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한 구석의 폐 모텔. 6
함천동 경찰서.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얹고 앉아 있다.
잘못한 것도 없지만 왠지 모르게 공손해지는 이곳.
나는 흉악범을 때려눕힌 것도 잊은 채 그저 고개를 떨구고 긴장하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험상궂게 생긴 형사 한 분이 날 흘겨보며 동료에게 물었다.
“얘야?”
“어. 믿어지냐?”
“하하... 나 참. 기가 차네. 기가 차.”
얼굴만 쳐다보아도 포스가 잔뜩 느껴지는 형사들.
역시 강력 범죄 형사들답다.
리얼 얼굴로만 보자면 이 사람들도 범죄자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우리 동네에서 봤던 구촌동 형사는 그냥 옆집 아저씨였네.
험상궂게 생긴 형사가 다가와 내 머리를 헝클듯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망한 지 4년이 넘은 모텔에서 몰래 숨어 지냈더라고. 그걸 얘가 흉가 방송 하면서 찾은 거야. 맞지?”
“네... 네.”
이번에는 머리숱이 없어 이마가 텅 빈 형사 한 분이 없는 앞머리를 다듬으며 다짜고짜 물었다.
“야 인마. 너 몇 살이야?”
“열아홉입니다.”
“너 정체가 뭐야?”
“네? 그냥 학생인데...”
“아니.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인데, 흉기 든 놈을 반 병신을 만들어 놓은 거냐? 그것도 맨몸으로?”
“그냥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껄껄껄껄. 이놈 보게. 전과 24범이 넘는 흉악범을 잡아놓고 어쩌다 보니라네. 우리보다 낫다 야 하하하!”
형사들이 하나같이 크게 폭소했다.
나는 무서운 형사님들에게 몇 가지 조사를 더 받고 나서야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앞으로는 몸 생각해서 좀 더 안전한 방송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 아주 훌륭한 조언도 해주셨다.
근데, 그 안전한 컨텐츠라는 거 저도 정말 하고 싶은데요.
우리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을걸요.
***
다음 날.
사랑하는 우리 엄마, 쥐포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으며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어제 있었던 일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연쇄살인범 판두호가 드디어 검거되었습니다. 당시 모든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인범 판두호를 검거한 사람은 놀랍게도 평범한 학교를 다니는 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당일, 한 지방의 폐 모텔에 인터넷 방송을 하러 방문했다 숨어 지내고 있던 흉악범 판두호와 마주친 것으로 밝혀져... ]
“고등학생 애가 저 흉악범을 맨손으로 잡았다네. 하이고. 세상에.”
“크흠... 대... 대단한 놈이네.”
나는 애써 딴청을 피우며 밥을 거의 마시다시피 쑤셔 넣었다.
혹여나 이 사실을 들키더라도 끝까지 발뺌해야 한다.
괜한 얘기로 엄마의 걱정을 키우고 싶지 않으니까.
새벽에 흉가를 찾아다니는 건 둘째치고.
무궁무진한 일들이 벌어지는 아주 버라이티어하고 아름다운 컨텐츠라...
별의별 근심 걱정이 더해질 것이다.
그나저나... 아침부터 하루 종일 울려대는 이 핸드폰.
무음으로 해놓지 않았다면 이것 때문에라도 금방 들켰을 것이다.
그나저나...
모텔 사건으로 인해 오랜만에 긴장을 너무 세게 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하다.
램프 최고치인 MAX 경험과 살인범과 맞닥뜨렸으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흠... 보양식의 효과도 금방 다 식은 것 같고.
그래서 오늘만큼은 나만의 여유를 갖기 위해 방송국 홈페이지에 미리 공지를 올렸다.
[ 형님들 죄송합니다. 오늘은 방송을 못 할 것 같습니다. (_ _)]
그리고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바로 통천 참숯가마 찜질방 탐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삶은 계란도 먹고, 시원한 식혜도 같이 먹고.
으...! 그 안의 맛있는 음식들까지 몽땅 다 먹어버리고 푹 쉬어야지!
그렇게 잠시 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찜질방에 들어왔다.
“캬. 냄새 봐... 신세계다.”
들어오자마자 코를 찌르는 찜질방 특유의 한방 냄새.
그리고 내 눈을 바로 사로잡는 삶은 계란.
그 이름도 유명한 맥반석 계란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거침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오늘 여기 있는 음식을 다 개박살 내겠다는 마음으로 계란 한 판을 사버렸다.
