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59화 (59/225)

피 흘리는 전원주택. 8

“워어! 뭐라고요 선생님?”

손목을 잡은 그 악력에 놀랐다.

여자의 힘이 아니다.

더 놀라운 것은 피부도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키햐아아아악! 내 딸. 어디로 데려갔어... 데리고 와. 데리고 와!“

선녀보살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목소리조차도 쇠가 갈리는 음성으로 바뀌었다.

고스트 박스에서 들었던 음성과 매우 흡사했다.

“다 너 때문이야! 너도 죽어!”

“저 때문이라뇨! 저...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ㅡ 시발. 뭐지? 엄마 빙의된 건가?

ㅡ 소금이라도 뿌려봐! 아. 옘병 요리용이지

ㅡ 빙의 이거 원래 이런 거야? 표정 너무 살벌하네

ㅡ 야. 내 여자 몸에서 손 안 떼? 뒤진다

ㅡ 선녀누나 어떻게 되면 너도 귀신 되는 겨!

시벌. 이걸 어쩌지.

놀라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순간.

TV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퇴마 프로그램의 한 장면.

무당이 빙의가 된 사람을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달래는 장면을.

나는 자동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혹시.... 막내딸, 은정이 어머니이신가요?”

선녀보살님은 한층 더 날카롭게 변한 눈을 치켜뜨며 나를 홱 째려보았다.

“그래!”

눈이 부릅떠진다.

엄마가 빙의된 건가?

“야 이 년, 아니 어머니! 이제 그만 정신 차려 보세요! 남은 두 딸을 위해서라도 빨리 정신 차리...”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멈칫거렸다.

아까 선녀보살님이 말씀하셨던 그 말이 떠올랐다.

[ 엄마는 살인귀에게 빙의가 됐던 거고 허수아비처럼 움직였던 거예요. ]

그것 때문일까.

나는 선녀보살님에게 빙의되어 있는 저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세 딸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맞을까?

40대의 중년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괴상했다.

마치 쇠 갈리는 목소리가 나이 든 할머니를 연상케한다.

한참을 지켜보던 나는 결국 조심스럽게 내 머릿속의 말을 뱉어버렸다.

“너... 엄마 아니지...?”

그 순간.

선녀보살님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왠지 모를 살기가 주위에 흐르는 기분이 들더니.

놀랍게도 한 쪽 입고리가 슬슬 올라가기 시작하며 비릿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낄낄낄낄...”

“······”

솜털이 곤두서는 그 음성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내 예상이 맞았다.

저 녀석은 선녀보살님이 말한 데로 엄마의 탈을 쓴 살인귀다.

나는 다급하게 가방에 있던 팥을 쥐었다.

그리고 선녀보살님의 몸에 뿌렸다.

“시벌! 이런 악마 새끼! 더 이상 이 가족을 괴롭히지 말고 꺼져!”

ㅡ 이 새끼가 미쳤나

ㅡ 너 지금 내 여자한테 뭐라 그랬냐

ㅡ 거기 위치 어디야 개색갸. 오늘 둘 중 하나는 귀신 된다

ㅡ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

ㅡ 설마 선녀보살 빙의에서 못 빠져나오는 거 아니야?

“너네들도 내가 다 죽일 거야. 하나같이 다 찢어서 말이지. 다 죽일...

그때.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선녀보살님은 다시 정신이 돌아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괜찮으세요?”

숨을 멈춘 선녀보살님은 품속에서 짚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꺼냈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에 집어넣고는 뚜껑을 닫아, 부적을 붙였다.

선녀보살님이 항아리를 지그시 보며 말한다.

“너는 선택해야 할 거야. 여기에 갇혀 지내던지. 아니면 내 인도를 받으며 이승을 떠날지.”

그러더니 나를 뒤돌아 보며 슬쩍 웃으신다.

“많이 놀라셨어요?”

“아, 그게...”

나는 빠르게 손사래쳤다.

“아니요! 아니요!”

