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게 변해버린 저수지. 4
내 주둥이는 터졌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 살면서 저런 미친 광경은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고양이처럼 솜털이 빠짝 선다.
움직여라...
움직여!
ㅡ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ㅡ 영혼의 연기로 시간 떼 우는 중.
ㅡ 자꾸 혼자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ㅡ 엄마가 사준 가방 그대로 있자나
그때, 네 발로 뛰어오던 여자가 나를 껴안으려는 듯 팔을 활짝 펼친다.
연우야 움직여. 움직이라고.
“오... 오지 마! 시바아아알!”
여자가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초인적인 반응으로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여자를 피해 반대편으로 재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내 가방과 겉옷을 얼른 주웠다.
“하 시발. 저거 도대체 정체가 뭐야...”
당장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고, 현실감이 떨어진다.
반대로 여자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이라는 듯.
찢어진 입을 자꾸 벌리고 검붉은 핏물을 뚝뚝 흘리며 현장감을 전해준다.
어쩌지?
내가 지금 여기서 뭘 보고 뭘 하는 건지.
위축되는 심리가 내 심장을 쥐어 잡는 것 같다.
그러다 손에 닿은 무언가를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어 잡았다.
툭.
맞다. 내 가방.
그 가방 안에는 내 필살기도 있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EMF 측정기를 먼저 꺼내 들었다.
저거 설마 귀신 아니야?
탁!
EMF 측정기가 켜졌고.
반응하기 시작한다.
1 단계... 2단 계... 3단 계.
순식간에 쭉쭉 치고 올라가버린다.
그리고 결국 4단계까지.
아니. 4단계를 넘어서 5단계 칸의 절반을 채우고서야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제야 시청자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우어어어! 시바아알. 형님드을! 저년. 아니! 저 새끼 귀신입니다!”
ㅡ 어이구... 그랬쪄여?
ㅡ 어휴! 거봐! 비제이 새끼 귀신한테 홀린 것 맞다니까!
ㅡ 그래. 귀신이 있다고 쳐. 근데 왜 빤스런 안 했어?
ㅡ 아 귀신 때문에 도망을 못 가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었다?
손을 잡았을 때부터 확신했어야 했다.
내가 여태까지 사람도 아닌 저것한테 뭘 챙겨줬던 건지.
빠그그극. 뻐걱. 뻐걱.
다시 나에게 향하기 시작한다.
오금이 저려온다.
자동으로 인상을 찌푸리던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으... 으! 아... 안 돼! 하지 마. 시발년. 아니 시발놈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급하게 여자가 먹다 뱉은 배를 주워 힘껏 던졌다.
휘익!
첨벙!
배는 여자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저수지에 쑤셔 박혔다.
“어... 어? 이런 미친!”
ㅡ 워! 시발. 배 맞지? 대포 쏜거 아니지?
ㅡ 난 지금 저수지에 수류탄 던진 줄 알았다
ㅡ 여러분. 오늘 야구 꿈나무를 발굴했습니다
ㅡ 레알 얼굴에 맞았으면 구멍 뚫림
ㅡ 빙의 그런 거 아닌가...?
나는 가방을 다시 뒤졌고, 이번엔 소금을 집었다.
오천년의 신비. 명품 천일염.
양기를 잔뜩 받기 위해 일부러 집 마당에 널어두었다가 거두기까지 했던 정성을 들인 소금이었다.
나는 한 줌을 크게 쥐었고.
귀신 얼굴에 정확하게 던졌다.
퍼버버벅!
소금이 흩어지며 귀신의 얼굴에 골고루 흩어 뿌려졌다.
아니 박혔다.
그러자 불에 덴 것처럼 귀신의 얼굴에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흩날렸다.
[ 으으으으으.... 으힉! ]
그 광경을 보며 소름이 잔뜩 돋아 올랐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이 떠올랐다.
“시바아아알! 이게 바로 오, 오천년의 신비다! 귀신 새끼야!”
ㅡ 왜 저러는 걸까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ㅡ 주작도 풍년이다
ㅡ 와. 이 속도로 맞으면 소금으로도 피 날듯
ㅡ 옘병 이젠 소금도 무서워해야 하나
나는 쉬지 않고 두 줌. 세 줌 계속해서 얼굴에 집어던졌다.
