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게 변해버린 저수지. 1
두 눈을 의심하며 후원 금액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배... 백만 원...
이런 시벌. 저 형님 완전 도랐...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ㅡ 옘병.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보다 더 무서운 새끼여
ㅡ 더 무서운 건 저 새끼 19살이라 성장판이 열려있다는 거.
ㅡ 헉 존나 소름. 후원이라면 불치병도 이겨낼 새끼였네
ㅡ 야 이 돈미새새꺄. 언제는 피곤하다며? 해명해라
“형님들을 호구로 보냐니요.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저 진짜 피곤한데, 형님들이 원하시니까...”
정말 이곳저곳 다 돌아다니며 기가 빨렸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까지 깔며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저 후원 없어도...”
ㅡ 그럼 빤스런 하겠지. 개색갸
ㅡ ㅇㅇ 뒤도 안 돌아보고 우릴 버리겠지
ㅡ 하늘이 내려준 주둥이다. 대처능력 봐라
ㅡ 근데 계속 욕하는 사람들은 후원 많이 하면서 따지는 건가요?
ㅡ ㄴㄴ 저 새끼들 백 원도 안 쏘는 벌레들임
“이런 시벌 날파리 새끼들이...”
탁! 탁!
나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딜 가야 되지?
가뜩이나 나 지금 쉴 생각에 맨몸으로 나왔는데.
컨텐츠... 컨텐츠... 컨텐츠...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아까 찜질방에 있었던 맥반석 계란과 식혜가 떠올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꺼내봤다.
“형님들. 그럼 이런 곳은 어떠세요? 이제 다른 곳은 식상하니까... 무덤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데다가 흉가보다 더 땀을 뻘뻘 흘릴 수 있고 잘하면 제가 기절하는 것도 보실 수 있...”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일단 거기 말고.
“는데... 어디라고 말도 안 했는데... 형님?”
ㅡ 그냥 거긴 말고.
ㅡ 저 새끼 지금 백 프로 찜질방 설명하고 있었다.
ㅡ 와... 시벌 넘어갈 뻔했네. 이젠 하다 하다 혀로 마술을 부리네.
ㅡ 우린 지금 하마터면 저놈 계란 처먹는 거 100만 원 주고 구경할 뻔한 거임
ㅡ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염치없는 새끼네
귀신같은 눈치다.
나를 아주 날카롭다 못해 쑤셔 파고드는 것 같은 기분이다.
시벌. 나도 색다르게 하루쯤은 그런 방송을 해보고 싶다고.
하... 그럼 도대체 오늘은 또 어딜 가야...
그 순간.
얼굴을 문지르고 있던 와중에.
전봇대에 낙서 중 반가운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황송 저수지. 놀러 오세요 ]
나는 고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일단 말을 뱉었다.
그곳은 내가 아는 곳이었으니까.
“형님. 그럼 혹시 저수지는 어떠세요?”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음... 어딘데 거기? 꿀잼 보장되는 거냐?
“아이. 그럼요 저 아시잖아요!”
ㅡ 잘 알지. 사기꾼
ㅡ 특수후원갈취 전과 4000범.
ㅡ 돈미새
ㅡ 특공무술 유단자
나는 턱을 쓸어 만졌다.
그리고 인상을 팍 쓰며 입술을 깨물어 보였다.
“형님들. 여기 산속 한가운데 있는 저수지라 진짜 무서운 곳인데, 형님들에게 꿀잼 주기 위해 그 무서움! 제가 한번 감수해 보겠습니다.”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ㅇㅋ 느낌 왔다. 고고
무슨 느낌이 왔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오랜만에 가보는 곳이다.
사실, 중학생 시절.
친구들이 없던 내가 나무에 낚시 줄과 바늘을 달고 몇 번 놀러갔던 기억이 있다.
경치도 너무 좋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어 아주 조용해서 더 좋았다.
정말 간혹가다 아저씨 한 명을 마주칠까 말까 하는 인기 없는 저수지랄까.
근데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건데 웬 낙서를 해놨을까.
현재 시각. 10시 40분.
나는 옛 추억에 젖은 채로 카메라를 쳐다봤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님들. 그럼 제가 30분 뒤에 다시 방송 켜겠습니다. 딱 기다리십쇼잉!”
ㅡ ㅇㅇ
ㅡ 오케이. 늦지 마라.
ㅡ 늦으면 배영 시킨다.
