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52화 (52/225)

피 흘리는 전원주택. 1

이런 게 실연의 아픔인 건가.

그래도 나는 만에 하나라는 마음으로 한 번 더 물어봤다.

“그... 혹시 다른 이유는 정말 없으신 건가요?”

“네! 그거면 완전 충분해요.”

“정말요?”

“네.”

“진짜?”

“네.”

나는 입술을 포개어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ㅡ 단호하네

ㅡ 비제이 표정 왜 그럼?

ㅡ 위에서 비만 뿌려주면 딱 실연 당한 놈 같은데

ㅡ 연우야 마음 주지 마라. 백퍼 장기밀매범이야!

ㅡ 마음 주고 몸도 주고 장기도 주고 싶냐?

나는 천장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커피를 가져다 입에 댔다.

먹어보지도 못한 술을 들이켜듯이 한 모금 넘겼다.

“어? 비제이님 그거 제 커피인데···”

나는 얼른 내려놓았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커피가 쓰지 않았다.

예쁜 애가 마시는 커피라서 좀 남다른 건가?

아니다.

연애 실패로 인한 가슴속 쓰디쓴 쓰라림이 아메리카노보다 강한 듯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임아린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혹시 제방송 많이 보셨나요?”

임아린은 방송 얘기가 나오자 안 보이던 행동을 보였다.

금방 볼이 발그레 해지더니 수줍은 듯이 뺨에 손을 가져가 대었다.

“크흠... 제가 사실... 공포물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계속 돌려봤다는...”

“정말요? 안 무서워요?”

“무서운데... 엄청 재미있어요. 오싹오싹? 반대로 설레고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와... 보통이 아닌 여자다.

물론 내 영상을 편집 했단 사실에 대충 예상은 했다만...

생긴 건 굉장히 강아지처럼 여리여리하게 생겼는데.

생각보다 기가 세구나.

심지어 나보다도.

ㅡ 시발. 장기 뗄 때 오싹오싹 거리고 팔 땐 돈 때문에 설레겠지!

ㅡ 그럼 그럼. 사람 죽이는 게 그게 쉬운 일이냐

ㅡ 하... 보면 볼수록 요망하네. 저 눈웃음에 깜빡 속았어

ㅡ 님들. 편집자 왜 범죄자 만듬

ㅡ 의도적인 접근, 무페이, 사람 없는 폐가 동행. 아직도 모르겠냐?

그때.

“비제이님! 아니. 이제 사장님이져! 저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네. 다녀오세요.”

임아린이 화장실을 갔다.

그 사이 나는 생각했다.

일단 내 입장에서는 완전 합격인데?

물론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영상편집 실력은 이미 인증됐고.

인성 문제도 전혀 없어 보인다.

“형님들. 어때요?”

ㅡ 주머니 속에 넣고 싶어

ㅡ ㅅㅂ 어떻기는. 너 장기 다 털리고 싶냐

ㅡ 여자도 못 사귀어보고 장기 분양해 주고 싶냐고

ㅡ ㅅㅂ 장기 털려도 되니 사귀고 싶다

ㅡ 미친놈들 스탑해. 저 얼굴로 장기매매했으면 대한민국 다 털렸겠다

ㅡ 내 신부감으로 딱인데

ㅡ 연우야, 미래의 형수님이니까 일단 모셔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장일치 합격이다.

물론, 장기매매라고 떠드는 몇몇 놈들도 있었지만.

저놈들은 언제나 주작 선동질을 하는 놈들이다.

그저 눈에 보이는 건 모두 부정하는 놈들이라 그냥 무시해도 된다.

아니... 시벌. 은근히 저 말들이 거슬리네.

그 후로 나는 임아린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 계약을 마무리했다.

계약이랄 것도 없었다.

임아린과 대화한 영상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방송할 때 꼭 한번 데려가달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는 임아린을.

새끼손가락까지 걸어 약속해 주고 나서야 카페를 나왔다.

밖에 나오자마자 임아린은 나에게 두 손을 모아 배에 얹고 허리를 숙였다.

“조심히 가세요. 사장님!”

“하하하. 네. 나중에 봬요.”

그렇게 나는 왠지 모르게 한층 더 벽이 싸인 느낌의 호칭을 들으며, 씁쓸하게 집으로 향했다.

***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엄마는 시장을 나갔는지 안 계신다.

마침 잘 됐다 싶어 기분전환을 위해 방송국을 클릭했다.

그리고 수익을 확인했다.

폐모텔에서부터... 저수지 미션까지.