게다가 얼음이 동동 띄워진 달달한 식혜까지.
당당하게 그 음식들을 들고 들어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탁!
계란을 하나 들고 내 이마빡에 힘껏 후려쳐서 한 개를 까먹고.
“으음... 시벌. 이게 천국이지!”
식혜 한 모금까지 입에 넣었을 땐 천국이 따로 없었다.
크... 먹방 하는 사람들은 이런 맛있는 걸 맨날 먹으면서 돈 버는 거 아냐.
진짜 개 부러워 미치겠다.
나는 맨날 귀신 보고 염라대왕이랑 안부 주고받는 게 생활인데...
그렇게 한탄 아닌 한탄을 뱉어내며 생각했다.
‘하... 다음은 또 어딜 가야 되냐...?’
매번 갈 때마다 헛것을 보는 건 기본.
어제는 흉악범까지.
이젠 도대체 뭘 만나고 뭘 봐야 하는 거냐 시벌.
부적이라도 하나 해야 하나?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여보세요?”
그런데 어쩐지 목소리가 낯익다.
“야! 정연우!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누구...”
“누구긴! 나 박필준이야. 번호 바꿨어. 핸드폰 귀신 들렸는지 터치가 잘 안돼서.”
“아. 웬일이야?”
“너 지금 방송 홈페이지 난리 났어. 확인해봤어? 기사도 잔뜩 나고. 확인 안 했구나?”
“어? 잠깐만, 나중에 전화할게.”
무슨 일이지?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 ‘편두호’를 검색해 봤다.
[ 2년 동안 오리무중이었던 편두호 학생이 잡아... ]
[ 어두운 모텔에서 격투 끝에... ]
[ 편두호, 경찰보다 학생이 빨랐다. ]
나는 두 눈을 껌뻑거렸다.
기사가 수십은 되어 보였다.
나는 한쪽 눈을 긁적거리다가 내 방송국에 들어갔다.
“뭐야...?”
폭탄 댓글들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ㅡ 여기가 그 살인범 잡은 비제이 홈페이지 맞죠?
ㅡ 꺄. 이 오빠 잘생겼네. 범죄자도 때려잡고 내 마음도 때려잡아버리넷!
ㅡ 오늘부터 팬 할래요 ♡
ㅡ 꺼져라. 내 거니까.
ㅡ 제 아는 지인이 그 범죄자 때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감사 표시라도 하고 싶은데
ㅡ 대한민국을 평화롭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즐겨찾기 하고 갑니다.
ㅡ 혹시 이 비제이 방송 언제 하나요?
ㅡ 저두요. 방송 보시던 분 댓글 좀 달아주세요.
ㅡ 아마. 사건 일 때문에 바빠서 요번 주는 못 함.
ㅡ ㅇㅇ. 사건 처리할 것 들이 많아서 아마 못 올 듯요.
수많은 댓글과 함께 눈에 띄는 즐겨찾기 수와 구독 수.
고작 즐겨찾기 201명. 구독수 187명이었던 과거와 달리.
하루아침에 그의 10배.
아니. 20배가 넘게 늘어버렸다.
즐겨찾기 4508명. 애청자 수 4414명.
“시... 시바. 이게 꿈이야. 생시야.”
즐겨찾기와 구독 수에 한번 크게 놀랐지만, 진짜 놀랜 건.
ㅡ 이 비제이한테 후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ㅡ 후원을 좀 하고 싶어서 충전해 놨는데... 오늘 안 오시는 거죠?
ㅡ 아쉽네. 간만에 50만 원이나 충전해놨는데... 1시간만 기다렸다 딴 방송갑니다.
ㅡ 저도요. 30만 원 세팅했는데 후원하려니까 휴방이네.
나는 빛의 속도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마빡에 쳤던 계란과 한 모금 먹은 식혜를 쟁반에 두며 옆에 있던 아저씨에게 소리쳤다.
“아... 아저씨! 이것 좀 지켜주세요. 금방 올게요!”
그리고 재빨리 찜질방을 나가 방송을 켰다.
후원을 해주고 싶다는데, 시청자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게 비제이의 본분 아니겠는가?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니콜키크드만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이웃집또털어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선녀와누워꾼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나는 어둑어둑한 하늘을 비추며 얘기했다.
“형님드으으을. 정이루! 연우가 왔습니다!”
ㅡ 야. 너 오늘 쉰다면서 어떻게 왔어?
ㅡ 엥? 경찰서 조사받고 뭐 하고 바쁜 거 아니었어?
