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61화 (61/225)

텅 빈 폐공장. 1

나는 설렘 반, 기대반의 마음으로 그 두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

“워어어! 뭐야?”

내 앞이 번쩍함과 동시에 꿈에서 깨버렸다.

벨 소리가 나를 깨웠다.

수신. 박필준.

아니. 이 자식은 왜 주말 아침부터 전화를...

나는 선물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야. 박필준 너 왜 주말 아침부터 전화를...”

그런데 오히려 박필준이 더 큰소리로 내게 답했다.

“야 이 미친놈아. 오늘 금요일이야. 학교 안 오냐?”

나는 누워있던 자리에서 점프 뛰듯 일어났다.

“뭐!?”

시간을 확인하자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금요일. 현재 시각 9 : 20분.

전화기 너머로 킥킥 웃어대는 소리와 함께 협박 아닌 협박이 전해졌다.

“넌 오늘 담임한테 뒤졌다. 킥킥.”

“이런 시벌...”

뚝.

좃댔다.

세상모르고 자버렸다.

엄마도 일찍이 출근하시는 바람에 집이 조용해서 더 몰랐다.

방송 날을 하루 앞당겨 진행했다는 걸 깜빡했다.

나는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숨도 쉬지 않고 학교로 뛰었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교무실로 직행했다.

드르르륵.

담임선생님이 아주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아픈 척, 불쌍한 척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서... 선생님.”

선생님이 나를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의자를 내어주었다.

“앉아.”

나는 한 번에 앉아도 될 의자를 다리도 절어가며 천천히 앉았다.

“죄송합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아픈 척을 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날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씩 웃었다.

뭐지? 저 웃음. 불길하다.

박필준 놈이 고자질이라도 한 걸까?

“멀쩡한 몸이 갑자기 왜? 귀신한테 빙의되기라도 한 거니?”

“······”

어떻게 알고 계신 거지.

역시 박필준 이 자식...

나는 내 비밀을 꿰뚫렸다는 사실과, 아픈 척이 모두 쓸모 없어졌다는 생각에.

나는 더욱 바른 자세로 앉으며 입을 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더니 방송국 홈페이지에 있는 내 영상을 틀어주었다.

[ 시벌. 이것들 도대체 뭐야. 형님들... 시바! 미친 벌레 새끼들아! ]

그것은 불과, 내가 몇 시간 전에 선녀보살님과 함께 있었던 흉가 풀 영상이었다.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이때는 아주 쌩쌩했네...?”

선생님이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아니. 입만 웃고 있다.

눈썹은 잔뜩 올라가 있는 데다가 몸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 정도면 소금. 아니. 핑계가 소용없을 것 같았다.

시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었고.

털썩!

그저 빌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게 아니고...”

선생님은 나의 빛보다 빠른 대처를 귀엽게 봐주셨는지 나를 일으키며 얘기했다.

“연우 너. 2학기 중간고사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아. 네...”

사실 그것조차도 깜빡하고 있었다.

요즘 내 머릿속엔 온통 폐가, 흉가, 임아린, 유트브 편집 등등.

온통 방송 생각뿐이었으니까.

“너 방송하는 건 말리지 않겠다만,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던 필준이랑 어울려 다니더니 공부도 안 하고 말이야.”

나는 그래도 조금만 집중한다면 평균 이상은.

아니. 그 이상도 해낼 수 있는 머리를 가졌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는.

돈... 엄마... 행복...

나는 웃음기를 제외한 얼굴로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이 한참 나를 벙찐 모습으로 바라봤다.

곧이어 출석부가 내 머리로 날아왔다.

퍽!

“40명 중 35등까지 떨어진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이 녀석아!”

“시정하겠습니다.”

선생님이 프린터 물을 내밀었다.

“그거 수학 중간고사에 나올 문제들 간추려 놓은 건데, 반 아이들한테도 미리 줬으니까 그것만 달달달 외우고 풀어. 다른 과목은 몰라도 담임 과목은 제대로 해야지.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제일 취약한 과목이 수학인데...

하필이면 그 수학을 우리 담임선생님이 가르친다.

하...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어쩌랴. 해야지. 해야지.

고등학교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열심히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둬야지.

“······네.“

대답을 하는 듯 마는 듯 선생님이 건네주는 프린터 물을 받았다.

아니 프린터 물과 선생님의 손을 겹쳐 잡았을 때였다.

순간, 내 몸이 움찔거렸다.

어? 뭐야?

몸에 마치 전기라도 흐른 것 같았다.

그리고 번쩍하는 느낌과 동시에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1번에 4번... 2번에 2번... 3번에 1번... 4번에 5번.

내가 보았던 건 분명 문제지였다.

그것도 방금 선생님이 건네준 문제지와 똑같은.

다만, 거기엔 문제의 정답이 노골적으로 쓰여 있었다.

정답지 같았다.

그 때문에 나는 그 동작에서 멈춰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따악!

선생님의 꿀밤을 한 대 더 맞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알았어! 몰랐어! 똑바로 대답 안 해?”

“아악! 네. 네네!”

나는 멍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교무실을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멈춰세웠다.

“연우야.”

“네?”

선생님이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내게 물었다.

“근데 너 영상 찍는 거 그거 다 사실이니? 연출한 거 아니야?”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형님. 아니. 선생님. 그거 ‘찐’ 리얼입니다.”

***

어느샌가 수업이 다 끝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곧장 책상에 앉았다.

