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51화 (51/225)

편집자와의 만남.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자와 처음 하는 통화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그저 애꿎은 채팅창만 훑고 있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혹시 비키니. 아니. 몇 살이세요?”

아주 잠깐 정적이 흘렀다.

-아! 저는 18살입니다! BJ 님이 저보다 오빠시졍?

ㅡ 목소리에 그냥 애교가 철철 흐르네

ㅡ 잠깐. 얘 목소리만 예쁜 거 아냐?

ㅡ 맞아. 얼굴은 오랑우탄 일 수 있다

ㅡ ㅅㅂ 2차 얼굴 심사가 시급하다

“네. 제가 한 살 오빠네요.”

그때.

띵동.

[ 수탉크래프트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연우야. 만나자고 해. 자고로 신용은 직접 봐야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법

맞는 말이다.

거리가 너무 멀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이 생길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사시는 곳이 어디세요?”

“저 함천동 살아요!”

“어? 함천동?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저번 폐 모텔 방송 때문에 가셨던 그 동네요!”

“아 맞다!”

잘 됐다!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 걸까.

설마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 줄이야.

함천동이라면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다.

버스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있는 그곳.

ㅡ 엄머... 학생. 그런 위험한 곳에 사는 겨?

ㅡ 안되것다. 내가 평생 지켜줘야 것네

ㅡ 함천동 버스 차고지 쪽만 그럼. 나머지는 동네 좋음

ㅡ 야. 그럼 거기로 가자. 구경 좀 하게

그럴 참이었다.

가서 얼굴 보며 페이에 대한 문제도 진지하게 나눠보고.

여러 가지 일에 대한 기준을 좀 정해야 할 것 만 같다.

나는 바로 말을 꺼냈다.

“그럼 혹시 언제 시간 돼요? 만나서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주말.

편집자를 만나러 가고 있다.

아직 약속시간까지는 조금 남은 상태였는데, 나는 다시 내 옷을 점검했다.

시청자들의 코칭대로 청바지와 하얀 셔츠를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게다가 이발소에 들러 머리칼도 잘랐다.

[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최양을피하는방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선녀와누워꾼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나는 들어오는 시청자들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형님드을! 연이루! 좋은 오후입니다!”

그런데.

ㅡ 이 새끼 여자 만난다고 머리도 잘랐네?

ㅡ 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원래 이발소 갈 때 돼서 자른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ㅡ 오오 신경 좀 써서 그런가 잘생겨 보인다?

ㅡ 시벌. 방송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나갔다 왔네

ㅡ ㅅㅂ 이발솤ㅋㅋㅋㅋㅋ 도대체 어디 사는 거냐 너?

ㅡ 이발소가 아직도 있나?

화면에 비치는 나를 보며 눈만 껌벅거렸다.

“형님들 저 괜찮아요?”

사실, 나는 모르겠다.

그저 어색함 천지다.

ㅡ ㅇㅇ 괜츈

ㅡ 그렇게 카페 먼저 가서 아메리카노 딱 물고 창밖 보고 있어라

ㅡ 책하나 사서 아련한 눈빛으로 보고 있어 봐. 그럼 편집자 들어오자마자 너 보고 백퍼 침 흘린다

그렇게 나는 편집자를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코칭 대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4,500원.

뭔 놈의 커피가 4,500원씩이나 하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몸에 좋으니까 비싸겠지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기다렸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내 인생 첫 아메리카노였다.

나는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받아 창 앞의 자리에 앉았다.

가끔 먹던 믹스커피도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건 얼마나 맛있을까?

나는 잔뜩 기대하며 조심스레 한 모금을 입에 넘겼다.

그런데.

“아우 써! 시벌.”

순간, 똥이라도 씹어먹은 것처럼.

온갖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카메라에 대고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이거 원래 맛이 이래요? 상한 것 같은데...”

ㅡ 표정 시밬ㅋㅋㅋ

ㅡ 에라이 촌놈아 ㅋㅋ 그 흔한 아메리카노도 안 먹어봤냐?

