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부서진 여 기숙사. 5
“뭐!? 필준아, 왜? 왜?”
“야. 왜 여기 사람이... 뭐야 저거?”
박필준은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을 떡하니 벌렸다.
ㅡ 야. 너네 둘이 뭐 하냐? 오우 그나저나 까마귀 러쉬 뭐여. 시벌
ㅡ 아따. 까마귀들 소풍 왔나. 겁나 시끄럽네. 확 다 잡아서 된장 발라버릴까 보다.
ㅡ ㅋㅋ 근데 진짜 까마귀 고기 맛있다는데요? 다른 나라에서는 요리로 해먹기도 하던뎅
ㅡ 레알? 저 징그러운 새를? ㄷㄷ... 먹어보고 싶당! 헤
시바... 아무리 봐도 여긴 위험하다.
내 눈에만 보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을 텐데, 저 녀석에 눈에도 보인다고?
그 순간.
나는 선녀보살이라는 시청자와의 대화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저는 뭔지 모를 그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혹시 왜 그런지 아시나요?’
선녀보살은 담담하게 내게 이러한 답변을 해왔다.
[ 음기가 센 흉가를 자주 다니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기가 스스로 열려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또는 영가의 기운이 굉장히 센 경우에는 간혹 일시적으로 일반인에 눈에 비치기도 합니다. ]
나는 단번에 납득했다.
그래. 나는 몸이 아팠던 기억들이 많았던 터라, 어렸을 적부터 헛것을 많이 봐왔다.
박필준의 손가락이 고정된 곳을 몇 번이나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장난인가? 아니면 정말 무언갈 본 것인가?
“필준아, 야. 너 뭐 봤는데? 어?”
“단발에... 찢어진 옷 입고 있는 거 같았는데...”
소름이 쫙 타고 오른다.
이 녀석... 나와 동일한 것을 본 것이다.
흉가에 다니지도 않는 박필준의 눈에도 보인다는 건...
그 형체의 음기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박필준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 부르는 것 같은데...”
나는 박필준의 팔을 확 잡아끌며 소리쳤다.
“야. 시동 걸어. 우리 여기서 빨리 도망가야 돼.”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뭐가 잠깐만이...”
박필준이 내가 잡은 팔을 살며시 뿌리치더니, 그 형체가 보였다는 곳으로 걸음을 터벅터벅 움직였다.
아... 시벌. 갑자기 왜 저래!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정문을 향해 걷던 박필준은 땅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얘기했다.
“이게... 뭐지?”
“목걸이...?”
바닥에서 주운 그것은 평범해 보이는 목걸이였다.
그런데.
녀석이 목걸이에 쓰여 있는 무언가를 한참 살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뭐라고 쓰여있는 거야. 서... 혜... 미?”
“미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조사했던 그 이름과 똑같이 맞아떨어져 버린 것이다.
서혜미.
그 사연 속 여자.
즉, 바로 이곳에서 몹쓸 짓을 당한 후 살해당했던 그 여자.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게거품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없는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혀... 형님들. 아무래도 여길 빨리 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야. 야! 박필준!”
ㅡ 서혜미가 누군데? ㅋㅋㅋ 깜짝 놀라는 거 보니 설마 전 여자 친구 이름이냐?
ㅡ ㄴㄴ 운 좋게 목걸이 득템했는데 14K 도금이라 개 빡친걸 수도ㅋㅋㅋㅋ
ㅡ 그래도 공짜 목걸이 주웠는데 쌉이득 아니냨ㅋㅋㅋ
ㅡ 야 이 돈미새 새꺄. 어딜 가 가기는. 자꾸 그러면 방송 보러 다신 안 온다?
역시나 채팅창은 내 말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
큰일이 터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나는 다시 박필준을 끌어 잡아당기고 소리쳤다.
“필준아. 가자니까. 빨리!”
그때.
박필준이 급하게 검지를 입에 가져가 댔다.
“쉿. 이거 무슨 소리야?”
우린 서로 동작을 멈췄다.
그렇게 잠시 동안 고요한 정적을 느꼈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박필준의 말대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 왔다.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
이런 시발...
이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도 모자라 머릿카락이 쭈뼛쭈뼛 서버렸다.
호흡조차도 가빠져왔다.