선녀보살님이 가족 그림을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가 너무 착하네. 영혼이 너무 맑아. 잘 넘어오지 않아서 살인귀가 최소 3년은 괴롭혔을 거예요. 영혼을 갉아먹으면서 조종했을 테고.”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선녀보살님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였다.

순간, 손에 올려져 있던 항아리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선녀보살님이 미간을 모으며 항아리를 쳐다보자, 신기하게도 흔들림이 멈춰 버렸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ㅡ ㅅㅂ ㄹㅇ CG 하나 없는 방송 맞지 이거?

ㅡ 주작이라고 하기엔 너무 개소름 돋는다.

ㅡ 에이... 자기가 손으로 흔들었다 멈춘 거 아냐?

ㅡ 너 그거 병이다. 의심병.

ㅡ 와... 이게 레알 가능한 일이냐?

ㅡ 선녀보살님 혹시 이상형이 어떻게 되십니까?

선녀보살님은 항아리를 옆에 둔 채로, 차린 상을 마주하며 눈을 감았다.

“우리 어머니는 세 딸밖에 모르고 사셨네. 그렇게나 예뻐하셨어? 그러니 딸들이 무서운 와중에도 엄마 곁을 떠나질 않고 있지. 고생했어. 많이 했어. 이제 그만 고생하시고, 두 딸내미 데리고 막내 있는 곳으로 가셔.”

선녀보살님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긴 천을 손에 들었다.

무려 3미터가 넘는 천이었는데 무늬 없이 새카만 색이었다.

띵동.

[ 안토니오밥다됐쓰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 자동

“선생님, 그건 혹시 뭘 하는 걸까요?”

선녀보살님은 긴 천을 리본처럼 마디마디를 묶으며 내게 얘기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한데요, 검은색 같은 경우에는 피 흘리며 돌아가신 분들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쓰는 거랍니다.”

“아...”

그 긴 천을 리본처럼 다 묶고 나서.

이번에는 그 묶은 천들을 빨래 털 듯이 위아래로 털기 시작했다.

그러자 묵었던 리본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선녀보살님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루빨리 쉬고 싶으셨나 보네. 이렇게 매듭이 풀리면 한을 풀고 이승에서 올라가고 싶다는 뜻이에요. 고맙대요. 연우 씨한테.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계속 인사하네...”

“아. 저야 뭐... 할 일을 한 건데요 뭐...”

나는 쑥스럽게 뒷머리를 긁적이다 무언가가 문득 생각났다.

“아. 맞다.”

나는 2층으로 후다닥 뛰어올라가 옷장 앞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리고 상에 가져온 것을 같이 올렸다.

리본 모양의 머리핀.

막내딸이 처음 내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떨어트린 것이었다.

“이것도 가실 때 챙겨가세요. 막내 겁니다.”

ㅡ 와. 소름 돋았다 지금

ㅡ 헐. 어떻게 그걸 기억하고 있었지?

ㅡ 하는 짓이 여자 좀 울렸겠는데

ㅡ 섬세함 오졌다. 레알 고수 인정

ㅡ ㅅㅂ 저 색기 모쏠이라니까

ㅡ 확인사살임

그렇게 선녀보살님이 웃으며 마지막 묶인 천을 풀어내려 할 때.

순간, 선녀보살님의 몸이 움찔거렸다.

곧이어 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뭐야?

선녀보살님은 갑자기 나를 향해 오더니 내 손목을 아까와 같이 잡았다.

턱!

하지만 힘은 실리지 않았다.

나는 혹시 몰라 잔뜩 경계하며 한 쪽 손으로 팥도 다시 쥐었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하염없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흐흐흐흐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두 뺨 위로 흘러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어버렸다.

어찌나 서럽게 우시는지 나까지 잔뜩 목이 메어왔다.

그제야 경계심이 풀렸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선녀보살님의 손을 두 손으로 포옥 잡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별말씀을요. 이제 꼭 예쁜 따님들이랑 헤어지지 마시고 좋은 곳에서 오랫동안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리고 두 팔로 꼭 감싸 안아주었다.

