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한 구석의 폐 모텔. 2
‘으아아아아!!! 그래! 보기의 밸런스를 맞춰야 했어. 내가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버스 막차를 타고 가며 자책 중이다.
모든 과목 통틀어 평균 87점 이상을 항상 맞아왔던 내 머리에서 급하게 지어낸 공지였는데.
다시 돌아보니 너무 형편없다.
자동적으로 헛 웃음도 나올 정도였다.
“하하...”
아... 이놈의 흉가 때문에 습관적으로 긴장이 돼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갈 때가 있단 말이지.
하지만, 나는 손에 쥐고 있는 EMF 측정기를 보고선 씩 웃었다.
‘그래도 네 녀석이 있으니 이제 뭔가 마음이 든든하다.’
나는 가방으로 시선을 돌려 가져온 준비물들을 체크했다.
“보조배터리 있고, 소금, 팥, 찹쌀, 휴지, 건전지... 음. 좋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EMF 측정기를 먼저 켜봤다.
자신 있게 가져왔는데 혹시나 작동을 안 한다거나, 오작동을 할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돼버릴 테니까 말이다.
탁.
EMF 측정기에 모든 램프가 한꺼번에 켜졌다 꺼지며 전원이 들어왔음을 알렸다.
그런데.
“워웁!”
순간, 화들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모두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리 큰 소리가 새어 나오진 않았는지 버스기사와 앞에 앉은 아저씨는 나를 흘깃 쳐다보고 말았다.
그리고 오른쪽에 타고 계시는 할머니에겐 아예 닿지도 않았는지 정면만 응시하고 계셨다.
‘이게 왜 이러지?’
나는 EMF 측정기를 손으로 두드렸다.
EMF 측정기를 켜자마자 램프에 3단계씩이나 불이 들어왔다.
제일 왼쪽 칸부터 시작해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 그리고 MAX 빨간색까지 들어오는 램프.
그중 노란색 램프까지 말이다.
이는 둘리와의 폐 병원에서 다리를 절단했던 그 영가가 있었던 병실에서의 단계와 같았다.
나는 EMF 측정기의 전원을 껐다 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시바. 뭐야? 불량품인가?’
껐다 다시 켜봐도 증상은 같았다.
여전히 노란색 램프까지 채워졌다.
안 그래도 일주일이나 기다려서 받은 건데, 첫 제품부터 불량품이라니.
이놈의 필살기가 내 손안에 들어와서 굉장히 든든했건만...
갑자기 오늘 고생 길이 훤히 보인다.
마치 천국에 들어갔다 지옥으로 다시 유턴하는 느낌이랄까.
하... 칼 퇴근 마렵다.
그 사이.
버스기사 아저씨는 마지막 버스 종착점에 세워 버스에 계신 승객들에게 물었다.
“종착지 도착했습니다. 다음은 차고지에유. 놓고 내리는 것 없이 확인들 하고 내리셔유.”
하나둘씩 사람들이 종착점에서 내렸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할머니와 나.
나는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얘기했다.
“네. 저는 차고지에서 같이 내리려고요.”
“그려~”
버스기사 아저씨가 내 말을 듣고는 곧장 출발해버렸다.
옆 좌석에 계신 할머니도 차고지에서 내리실 모양이었다.
살짝 이상한 느낌이 들긴했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계속 EMF 측정기를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버스는 차고지에 도착했고.
나는 먼저 내리며 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야~”
그 순간.
내 발이 바닥에 닿는 동시에 버스기사 아저씨가 시동을 끄고 혼자 내리는 모습에 멈칫했다.
아직 내리지 않은 한 분이 버스에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놀란 마음에 버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 아저씨. 아까 저기 할머니 계셨는데...”
“뭐라고?”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좌석을 살펴보던 버스기사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버스 위에 올라가 불을 켰다.
그런데...
나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버스 실내 등이 켜지자 창가에 앉아 계셨던, 할머니가 온 데 간 대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시바...
누군가 차가운 손으로 목덜미를 스치듯 솜털이 바늘처럼 솟구친다.
기사 아저씨는 한자리 한자리 꼼꼼하게 살펴보고 다시 내리시더니 내게 얘기했다.
“학생 중간에 졸은 거 아녀? 다 내렸어. 난 또 내가 잘못 봤나 했네.”
“네? 아니...”
아저씨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어깨를 토닥이고는 뒤돌아 가셨다.
“밤길 조심 혀. 여기 무서운 동네잉게.”
“...”
나는 그 순간.
