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34화 (34/225)

사연 있는 폐병원. 13

“혹시... 박필준?”

박필준은 잠이 덜 깬 사람처럼 흐느적거렸다.

눈빛은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변태스러웠고, 입은 계속 헤벌쭉거리며 중얼거렸다.

“나이스 타이밍...”

나는 그 녀석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비추었다.

맞다.

나를 괴롭혔던 그 박필준.

나는 뜬금없이 여자 인형을 꼭 안고 비비적거리는 그 믿기 힘든 광경에 인상을 찌푸렸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박필준은 정신을 차렸는지.

양쪽 코에서 흘러내린 피를 두 손으로 훔치며 내게 얘기했다.

“시발. 피...”

ㅡ 이 새낀 뭐야? 역시 밖에 사람 대기하고 있던 거냐? 시발 주작 맞지??

ㅡ 주작 맞나? 근데 왜 여자 인형 위에 엎어져서 코피 흘리고 있어? 그것도 쌍코피를

ㅡ 야 인마! 너 인형 위에서 뭔 주작질 하고 있었어 이 새꺄! 대답해!

ㅡ 그냥 변태 같습니다. 위치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아주 완벽합니다

ㅡ 아니. 이보세요.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인형에다가 그게 도대체 뭔 짓거리...

ㅡ 운영자입니다. 정연우 비제이님. 19금 방송을 계속 응원합니다.

나는 다급하게 휴지를 찾아 박필준에게 건넸다.

그리고 시청자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이거 주작 아니에요. 형님들. 얘가 왜 이러고 있지?”

잠시 후.

대충 정리한듯한 박필준이 차분한 상태로 돌아왔지만.

무언가가 억울했는지 갑자기 고개를 젖히며 얘기했다.

“도와주러 왔더니 주작 타령에... 아. 내 코.”

“...”

내가 기억을 더듬었다.

설마 내가 찬 냉장고 문에 부딪힌 건가?

ㅡ 저분 저거. 연기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네요. 오늘 초대석은 자해 공갈범인가요?

ㅡ 목덜미를 바쳐잡는 자연스러운 손바닥. 동시에 입을 벌리며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신음 소리. 세상 억울한 표정까지. 아주 완벽합니다.

ㅡ ㅋㅋㅋㅋ 야. 근데 저 새끼 누구냐고? 설마 창문 밖에서 돌 던지던 그 알바생 세컨드냐??

ㅡ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나이롱 환자인 건 확실합니다.

믿을 수 없었다.

새벽 4시가 다 돼가는 이 시간에 나를 구하러 왔다고?

그것도 이 녀석이?

그 순간.

잊고 있었던 사체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냉장고는 신기하게도 모두 처음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모두 꼼꼼하게 문이 닫혀있는 상태였다.

시벌. 말도 안 돼...

그럼 도대체 그 온도는 대체 뭔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필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당연히 아니겠지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박필준. 혹시 네가 냉장고 온도 내렸냐?”

ㅡ 아니요. 바지를 내린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

ㅡ ㅋㅋ 쟤가 무슨 인간 발전기냐? 몸 갖다 대면 냉장고가 움직이게?ㅋㅋㅋ

ㅡ 근데 주작이라도 너네 연기 실감 나긴 했다.

ㅡ ㅇㅈ 분명 짜고 찼을 텐데, 코에 맞을 줄은 몰랐나보네ㅋㅋ 쌍코피 대박ㅋㅋ

ㅡ 혹시 모름. 그거 인형이랑 비비다가 터진 걸 수도 ㅋㅋ

박필준이 나에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쳐다본다.

그리고 잔뜩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말없이 천천히 냉장고에 다가가더니 전원 버튼을 힘껏 눌렀다.

탁!

“내가 신도 아니고 전기 다 나간 폐 병원의 냉장고를 어떻게 가동해?”

그렇다.

당연히 전원이 들어올 리 없다.

그 순간.

철컥.

그으으으.. 우우웅.

우리의 몸이 멈칫거렸다.

그리고 같은 타이밍에 서로 눈을 마주했다.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내가 있던 냉장고에서 기계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순식간에 냉장고를 통해 나오는 싸늘한 한기는 영안실을 금세 덮어버렸다.

