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폐공장. 4
임아린이 보고 있다.
내 발은 자동적으로 마네킹으로 향했다.
그것도 모자라 입에선 추가 버프 이펙트도 튀어나왔다.
“덤벼. 시벌넘...”
그러나 오래가진 못 했다.
다시 그 자리에 도착하자는 나는 어정쩡하게 섰다.
“어? 시... 시벌 형님들! 마네킹이...”
나는 빠르게 사방에 시선을 뿌렸다.
그 마네킹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쳐서 부러졌을 머리도 없다.
석고 파편 하나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ㅡ 야. 시발 어디 갔어?
ㅡ 이거 실화냐 ㄷㄷㄷ
ㅡ 잘못 본 거 아냐?
ㅡ 옘병. 나도 봤어. 그걸 못 볼 수가 없지!
ㅡ 내가 다 귀신한테 홀린 것 같은 기분이네
나는 가방에서 EMF 측정기를 꺼내 확인했다.
“이 무슨...”
램프는 겨우 1단계.
아니. 1단계도 채우지 못한 채로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뭐야 도대체?
귀신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기분이다.
끼익- 끼익-
바로 옆.
내가 확인하지 않은 또 깊은 안쪽 공간에서 상상력을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형의 관절 마디마디가 움직이는 인위적인 소리 같은.
나를 피해 도망가는 듯, 내 귀에서 점점 작아졌다.
공포를 이겨 내듯 버럭 소리쳤다.
“뭐야! 지금 나랑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내 목소리가 공장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메아리가 사라지고 기괴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싶었는데.
주작무새 누구 하나 잡아와 홀로 이 폐공장에서 저 소리를 들어 보게 하고 싶다.
이 휑한 폐 공장에.
계속해서 날 놀리듯 소리가 들려온다.
다리가 덜덜 떨린다.
하지만 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임아린이 보고 있으니까.
“저 시벌넘을 아주 그냥!”
나는 씩씩대듯 안 떨어지는 다리를 땅에서 뽑듯 걸음을 옮겼다.
[ 전설의고향만두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사장님. 거기 반대 방향인데
ㅡ ㅋㅋ 씩씩대더니 왜 입구로 나가?
ㅡ 시발. 너무 자연스러워서 깜빡 속았네
ㅡ 기싸움에서 진 거냐? 개쫄보녀석
ㅡ 그래. 그대로 그냥 집으로 빤스런 해라. 하꼬로 영원히 살자
나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하꼬로 살라고?
ㅡ 우리 사장님 하꼬 아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임아린의 버프가 한 번 더 시전 되었다.
“형님들 일보후퇴 십보전진이라고...”
ㅡ 개소리하지 말고 아까 그 마네킹 찾아내면 오십만 원
“아이고! 우리 마라탕 형님! 하지만 연우는 만보 전진입니드아!“
ㅡ ㅡ..ㅡ;;;
ㅡ 만보 후퇴겠지 이 새꺄
ㅡ 이 새끼 점점 주둥이스킬만 느네
ㅡ ㄷㄷㄷ 그나저나 미션 어케 깸?
ㅡ 영원히 끝나지 않는 미션이 될 수도
나는 다시 왔던 길을 성큼성큼 밟아 걸어갔다.
막상 대답은 했지만, 어떻게 찾아 내지?
아니. 찾아내는 것도 문제지만, 찾아도 문제다.
시발 마네킹 새끼...
살다 살다 마네킹한테 욕할 줄은 몰랐다.
솔직히 개청자라도 한 명 찾아와줬으면 덜 무섭기라도 할 것 같은데...
나는 도서관 책장처럼 좌우로 나열돼 있는 곳을 걸으며 손전등을 조심스럽게 비추어봤다.
그렇게 벽들을 양옆으로 끼고 3분을 걸었을까.
“시... 시발... 이건 또 뭐야?”
나는 경악스러움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확 트인 공간이었다.
게다가 팔 다리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완전체의 마네킹들로 가득했다.
발레를 추듯 한 동작 동작의 모션을 취하고 있는 마네킹들.
아주 다양한 자세로 다닥다닥 붙어서 있다.
그런데 제일 소름 끼치는 건.
마네킹들이 일제히 등을 돌리고 서 있다는 거다.
마치 숨바꼭질을 위해 준비해놓은 듯한 모습들이었다.