ㅡ 완전 천연기념물이네

ㅡ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봐서 그런 건가

ㅡ 야. 처음이라 그래. 카운터 가서 시럽 좀 넣어

“시럽이요?”

나는 잽싸게 카운터로 향했다.

아까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카운터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피식피식 웃어댄다.

나는 눈치 보며 시럽을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까지 넣었다.

그리고 슬쩍 맛을 봤다.

으... 시바. 아직도 쓴데...

나는 아르바이트생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재빨리 시럽을 열 번 이상 눌렀다.

“음... 형님들. 아메리카노가 맛있는 거였네요.”

ㅡ 저런 병신...

ㅡ 그럴 거면 꿀물을 처먹어 색갸

ㅡ 에혀... BJ 망신은 스스로 다 시키고 앉았네

ㅡ 저 작은 커피잔에 시럽 1/4을 다 쑤셔 넣었어

ㅡ 시발. 카페에서 손해배상 청구해야 되는 거 아니냐

ㅡ 야. 근데 편집자는 왜 이렇게 늦는 거야?

그때.

깨톡!

-죄송해요! 저 거의 다 도착했어요! 근데 저 옷차림이 조금 그런데 이해 좀 해주세요!

“네. 그런데 혹시 지금 방송 중인데, 얼굴이 나와도 괜찮을까요?”

-전 상관없어요! 저도 사실 방송 켜서 보고 있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시청자들을 보며 얘기했다.

“다 도착했다네요. 형님들!”

잠시 후.

스으으윽.

출입구 문이 열리며 시원한 바람이 세어 들어오는 걸 느꼈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

순간, 내 몸이 일시정지되었다.

심장이 폐가 방문했을 때만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160 정도로 보이는 키.

눈이 강아지처럼 정말 맑고 예쁘다.

칼 단발의 머리는 어찌나 윤기가 흐르는지, 반짝반짝 빛나 보이기까지 했다.

또 운동을 하다 온 건지.

검정 레깅스와 하얀 박스티만 하나 걸쳐 입었는데도.

늘씬한 허리와 넓은 골반이 시야를 사로잡았다.

ㅡ 씨... 씨발. 얼굴. 와...

ㅡ 워어어어! 몸매도 미쳤다아아아아!

ㅡ 우아! 진짜 실화냐 이거!

ㅡ 시발! 사람 아닌 것 같은데

ㅡ 아... 천국에서 오느라 늦었구나! 시바

“어? 안녕하세요! BJ 님.”

그녀가 나에게 손을 흔든다.

나 역시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려는데.

머리가 고장 나버렸다.

하마터면 먹던 커피를 다 흘릴 뻔했다.

“안녕하세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수군거리는 소리들.

아마도 예비 편집자의 엄청난 비주얼 때문인 것 같았다.

마침 카운터에 서있던 김에 나는 예비 편집자에게 물었다.

“혹시 뭐 드시나요? 주문해 드릴게요.”

하지만, 예비 편집자는 해맑게 웃으며 내 곁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 딱 붙어 눈웃음까지 그리며 얘기했다.

“저도 비제이님 드시는 거 먹을게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ㅡ 비제이 새끼. 잇몸만개...

ㅡ 하... 미치겠다. 눈 웃음까지

ㅡ 얘들아 나 드디어 운명의 여자를 만난 것 같아

ㅡ 난 이 편집자 반댈세. 내 심장이 먼저 편집될 것 같아

ㅡ 이참에 시벌. 비제이 갈아치우자

잠시 후.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나는 배려 차원에서 아메리카노를 집어 들고 시럽통에 손을 댔다.

그리고 꾹 누르려는데.

“어! 저는 시럽 안 넣어요.”

“정말요? 그렇게 먹으면 맛없을 텐데.”

“아니요! 아메리카노는 그냥 먹어야 맛있어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예쁜 애들은 쓴맛을 좋아하는구나.

잠시 후.

우리 둘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소개했다.

“저는 아시다시피 정연우라고 합니다. 혹시 존함이?”

“존함...? 하하. 저는 임아린이에요. BJ 님!”

