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48화 (48/225)

싸늘하게 변해버린 저수지. 3

[ 살려주세요 ]

뇌 정지가 오는 것 같다.

여자가 내 앞에서 생사를 오가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데 귀신인가 사람인가.

ㅡ 아니.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럼?

ㅡ 앞에 사람이라도 있었나?

ㅡ ㄴㄴ 아무 소리도 안 들렸음

ㅡ 똥 마려운 강아지 흉내 내냐

ㅡ 슬슬 주작질 나올 때 됐쥬?

ㅡ 눈 부뜹 뜬 거 보소 ㅋㅋㅋ

순간.

이마만 보이던 여자의 얼굴이 스윽, 물 밖으로 드러났다.

아니 정확히는 여자의 두 눈이.

나는 누군가 나를 꽁꽁 묶어 맨 느낌을 받으며 여자와의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거리가 있어 자세히 보지 못하지만 저 여자의 시선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

그나저나 구해줘야 하는데. 구해줘야 하는데.

숨이 턱 막히며 누군가가 내 몸을 일시정지시켜놓은 것처럼 움직이지가 않는다.

그 사이.

여자는 힘이 다했는지 서서히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두 눈은 날 여전히 향한 채로 있었다.

눈 밑으로 울렁거리며 보였던 목과 그리고 입 코, 마지막 날 바라봤던 눈이 차례대로 어둠 속에 잠겨진다.

“어!? 어!? 저기요! 선생님! 선생님!”

ㅡ 어. 그래 연우야

ㅡ ㅅㅂ 그놈의 선생님은 왜 자꾸 흉가 와서 찾는 거여?

ㅡ 아니 진짜 선생님 일 수도 있어

ㅡ 그건 뭔 개소리야?

ㅡ 옘병. 알바비주고 섭외했을 수도 있잖어

마음이 다급해졌다.

일단 행동하자.

나는 판단했고 행동으로 빠르게 옮겼다.

급하게 가방을 벗어던지고 옆에 비치된 구조용 튜브를 찾아 정확히 여자가 있는 곳으로 던졌다.

그리고 여자의 귀에 닿을 수 있게 크게 소리쳐댔다.

“튜... 튜브 던졌어요! 튜브 잡으세요!”

첨벙.

하지만.

너무 늦었다.

움직임이 없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건 실타래처럼 둥둥 떠 있는 까만 머리카락뿐이었다.

“어! 선생님! 안 돼! 안 돼! 여기! 사람 좀 살려주세요! 사람이 빠졌어요! 형님들 방송 잠깐만 끄겠습니다!”

119를 불러야 했다.

그런데 나는 방송을 끄려다 잠시 멈췄다.

그러기엔 너무 늦을 것 같았다.

여긴 시골 촌 동네 산 한구석.

차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한계가 있었다.

100%. 구급 대원들이 오기 전에 죽을 것이다.

잠깐만.

내가 아무리 수영을 못 한다고 해도, 물에 뛰어들어서 튜브에 의지한 채로 물 밖으로 꺼내면 되지 않을까?

ㅡ 구조대 연기 중인가?

ㅡ 아니 시벌 눈 가리고 아웅이네. 왜 아무도 없는 저수지 안에 튜브를 던지고 지랄이여

ㅡ 그 와중에 카메라 각도는 기가 막히게 잡았네

ㅡ 이 새끼. 드디어 아크로바틱 연습한 거 보여주려고 하나?

ㅡ 의외로 돌고래 쇼 연습한 거 보여줄지도

ㅡ 뮈친넘. 돌고래가 없잖아

ㅡ 옘병. 알바비주고 섭외해놨겠지

나는 채팅창을 볼 새도 없이 튜브가 떠 있는 물에 몸을 던지... 아니. 그때.

첨벙!

여자의 새하얀 손이 쑥 올라왔다.

덥석!

튜브를 잡은 여자의 얼굴이 수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긴 머리카락이 온통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이내 새까만 물에서 상체까지 점점 모습을 드러냈을 땐.

공포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런데 왜일까.

소름이 올라오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튜브에 몸을 맡긴 여자가 서서히 내게로 흘러 들어왔다.

“괘,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여자는 내 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대답 한 마디를 전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여자가 흐르듯 나에게 도달했을 때.

스윽.