EMF 램프에 아무 불도 들어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나는 버스기사 아저씨의 마지막 한마디를 생각하며 몸을 쓸어내렸다.
표정 없는 얼굴로 정면만 응시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으... 시바... EMF가 고장 난 게 아니었어.”
영가는 어디 어느 곳에서든 존재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점점 더 영가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하...’
몸이 허해서 그런 것 같아 좋은 것도 많이 먹고 왔는데, 소용이 없다.
심지어 이제는 이 증상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온갖 잡생각을 하며 버스 차고지에서 500m 정도 걸어왔을까.
드디어 내가 오늘 탐험하게 될 폐 모텔이 모습을 드러냈다.
4년이 넘어서도록 발길이 끊긴 나머지, 청소가 안되어 새카맣게 먼지가 덮여버린 폐 모텔.
중간중간 창문이 깨진 모습과 그 창문 사이로 보이는 찢어진 커튼은 내 마음을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잠시나마 인상을 찌푸렸지만, 방송을 켜기 위해 다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게다가.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마침내 등장하신 큰 손 형님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도 빡세게 일 한 번 해볼까?
나는 다른 때보다 더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형님드을! 정이루! 많이 기다리셨죠? 제가 드디어 폐 모텔에 도착했습니다.”
ㅡ 쫄이루. 근데 주변 환경이 죄다 논밭이네. ㅋㅋ 어떻게 저렇게 한가운데 모텔이 있냐?
ㅡ ㅋㅋ 그러게. 저러니까 망하지. 누가 가냐 저기를.
ㅡ ㄴㄴ 모텔 안 가보셨구만? 오히려 저렇게 외진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 많음.
ㅡ 지랄. 저런 델 좋아한다고? 네가 안 가본 거 아니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ㅡ 저 사람 말이 맞음. 이런 곳은 불륜 저지르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곳임.
ㅡ 아... 불륜. 사람들 시선 피하기에 딱이겠구나.
ㅡ 정답.
사실이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유도 인터넷을 급하게 뒤적거리다 본 썰들 때문이었다.
저곳은 방치된 지 지금 4년째 된 모텔.
하지만, 이런 한구석에 있는 모텔인데도 불구하고 매출이 상당하게 잘 나왔다고 한다.
평일에도 빈 방이 없을 정도로.
하지만 알 수 없는 의문의 사고로 자꾸 모텔 안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했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졌고 그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끊겨버린 곳이다.
희한한 건.
죽어 나간 사람들이 죄다 하나같이 여자들이었다는 것.
사건 중엔 강력 사건도 있었다.
이 모텔에서 아내의 불륜 현장을 습격한 남편이, 아내를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
나는 7층 건물로 만들어진 썩은 폐 모텔을 비추며 얘기했다.
“맞아요. 형님들. 이곳은 불륜 장소로 굉장히 유명했던 모텔입니다. 그래서 저기 보시면...”
나는 이 폐 모텔 주위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 하나를 카메라에 담았다.
“쉬면서 차 한잔할 카페도 있었죠.”
하지만 모텔이 망하며 자연스럽게 카페도 문을 닫아버렸다.
주위가 논밭인 이 환경에 저 두 건물만 싸늘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물론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폐가로서.
그나저나 뭔가 기분이 묘하다.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세지는 이 가을바람은 항상 느끼던 거지만.
한 발짝 한 발짝, 폐 모텔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아랫배 쪽이 시린 느낌이 든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다시 아까 꺼냈던 EMF 측정기를 꺼냈다.
그리고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얘기했다.
“일단, 형님들. 입구에 도착했으니까 EMF부터 측정해 볼게요.”
탁.
심장이 두근거리며 아까의 긴장감이 되살아난다.
그런데.
“음?”
다행히도 입구는 신호가 약했다.
램프가 반칸도 채 들어오지 않은 채 깜빡였다.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사연을 읽고 제일 찝찝하게 여겼던 곳인데.
램프로 미리 확인하고 피할 수 있다는 건 내게 너무 신세계였다.
역시 난 천재인가? 정연우 아주 칭찬해.
캬캬. 개 쌉이득이네 진짜.
ㅡ 이런. 뭐여? 여기 뭐 귀신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거 아녀?
ㅡ 에이. 시벌. 비제이 놈 공지에 잔 머리 써서 올린 게 딱 티 나서 고른 건데. 별거 없네
ㅡ ㄴㄴ 님들. 아직 입구잖아요.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 비제이는 우릴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ㅡ 인정. 없던 귀신도 찾아오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놈임.
