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36화 (36/225)

다 부서진 여 기숙사. 2

순간, 박필준과 나와의 숨 막히는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무려 30초간을 말없이 대치했다.

ㅡ 뭔 일이여. 이것들. 시작하자마자 왜 기싸움을 펼치고 지랄이여

ㅡ 쉿 쉿. 왕따와 일진의 혈투가 벌어질 수 있으니 다들 방송사고 대비 좀 ㅋㅋㅋㅋ

ㅡ 누가 왕따고 누가 일진이에요? 광어같이 생긴 놈이 왕따같이 생기긴 했는데..

ㅡ 반대임. 그리고 얼굴 비하는 삼가주세요. ㅋㅋㅋ 얼굴만 보면 회 먹고 싶어지니깤ㅋㅋㅋ

ㅡ 지금 주먹 쥐고 동그라미 그리면서 걷기만 하면 딱 야인시대 아님?ㅋㅋㅋ

박필준이 먼저 억지로 화를 억누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너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어우. 생각보다 많이 화난 것 같은데?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린 채로 긴장했다.

몸에 남아있는 옛날 기억 때문에 당장이라도 이를 악물고 달려들까 봐 약간의 거리도 두고 있었던 참이었다.

이제, 더 이상의 거짓말은 오히려 진짜 독이 될 수 있겠지?

나는 아까 삼겹살집에서 주고받았던 기억을 되살려 얘기했다.

“필준아. 우리 친구라고 그랬지?”

“계속 말해봐.”

“그럼 내 부탁 좀 들어줘.”

“뭔데?”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박필준을 보며 얘기했다.

“오늘 방송 좀 도와주라.”

박필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 쓰러져가는 기숙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저기 보이는 기숙사 흉가를 같이 들어가달라... 그 소리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필준은 허리에 두 손을 짚은 채로 큰 한숨을 쉬었다.

한참을 멍하니 고민하는 듯싶더니, 다시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안 돼 안 돼. 너 어제 폐 병원 기억 안 나? 귀신이라도 붙으면... 어우 생각만 해도 시발...”

내가 그런 박필준을 보며 타일르듯 얘기했다.

“친구 부탁인데도? 아까는 뭐든지 다 들어준다며. 그리고 우리 지금 둘이서 있잖아. 괜찮을 거야.”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다.

그나마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게 내게는 아주 쥐똥만큼 안심이 될 뿐이다.

박필준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이 녀석. 내 말을 심각하게 고민해 주긴 하는구나.

예전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진짜 많이 변하긴 했네.

하지만, 폐 기숙사를 한번 다시 쳐다보더니.

도저히 안 되겠는지 금세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이번에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리고 시동까지 걸었다.

와아아앙.

“그래도 이건 아니다. 괜히 저기 들어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나 아직 여자친구도 못 사귀어 봤는데.”

“...”

“집에나 가자. 타 얼른. 안 타? 그럼 나 혼자 간다?”

무서운 건 나도 매한가지였다.

쓰러져가는 저 여기숙사의 건물 사이사이만 들여다봐도 귀신이 숨어있는 것처럼 으슥해 보였다.

하지만, 그만한 고생에는 큰 가치가 생기는 법.

띵동.

[ 니이모를찾아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저 새끼 붙잡아. 붙잡으면 만 원.

순간, 박필준이 핸드폰을 매섭게 노려봤다.

“너 설마 후원 때문에 나 붙잡고 그러지 마라. 나 한번 안 한다고 했으면 진짜 안 한다.”

ㅡ 아니 우럭 새끼. 생긴 건 닥치는 대로 다 잡아먹게 생겨가지고 뭐 이렇게 겁이 많어?

ㅡ 야. 저 새끼 일진 맞아? 일진이 아니고 그냥 개 쫄보인데?

ㅡ 후원 땜에 연기하는 건 아닌 것 같네 ㅋㅋ 우럭 새끼 겁먹은 표정이 넘 리얼한 거 보니

ㅡ ㅋㅋㅋㅋㅋ 쟤 붙잡아서 방송같이하면 ㅋㅋ 오늘 개 재밌겠다. 연우야 빨리 잡아봐

사실. 한 달 전 박필준의 성격이었다면 이 순간.