우린 고민할 틈도 없이 혼비백산하며 괴성을 질러댔다.

“우아아아아악!!!”

“시바아아아알!!!”

그리고 황급히 영안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다시는 열리지 않게 세게 닫아버리고, 지하실 계단을 뛰쳐올라갔다.

쾅!

ㅡ 아주 병신들. 지랄들 났네... 지금 뭐 덤앤더머 찍냐?

ㅡ 그렇게 청팀과 홍팀의 달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ㅡ 자. 당신은 어디에다가 배팅 하시겠습니까?

ㅡ ㅋㅋㅋ 뮈친넘들 또 뭘 보고 호들갑이여??

ㅡ 그놈의 주작질은 쉬지도 않네... 또 뭐야? ㅋㅋㅋㅋ

그때.

끼이이익···

굳게 닫았던 영안실 문이 스스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뒤 이어 열리는 냉장고 소리까지.

쿵. 끄이으익.

놀랍게도 그 안에서는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듯 발자국 소리까지 겹쳐들렸다.

저벅. 저벅. 저벅.

“오지마아아아악!!!”

“꺼져라아아아악!!!”

우린 순식간에 병원 출입문에 도착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 존재들은 우리를 쉽게 보내 주기 싫었던 것일까.

정문의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덜컥. 덜컥.

마음이 다급해졌다.

뒤에선 정체 모를 무언가가 우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우린 나가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를뿐이었다.

한시가 급한 그 순간.

나는 문을 쳐다보고 뒤로 한참 물러섰다.

그리고 박필준에게 소리쳤다.

“비켜봐!”

나는 그 자리에서 달리기 시작해 속도를 점점 높였고, 공중에서 몸을 붕 띄웠다.

마지막으로 띄운 두 발을 모아 힘껏 문을 향해 뻗었다.

“시벌! 부서져라아아아!!!”

콰콰쾅!!!

마치 그 순간 초능력이라도 발휘된 듯.

그 두꺼운 철판이 내 발 차기에 종이짝처럼 처참하게 나가떨어졌다.

타이밍에 맞춰 앞장선 박필준이 내게 손짓하며 크게 소리쳤다.

“야, 빨리 타!”

박필준은 몰래 숨겨놨던 올 블랙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리고 재빨리 시동을 걸어 내가 타기만을 기다렸다.

턱!

내가 뒷좌석에 오르자 박필준은 액셀을 힘껏 당겼다.

그리고 우린 미친 듯이 그곳을 황급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폐 병원은 점점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처음엔 5층, 그리고 4층, 3층까지 점점 가려졌다.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저 멀리 보이는 1층 정문 앞에서.

아주 새하얀 형체가 서있는 걸 목격했다.

그 하얀 형체는 내가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고개를 계속 틀어댔다.

그 때문에 나는 그 하얀 형체가 안 보일 때까지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가슴에는 내가 갇혀 있었던 냉장고에 붙어있던 표식.

B - 202 라는 숫자가 빨간색으로 크게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

쉬이이익.

바람을 세차게 가르는 속도가 내내 귀에 꽂힌다.

어찌나 세게 달리는지 몸도 뒤로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박필준이 열심히 설명하는 말들이 내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야! %[email protected]

! 저 !$! 도대체 !$!$?”

뭐라는 거야?

한편, 한껏 두려움에 휩싸인 나머지.

나는 방송을 켜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얼마 남지 않았던 배터리 용량의 핸드폰이 꺼졌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렇게 녀석이 떠드는 걸 무시한 채 한참을 달렸을까.

내가 항상 걸어 다녔던 골목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기 시작했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휴우...”

박필준은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가로등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그리고 시동을 끄고 내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십탱... 오줌 지릴 뻔했네. 너도 들었지? 기계 소리랑 발자국 소리. 와. 시발.“

“...”

역시 들었구나. 너도.

박필준은 숨을 몇 번 고르고는 한숨을 푹 쉬며 내게 얘기했다.

“너 혹시. 이런거 맨날 보는거냐?”

“뭐가...?”

“좀전에 봤던 그 이상 현상들 있잖아. 귀신 소리 같은거.”

