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한 구석의 폐 모텔. 4
“선생님, 선생님...?”
치이이이이익-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은 것처럼 고스트 박스가 노이즈를 싸늘하게 흘린다.
현재 시청자. 198명.
현재 시각. 12시 24분.
새벽 한시를 36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꾸준하게 들려오는 노이즈 소리.
어렸을 적 TV를 틀어 놓고 자다가 치직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적이 여럿 있었다.
그냥 듣기에도 거북한 소린데.
치이이이이이익-
마이크 증폭과 함께 건물 전체에 그윽하게 울려 퍼진다.
이 708호 안에서.
채팅창에 잠깐 멈추며 시청자 모두가 고스트 박스에 집중한다.
치이이이익-
1분이 흐르도록 지켜봐도 대답이 없다.
노이즈 소리만 들리는 이 고요가 분위기를 더욱 압도한다.
ㅡ ?
ㅡ 뭐여? 불량품 아녀? 주파수 맞춰야 하는 거 아니냐?
ㅡ 쉬벌. 이건 고요 속의 외침보다 더 십난이도인데...
ㅡ 야 인마. 선생이 아닌데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그렇지. 다시 불러봐.
ㅡ ㄱㄱㄱㄱ
나는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한껏 늘려 고스트 박스를 신중하게 쳐다봤다.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다시 고스트 박스에 귀 기울였다.
나는 메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귀... 귀신 어르신? 어르신 저와 대화 좀 나누실 수 있...”
이때.
치지지이이익...
[ 나%!$#@#$! ]
내 오른손이 경기를 일으키듯 떨린다.
본능적으로, 석상처럼 한걸음 물러났다.
나의 검지가 무의식적으로 고스트 박스를 가리켰다.
“혀... 형님들? 형님들?”
ㅡ 뭐라고 한 거야?
ㅡ 나 밖에 안 들렸는데.
ㅡ 와. 근데 대답을 하긴 하네? 존나 신기하다.
ㅡ 잉? 난 못 들었는데... 다시 해주세요. 들어보게.
나도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물기가 싹 다 사라진 부르튼 입술을 조심스럽게 열어다.
“귀... 귀신 어르신. 다시 한번만... 한 번만 더 말씀을 좀...”
치이이이익-
[ 꺼!#^&$!!고 ]
시바...
라디오처럼 지직 거리고 있는 가운데 틈새로, 분명 목소리가 들린다.
“꺼, 꺼지라고 한 것 같은...? 형님들? 들으셨죠? 드, 들었죠?”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니다.
무전 통신 중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이랄까.
또한 이 고스트 박스를 통해 나오는 음성의 톤 자체가 굉장히 하이 톤이다.
그 음성은 여성의 목소리와 굉장히 흡사했다.
그래서인지 물기 없는 입술이 더욱 바짝바짝 마른다.
이곳에서 죽어나간 사람은 전부 여성들이었으니까.
“혀, 형님들? 아직 30분 멀었나요?”
지금 이 순간 너무 무력하다.
치직 거리며 한기를 줄줄 흘리는 것 같은 저 고스트 박스가, 날 잡아먹을 것만 같다.
ㅡ 에라이. 이 새꺄. 30분이 아니라 3분도 안 지났다.
ㅡ ㅋㅋ 30분이 3시간 같은가 보지?
ㅡ 걱정 마. 그 30분이 지나면 다시 누군가가 늘려줄 테니까
ㅡ 아직 아무 대화도 안 했는데 벌써 질색하면 어떡해. 돈미새 새꺄!
ㅡ 인정. 시벌. 가만히 있지 말고 무슨 얘기라도 좀 해봐 봐.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고스트 박스를 발로 차버리고 싶다.
아니지, 내가 저걸 얼마 주고 샀는데...
그냥 전원 버튼이라도 빨리 눌러 꺼버리고 싶다.
3분도 아니고 30분을 보이지 않는 뭔가와 대화를 해야 한다니.
그래도 말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목이 녹슨 것처럼 마른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거린다.
나는 채팅창을 위아래로 눈알을 빠르게 읽다 이내 입을 열었다.
“형님들. 저는 도저히 하나도 생각이 안 나네요. 혹시 여쭈어 보고 싶으신 거 있으신가요? 후원창으로 말해주세요.”
ㅡ 이런 시발놈이. 또 장사질이여? 그냥 채팅은 안 되냐?
ㅡ 그새 시청자가 늘었다고 우리 비제이 님께서 채팅창이 보기 힘드시답니다.
ㅡ 인마 이거 후원 유도 하는 거 보소 ㅋㅋㅋㅋ
ㅡ 하 이색끼.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네...
ㅡ 그러지 말고 형님들 질문이나 해봅시다. ㄱㄱ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누군지 물어봐 봐.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남잔지 여잔지 물어봐봐.