박필준을 잡기는커녕, 말 한마디도 못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저 녀석.

정말 나를 친구라고 여기는 건지, 욱하는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잠깐만 기다려봐.”

일단은 완강하게 부인하지 않는 거 보니 박필준이 원하는 무언가를 충족시켜주면 내 부탁을 들어줄 것도 같은 느낌이다.

나는 핸드폰에 있는 사진 몇 장을 펼쳤다.

그리고 손으로 내밀어 보여주었다.

“박필준. 그럼 이 누나랑 소개팅 시켜줄게.”

당장이라도 엑셀을 당겨 자리를 뜰 것처럼 굴던 박필준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리고 시동을 끄더니 보조 핸드폰을 슬쩍 쳐다본다.

“뭐. 뭐...? 누나?”

“내 방송 보는 시청자인데 나이는 23살이고 지금 병원에서 간호사 일 하고 있고.”

사진 속에는 누가 보아도 정말 감탄할 만한 미모의 여자가 있었다.

박필준은 처음엔 무심한 척 흘겨봤다.

그리고 갑자기 시동을 껐다.

ㅡ ㅋㅋㅋㅋㅋ 거부할 땐 언제고 벌써 무장해제여? 태세 전환 오지넼ㅋㅋ

ㅡ ㅋㅋ 헐. 우럭 새끼 모쏠이였어?? 이상하게 하나도 안 놀랍네...

ㅡ ㅋㅋㅋㅋㅋ 왜요. 매력 있게 생겼는데... 의외로 이런 얼굴이 인기 많을걸요?

ㅡ 인기 많죠. 횟집에서요 ㅋㅋㅋㅋㅋㅋ

마지못하는 척 나에게로 슬쩍 다가와서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리고 두 번째 사진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후.

세 번째 사진부터는 아예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는 스스로 스크롤 해 가며 보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려 집에 간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미 사진첩 누나에게 푹 빠져버렸다.

“오... 십탱. 웁. 아니 아니. 우와... 하늘에서 내려왔나. 사람 아닌 것 같은데.”

박필준은 한 장씩 사진을 넘길 때마다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사탕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 미간을 찌푸리며 내 부탁도 세차게 거절하던 박필준은 결국.

다시 한번 기숙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크게 숨을 한번 쉬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야. 진짜 소개 해 주는 거다? 거짓말이면 나 진짜 너 안 본다.”

“아. 물론이지. 지금 방송도 보고 있어. 그렇죠 현지 누님.”

오케이. 좋았어.

나는 카메라를 보며 씩 웃었다.

띵동.

[ 이현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네. 잘 보고 있어요 ㅎㅎ

갑자기 박필준이 함박미소를 지으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아직 성립도 되지 않은 소개팅에 벌써 히딩크 세레머니까지 해댔다.

어찌나 에너지와 투지가 불타오르는지 몸을 감싼 기운까지 헛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ㅡ 저 모자란 놈 어쩜 좋냐... 저건 지금 이미 사귀고,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네 표정이.

ㅡ 레알 인정 ㅋㅋㅋㅋ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혼자 김칫국 먹고 신났네 ㅋㅋㅋㅋ

ㅡ ㅋㅋ 우럭 저놈 원래 여자에 죽고 못 사는 놈이었냐? 말 잘 듣게 생겼네

ㅡ 그나저나 ㅋㅋ연우야. 너 머리 좋다. 언제 시청자랑 이런걸 얘기하고 준비했냐? 대단하닼ㅋ

ㅡ ㅋㅋㅋ머리 좋은 거 이제 아셨나요 님? 시청자가 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닼ㅋㅋㅋ

그 말대로 지금 시청자 148명.

불과 며칠 전까지와는 아주 차원이 다른 환경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팅녀로 소개한 이현지라는 누님은 둘리의 방송을 보고 있던 팬이었다가, 내 방송으로 넘어온 시청자이다.

뭐 그 밖에도 여러 명이 넘어오고 있지만, 방송 플랫폼 차이 때문에 못 오고 계시는 분들도 허다하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얼른 좋은 곳으로 옮겨야 되는데...

“야.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 남자가 그런 거 무서워해서 되겠냐? 빨리 방송해 봐.”