임아린이라. 이름도 예쁘다.

정말 단점이라고는 눈으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이 하꼬에서 갓 벗어난 내 방송 편집을 자원한 거지?

약간 의심스럽기도 하다.

“혹시 원래 편집을 하셨던 분인가요?”

“네! 취미 삼아서 한지 거의 2년, 3년 차 됐어요.”

역시.

그래서 그렇게 편집이 자연스러웠구나.

중간중간 무서운 장면을 더 감칠맛 나게 살려주는 설명들.

그리고 잠시 멈추어 재 반복해 주는 등등의 효과는 실로 내 영상을 더 실감 나게 해주었다.

“잠시만요.”

나는 혹시 몰라 준비해온 질문이 적힌 쪽지를 꺼냈다.

물론 죄다 페이에 관한 내용이었다.

실질적으로 제일 중요한 부분들이니까.

그 모습을 보던 임아린이 귀엽게 웃어댔다.

“혹시 몰라서 제가 적어왔거든요. 저도 편집자를 두는 건 처음이라... 잘 몰라서.”

“네. 말씀해 주세요. 답변해 드릴게요.‘

나는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원하시는 페이가 있으신가요? 제가 아무래도 유명한 BJ가 아니다 보니 수입이 일정치가 않아요. 아직 학생이라 방송을 못 할 때도 많고요. 혹시나 원하시는 금액이 저와 맞지 않다면... ”

그 순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 빨아먹던 임아린이 고개를 젓는다.

“저 돈은 필요 없어요!”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라고?

돈을 받지 않는다니?

젤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부분 아닌가?

심지어 알아본 결과로는 편집자는 편집하는 실력에 따라 페이가 천차만별이라 들었다.

정말 재미없는 영상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편집자의 능력이니까.

그로 인해 실력 좋은 편집자를 구하려면 페이가 많이 든다고도 들었다.

난 이것 가지고 밤새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ㅡ 뭐야? 생긴 것만 천사가 아니고 마음까지 천사였어?

ㅡ 지금 무페이로 일 하겠다는 거지?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ㅡ 시발... 나 뭔지 알아냈다. 아 존나 소름 끼치네

ㅡ 뭔데요? 뭔데?

ㅡ 장기매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물어보았다.

“돈이 필요 없으시다고요? 왜요?”

임아린은 똑 부러지게 자기 할 말을 술술 내뱉었다.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취미로 하고 있는 거라 돈에 관심 없어요!”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루 만에 이뤄낸 그 엄청난 조회 수.

영상 속에서도 전해지는 베테랑다운 영상 편집들.

누구의 편집자로 일을 해도 고가의 페이를 확실하게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돈을 안 받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도대체 뭘까.

나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 문득 지난 행동들을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팬이라고 찾아온 편집자.

아까부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저 사랑스러운 눈빛.

그리고 말끝마다 나에게 눈 웃음을 그리는 저 행동.

설마..............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

그 순간.

임아린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나에게 얘기했다.

“페이 대신에...”

ㅡ 거... 거봐! 시발! 부탁이 있잖아!

ㅡ 어쩐지 ㅅㅂ! 세상에 공짜는 없지

ㅡ 좃댔다. 분명히 장기 달라고 한다

ㅡ 심장! 콩팥! 간! 그중에 뭐냐! 여우 같은 년!

ㅡ 님들 진정하셈

시바...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그리고 엄마한테 허락도 받아야...

나는 말까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네. 마... 말씀하세요.”

어쩌지.

분명히 나한테 고백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19살 인생에 있어 처음 겪는 어메이징 한 경험의 순간이다.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 거렸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깐만.

고백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되지?

자연스럽게 그냥 받아주면 되는 건가?

그때.

임아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방송하러 가실 때 저 한 번 데려가 주시면 안 될... 까요?”

순간, 마치 사귀지도 못해봤던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것처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허탈했다.

뛰던 심장은 금세 안정을 찾았다.

시벌...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살짝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임아린에게 대답했다.

“오... 오케이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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