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63화 (63/225)

텅 빈 폐공장. 3

예쁘장한 한 여성이 하이힐과 속옷만 입고 등을 보이며 서있다.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아서 꼰 모습.

즉, 여자들이 포니테일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몸을 고정한 채 그 자리에서 멈춰있었다.

‘······?’

옆에 있던 두 사람이 여성의 몸에 석고를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의 몸으로 마네킹 모형을 본 뜨는 중이구나.’

마치 빠르게 감기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서웠다.

더불어 어렸을 적부터 마네킹을 보며 드는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또한 확신할 수 있었다.

꿈에서 막내딸에게 선물 받았던 능력을 말이다.

사이코메트리 현상.

그때 알림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 인마! 정신 차려. 왜 갑자기 멍 때려

“오우? 아... 형님들!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ㅡ 생각? 상상이 아니고?

ㅡ 너 마네킹 발 만지면서 히죽대던데

ㅡ 혹시 발 페티시 같은 거 있냐?

ㅡ 안쓰러워서 가만히 뒀다. 마네킹 발이라도 실컷 만지라고

ㅡ 쯧쯧.... 안 되겠네

“무슨 그런 농담을 하십니까! 형님. 마네킹이 무슨 느낌이 난다고...”

[ 선녀와누워꾼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정말? 여자 마네킹 포옹하기 2만 원

마침 앞에는 여자 마네킹이 서있었다.

왠지 모르게 다 타다만 옷까지 입혀져 있는 모습이라 느낌이 묘했다.

“형님들... 저 그런 놈 아니라니까요... 자 보세요. 이건 그냥 마네킹일 뿐인데...”

곧장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마네킹을 안았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고 으쓱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자.

[ 그곳이알고섯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그럼 여자 마네킹 가슴에 손 얹기 3만 원

이 시벌 새끼가...

날 이상한 놈으로 만들려는 거야 뭐야?

하지만 이미 내 손은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다른 미션에 비하면 아주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 마네킹 가슴에 감정 없이 손을 갖다 댔다.

[ 그곳이알고섯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ㅡ 30초 더. 만 원 추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미션을 하고 있던 도중.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편집하면서 분명히 임아린이 볼 텐데...

내 이런 행동을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을 하자마자 갑자기 내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후원창이 멈추자마자 번개같은 속도로 마네킹에서 손을 뗐다.

ㅡ 뭐 하냐? 갑자기 숨차? ㅋㅋ

ㅡ 우리 연우 좋았어요?

ㅡ 이 새끼 손 모양이 왜...

ㅡ 가슴에 얹으라니까 받치고 앉았네. 이 변태색갸

ㅡ 순간 움켜쥔 것 같은데

ㅡ 여기 팔콘티비인가요?

나는 고개를 다시 홱 돌아보며 얘기했다.

“무슨 소리예요. 형님. 마네킹에 먼지가 많아서 그런 건데...”

그동안 쌓인 먼지와 불에 그을린 흔적에 내 손바닥 자국이 가슴에 선명하게 찍혀 있다.

“크흠!”

나는 그 손을 털어내고 다시금 주위를 살폈다.

“형님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것 좀 보세요.”

마네킹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팔, 다리 그리고 모든 부분이 까맣게 그을린 것도 모자라 끔찍하게 녹아 흘러내렸다.

역시나 화재로 인한 흔적들 같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한 마네킹 앞에서 시선을 멈췄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모든 마네킹이 하나같이 화재로 몸이 엉망이 되어있는데.

저 마네킹 하나만 몸이 유일하게 멀쩡하다.

정면을 향해 꼿꼿이 서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데다, 손은 악수를 청하듯 오른손을 내밀고 있다.

더 신기한 건 빨간 가발까지 멀쩡하게 쓰여있다.

뭐지?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천천히 그 마네킹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손전등으로 비추며 중얼거렸다.

“형님들... 이 마네킹은 왜 이렇게 멀쩡한 거죠?”

ㅡ 헐 뭐지?

ㅡ 얘는 특수 재질로 만들어졌나?

ㅡ ㄴㄴ 그래도 최소한 그을린 자국은 있어야지

ㅡ 맞아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타는데 가발도 멀쩡하잖아

ㅡ 개 신기하네

ㅡ 심지어 몸도 약간 다른 것 같은데

ㅡ 그런가? 난 모르겠다

또 특이한 것은 이 마네킹만 유일하게 샌딩 및 도장 공정이 안 돼있다.