“어... 그... 그렇지.”

박필준은 내가 이해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 많고 많은 컨텐츠중에 왜 하필이면 공포 흉가체험이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시벌놈아. 네가 먼저 강제로 시켰잖아.

나는 말없이 박필준을 바라봤다.

눈으로 욕을 하는 중이었다.

박필준은 그제야 알아챈 듯 동네 바보같은 웃음을 하고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아... 하하. 내가 그랬구나. 미안.”

“...”

하. 다시 쌍코피 흘리게 해줄까...

그래도 괜찮다.

덕분에 나는 몸도 건강해졌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도 생겼다.

이 삶에 아주 충분히 만족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 컨텐츠가 흉가체험이라는 것만 빼고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

이런 오토바이는 언제 구입한 거야?

나는 박필준과 오토바이를 한 번씩 훑어봤다.

19살이라는 나이에 원동기 면허도 모자라, 2종 소형까지 취득한 녀석.

거기다 광이 번쩍번쩍 한 이 새 오토바이는 무려 500만 원이라는 고가의 오토바이가 아니던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 얼마나 애들 삥을 뜯었으면 벌써 이런 고가 오토바이를 구입해?“

그때.

박필준이 뜬금없이 얘기했다.

“혹시나 하는 얘긴데, 이거 애들 삥 뜯은 걸로 산거 아니다!”

“...?”

뭐야? 내 속마음이 들리나?

순간 뜨끔했다.

나는 당연히 박필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속으로 내 생각을 내뱉었다.

‘그럼 네가 돈이 어디서 나 이 새꺄. 너네 아버지가 회사 사장이라도 되냐?’

박필준은 혼자 또 중얼거렸다.

“우리 아빠 중소기업 회사 사장이거든.”

“...”

이 새끼 이거. 어떻게 알고 대답하는 거지?

너... 혹시 내 채팅창에 있던 설마 그 독심술사냐?

나는 그저 말없이 박필준을 쳐다봤다.

그러자 머리를 다시 벅벅 긁어대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그만 째려보라고...”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축복받은 개새끼.

아버지가 중소기업 사장인데 왜 여태 애들 삥을 뜯고 괴롭힌 건데?

그렇게 말없이 5분이 훌쩍 지나갔다.

그제야 나는 폐 병원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그리고 왜 나를 구하러 와준 건지.

산더미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오히려 박필준이 먼저 뜬금없는 얘기를 꺼내왔다.

“축하해. 시청자들 굉장히 많이 늘었더라.”

“아... 뭐. 어쩌다 보니까...”

그때.

박필준이 해결되지 않은 내 궁금증을 뒤로 하고 오토바이에 올라타버렸다.

그런데 시동을 걸고 고개를 틀더니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

“아까 추적60인분 기억하지?”

“어. 그거 내 시청자...”

잔뜩 벙찐 표정을 하고 있는 내게 박필준은 말을 더 이어붙였다.

“그거 나야.”

“뭐...!?”

박필준은 그 말을 내뱉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더니 손을 흔들었다.

“나 간다. 오늘 일은 안 갚아도 돼. 그냥 다음에 맛있는 거나 한번 사주라.”

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이내 입을 열었다.

“그... 그래. 조심히 들어가.”

저 녀석이 그 추적60인분이었다니.

꿈에도 몰랐다.

근데 저놈 저거, 왜 저러는 거지?

왜 어느 순간부터 자꾸 나를 도와주는 거지?

혹시 개과천선하려는 건가?

그래도 난 녀석이 아직 신뢰가 가지 않았다.

당해온 세월이 얼마인데, 쉽게 치유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때.

[ 바른생활사나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일진 새끼 흉가 데려오면 100,000원.

내 몸이 화들짝 놀랐다.

방송이 켜져 있었던 걸 이제야 알아챈 것이다.

나는 급하게 후원창을 읽고 떠나가는 박필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형님 근데 쟤는 일반인...”

[ 바른생활사나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200,000원.

순간, 박필준이 나를 죽도록 괴롭혔던 일화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상하게 입꼬리가 저절로 히쭉히쭉 올라가며 자동적으로 입이 열렸다.

“아이고 형님! 무조건 데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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