나는 두 손으로 두 귀를 막아대고 소리쳤다.
“바람 소리야! 바람 소리! 야 빨리 가자고!”
나는 들릴 듯 말 듯 한 그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박필준을 다급하게 뜯어말려야 했다.
이유는.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박필준의 몸이 자꾸 기숙사 안으로 몸이 기울고 있었다.
“야! 박필준. 정신 차려! 저거 사람 아니야. 사람 아니라고!”
“그럼 이 소리는 뭔데?”
ㅡ 뭔 소리? 근데 덤앤더머 이 새끼들. 오늘따라 연기가 더 실감 나네. 너네 뭐 학원 다니냐?
ㅡ ㅇㅇ 당연. 방송 시청자가 늘어가는데 그 정도 퀄리티는 따라가줘야지. 음.
ㅡ ㅋㅋ... 비제이도 수준급이지만, 저 우럭 새끼도 연기 참 잘한다야.ㅋㅋㅋ
ㅡ 나는 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기숙사라 그런가... 연기 같지 않아 보이는데...
ㅡ 레알 인정... 저 기사를 읽어봤던 터라 개 소름 돋는 중...
나는 확실히 느꼈다.
저 소리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박필준이 들고 있는 저 목걸이.
서혜미라는 여자는 죽은 지 한참 지났다.
게다가 이곳은 화재가 난 후, 이미 새롭게 리모델링까지 하고 나서 다시 폐가가 된 곳이다.
즉, 이미 고인의 물품과 이곳 환경이 싹 정리가 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심지어 아까 거꾸로 매달렸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목걸이가.
“야. 그거 얼른 버려. 빨리 버리라고!”
갑자기 박필준은 피식 웃었다.
“왜 그래 자꾸? 탐나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 정신 안 차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홀리기라도 하고 있는 건가?
성급한 나머지 나는 욕까지 뱉어가며 억지로 목걸이를 뺏으려 했다.
“야 이 미친놈아 빨리 버리라니까!”
그러자, 박필준의 표정이 냉랭하기 변하기 시작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
눈이 반쯤 흰자로 뒤집히는가 싶더니 나를 한참 노려봤다.
“내 거다. 건들지 마.”
박필준은 둔탁한 중성적인 목소리까지 내뱉었다.
“야 너...”
ㅡ 웜머. 우럭 새끼. 순간 어렸을 적 내 지랄맞은 동생 빙의 된 줄 알았다. 존똑
ㅡ ㅋㅋㅋ 표정 뭔데? 겁나 새침데기 같네. 야. 야. 안 건들게. 네꺼해라 네 거. ㅋㅋㅋ
ㅡ 표정에 목소리까지. 이보다 더 기가 막힌 연기 본 적 있나요? 전 명량 이후로 처음입니다.
ㅡ 이야... 목걸이 하나에 우정 박살 나누 ㅋㅋㅋ
ㅡ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연기하냐?ㅋㅋㅋ
“형님들! 장난하는 게 아니에요! 얘 진짜 지금 이상하다니까요!”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주머니에서 가져온 소금을 꺼냈다.
그리고 급하게 박필준의 얼굴에 귀싸대기를 날리듯 뿌려버렸다.
순간.
박필준이 나를 밀치더니 돌발적인 행동을 해버렸다.
저벅. 저벅. 타다다닥!
갑자기 기숙사 안으로 뛰기 시작했다.
순간 놀란 나는 박필준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은 뒤었다.
“어디 가! 아씨. 미치겠네.”
ㅡ 박필준님이 나 잡아봐라를 시전하였습니다.
ㅡ 좃댄다... 멧돼지 새끼 추진력봐랔ㅋㅋㅋ
ㅡ ㅋㅋㅋ 누가 보면 태풍이라도 쓸고 간 줄 알것넼ㅋㅋㅋ
ㅡ 이현지 보고 있냐? 저 정도면 했으면 그냥 사귀어 줘라 귀엽넼ㅋㅋ
ㅡ 헐... ㅋㅋ 누가 기숙사 안에다 고기 뿌려놨냐. 아주 미친 듯이 뛰어가네.
ㅡ 뭐여 이것들. 방송 안 한다고 징징댈 땐 언제고 갑자기 깜짝 이벤트냐... ㅋㅋ
나는 어쩔 수 없이 반사적으로 기숙사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몸을 들이자마자 다시 한번 멈칫거렸다.