정말 이번만큼은 생사를 다투는 혈투까지 벌였는데 과연 얼마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환전 금액을 터치했다.

환전 금액 : 1,535,000원.

“워어어어! 미쳤다! 미쳤어! 그럼! 그럼! 이 정도는 돼야지! 방송할 때마다 수명을 갉아 넣는 느낌인데!

연애 실패의 아픔은 금세 사라졌다.

내 입은 자연스럽게 귀까지 걸렸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웨이브를 추었다.

그러다 흠칫 몸을 멈췄다.

‘시바... 돈 모아서 집을 사 버려?’

가부좌를 튼 채 핸드폰을 바라봤다.

쌓인 돈을 보니 허황된 꿈이 생긴다.

아니 사람일 모르는 거라고 살 수도 있을지도 모르잖아?

다만 내가 정말 열심히.

아니. 내가 매번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가정이 깔리긴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옷과 가방도 주섬주섬 챙겼다.

“노 저으러 가자~ 노 저으러 가자~”

마침 들어오는 엄마.

나는 엄마에게 대충 둘러대고 집을 나섰다.

“엄마! 나 오늘은 친구네서 자고 올게! 그 녀석이 자꾸 조르네.”

“아들. 또?”

“어!”

“아니. 저 녀석이 여자친구가 생겼나. 왜 이렇게 요즘...”

내 등 뒤로 들리는 엄마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살짝 후벼팠지만.

꿋꿋하게 이겨내고 갈 길을 향해 걸었다.

목표가 생겼으니까.

좋은 집으로 이사해서, 엄마의 환한 미소를 보고 싶다.

***

나는 제목을 바꾸고 다시 급 방송을 켰다.

사실, 오늘 임아린과 면접을 끝내고 같이 쉬면서 몸보신 먹방을 할 예정이었지만.

임아린이 하는 필라테스에게 밀려 급격하게 계획이 바뀌었다.

[ 오늘 초강력 울트라 파워 마지막 생방합니다. 안 보면 귀신들림 ]

ㅡ 뭐야? 쉰다더니 갑자기?

ㅡ 그래. 실연의 아픔은 바빠지면 금방 잊는 법이다

ㅡ 마침 여캠탐방 하려고 총알 충전했는데. 어케 알고 왔지?

ㅡ 너 설마 몸에 돈 귀신이라도 붙은 거 아니냐

ㅡ 아니. 그래서 어디 갈 건데?

나는 비장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님드을! 오늘 시험 삼아 유트브로 방송 켜 보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적어놓은 쪽지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갈 파격적인 그곳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상 제가 폐가만 돌아다녔잖아요. 이번엔 ‘흉가’를 가려고 합니다!”

ㅡ 워어어! 시발. 흉가라고? 근데 그게 뭐가 다른거냐

ㅡ 그래서 어디가는데?

ㅡ 물귀신 본지 얼마 됐다고 벌써 생방이여?ㅋㅋ

ㅡ 시벌. 공포는 후원으로 잊는 건가

ㅡ 뭐 우린 개이득이지

ㅡ 돈미새가 부릅니다 - 후원은 언제나 목마르다

ㅡ 그래서 어디냐고? 옘병알아

“여기서 한 시간 정도 차 타고 가야 있는 곳인데요. 단독 주택으로 이루어진 가정집이에요.”

그곳은 2층으로 이루어진 단독 주택.

1985년에는 아주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했다.

남편이 없는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세 딸과 어머니가 한날한시에 모두 살해된 사건.

이 당시 경찰은 사건 해결에 큰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적도, 빚을 진 것도 없는 가족.

집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조차 없었다.

그럼 학교에서도 소문난 우등생인 세 딸.

그리고 어머니는 대체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이었을까.

범인은 바로 어머니였다.

조현병이라는 심각한 병을 앓았던 어머니가 무슨 이유인지 잔인하게 세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더 끔찍한 사실은 세 딸 모두가 줄톱에 잔인하게 목이 썰려 살해되었다는 것.

나의 설명에 채팅창이 욕으로 난무되기 시작했다.

ㅡ 씨발. 그러려면 왜 낳았대?

ㅡ 우발적 살인이 아니네? 줄톱? 미쳤다

ㅡ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개 소리 시발년

ㅡ 맞아! 뭐만 하면 심신미약. 우발적 살인. 다 핑계여!

ㅡ 미친년이 죽으려면 혼자 뒈질 것이지 시발년아!