아까 선생님과의 접촉 후, 영상들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생생했다.

생소한 경험이라서 더욱더 잊히지 않는 걸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생님에게 받은 문제지에 볼펜을 가져다 댔다.

스스슥. 스스슥. 스스슥.

난 그 프린터 물에 답을 일일이 적었다.

마치 답을 보고 적는 것처럼.

분명 처음 보는 문제인데도 풀었던 문제처럼 막힘없이 풀어(?) 갔다.

그렇게 50개의 문항을 단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다 끝내고 나서야.

정답을 확인해 봤다.

나는 책상을 탁! 치며 소리쳤다.

“시벌! 난 원래 천재였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갑자기 머리가 좋아졌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만, 그것보다 신기한 건...

만진 대상의 기억이 영상처럼 흘러들어온다는 것.

그것이 메인이자 베스트였다.

나는 손을 턱에 괴고 또 한쪽 손가락으론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순간, 오늘 늦잠까지 자면서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설마?

“막내딸이 마지막에 선물해 주려 던게 혹시...”

확실하진 않지만,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능력을 뭘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일단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되었다.

수학은 무조건 100점이다. 시벌.

그나저나 남은 시간 동안 다른 과목 공부도 좀 해야 되겠네.

생각보다 중간고사는 많이 남지 않았다.

해봐야 다음 주.

나는 짧게 결심하고 바로 방송을 켰다.

휴방 공지를 할 겸 소통을 하기 위해서였다.

[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귀신집에히터틀기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ㅡ 오 웬일이냐? 방송하려고?

ㅡ 돈미새놈 요즘 돈독 제대로 들었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들. 저 다음 주가 바로 중간고사라 공부해야 합니다. 그 전에 방송 못할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려고요.”

ㅡ 공부가 인생에 다는 아니다

ㅡ 분명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것이야

ㅡ 때를 놓치면 후회하는 아주 중요한 그것

ㅡ 그게 너에겐 방송이겠지

ㅡ ㅇㅇ 인정

“저도 방송을 하고 싶긴 한데 어쩔 수가...”

그 순간.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나도 요번 주말 밖에 시간이 없는데. 월요일부터 출장 땜에 바빠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큰손 형님이 출장을 간다고?

그동안 나의 방송에 거의 70~80프로 후원금을 담당해 주시던 중요한 VIP 시청자이시다.

“형님 어디 가시는데요?”

ㅡ 해외출장

ㅡ 헐. 역시 클라스 보통이 아니었어

ㅡ 혹시 재벌 3세?

ㅡ 비제이 새끼 놀란 거 봐라

ㅡ 귀신 본 줄 알았네

내가 물었다.

“그... 그럼 언제 오시나요 형님.”

ㅡ 모르겠다. 당분간은 없을 듯

ㅡ 저 말은 방송을 못 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

ㅡ ㅇㅇ

ㅡ 좃댔다 정연우 어떡하냐

ㅡ 초조하겠다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하시는 일 꼭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건강하게 돌아오십쇼.”

ㅡ 오... 포커페이스?

ㅡ 아무렇지 않아?

ㅡ 진짜 공부할 생각인가 본데

그래. 일단은 공부가 먼저다.

요즘 방송에 너무 신경이 쏠려서 공부를 소홀히 했었다.

35등이면 많이도 떨어졌네.

무려 5등이나 떨어졌다.

적어도 박필준(만년 40등)과 나와의 클래스 차이는 보여줘야지.

나는 아쉬운 대로 시청자들에게 말을 건네고 방송을 종료했다.

“형님들. 저 진짜 공부 좀 하고 돌아올게요. 뿅!”

[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현재 시각 11시 30분.

시골길 하얀 아스팔트를 따라 걷고 있었는데.

큰 나무들이 양쪽에 서서 을씨년스럽게 뜬 달을 점점 시야에서 가려대고 있었다.

“후우... 후우...”

그렇게 10분쯤 더 걸었을까.

조심스럽게 방송을 켰다.

“연이루! 형님들!”

ㅡ 4시간 만에?

ㅡ 이런 미친놈 결국 이럴 줄

ㅡ 공부한다더니 4시간 한다는 거였어?

ㅡ 아니지. 여기까지 왔으면 해봐야 1~2시간 했다는 건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형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바람 좀 쐬러 나왔어요”

나는 빠르게 시청자목록을 살폈다.

그리고 시청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방송을 킨 건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나는 막 들어온 큰 손 형님께 폴더 인사를 올렸다.

“형니이임! 오셨습니까! 이 연우가 마라탕 형님 출장 가시기 전에 꿀잼 드리려고 없는 시간 짜내어서 방송을 켰습니다아아아아!”

ㅡ ?

ㅡ 저 새끼 좀 전에 그냥 바람 쐬러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

ㅡ 맞는 말이긴 한데

ㅡ 야. 우리는 안중에도 없냐. 개색갸

ㅡ 후원 대우 차이 ㅅㅂㄹㅁ

ㅡ 그래도 개꿀이네 오늘도 방송 보니까

ㅡ 그건 인정

ㅡ 그래서 오늘은 어디냐

나는 카메라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암흑에 덮인 큰 공장 입구에 갖다 비추었다.

오랫동안 닫혀있었는지 입구 팻말이 다 낡아 부서졌다.

뿌옇게 내려앉은 먼지.

게다가 벽돌로 만들어진 문은 자연재해 때문인지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인지 공장 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더 싸늘해 보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형님들. 오늘 폐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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