몸은 정말 피곤했지만, 흐뭇하게 웃으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 이러다가 내가 과로로 쓰러져서 귀신 되는 거 아니겠지?
***
나는 집에서 몰래 가방을 챙겨 낚시터로 향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비록 밤이라 좀 그렇지만 폐가나 흉가가 아닌 게 어딘가?
무엇보다 그 저수지는 좋은 추억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깔린 아스팔트를 지나 비포장길에 접어 들어섰고.
조심스럽게 길을 찾아가며 걷고 있던 중이었다.
내 예상답게 밟히지 않은 풀이 무성하게 자란 게 눈에 띈다.
역시나 사람의 출입이 없었다는 것이다.
새소리부터 시작해, 풀벌레 소리, 개구리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거의 다 도착했다는 생각에 다시 방송을 켰고 들어오는 시청자들을 맞이했다.
“형님드을~~~ 많이 기다리셨죠!”
ㅡ 야 인마. 3분 늦었다. 벌칙 준비해라.
ㅡ 워어... 분위기 조지는데
ㅡ 오늘따라 왜 이렇게 청각 테러가 심하냐
ㅡ 그나저나 이 새 이름 뭐야? 밤에 들으니까 개 소름 돋아
ㅡ 소쩍새인가?
ㅡ 산비둘기임 ㅇㅇ
5년 만에 찾은 곳이었는데.
시바, 별로 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무섭다.
밤이라 그런지 그때와는 다르게 정말 으슥한 느낌이 든다.
나는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표지판을 비추었다.
녹이 슬다 못해 페인트까지 다 지워져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표지판.
“형님들 여기 표지판이 보이네요. 본 저수지는...”
그곳엔 다음과 같은 경고가 쓰여 있었다.
[ 본 저수지는 수시이 기어 매우 위허하오니 수영 및 입수. ]
중간중간 마침표가 지워져 있다.
뒷말은 아예 형체도 없이 지워져버렸다.
뭐 당연히 금지라는 얘기겠지.
갑자기 목덜미를 타고 섬뜩함이 올라온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어떤 미친놈이 수영 미션 시키는 건 아니겠지?
물론 수영도 전혀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여기는 수영이 아예 금지되어 있는 것 같네요. 수영을 하다 걸리면 벌금이 1억...”
ㅡ 미친새낔ㅋㅋㅋㅋㅋㅋㅋㅋ
ㅡ 벌금은 안 쓰여있는데?
ㅡ 그리고 쉬발 무슨 벌금이 1억이냨ㅋㅋㅋ
ㅡ 수영하다 잘못 걸리면 집 한 채 그냥 날아가는 겨?
ㅡ 세상 무섭네. 옘병.
ㅡ 시부랄... 1억 대출받아서 시킬까.
ㅡ ㅇㅈ
나는 옛날 추억에 젖으며 한 발자국씩 낚시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터벅.
그런데.
낚시터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
새벽이라 그런가?
아니다. 그런 느낌과는 달랐다.
좋지 않은 느낌을 받으며 나는 무릎까지 오는 풀 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어... 시벌. 뭐야 이거.”
한눈에 보아도 초토화된 저수지.
낚시터가 온통 녹조로 뒤덮여 있어, 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낚시 용품 및 쓰레기들도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유일하게 존재했던 간이매점으로 급히 뛰어갔다.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쪽은 더 처참하게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유리창은 온통 다 깨져있고 안의 가구들이 다 쓰러져있다.
마치 누군가의 습격이라도 받은 것 같이.
“형님들... 원래 여기가 매점이었었거든요?”
ㅡ 장사 안 돼서 런 했네.
ㅡ 관리가 안 된 지가 한참 됐는데?
ㅡ 사람들이 몰래 깨고 들어간건가?
ㅡ 백퍼 급식들한테 습격당했다.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ㅇㅋ 분위기 합격.
뭐가 분위기 합격이야.
난 사실 이런 분위기를 원하고 온 게 아닌데.
나는 천천히 매점에서 나와 저수지 밖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형님들,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요?”
ㅡ 오늘 개수작 타이밍이 좀 빠른데? 똥 마렵냐
ㅡ ㅇㅇ 뻐꾸기 소리 들림.
ㅡ 또 고라니 섭외했냐
딸랑! 딸랑!
“워 시바!”
나도 모르게 껑충 뛰어 뒤로 물러났다.
“형들! 형들! 종소리! 방울소리!?”
ㅡ 오 나 들은 것 같기도.