띵동.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귀신이 대답하는 척 제품 잘 만들어놨네. 주작 ㅅㅂ
그런데 갑자기.
치이이이이-
[ 죽여!$^$$%@%아! ].
덜컹! 덜컹!
갑자기 앞에 있던 협탁 들썩였다.
정말 놀라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평소처럼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만 찢어질 듯이 부릅떠진다.
“시... 시벌...”
나는 뒷걸음질 치며 벽에 바짝 붙었다.
“혀, 형님들. 아무래도 후원 소리가 많아서... 시끄러워서 화나신 것 같아요.”
나는 굳은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안 되겠어요 형님들. 전자녀 만 원으로 올려야겠습니다. 정말 진지하신 분들만, 진지하게 질문 부탁드려요.”
ㅡ ㅋㅋ 표정은 개 심각한데... 결국 후원 금액 올리겠단 소리냐??
ㅡ 그 와중에 라임 지렸다.
ㅡ 개 구라 치고 있네. 이 쉬발럼아. 그냥 돈을 더 받고 싶은 거잖아.
ㅡ 아니. 옘병 여기가 무슨 경매장이야?
ㅡ 하다 하다 이제는 귀신 핑계까지 대네. 이 뮈친넘...
띵동.
[ 귀신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있네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 인마 촌놈. 그거 배고파서 그런 거여. 뭐라도 먹여봐. 여자는 배고프면 예민 보스 됨.
그 말에 나는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조심스럽게 행동을 옮겼다.
나는 고스트 박스를 무슨 생물체 마냥 눈치를 보며, 가방에서 사과와 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종이에 담아 고스트 박스 앞에 놓고 재빠르게 물러났다.
“혹시 식사하셨나요? 일단 이것 좀 드시고...”
치이이이이익-
[ 시!$^[email protected]
#거^[email protected]
$ ]
나는 음식을 내려둔 그 사이 여유를 좀 두고 얘기했다.
“저... 저기 근데, 혹시 여성분이신가요...?”
그 순간.
[ 응. ]
“형님들 들으셨죠? 들으셨죠!?”
중간에 섞이는 노이즈 소리가 깔끔하게 중단되며 아주 뚜렷한 여성의 목소리가 답했다.
ㅡ 오? 진짜 응이라고 대답한 것 같은데?
ㅡ 대박. 개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딱딱 맞는 대답을 할 수 있는 거지?
ㅡ ㅋㅋ. 아 쉬벌. 그냥 하다 보니 아다리가 맞은 거지. 뭘 신기해하고 있어
ㅡ 그니까ㅋㅋ 다들 개 순진하네.. 저 기계 그냥 쉬운 단어만 계속 얘기할걸?
ㅡ 비제이님. 아니 아니. 그럼 여러분 다른 것도 질문 좀 해봐요 누가!!!
띵동.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여기서 어떻게 죽었냐고 물어봐. 이건 대답이 길어서 말하기 힘들걸? 주작인지 아닌지 알겠지.
“전자녀 만 원...”
띵동.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시발 놈이? 손절각 나오려고 하네.
“아닙니다. 형님. 제가 잠깐 빙의돼서 헛소리가 막 튀어나오네요.”
나는 내 스스로 주둥이를 찰싹 때리며 고스트 박스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고스트 박스에서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묵묵히 노이즈만 흘려 댈 뿐이었다.
그렇게 30초가 흘렀을까.
뚝-
순간 아까 그 여성의 깔끔한 목소리가 입혀졌다.
[ 살해 ]
ㅡ 어? 살해라고 방금 하지 않았어? 와. 개 소름 미쳤다.
ㅡ 아니. 이렇게나 선명하게 대답하는데 이게 주작이라고 하는 놈이 있네
ㅡ 진짜 레알 찐이다. 이거 레전드 아니냐 오늘?
ㅡ 연우 필살기 인정. 시발. 진짜 개 잘 가져왔다.
ㅡ 근데... 여기 연달아 자살 사건 났던 곳 아니야? 근데 웬 살해?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말하지 않은 한 사건을 되새기며 얘기했다.
“혀, 형님들. 제가 말씀 안 드렸죠? 여기 왜 연달아 자살 사건이 일어났는지...”
물론 계속해서 고스트 박스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모텔에서 최초로 일어난 사건은 자살 사건이 아니에요. 살인사건이었어요. 가정에 소홀해진 아내를 의심한 한 남편이...”
그 순간.
치이이이익.... 치이이이익-!
[ !$#하지마 ]
[ 꺼져[email protected]
#^씨발! ]
소리치는 것 같은 뾰족한 음성에 솜털이 쫙 선다.