“하아... 시발 형님들...”
ㅡ 와... 씨발 미쳤다
ㅡ 이거 앞에 가서 얼굴 하나씩 다 확인해야 됨?
ㅡ 진짜 역대급 미션 돼버렸네... ㄷㄷ
ㅡ 심지어 생긴 것도 비슷해
ㅡ 이 새끼 이런 걸 언제 다 준비한 거냐?
ㅡ 가발까지 똑같다 헐...
나는 손전등으로 마네킹을 하나하나씩 비추기 시작했다.
혹시나 목이 부러진 마네킹이 없는지.
그 마네킹과 체형도 비슷하고 심지어 빨간 가발 쓴 것들도 부지기수.
정말 산 넘어 산이다.
나는 하는 수없이 마네킹들의 얼굴을 모두 확인하기로 했다.
눈 대충으로 50여 구는 돼 보였는데.
시발 진짜, 금방이라도 마네킹들의 홱 돌아 나를 쳐다볼 것 같은 느낌에 지릴 것 같다.
“형님들, 기저귀 준비하세요.”
나는 곧 움직였고, 일일이 마네킹의 앞으로 다가가 소름 끼치는 얼굴을 비추었다.
손전등 빛에 얼굴에 음영이 깔리면서 눈이 움푹 들어가게 보인다.
그렇게 하나, 둘, 셋...
마네킹을 비추며 지나칠 때마다 내 인상은 점점 더 찌푸려졌다.
어떤 마네킹은 코만 길고, 어떤 마네킹은 얼굴이 길고.
또 지금 보이는 마네킹은 누가 립스틱을 발라 놓은 것처럼 입이 새빨갛다.
나는 급하게 몸을 돌리며 소리가 난 곳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시발 뭐야!?”
마네킹 사이로 뭔가 검음 물체가 지나간 것 같다.
이번엔 정 반대쪽에서.
“와아악! 시벌넘아!”
이번엔 마네킹에 잔뜩 가려진 쪽에서 들린다.
궁금하지 않다. 궁금하지 않다.
궁금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 미션도 그렇고, 이 상황도 끝나지 않는다.
몸을 타고 오르는 소름이 아지랑이처럼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거기에 더해 식은땀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연우야, 임아린이 보고 있다.
나는 다시금 옭아매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더 큰 소리를 잔뜩 질러대며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향했다.
“뭐야. 야! 이 새꺄! 시벌! 거기 숨었냐! 와아아아악! 아니네. 어디냐!”
ㅡ 사장님 왼쪽! 아니! 오른쪽!
ㅡ 고라니인 줄 알았네. 소리 좀 그만 질러 새꺄
ㅡ 화면전환 너무 빨라서 어지럽다!
ㅡ 개색갸. 내 말 안 들리냐!
ㅡ 롤러코스터 탄 거 같네... 웩웩
ㅡ 고양이 아님?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사방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내 몸과 시선이 숨 가쁘게 틀어졌다.
머리에 두통이 찾아옴과 동시에 기어코 환청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 히히히히 ]
나는 도저히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을 더 빨리 움직여 마네킹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소리를 쫓기 시작했다.
“누구야! 장난질하지 말고 나와 이 새꺄!”
“시발! 거기냐!”
그렇게 5분여간을 사정없이 마네킹 사이를 뛰었을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결국 한자리에 멈춰 섰다.
구석진 모퉁이 부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마네킹 하나만 그 자리에 동떨어져 서 있었다.
“헉억. 헉억. 형님들. 헉억. 이 마네킹...”
나는 손전등을 들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마네킹이 앞으로 향했다.
“워 시벌! 시발 마네킹! 형님들! 형님들! 미션 성공?”
나는 주춤거리며 마네킹이 잘 보이도록 카메라에 담았다.
섬네일을 같이 찍었던 그 마네킹이었다.
샌딩 및 도장 공정이 돼있지 않은 거칠거칠함.
그리고 비이상적인 몸매에 악수하는 것 같이 내민 손까지.
나는 그 모습을 차례대로 비췄다.
아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근데 시벌 왜 목이...”
ㅡ 사장님 미션실패!
ㅡ ㅇㅇ 실패. 목이 붙어 있으니까
ㅡ 근데 이 마네킹 맞는 것 같은데?
ㅡ 시발. 귀신들린 게 분명하다니까!!!