즉, 거칠거칠한 표면을 부드럽게 작업하고, 색깔을 입히는 작업이 안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비이상적인 몸매를 하고 있다.

팔, 다리, 배.

게다가 손은 왜 이렇게 만들어놨는지, 손톱을 안 자른 것처럼 기다랗게 튀어나와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여기에 혼자 놔둔 거 보면...

이거 혹시 불량품인 걸까?

휘이이잉-

세찬 가을바람이 구멍이 뚫린 창문과 천장 사이로 잔뜩 들이닥친다.

천장에 매달려있던 마네킹들이 일제히 출렁였다.

삐걱. 삐걱.

“워어어어! 깜짝이야!”

잠시 몸이 잔뜩 굳어 이리저리 살폈다.

마치 시체의 일부분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광경이다.

나는 혹시 무언가가 튀어나오진 않는지, 걸려있던 마네킹이 덮치진 않는지.

잔뜩 경계를 해댔다.

그리고 결국.

다시 잠잠해지는 광경에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하... 시벌... 형님들 진짜 여기 미치겠네요.”

경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3분간을 이리저리 눈치 보고 나서야, 다시 빨간 가발의 마네킹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시 바라본 마네킹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형님들. 이 마네킹 아까 오른손 내밀고 있지 않았나요?”

손이 바뀌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아까 오른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왼손을 내밀고 있다.

ㅡ 무슨 소리야 왼손이었는데

ㅡ ㅇㅇ 나도 왼손으로 봤는데

ㅡ 이 새끼 잔뜩 쫄아가지고 괜히 의심하냐?

ㅡ 요즘 들어 의심이 부쩍 는 것 같다 너

ㅡ 그것도 후원받기 위한 큰 그림에 일부냐

내가 착각한 건가.

스읍... 아닌 것 같은데...

[ 안토니오밥다됐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 그 마네킹이랑 악수해 봐. 섬네일 하나 찍자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형님들. 지금 방송으로 봐서 현장감이 잘 안 오실 텐데. 이거 눈앞에서 보면 진짜 소름 끼쳐요. 그리고 이런 물건 함부로 만지면...”

괜한 악수라도 하려고 손을 내밀었다간.

콱! 하고 내 손목을 잡힐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나는 등을 돌려 이리저리 살폈다.

“형님들. 차라리 다른 마네킹을...”

ㅡ 그 마네킹이랑 악수하면서 섬네일 찍으면 삼만 원

내 손은 어느샌가 그 마네킹 어깨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 브이까지 만들고 싱긋 웃으며 카메라를 쳐다봤다.

“기이임치! 어떻게 형님들. 얼굴 잘 나오나요? 다 찍으면 후원창으로 말씀 좀!”

ㅡ 네 반응속도는 언제 봐도 소름 돋는다

ㅡ 금빛섬광 ㄷㄷ

ㅡ 핸드폰 시계 진짜 잠깐 봤는데 벌써 포즈 잡고 있네

ㅡ 후원이라면 똥도 먹을 새끼다 저거

ㅡ 에이. 그건 선 넘었지

ㅡ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가능할 것 같기도

그렇게 나는 섬네일을 찍기 위해 마네킹에 손을 잡았다.

악수하는 모습이 잡힐 수 있게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을 길게 뻗었고.

1초... 2초... 5초.

시청자들이 섬네일 컷을 저장할 때까지 기다렸다.

분명히 채팅창은 열심히 올라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후원창은 울리지 않는다.

“형님들? 다 찍으셨어요? 후원 창으로 얘기 좀! 응? 마이크 꺼졌나? 안 들리세요? 아! 아!”

나는 채팅창을 확인했다.

소란스러운 채팅창에 미간을 찌푸려졌다.

ㅡ 어? 저 마네킹 얼굴...

ㅡ 시발... 나만 본거 아니지...

ㅡ 방금 얼굴 움직인 거 아닌가?

ㅡ 뭔데요? 난 못 봄

ㅡ 마네킹 얼굴이 스스로 움직여서 연우 쪽을 향함

ㅡ 잉? 뭔 개소리야. 그게 가능?

무슨 소리인가 싶어 마네킹을 쳐다봤다.

하지만 마네킹의 그 표정 그대로 앞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멀쩡하잖아요. 형님들 하... 우리 형님들 또 시작이시네. 이제 연우 그런 거 안 속으니까 이제 그런 장난 좀 그만 치세...”

삐걱.