ㅡ 개소리 아님?
ㅡ 개가 딸랑딸랑 소리 냄?
ㅡ 낚시 방울 소리 아니여? 밤낚시하는 사람 많잖아?
ㅡ ㅇㅇ 확실하게 들렸음.
시벌... 지금 이 시간에 쓰레기 잔뜩 깔린 저수지에서 누가 낚시를 하냐고...
진짜 그 와중에도 낚시를 한다면 그 사람이 더 무섭다.
“혀, 형님들 몇 분 지났어요?”
ㅡ 아직 20분도 안 지났어 개샥갸!
ㅡ 정확히 5시간 42분 남았다
ㅡ 아침에 끝난다
ㅡ 돈미새 요즘 투잡 뛰나? 겁나 급하네 오늘
ㅡ 주 to the 작
시벌넘이?
저놈은 다 주작이란다. 주작무새 새끼.
언제 기회가 된다면 저 새끼 꼭 끌고 흉가 방송한다.
딸랑! 딸랑!
어... 시벌. 그래!
환청이 아니라니까!
ㅡ 진짜 사람이 낚시하고 있나 본데.
ㅡ 이런 곳에서 낚시를 한다고?
ㅡ 원래 낚시에 환장한 사람은 물만 보면 던짐
ㅡ 인정. 낚시 고인물들은 귀신 개 무시하고 찌만 바라 봄
후 시벌.
그래, 사람이겠지.
갑자기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니 괜한 자신감도 생긴다.
나는 카메라를 보며 씩 웃었다.
“형님들, 오늘 최초로 낚시 하는 분 인터뷰 한 번 가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무서웠는데 시간 때우고 잘 됐다.
나는 방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3분도 채 되지 않아.
한구석에 달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낚싯대 한 대가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역시 낚시하는 분이 계시네요.”
ㅡ 프로 낚시꾼이네
ㅡ 엥? 이 환경, 이 시간에?
ㅡ 쓰레기가 저렇게 떠다니는데 고기가 어떻게 살어?
ㅡ 원래 붕어랑 잉어 같은 물고기는 더러운 데서 잘 삼
ㅡ 시발 이 정도면 낚시꾼이 흉가 비제이 해야 되는 거 아니냐?
ㅡ ㄹㅇ 담 존나 크네 ㅋㅋㅋ
그런데 사람이 없다.
심지어 낚싯대 말고는 근처에는 아무 용품도 없다.
뭐 미끼라든지, 고기를 가둬놓을 어망이라든지. 전혀.
아무리 살펴봐도 사람의 인기척이 없었다.
그때.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와악! 시발! 깜짝이야!”
낚싯대에 달려있는 두 개의 방울이 미친 듯이 울려댔다.
딸랑!딸랑!딸랑!딸랑!
고요한 새벽에 저수지에서, 소름이 쫙 끼쳐 오른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낚싯대의 주인을 불렀다.
“저기요! 뭐 걸렸나 봐요! 저기요 선생님! 여기요!?”
한참을 불러도 낚시 대의 주인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혀... 형님들. 어떻게요? 이러다 낚싯대 끌려가면 어떡해요?”
ㅡ 뭘 어떡하긴 어떡해 인마!
ㅡ 물고기는 챔질 타이밍 놓치면 허탕치는 겨!
ㅡ 낚싯대 주인도 잡아주면 좋아할 거다! 닥치고 챔질!
ㅡ 그게 낚시꾼들의 의리여!
ㅡ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그래도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에 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서, 아무도 없는 저수지에서 방울소리만 계속 들었다.
그때.
띵동.
[ 친정간금자씨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낚싯대 들어 올리면 삼만 원
"사장님! 물고기가 미끼 먹튀할 것 같아요!”
휘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낚싯대를 낚아챘다.
그런데.
“?”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묵직한 무언가가 낚싯바늘에 걸려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나오기를 거부했다.
“으... 으. 형님드을. 이거 뭐가 대물이라도 잡힌... 것 같은... 와자자! 읏차.”
그 짧은 시간에 바늘에 걸린 그 무언가와 엄청난 사투를 벌였다.
낚싯대가 n자가 되도록 휘어졌고, 무려 5분간을 힘겨루기 하다 겨우 끄집어냈다.
툭!
순간, 나는 낚싯대에 걸려 바닥에 널브러진 그것을 보고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발로 땅을 밀어 뒷걸음질 쳤다.
“저거. 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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