱ ㄱ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걸 아무도 못 봤다고?
아니. 카메라는 나를 향해 있었으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덜컥 거리는 소리는?
매일 같이 겪었던 상황이긴 했지만 답답함이 하늘을 찌른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워어어어! 시발! 혀··· 형님들! 이거 봐요 이거”
나는 카메라를 바닥에 비추었다.
화장실 바닥에는 맨 발바닥 자국이 문밖까지 이어져 있었다.
ㅡ 헐. 시발 뭐냐?
ㅡ 이럴 줄 알았냐? 그거 아까부터 있지 않았음?
ㅡ 없었던 것 같은데
ㅡ ㅇㅇ 뭐지?
ㅡ 저 넘 발자국 아님?
ㅡ ㄴㄴ 쟤는 신발을 신고 있잖아요
ㅡ 어라. 시발 진짜 뭐지 발자국?
이 화장실을 나가는 것조차 두렵다.
복도에 무언가가 기다렸다 확 튀어나올 것만 같다.
나는 카메라에 대고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하··· 시벌. 형님들. 집에 간다고 하면 당연히 안 보내주시겠죠?”
밖에서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역시 이럴 줄 알았다.
ㅡ 하늘이 널 보내줄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미션 준다. 그 발자국의 정체를 밝혀라 오만 원.
그래. 어차피 안 될 줄 알았다.
나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내 가슴을 추스르기 위해 십자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기다 멈춰 섰다.
“근데 마라탕 형님. 화장실은 몰라도 교실 복도는 목재로 되어있어서 발자국이 안 남아 있지 않을까요?”
말을 내뱉자마자 복도를 나왔다.
하지만 낡아 비틀어진 바닥 위에는 신기하게도 진흙을 밟은 것 같은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다리가 절로 후들거린다.
아니. 시발. 실화냐 이거.
ㅡ 대박 이거 뭐냐?
ㅡ 발 사이즈가 좀 작은데?
ㅡ 야 연우야 솔직히 말해라 너 누구 섭외했냐
ㅡ 알바 비 얼마 줬어? 발 예쁘게 생겼네
ㅡ 주작하지 말자. 둘리 꼴 나고 싶냐
“아니에요 형님들. 오늘 여기 공지도 안 하고 급하게 찾아온 거라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야. 그것보다.
이 여자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나는 발자국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발자국은 복도 끝까지 이어졌다.
나는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조심스럽게 그 발자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3학년 3반, 3학년 2반,
그리고 결국 끝에 멈춰 섰다.
“3학년 1반···?”
뭐야?
나는 다시 손전등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목에 걸린 십자가를 다시 들이밀며 문을 열어젖혔다.
“여ㄱ 이어냐 바자국 새꺄!”
ㅡ ㅅㅂ 뭐라는 거여
ㅡ 병신 같아. 차라리 말을 하지 마
ㅡ 그 와중에 욕만 발음이 정확함
ㅡ 혀 잘렸나
ㅡ 다음에는 헤드라이트를 사서 끼고 와라
ㅡ 침까지 흐르면 그냥 동네 바보인데
뿌연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교실.
온갖 쓰레기가 군데군데 널려있지만, 다른 곳과 달리 폐 책상들이 그대로였다.
그곳엔 마치 지정석인 듯 이름표가 각각의 책상에 붙어있었다.
김미경. 임경희. 오영숙. 신영미···
나는 책상에 붙어있는 이름을 천천히 훑어보다 어느 순간 멈칫거렸다.
자살 사건의 주인공 이름이 있었다.
“혀··· 형님들. 예전 사건의 여학생이 이 교실에서 공부를 했었나 봐요.”
ㅡ 레알?
ㅡ ㅅㅂ 그 얘기 하니까 소름 돋네
ㅡ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이름표을 비추던 손전등을 떼며 중얼거렸다.
“글쎄요 저도 잘··· 기사에 난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댓글도 있더라고요.”
사실이었다.
이곳을 찾아오기 전 검색을 하던 중.
수많은 댓글들이 그 사건 결과에 대한 찝찝함을 하소연했다.
[ 그 학교 남교사가 문제였대요. ]
[ 교장 인맥이 경찰도 못 건드릴 정도로 탄탄했다는데 ]
[ 남교사가 여학생들한테 습관적으로 찝쩍거렸대요. 저희 이모가 그 학교 출신임 ]
[ 그 학생들 자살한 거 아니에요. 다 조작임. ]
당최 무슨 얘기인지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물론 얼굴 없는 네티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저 폐가 탐방을 온 것이니까.
그나저나···
내 시선이 다시 바닥을 향했다.
발자국은 분명 이쪽 책상으로 향해 있었는데.
발자국이 뚝 끊겨 있다.
게다가 그 여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 갔지?
“형님. 발자국은 분명히 여기서 끊겼는데···”
나는 채팅창을 보고 말하면서도 계속 사방을 살폈다.
뭐야? 도대체?
왜 발자국이 여기서 떡하니 끊긴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닥에 엎드려 밑을 봤지만 서있는 다리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창문도 죄다 닫혀 있다.
내 눈에 들어오는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칠판 앞 탁자에 있는 출석부.
나는 조심스럽게 칠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출석부를 살폈다.
가로로 넓게 퍼진 까만 색상의 출석부가 색이 바래 누렇게 변해있다.
공포스러운 그 분위기 속에서도 호기심이 잔뜩 발동한 나는 무심결에 출석부를 펼쳤다.
아니. 만지려다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어우. 시벌. 이런 거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데 또 습관적으로···”
ㅡ 야 옛날 출석부 좀 보자
ㅡ 궁금하다 함 펼쳐봐
ㅡ 아니 여태까지 안 삭고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이상하네
ㅡ 종이라서 분명 썩고도 남을 텐데
ㅡ ㄴㄴ 안 썩을 수도 있죠
ㅡ 종이컵도 썩는 데 30년이나 걸리는데요 뭐
ㅡ 그런가
ㅡ 옛날 생각나네. 출석부 펼치고 이름 한 번 시원하게 불러봐라
나는 반사적으로 출석부를 펼쳤다.
그리고 앞에 있는 책상을 하나씩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김 미경! 임 경희! 오 영숙! 신 영미!”
한참을 그렇게 이름을 호창하고 있었을까.
나도 모르게 사건의 주인공이 섞인 이름도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허 은정!”
내 몸이 움찔거렸다.
어? 시발? 또?
내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흑백으로 물들어간다.
하나씩··· 하나씩···
내가 서있던 그 자리에 키가 훤칠한 한 남자가 서있다.
얼굴만 보아도 굉장히 남자다운 스타일이었다.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만이 아니었다.
앞에 앉은 모든 여 학생들이 그 남자에게 홀딱 반한 듯 빤히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남자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남자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수업은 여기까지! 다들 딴짓하지 말고 집에 조심히들 들어가! 알았지!”
모든 여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두 여학생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남자 선생님은 두 학생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한 학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 은정아. 선생님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잠깐 남을래?”
순간, 남은 여학생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이름을 불린 허은정의 얼굴을 째려보았다.
그때 내 정신을 번쩍 들리게 하는 소리가 귓가로 들어왔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