하얀 팔을 잡아 달라는 듯이 들어 올렸다.

“여, 여기! 제 손잡으세요!”

나는 여자의 손을 바로잡았다.

그런데.

“...”

순간 내 등줄기에 소름이 쭈욱 타고 흘렀다.

그 때문에 방갈로 위에 그 여자를 후다닥 끌어 올림과 동시에 손을 반사적으로 놓아버렸다.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물론 더위가 식은 가을에 접어들었고, 산속 깊이 있는 저수지라 더 차가울 법도 하지만.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그 여자의 손은 마치 얼음장과 같았다.

죽은 시신의 몸이 이러할까.

순간, 꺼림칙한 기분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다시 표정을 바꾸고 머리카락에 의해 얼굴이 온통 보이지 않는 여자를 살폈다.

“서, 선생님? 괜찮으세요?”

ㅡ ㅅㅂ 네가 안 괜찮은 거 같은데

ㅡ 연우야 정신 차려. 귀신한테 홀렸냐 왜 그래 혼자

ㅡ 멀쩡한 저수지에 튜브를 던지지 않나. 혼자 허공 보고 중얼대질 않나

ㅡ 만약 이게 연기 연습하는 거라면 이제 그만 멈춰! 넌 이미 대상이야!

ㅡ 여러분! 우리 연우가 그만 멈출 수 있게 박수를 쳐 줍시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띵동.

[ 선녀와누워꾼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무슨 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한 감동받았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띵동.

[ 운도형밴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그만해. 개 노잼이다

여자는 여전히 대답은 없다.

아니. 무슨 대답이라도...

그 순간.

연달아 울려대는 후원창에 여자의 고개가 말없이 핸드폰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급하게 핸드폰 카메라를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아. 이거요? 제가 방송하는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여자의 반응이 싸늘하다.

그저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마치 불편하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당연했다.

생사를 다투던 사람 앞에서 방송 카메라를 들이밀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나는 재빨리 방송화면을 나에게 돌리며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님들. 여기 물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나신 분이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 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잠시 방송을 꺼야 될 것 같은...”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끄면 다신 안 온다.

띵동.

[ 귀신은뭐니뭐니해도처녀귀신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끄는 동시에 즐찾 삭제

“데... 제가 잘 조율하고 말씀드려서 방송 이어 가보려고요. 괜찮죠 형님들?”

ㅡ 태세 전환 우디르급

ㅡ 도대체 그 번개같은 대처 스킬은 누구한테 배우는 거냐

ㅡ 아니. 도대체 누가 물에 빠졌는데?

ㅡ 튜브가 빠짐

ㅡ 얘 아무래도 귀신한테 홀린 것 같아. 눈도 흐리멍덩하잖아 지금

ㅡ 지금 무슨 상황임?

나는 고개를 돌려 여자에게 고개를 연신 숙여대며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중요한 장사 중, 아니. 이걸 끌 수가 없어서 양해 부탁드려요. 얼굴은 안 나오게 할 테니 이해 좀 해주세요.”

그나저나 대답이 없는 건 그렇다 치고.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두 다리를 접은 상태로 앉아 멈춰 서있으니 너무 꺼림칙하다.

적어도 분위기를 지리게 만드는 머리카락이라도 좀 정돈해 주시지...

순간.

여자가 갑자기 하얀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나를 가리키는가 싶더니, 내 몸 뒤로.

내 가방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나는 그 여자를 한번, 그리고 내 뒤에 가방을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며.

“혹시 뭐 필요하신 거라도...”

역시나 무섭게 말 한마디 없는 그 여자.

나는 조금 답답한 나머지 가방을 펼쳐 보여주었다.

그제야 여자는 천천히 팔을 옮겨 가리켰다.

그리고 겉옷이 있는 방향에서 멈춰 섰다.

“아... 추우세요? 이거, 겉옷이라도 입으실래요?”

여자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한 번.

그리고 위로 한번 움직였다.

“잠시 만요.”

나는 재빠르게 겉옷을 꺼내어 들이밀었다.

하지만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축 늘어진 몸을 그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다.

입혀 달라는 건가?

기분이 굉장히 찝찝했지만, 금방 이해했다.

방금 죽다 살아난 상태니까.

나는 기꺼이 그 겉옷을 들고 여자의 몸에 둘렀다.