ㅡ ㅅㅂ 7번방의선물 이후 처음 울었다

ㅡ 엉엉 나도 눈물 나네 조심히 가세요!

ㅡ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거 아시죠?

ㅡ 근데 연우야 너 안을 필요까지 있냐?

ㅡ 어? 감동에 묻혀서 지금 봤네. 야 이 개색갸 안 떨어져?

ㅡ 무섭기도 하고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지...

그렇게 몇 분이 지나지 않았다.

선녀보살님이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다시 돌아오신 것 같았다.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마지막 천을 푸는 모습을 함께 바라봤다.

잠시 후.

선녀보살님은 이번엔 천장 거실 등과 계단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얘야. 이제 무서워하지 말고 이리 와. 엄마랑 같이 좋은 곳 가야지. 엄마가 기다리네?”

선녀보살님은 미소를 짓고 고개도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래그래. 이리 오려무나.”

뭐지? 혹시 두 딸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옳지. 그렇지. 이리 오렴.”

그 무언가가 다가왔는지.

선녀보살님이 군웅신장대를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스스스.

그렇게 군웅신장대와 함께 선녀보살님의 몸이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한번 멈춰 서서는, 또 표정이 변했다.

이번에는 굉장히 앳된 아이가 겁먹은 듯한 표정이었는데.

그 아이는 항아리를 경계하듯 쳐다보더니 손가락 하나를 입가로 가져가며 내게 묻는다.

“이거 하나만 먹어도 돼요?”

순간, 전의 고스트 박스에서 흘러나왔던 대화가 떠올랐다.

배고프다며 울던 그 음성이.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럼 다 먹어! 먹고 싶은 거 다 집어먹어도 돼!”

사과를 집어 든 선녀보살님은, 아니 아이는 다람쥐같이 사과를 쥐고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얼마나 굶었던 걸까?

그렇게 10분간을 쉬지 않고 입에 넣어 댔을까.

선녀보살님은 남은 둘째 딸에게도 자신의 몸을 빌려주어 배도 채워주고 이야기도 들어주었다.

빙의가 되고, 다시 풀릴 때마다 체력을 깎아 먹은 듯 힘들어 보였지만, 기꺼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의 행동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많이 먹어. 많이.”

나는 일부러 살인귀가 갇혀 있는 항아리를 등지고 섰다.

아이가 무섭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띵동.

[ 시간을달라는소녀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제일 막내도 줬는데 언니들 안 주면 섭하겠지? 옛다!

띵동.

[ 안토니오밥다됐쓰 님이 2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막내한테 미리 준 건데... 또 주는 거다 이거!

띵동.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이건 아까 미션비 겸 애기들 용돈 포함이다

띵동.

[ 보노보노야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노잣돈 추가. 엄마랑 행복해!

그렇게 모든 빙의는 끝났다.

이제 겨우 끝인가 싶어 안도의 한숨을 돌리려는데.

선녀보살님이 내게 천을 건네는 모습에 나는 얼굴 물음표를 그렸다.

“네?”

“끝을 잡아 보세요. 마지막 절차가 남았어요. 이렇게 천을 찢으며 영가들을 보내주는 거예요. 이승에 붙잡혀 있지 말고, 끊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또 있었구나.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선녀보살님과 엄마, 딸들의 모든 천을 차례대로 찢었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이시여 부디 이들을 가엽게 여겨주사...”

그리고 선녀보살님의 정말 간절하고 경건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내려 항아리를 쳐다봤다.

여전히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항아리.

마치 자기 차례가 다가온 것을 느끼기라도 한 것 같았다.

갑자기 창문 밖 벌레 울음소리가 심해졌다.

착각이 아니다.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벌레들이 시꺼멓게 벽을 채우기 시작한다.

이제 남은 건 저 녀석인데.

선녀보살님은 어떻게 성불시킬 생각이시지?

때마침 부적을 태우시던 선녀보살님이 시선이 항아리에 고정됐다.

“내 인도에 쉬이 따르지 않는다면, 너는 나와 함께 가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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