“괴롭지! 못 참겠지! 훠이 훠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빨리 성불해! 성불!”
히지만 귀신은 그저 괴로워만 할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쨍쨍한 햇볕에 말린 소금인데.
순간, 전에 선녀보살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 강한 기운을 가진 영가들은 소금도 소용이 없습니다. ]
나는 마지막 한 줌까지 다 던지며 카메라를 보며 중얼거렸다.
“혀... 형님들. 소금이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ㅡ 이 새끼 저수지를 바다로 만들 생각인가?
ㅡ 소금 공장 차려도 되겠다
ㅡ 시벌. 민물고기들 소금에 다 절여져 뒤지것네
ㅡ 옘병 소금 살인마냐
나는 채팅과 처벅 처벅 물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귀신을 번갈아 보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진짜 안 보여요? 저게!? 진짜 안 보이냐고요!”
ㅡ 보인다. 보이는 데? 너의 개 수작이
ㅡ 안개 낀 게 스산해 보이긴 함
“진짜 안 보이냐고요! 허억!”
나는 다시 헛숨을 들이켰다.
멈칫 멈칫 다가오던 물귀신의 움직임이 더 빨라진 것 같다.
“어. 어...?”
나는 재빨리 가방을 다시 뒤져 팥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럼 이번엔 팥이다! 시바아아알!”
엄마가 집에서 가끔 팥빙수나, 팥 칼국수를 해 줄 때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던 이 명품 팥.
팥이 좋으니 그냥 팥만 먹어도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그래. 그 정도의 팥이라면!
아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햅쌀까지 집어 들고 던졌다.
그저 쉴 틈을 주지 않고 던진다면 저 녀석도 지쳐 떨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팥 한 번, 햅쌀 한 번.
골고루 물귀신의 얼굴과 몸에 집어던져댔다.
ㅡ 오늘 물고기들 회식 제대로 하네
ㅡ 저수지 물고기 푸파 대회 열림?
ㅡ 송사리가 잉어 되것네 니미
ㅡ 곧 온몸에 쌀, 팥, 햅쌀 박힌 물고기 시체 떠오른다
ㅡ 쯧쯧... 사람이 곱게 미쳐야 되는데...
[ 히이이이익! ]
나는 귀신이 멈칫하는 틈을 타 빠르게 주변을 탐색했다.
철 다리 양옆은 저수지.
적어도 3~4미터는 될 것이다.
수영으론 도망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뛰어넘어 볼까?
하지만 여자의 기괴한 몸의 크기가 적어도 2미터는 넘어 보인다.
내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저건 힘들 것 같다.
계속해서 머리만 짜내던 그 순간.
[ 같이 있자. 같이 있자. ]
빠그그그극... 빠각. 빠가가각.
하얀 눈을 희번덕거리며 본인의 살점들을 긁기 시작한다.
어... 어! 시발!
순간, 나는 더는 시간이 없다는 걸 직감했다.
이제 남아 있는 건 몸뚱이밖에 없는데...
정면 돌파밖에 없는 건가.
하지만, 저 여자는 배도 통과시켜버렸다.
닿긴 할까?
더 깊이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나는 나를 똑똑히 쳐다보고 있는 귀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
난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후... 웁!”
달리기 시작했다.
ㅡ 응? 갑자기 빤스런?
ㅡ 아직 미션 두 시간 남았는데
ㅡ 어라. 도망갈 기세가 아닌데?
ㅡ 흠... 왠지 안 좋은 예감이...
ㅡ 야! 야 인마! 정신 차려!
뛰면서도 나는 머리를 굴렸다.
주문이라도 외워야 할 판이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하지만 나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사다 주시는 아멘이다 이 새끼야!”
제3교를 모두 합쳐 외우고는 점프까지 뛰어 여자의 얼굴에 이단 날아 차기를 시전했다.
순간,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그것을 밀쳐냈다.
“으아아아아아!”
퍼억!
첨벙!
눈을 떴을 땐 내 앞엔 아무도 없었다.
믿기 힘들게도 내 주문과 발차기가 먹히고 귀신이 나가떨어진 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나는 그대로 달렸다.
하지만. 첨벙! 소리가 나며 뭔가가 내 발목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흐아아아악! 시발! 형님들! 형님들 다리가! 내 다리!”