“기모가 들어간 옷이라 따뜻하실 거예요. 일단 입으시고 좀 있다가 주세요.”

ㅡ 의자가 그렇게 추워 보였나

ㅡ 와. 개 스윗함이 정우성 빰쳤다.

ㅡ 근데 이제 그만. 그 명품 연기 그만 아껴둬 ㅠㅠ

ㅡ 아 시벌. 저거 멈추게 하라니까. 저 새끼 귀신 홀렸다고!

ㅡ 진짜 심각한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멈추냐 저거?

ㅡ 비제이가 예술이라는 걸 보여주는데 닥치고 감상하셈

ㅡ ㅇㅇ 초짜들 같으니라고

나는 여자의 고개를 따라 내 가방 속을 다시금 바라봤다.

혹시나 몰라 가져온 과일을 보는 건가?

그 과일은 다름 아닌 배였다.

“혹시... 배고프세요?”

여자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아... 그럼 이거 드실래요?”

내가 가방에서 배를 꺼내자마자 여자가 빼앗듯 배를 낚아챘다.

그리고 곧장 머리카락 뒤의 입으로 가져갔다.

[ 쩝쩝! 쩝! 쩝쩝! 쩝쩝쩝! ]

여자는 몇 날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댔다.

나는 멍한 상태로 그 광경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그러다 체하세요. 천천히...”

ㅡ 근데 저 새끼 연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ㅡ 시벌. 분위기 깨지 말고 걍 보시라니깐

ㅡ 한 마디, 한마디에 소울이 철철 넘쳐흐르는데 뭔 개소리여

ㅡ 인정. 근데 의자한테 생명을 불어넣는 중인가?

[ 쩝! 쩝쩝! 쩝쩝쩝! ]

어찌나 게걸스럽게 먹는지, 경계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물엔 어떻게 빠졌던 거지?

한참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띵동.

[ 전국노예자랑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시간 잘 때웠다. 개색갸.

띵동.

[ 귀신이고칼로리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허공에 대고 헛소리하는 걸로 2시간을 때우네 시벌

띵동.

[ 아무리생강캐도난마늘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이제 됐으니. 그만 딴 데 갑시다.

그런데.

후원창이 울리는 동시에 내 앞에 살 떨리는 한기가 느껴졌다.

살짝 여자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내 눈앞에 상상을 초월하는 경악스러운 장면이 포착됐다.

머리카락 사이로 배를 베어 무는 그 여자의 치아가 언뜻 보였는데.

하얗게 보였던 치아가 누렇게 변색되는가 싶더니, 급속도로 치아가 달아가며 썩어갔다.

결국에는 까맣게 다 썩어 문드러지며 바닥에 툭툭 떨어져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 여자의 턱.

배를 씹어 먹는 턱이 벌어질 때마다, 입가가 쫙쫙 찢어지며 잇몸에서 검붉은 피를 뚝뚝 흘려댄다.

“어. 어...? 시... 시벌!”

뭔가 잘못됐다.

저 여자... 사람이 아니다.

내 걸음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 어디가려고 ]

허겁지겁 배를 먹고 있던 여자가 내 다리를 낚아챘다.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지만 나는 그 팔을 있는 힘껏 내팽개쳤다.

뒤도 안 돌아 보고 입구 쪽으로 달렸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그 순간에도 엄마가 스치듯 떠올랐다.

놓고 온 옷, 그리고 내 가방이,

고등학생이 됐다고 엄마가 사준 옷과 가방.

그 가방에는 아직 산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내 필살기도 들어있었다.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뒤돌았다.

여자가 배를 툭 뱉어내며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비현실적이게도 팔이 반대 방향으로 꺾인다.

뻐거거걱.

이번엔 다리가.

빠그그극.

관절의 뼈 마디마디가 꺾이며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스럽게 반대 방향으로 꺾인다.

“내 가방, 엄마가 사준 가방이...”

사람. 아니. 귀신이 그런 나를 조롱하듯 입을 더욱 찢은 채 웃는다,

[ 같이 있자 ]

“이 시바아알! 비싼 배까지 줬는데 맛있게 다 처먹고 왜 지랄이야!”

[ 낄낄낄낄낄낄낄 ]

여자는 그 웃음을 하며 짐승처럼 네발로 뛰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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