박필준은 자신있게 기숙사 앞에까지 다가갔다.

나는 속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박필준을 뒤따랐다.

그러다 갑자기 멈췄다.

“아 맞다. 형님들. 일단 방송 시작하기 전에 여기 설명부터 시작하고 할게요.”

“...?”

ㅡ 오케이 설명 고고

ㅡ 오. 대박 기대된다. 역시 사연이 있는 건가?

ㅡ ㅇㅇ 우리 연우가 아무 데나 갈 놈이 아니지.

ㅡ 맞아. 인정.

나는 기숙사를 등졌다.

그리고 박필준 서있는 곳.

뒤로 보이는 기숙사 정문을 쳐다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가 일단 작은 소기업 공장 대표가 직원들을 위해 내어준 여 기숙사인데요. 4층으로 만들어진 이 기숙사의 공장은 가전제품을 만드는 대기업 하청 업체로서 꽤나 쏠쏠하게 수입을 내고 있었던 공장이었나 봐요. 근데, 모처럼 잘나가고 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망했냐고요?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 기숙사는 여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기숙사인데요. 그렇기에 오다니는 사람은 죄다 회사 사람들 뿐이었어요.”

박필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내 얘기에 귀 기울이는 듯했다.

나는 박필준은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입에 담지도 못할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그 조용한 기숙사에서 강간 사건이 벌어졌던 거죠. 강도는 몸이 아파 조퇴를 한 여성 직원이 기숙사에서 쉬고 있는 틈을 타 집에 몰래 침입했어요. 그리고 흉기를 이용해 그 여성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몸을 유린했어요. 정말 불행이지만... 그걸로 끝났으면 다행인데, 그 여성이 저항을 해서 복면이 벗겨졌는데...”

ㅡ 뭐여? 시벌. 아는 사람이었던 건가?

ㅡ 어? 아까 거기는 외진 곳이라 회사 사람들 밖에 안 돌아다닌댔자나?

ㅡ 그러네. 회사 임원이었을 가능성이 있겠네.

ㅡ 단기로 알바하는 사람들 일 수도 있겠다.

ㅡ 시발놈들. 그런 더러운 짓거리들 하는 새끼들은 다 사형시켜버려야 돼!!!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사람은 그 여성을 눈여겨보던 회사 공장장이었어요.”

박필준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슬슬 주위를 살피며 괜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여기숙사가 이렇게 폐건물이 된 거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ㅡ 실수로 복면이 벗겨졌으니 공장장이 들켜버렸잖아. 그래서 살해당한 후, 귀신이 돼서..

ㅡ 헐... 그런가...? ㅅㅂ 존나 소름 돋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 진짜

ㅡ 와................ 이게 진짜 실화라니...

ㅡ 야... 너네 오늘 방송 어떻게 하려고 시작부터 이렇게까지 열심히 설명해??

ㅡ 오늘 방송 대박조짐이다 이거... 사람 봐봐. 계속 모여든다.

현재 시청자 175명.

시간은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공장장은 증거 인멸을 위해 싸늘하게 죽어버린 여직원과 기숙사에 불을 질렀대요. 당연히 그 커다란 불은 금방 그 기숙사 건물을 다 집어삼켰고, 생각보다 커진 사고에 공장장은 그 자리를 벗어나야 했지만... 희한하게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입구에 몰래 숨어있다가 놀라 뛰쳐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해버렸다는...”

나는 박필준이 주춤거리며 바라보고 있는 줄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름 돋게도, 줄은 교수형 매듭으로 바람에 을씨년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줄은... 이유 없이 죽어나간 이 중에 목을 매달았던... 그 하나인 것 같아요.”

박필준이 순간, 나에게로 황급히 뛰어오기 시작했다.

“야... 야. 그런 얘기를 왜 하는...”

띵동.

[ 바른생활사나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ㅇㅋ 일진 놈 두 발 저기에 거꾸로 묶고 매달리면 30초에 20,000원

하지만, 박필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 저런 미친 새끼가...”

그때.

띵동.

[ 이현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파이팅!!!

박필준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 녀석은 여자의 말을 거절하지 못 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연상의 미모에 여성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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