“마지막 방송이니까 기대하십쇼! 화끈하게 사연 다 풀어드리고 꿀잼 드리겠습니다. 형님들!”

사실, 나 역시도 가고 싶진 않았다.

이곳은 그저 버려진 폐가 이전에 ‘흉가’였다.

말 그대로 사는 사람이 흉흉한 일들로 죽어 나간다는 그 ‘흉가’ 말이다.

많은 걱정들이 몰려왔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엄마와의 윤택한 삶을 만드는 것.

엄마도 웃고 나도 웃는 그런...

“자! 그래서 파격적인 통보합니다. 오늘... 방송 끝까지 갑니다! 해 뜰 때까지요! 후원. 아니. 체력 충전 제대로 해놓으시고 계십쇼! 저는 장정 3시간이 걸리는 이 기나긴 여정 뒤에 다시 방송 켜고 찾아뵙겠습니다. 형님들! 휘리릭 뿅!”

ㅡ 내가 잘 못 들었냐? 저 새끼 방금 후원 충전이라고...

ㅡ 이렇게 노골적인 BJ는 첨 본다

ㅡ 시발. 애가 많이 변했어. 코 흘릴 때가 엊그제인데

ㅡ 그렇게 호구는 충전하러 갑니다

[ 비제이가 방송을 종료하였습니다 ]

***

오늘은 다른 날 보다 더 단단한 각오를 다졌다.

아니. 귀신에게 홀리지 않기 위해서.

나 역시 해 뜰 때까지 방송하기 위해선 체력 충전을 해야 했기에.

버스에서 미리 잠을 청했고.

“학생. 학생! 내려야지? 다 도착했어.”

“으음...?”

구수한 말투의 기사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서야 버스에서 내렸다.

현재 시각. 11시 15분.

나는 어둑어둑하게 변한 밤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폈다.

휘이이이잉-

기지개를 켜고 있는 나에게 스산한 가을바람이 손길처럼 훑고 지나간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에게 경고를 주는 느낌이다.

“시바...”

나는 미리 가방에 준비해놨던 겉옷을 미리 챙겨 입고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2층 주택은 이 버스정류장에서도 한참이 떨어진 곳.

장정 4.4킬로를 더 걷고 나서야 저 멀리 눈에 띠였다.

“아...”

내 입에서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전체적인 바탕은 하얀색이지만 벽만큼은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주택.

빨간 페인트가 다 떨어져 나가고 흐릿해서 마치 핏자국처럼 보인다.

게다가 뻥 뚫려있는 어두컴컴한 창문 쪽으로 뭔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보고만 있어도 소름이 잔뜩 올라온다.

게다가 본능적으로 낙서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으니 그게 더 무섭게 느껴진다.

마치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 것처럼.

“시바. 정연우 미친놈아! 도대체 여길 왜 온 다고 한 거냐...”

나는 무서움을 벗어내기 위해 재빨리 방송을 켰다.

[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차원이 다른 위압감에 그저 멍하니 손전등을 비추다 걸음을 떼려는데.

나도 모르게 한 발짝씩 서서히 뒷걸음질 치게 되고.

두 발을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아... 형님들. 잠시만요...”

ㅡ 뭐야 이놈. 왜 이렇게 떨고 있음?

ㅡ 막상 오니까 겁나 무섭지?

ㅡ 근데 화면으로 봐도 느낌이 다르긴 하다

ㅡ 한번 호되게 당했으니까 ㅋㅋ

ㅡ 어이 쫄보 놀랬어? 놀랬슈?

채팅창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평소 때와는 달리, 압박감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금이 쩍쩍 갈린 외벽에서 뿜어나오는 한기.

핏물 자국처럼 찍힌 빨갛고 오래된 페인트.

그래. 여긴 도저히 안될 것 같다.

지금 이대로 무턱대고 집을 들어간다면 무조건 방송사고 날 것 같다.

나는 심각하게 떨리는 몸을 꽉 붙잡고 얘기했다.

“죄송한데요. 형님들...”

ㅡ 뭘 죄송해

ㅡ 진짜 쫄은 건가?

ㅡ 괜찮아 얘기해. 어차피 들어보낼 거니까

ㅡ ㅇㅇ 들어나 보자

“저 일단 오... 오줌 좀 싸고 들어갈...”

그 순간.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빨리 안 들어가?

나는 말없이 다시 주택으로 고개를 돌렸다.

1985년에 지어지고 이사 온 사람들이 연이어 버티지 못하고 나간, 주택 자체가 서늘한 입김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진짜 지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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