ㅡ 잘 해결된 건가?
ㅡ 됐고 형님. 앞으로 안 게길게요.
ㅡ 시벌. 돈미새 또 시청자들 돈 빨아먹으러 왔네.
ㅡ 하루도 쉬질 않네. 소름 돋는다.
밀물 들어오듯 들이닥치듯 시청자 수에 내 입꼬리가 혼자 나대며 귀에 걸렸다.
30명... 150명... 240명... 315명.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계속해서 늘어났다.
결국. 441명까지.
시... 시바 대박이다 진짜.
순간 턱이 잔뜩 벌어져 다물어질 생각이 없었다.
“혹시나 형님들 걱정하실까 봐 저 괜찮다는 거 보여드리려고 잠깐 켰죠!”
반은 맞는 말이다.
ㅡ 구라 치고 앉았네. 아주 입만 열면 구라가 자동으로 나와.
ㅡ 하긴 너 뭐 생채기 하나 없이 일방적으로 때려눕혔잖아?
ㅡ 그래 맞아. 내가 왜 저 슈퍼맨 같은 옘병할 놈 걱정을 했던 거지?
ㅡ 온 김에 방송이나 해라. 이번엔 산속 절 같은데 어떠냐?
ㅡ 뭐... 이참에 경찰 대신 범죄자 잡으러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시벌넘이?
마른 오징어 즙 짜듯 비틀어 버리고도 남을 새끼.
난 잠깐의 이 소통이 끝나면 무조건 갈 거다.
“하하. 안돼요. 형님들. 어제 일로 피로가 너무 많이 뭉쳐서...”
나는 카메라를 보고 방긋 웃으며 눈은 시청자 목록을 살폈다.
아까 그 사람 아이디가 뭐였더라...
띵동.
[ 선지혜 님이 3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흉악범 잡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후원창이 끝나기도 전에.
띵동.
[ 이성훈 님이 5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시민으로써 정말 고맙습니다. 편두호 잡아주셔서.
“헉!”
순간 나도 모르게 잇몸이 보이도록 입을 활짝 벌렸다.
갑자기 미친 듯이 에너지가 치솟는다.
박카스 한 박스를 모두 처먹은 것처럼 피로가 싹 가셔버렸다.
“아이고오오! 선지혜 형님! 아니 누님! 이성훈 형님! 후원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나쁜 놈들은 제가 꼭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겠습니다아아아아!!!”
ㅡ 아하. 이 새끼 표정 보니까 이제 알겠네.
ㅡ ㅇㅇ 돈미새. 지금 잠깐 방송 킨 것도 황금 설계임. 이 순간을 위해 킨 거.
ㅡ 아니 쉬벌. 1시간 타이머 인데 5분 만에 왔네. 설마 기다렸냐.
ㅡ 그나저나. 비제이 새끼 뭐하다 왔는지 딱 알겠다. 주둥이에 밥풀때기 묻은 거 보니까.
ㅡ 백 프로 찜질방에서 계란 이마로 까서 처먹고 식혜 한 모금 빨고 헐레벌떡 왔을 거임.
ㅡ 존나 괘씸하네. 님들. 이 왕 온 거 방송이나 시킵시다.
ㅡ ㅇㅋ. 새로 오신 분들 후원 좀 도와주세요. 저 새낀 후원이면 무조건 움직입니다.
나는 연신 고개를 푹 숙여대며 시청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남기고 온 계란과 식혜를 먹으러 가기 위해, 작별 인사도 이어 건넸다.
“휴. 형님드을! 정말 감사합니다. 잠깐 소통하러 온 건데 이렇게까지 후원을 해주시고... 그럼, 연우는 오늘 푹 쉬고 다음 방송...”
그때.
띵동.
[ 전국노예자랑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어디 가? 방송해야지. 1시간 동안 컨텐츠 진행하면 오만 원. 여러분. 나머진 맡깁니다.
띵동.
[ 귀신이고칼로리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 30분 삼만 원 갑니다.
띵동.
[ 아무리생강캐도난마늘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 30분 삼만 원요. 이렇게 하면 되나요?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폐가를 체험하면서 기가 엄청 빨린 느낌이다.
거기에 살인범과의 난투극까지.
그리고 한 번 말을 뱉었으면 그 말을 지키는 것이 남자 아니겠는가.
나는 재차 인사를 건넸다.
“그럼 형님들. 좋은 밤...”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4시간 100만 원.
순간, 고개를 숙인 채로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얘기했다.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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