나는 다급하게 다시 벽에 붙어 검지로 고스트 박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혀, 형님들! 방금 하지 마. 꺼져 씨발이라고!”
나는 곧장 카메라로 고개를 돌려 얘기했다.
“혀, 형님들. 이거 위험한 것 같아요. 귀신분이 너무 화나 신 것 같은데 이제 그만...”
ㅡ 와... 진짜 목소리 들리네 개소름
ㅡ 야. 시벌. 나는 말하다 마는 새끼가 젤 짜증 나더라. 안 그래요? 여러분?
ㅡ 인정. 집까지 쫓아가서 들어야 직성이 풀림.
ㅡ 너 정말 무서운 게 귀신이라고 착각하는 것 아니냐? 더 무서운 게 뭔지 보여줘?
ㅡ 속지 마라 병신들아. 저 새끼 이거 후원 유도하는 거다
이 시바 새끼들이?
너희가 여기 와서...
띵동.
[ 쟤시켜알바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30분 지났네? 축하한다. 근데 미션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사건 내용 다 읊어. 오만 원 추가.
순간, 반사적으로 입가가 올라간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것일까.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한다.
“아이고오오! 쟤시켜알바 형님. 땡큐 베리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형님! 충성! 충성!”
그때.
희한하게도 고스트 박스에서는 말을 걸지 않아도 엉뚱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 왔%@$#@도망%^! ].
[ 빨리!$#$ 도망!$% ].
ㅡ 거봐. 시발. 저거 병신 제품이라니까. 혼자 대답하잖아 ㅋㅋ
ㅡ 뭐라는 거야? 왔다. 도망가? 빨리 도망쳐? ㅋㅋㅋ
ㅡ 야. 불량품 인증됐으니까 얘기나 마저 해봐. 얼른.
뭐지?
뭔가 꺼림칙한 기분에 나는 미션을 빨리 해결하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머릿속으로 탈출 회로를 풀가동 시켰다.
“아니. 이게 왜 이상한 말을... 일단 형님들. 사건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해서 그 남편분이 아내 핸드폰에 추적 앱을 몰래 깔아놓고, 미행을 한 거예요. 결국 불륜의 장면을 목격하고 참지 못하고... 빠루로 모텔 문을 땄다고 했나....”
그 순간.
발자국 소리가 건물에서 울렸다.
터벅! 터벅! 터벅!
그 소리와 함께 쇠가 바닥에 갈리는 듯한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키이이이이키익-
나는 눈을 깜빡이며 내가 들어온 문을 쳐다봤다.
“형님들? 소리!? 사람?”
ㅡ 그치. 이거 사람 소리지? 근데 누구냐? 노숙자인가?
ㅡ ㅇㅇ. 백퍼 사람 발자국 소리다. 근데 뭔가 둘리 방송 데자뷔 느낌인데.
ㅡ 계단 존나 빨리 올라오는데? 뭔가 예감이 안 좋다.
ㅡ 쇠 파이프 갈리는 소리 아니냐? 시벌. 일단 문 잠가라.
내가 있는 곳과 점점 가까워져온다.
소리가 한층 더 선명해질수록 그 발자국 소리엔 감정이 느껴졌다.
아주 성난 듯한 그 무엇이.
확실했다.
한 발짝 한발 한 발, 바닥을 짓이겨 밟는 소리가 감정을 나타낸다.
그 와중에도 고스트 박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뱉어냈다.
[ 도망[email protected]
$%%라고 ]
[ 너$#[email protected]
살해#[email protected]
!]
그렇게 그 소리는 4층, 5층, 6층을 넘어서 결국 7층까지.
순식간에 가까워져버렸다.
느낌이 좋지 않다.
멈추지 않고 내가 있는 쪽으로 거침없이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시벌!”
나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모텔 방문을 잠가 버렸다.
철컥.
잠시 동안의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호흡 소리도 새어나갈까 숨죽이며 문을 빤히 쳐다봤다.
순간 문고리가.
철컥. 철컥철컥.
쾅! 쾅!
주먹으로 있는 힘껏 방문을 두드려대며 동시에 문을 뽑아 버릴 듯 당겨대는 그 무엇의.
“와아아악! 누! 누구세요? 왜 그러세요!”
들려오는 대답은 일절 없었다.
철컥. 철컥철컥.
쾅! 쾅! 쾅쾅 쾅!
이제는 아예 문을 부숴버리려는 듯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누구세요! 개, 개청자 세요!? 안 무서우니까 그만 좀!”
시발 진짜 무섭다.
정신이 미쳐 나가버릴 지경이다.
쾅.
그런데.
갑자기 방 밖의 그 무언가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대신에.
복도에서 그 무언가의 목소리가 문 틈새로 스며들어왔다.
“문... 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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