ㅡ 시발 저거 뭐야!?
ㅡ 어? 손이다
ㅡ 진짜 귀신 인가?
ㅡ 와 시발... 개 소름 돋는다 도대체 뭐야?
ㅡ 진짜 손? 여자 손?
ㅡ 저게 주작이라고? 그냥 영화 찍는 게 낫겠는데?
ㅡ 와 개 레전드다. 말이 안 나온다
ㅡ 아니. 왜 이렇게 손이 창백한데!
ㅡ 시발
ㅡ 개 무섭다 못 보겠다
내 발목을 잡고 당기는 순간의 악력에 미끄러져 버렸다.
안개가 낀 대다 물까지 첨벙거리는 탓에 얼음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그 순간.
쑤욱!
내 허벅지가 물에 잠겨버렸다.
나는 미끄러운 다리를 붙잡고 버티며 소리쳤다.
“와아아악! 시발 형님, 아니, 귀신 누님! 나한테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시냐고요! 진짜!”
엉덩이 가슴.
그리고 기어코 턱까지 금세 차올랐다.
그 와중에도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카메라와 가방을 저수지 밖으로 힘껏 던졌다.
퍽!
그리고 다급하게 허우적대기 시작하며 물과의 사투를 벌였다.
“혀... 형. 꿀럭. 님... 들. 꿀럭. 살려... 꼬르르륵. 푸학!”
ㅡ 이게 주작이면 진짜 예술이다. 한편의 영화같다.
ㅡ 아니. 물먹는 소리가 들리잖아 미친놈들아
ㅡ 신고해! 손 못 봤어?
ㅡ 미친 새끼들! 비제이 있는 곳 어디야 지금? 빨리!
ㅡ 에이... 진짜 귀신이라고...?
ㅡ 저러다 진짜 죽겠다! 빨리!
몸이 멀쩡해졌다고는 하나 수영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나였다.
밑에선 끌어내리고 상체엔 힘이 잔뜩 들어간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하며 정신 줄이 끊겨간다.
나, 이렇게 죽는 건가...
그 순간.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이제 그만 나와라. 엄마한테 혼나겠다
그때.
물 밖에서 희미하게 울렁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아들. 아들은 그냥 건강하게 엄마 옆에 있으면 돼.’
엄마...
순간, 번개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푸학! 꿀럭. 엄... 엄마아악! 쿨럭!”
내 몸이 다시 한번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오른손이 앞으로 한 번 뻗어지고, 다음엔 왼손이 물살을 갈랐다.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수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리를 끌어당기는 느낌을 무시하며 세차게 저었고, 양 팔을 휘저어 순식간에 물 밖을 빠져나왔다.
“커헉! 우웨에에엑! 웩! 웩! 퉤! 헉! 허억! 헉!”
ㅡ 시발.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ㅡ 저 새끼 순간 접영 한 것 같은데...
ㅡ 거봐 시발. 주작 새끼. 아까 수영 못 한다고 했던 놈 나와
ㅡ 아니 세상에. 개 헤엄이라면 이해했을 텐데...
ㅡ 이로써 걱정 해줄 필요 없는 비제이 인증 제대로 했죠.
ㅡ 시발 진짜 걱정했자나. 개색갸!
채팅창을 볼 겨를은 없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삼각대를 집어 들었다.
“시! 시발 형님들! 여기 귀... 귀신! 물 귀신...”
그때 채팅창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ㅡ 시발 저거 뭐냐!
ㅡ 뒤! 뒤! 야 뒤!
ㅡ 뒤 보라고!
ㅡ 뭐지. 얼굴? 사람 얼굴?
ㅡ 시발 난 안 보인다. 난 안 보인다.
ㅡ 저게 뭔데?
ㅡ 여자 얼굴이잖아 미친놈들아
ㅡ 뭐? 씨발 잘 안 보여. 가까이 비춰봐
ㅡ 닥치고 일단 튀어! 빨리!
ㅡ 아 갑자기 속 울렁거리네
ㅡ 뛰어! 시발! 빨리 뛰라고 새끼야!
나의 눈이 내 뒤를 비추고 있는 화면에 닿았다.
검은 물에서 얼굴만 드러내고 있는 여자가.
아니. 그 귀신이 내 등을 노려보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