어렸을 적 아기들이 가지고 놀던 공주 인형.

그 인형 목이 억지로 뒤틀리며 나는 인위적인 소리가 내 옆자리에서 들려왔다.

내 목도 슬로모션으로 마네킹으로 향했다.

“와아아아아악! 시바아알!”

옆으로 꺾인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시바아아아알!”

나는 바로 뛰쳐나가려 했지만, 악수를 한 손이 떨어지질 않아 도망가질 못 하고 발버둥 쳤다.

“뭐야! 뭐야! 뭐야! 시바아아알! 이거 놔! 놔!”

내 손과 함께 마네킹의 손에 석고로 빚어 굳힌 것처럼.

마네킹에게 잡혀 꼼짝 못했다.

마네킹의 무게를 생각해 보면 내 손에 끌려갔어야 하는데, 전봇대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형님들! 형님들! 마네킹이 손을!”

나는 손으로 본능적으로 마네킹의 머리를 후려쳤다.

“시바아알!”

빡!

마네킹의 머리가 분리되며 내 손을 잡은 힘이 느슨해졌고.

그 틈을 타 나는 공장 입구로 죽어라 달렸다.

ㅡ 씨발 뭐냐 저거

ㅡ 당수치기

ㅡ 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ㅡ 그치? 고개 움직인 것 맞지? 씨발

ㅡ 마네킹에 귀신들린 거야 뭐야?

ㅡ 도대체 뭐 땜에 난리야? 난 못 봤는데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헉... 헉. 시벌... 저거 도대체 뭐야. 허억. 허억... 배터리 들어 가 있나. 허억... 허억...”

마네킹 목이 스스로 움직였다.

그것도 내가 보는 눈앞에서.

처음 고스트 박스에서 마주쳤던 그 영가의 마지막 말이 또 떠오른다.

[ 너여기서죽을거야 무조건 ]

시벌... 어떡하지?

그 말을 반증하듯 내게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다.

“허억... 허억...”

아무래도 더 이상 진행하기엔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

나는 핸드폰에 슬쩍 대고 말했다.

“마라탕 형님. 호... 혹시 장소를 변경해도 될까요? 여기 너무 위험합니다 형님.”

ㅡ 남자가 한 번 시작했으면 끝장 봐야지.

하... 당연한 반응이었다.

가뜩이나 오늘 큰 손 형님을 위한 이벤트 방송을 한다고 깝죽거려서.

시벌 어떡하지?

내가 지금 그 마네킹을 다시 보러 들어간다는 것은.

다시 마네킹을 찾아가는 것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지옥의 입구로 향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는다.

ㅡ 야 시청자 많다. 약한 모습 보이지 마라

나는 시청자 수를 슬쩍 확인했다.

현재 시청자 수. 563명.

시벌. 언제 이렇게까지 들어온 거야?

기분이 좋아야 할 그 상황에도 내 몸은 여전했다.

다리는 개다리 춤추듯 떨어댔고, 심장은 미치게 펌프질 해대며 전신에 피를 보낸다.

“형님들 하... 몸이 떨려서... 미치겠네...”

진심이었다.

[ 닭큐멘터리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난앓아요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모르는개산책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하... 형님들 뜻은 알겠는데... 도저히 용기가... 이렇게 대놓고 물리적 현상은 처음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

그저 무기력하게 자리에서 숨만 고르고 있다.

그 때문에 채팅창의 분위기도 어색해지며,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ㅡ 야 ㅅㅂ 그럼 방송 접어

ㅡ 이게 사람 불러놓고 뭐 하는 거야?

ㅡ 이 유트버 원래 이런가요?

ㅡ ㄴㄴ 원래 안 그럼

ㅡ 에라이 겁쟁이 새끼! 이래가지고 돈 벌겠냐?

ㅡ 이 새끼 지금 단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임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만 숙였다.

“형님들 그럼...”

[ 임아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사장님! 파이팅입니다아아아아아!

임아린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은은하게 풍겨오던 비누냄새와 샴푸 냄새도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다.

순간, 내 몸의 에너지가 화산 폭발 하듯 넘쳐흘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게임 속 레벨 99짜리 하나밖에 없는 전설의 갑옷이라도 껴입은 듯, 반사적으로 어깨가 잔뜩 벌어졌다.

그리고 자신감 HP가 만땅이 된 모습으로, 마네킹이 있는 방향을 검지로 가리키며 건물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이 시벌! 귀신 새끼!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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