나는 자신감을 장착한 채 EMF 측정기를 들고 성큼성큼 출입문 앞으로 걸었다.
“형님들. 이제 본격적으로 탐험 시작할게요!”
그리고 폐 모텔의 출입문을 열었다.
끄그으으익-
유리가 시멘트에 부딪혀 갈리는 괴상한 소리가 나며 귀를 자극했다.
ㅡ 으. 시발. 저 소리는 맨날 들어도 지랄 같네. 음소거 안되냐 저 부분만.
ㅡ 레알 ㅇㅈ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만큼 듣기 싫은 소리 중 하나임.
ㅡ 그래도 흉가인데, 저 소리 안 들리면 이상할걸요? 흉가에 자동문 달려있음 기분이 나겠음?
ㅡ ㅋㅋㅋㅋㅋㅋ 그것도 그렇넼ㅋㅋㅋㅋㅋ
사람의 출입이 얼마나 없었던 것인지 문을 열 때 연쇄 반응으로 일어난 먼지가 안개처럼 떠다닌다.
게다가 컴컴하고, 한옆에 비치된 전신 거울이 섬뜩하게 나를 비춘다.
하... 벌써부터 지리네 시벌...
나는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형님들. 여긴 카운터 같은데... 안에는 방 키랑, 담요 같은 게... 일하시던 분이 쓰던 흔적이 보이네요.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 센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사이 램프를 힐끗힐끗 계속 쳐다봤다.
좌우로 양 갈래 복도가 나 있었는데, 왼쪽으로 슬쩍 가져가대니 3단계를 알리는 노란색에 불이 들어왔다.
‘시발...’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 했지만...
나는 겨우 표정 연기를 하며 이번엔 오른쪽 복도로 EMF를 쭈욱 뻗었다.
물론 나만 볼 수 있게.
“어딜 가야 되나... 음... 니나니노니 고릴라다. 딩동댕!.”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오른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이 복도는 한 칸, 3칸에 비하면 개이득인 곳이었다.
“형님들. 이것 좀 보세요. EMF에 불 들어온 거 보이시죠? 일단 여기로 가 볼게요.”
그 순간.
띵동.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어이. 동작 그만.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당황하지 마라.
나는 오른쪽으로 걷고 있던 중에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네. 형님 왜요...?”
띵동.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형님들. 제가 보기엔 이 비제이 새끼 램프 가져온 이유가, 아마도 신호 많이 뜨는 곳 피하려고 가져온 것 같아요. 맞지? 십색갸.
시벌. 벌써 들킨 건가? 이 자객 새끼.
내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하지만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살아남으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헛웃음이 터져 나온 연기를 해대며 얘기했다.
“하하. 형님. 무슨 소리예요. 근거 없이...”
ㅡ 엄머. 근거? 근거 있지. 너 방금 밑에 램프 확인하느라 내린 시선 때문에 턱 두 개 접힌 거 알어 몰러?
ㅡ 모두들 보쇼. 왼쪽 램프 슬쩍 확인해 봤는데 높으니까! 오른쪽 램프 들이밀면서 간 거 아뇨!
ㅡ 정연우. 그 패 봐봐. 아니 아니. 그 램프 비춰봐 봐.
ㅡ 이제부터 꼼수 쓰지 마. 손모가지 날아가붕게. 해머 갖고 와.
ㅡ ㅋㅋ 이 사람들 상황극 척척 맞넼ㅋㅋㅋㅋ
인정하면 끝이다.
나는 답답한 척 가슴까지 두드렸다.
“형님들.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오늘도 일주일 만에 형님들 꿀 잼 드리려고 해외 제품까지 사가지고 왔는데... 서운하네요 진짜.”
그때.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서운? 서운하면 안 되지. 미션 준다. 이 모텔에서 최고 단계 찍는 곳 10분 안에 찾으면 십만 원.
그와 동시에.
ㅡ 나도 펀딩 한다. 10분 안에 찾으면 만 원 더.
ㅡ ㅇㅋ. 그럼 나 역시도 갑니다. 내일 국밥 값 8천 원!!!
ㅡ 담뱃값 사천오백 원.
ㅡ 이어 갑니다. 삼백 원.
ㅡ 님? 그건 그냥 넣어두세요.ㅋㅋ 제가 대신 내드림. 합쳐서 이만 원.
ㅡ 좋아! 오늘 회 시켜 먹을 돈 투자한다.오만 원!!!!
ㅡ 기분이다. 나도 십만 원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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