ㅡ 목에 손대면 툭 하고 떨어지는 거 아니냐 설마
이 마네킹이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목을 건드려봤지만.
툭.
신기하게도 그 마네킹의 목은 강력 본드로 붙여놓은 듯 미동도 없었다.
“시벌... 도대체 뭐야 이거...”
눈 씻고 다시 봐도 분명 아까 그 마네킹이 맞았다.
하지만 목이 멀쩡하다.
누군가 다시 얼굴을 올려놨다고 가정해도 목은 균열 없이 말끔하다.
아니 시벌... 진짜 이 마네킹이 맞는 것 같은데?
나는 다급하게 EMF 측정기를 꺼냈고, 전원을 켰다.
램프는 순식간에 3단계를 치솟았다.
“이런 씨...”
그런데...
램프는 왔다 갔다 단계의 변동이 심했다.
왼쪽으로 조금 움직여도 2단계, 오른쪽으로 움직여도 2단계.
심지어 밑으로 내렸을 때는 1단계까지 내려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네킹 머리 쪽으로 EMF 측정기를 서서히 올렸다.
놀랍게도 램프는 3단계를 넘어... 3단계 반. 위로 올리면 올릴수록 4단계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장 쪽으로 높이 들고 내 시선이 함께 따라가는데.
덜컥. 덜컥.
천장을 바치고 있는 철 뼈대 한 쪽이 삐걱대는 게 보였다.
“어. 어...?”
그 때문에 천장 뼈대를 지지하고 있는 철근들이 녹을 뿌려대며 함께 흔들린다.
덜컹! 덜컹!
어? 무너진다.
위험하다.
방향으로 보아하니 모두 내 쪽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몸을 뺐다.
아니.
털썩.
무언가에 걸려 그 자리에 넘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걸려 넘어진 느낌이 아니다.
차가운 족쇄가 채워진 느낌이다.
고개를 재빨리 돌려 본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와아아아악! 시발! 이거 놔! 이거 놔! 미친놈아!”
내 발목을 마네킹이 붙잡고 쓰러져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나를 질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자기가 있는 구석진 곳으로.
스스스슥.
미친...
나는 엄청난 악력에 끌려가다시피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위태위태하게 무너질 듯 녹을 토해내는 천장을 노려봤다.
일부러 저곳으로 유인하는 것 같다.
끌려가면 안 된다.
천장이 날 그대로 덮친다.
나는 발로 마네킹의 얼굴을 다급하게 걷어찼지만, 어림없었다.
석고가 아닌 마치 돌덩이를 두드리듯 마네킹은 미동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시발 형님들! 살려주세요! 천장에 지붕이... 지붕이!”
ㅡ 사장님 카메라 잘 안 보여요!
ㅡ 어? 보인다! 근데 연우 다리가 마네킹 손에...
ㅡ 전설의 고향 놀이 중?
ㅡ ㅋㅋ 내 다리 내놔 현실판찍냐?
ㅡ 야... 뭐해? 연기 고만 해. 그러다 진짜 사고 나겠다
ㅡ 미션 끝났자나 왜캐 오바함?
키이이익- 삐걱. 삐걱.
지금 내 발을 잡은 마네킹 저놈의 손이 안 떨어진다고!
어? 떨어진다. 떨어진다.
저 철 뼈 골조들이 쏟아져 그대로 맞는다면 즉사다.
아무리 내가 몸이 건강해졌다고 해도 저게 관통 당하면 그냥 죽는거다.
침착하자. 연우야 침착해.
차분하게 이 상황을 빠져나가는 거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안 된다고.
나는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 마네킹의 몸을 똑바로 쳐다봤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길게 뻗은 팔.
나는 본능적으로 일부러 마네킹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내 두 다리로 마네킹의 얼굴 감쌌다.
내 동작은 빛처럼 빨랐다.
오른쪽 다리를 접어 왼쪽 무릎 뒤에 걸고서, 내 두 다리 사이에 머리를 박히게 두고, 마네킹 오른팔을 있는 힘껏 내 가슴팍으로 꺾었다.
“좀 놔라 이 시발로마아아아아!”
우두두둑!
마네킹의 팔에서 뼈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ㅡ 트라잉앵글 초크...
ㅡ 이젠 하다 하다 마네킹한테 암바를
ㅡ 근데 왜 마네킹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