문 하나를 두고 바깥과 확연히 차이 나는 서늘함.
온몸을 두른 한기가 마치 저번 그 영안실 지하와 유사한 느낌까지 주었다.
“야! 박필준. 어디 갔어!”
내 외침이 동굴처럼 기숙사에 메아리쳤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문이 크게 닫히는 소리만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끼이이익... 쿵!
끼이이익... 쿵!
현재 시각 12시 24분.
답답했다.
손전등 하나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박필준은 어느 곳에 멈춰있는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나도 홀린 것 같이 느껴질 지경이다.
ㅡ 이 새벽에 폐가에서 숨바꼭질 개 오바 아니냐? 시밬ㅋㅋㅋ
ㅡ 아니. 멧돼지 새끼 저거 손전등도 안 가지고 어떻게 저렇게 가는 건데? 후각 미쳤네
띵동.
[ 데들리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몰래 찾아서 역으로 놀래키면 삼만 원.
“형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니.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입이 저절로 반응한다.
나는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로, 남은 한 손으로는 손전등을 쥔 채로 비추어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104호.
끼이이이-
역시나 없다.
103호... 102호.
끼이이이-
물론 여기도 내 예상대로 마찬가지였다.
나는 101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심 호홉을 크게 했다.
“후우...”
여기 없다면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끼이이이-
그렇게 101호 방의 문을 열고, 나는 새카맣게 암흑이 깔린 그곳을 천천히 비추기 시작했다.
낡은 이불, 낡은 책장, 그리고 조그마한 소파까지.
천천히 보인다.
그리고...
“와아아악! 씨발.”
나는 멍하니 서서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는 박필준의 모습에 놀라 자빠졌다.
창백하게 질려 버린 얼굴이 손전등에 의해 더욱 섬뜩하게 보였고, 흰자밖에 보이지 않는 두 눈은 빛을 받아 번들번들 거렸다.
정말 기괴스러움 그 자체였다.
ㅡ 씨발! 깜짝이야! 핸드폰 집어던졌다. 시발.
ㅡ 미친 새끼 그새 분칠한 거야? 몽타주가 왜 이 모양이야?
ㅡ 아... 심장 멎는 줄 알았자나. 시발라마
ㅡ 와 씨발 무슨 관찰 공포영화 보는 줄. 개 깜짝 놀랐네
ㅡ 웜머....... 시발. ㅋㅋ 왜 저러고 서 있는 건데? 무섭게
나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 몸에 뭔가가 덕지덕지 늘러 붙어 몸을 구속시키는 것 같았다.
“야... 필준아... 왜 그래? 어? 너 왜 그러냐고... 정신 좀 차려 인마.”
녀석은 미동도 없었다.
몸에서 냉기를 뚝뚝 흘릴 것 같이, 서서 나를 노려 볼 뿐이었다.
아니.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다.
ㅡ 뭐야? 화면 갑자기 왜 이럼?
ㅡ 노이즈 뭔데? ㅅㅂ
ㅡ 화면 깨지는 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뭐지?
ㅡ 아 시발. 근데 왜 하필이면 쳐다보고 있는 얼굴이 깨지는데? 식겁했네
ㅡ 이렇게 보니까 정말 귀신 새끼 보는 것 같네 와...
박필준을 비추는 카메라가.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흔들렸다가, 물결처럼 울렁였다가, 깨지기를 반복했다.
띵동.
[ 데들리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ㅅㅂ 깜짝이야 시발놈아! 저 새끼 머리채 잡고 끌고 나오면 십만 원. 사람 놀라게 한 죄. 금융으로 치료해 준다.
나는 순간 몸을 억압했던 그 뭔가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후원 때문에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집에 가자 박필준 이 새끼야아아아아아!”
덥석!
박준필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나는 팔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필준이를 쳐다보진 않았다.
그저 101호 열린 문만 쳐다보며 온 힘을 다해 끌고 나갔다.
“으어어어어!”
박필준이 괴상한 소리를 내서 더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 데들리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소풍 왔어? 뛰어! 안 뛰어?
“집에 빨리 가자 필준으아아아!”
박필준의 머리채를 잡은 채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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