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폐병원. 12
ㅡ 응 아들? 왜 불러?
ㅡ 지금 이분은 비제이의 엄마를 사칭하고 있습니다.
ㅡ 자.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들의 진짜 엄마를 외쳐봅니다! 나와주세요!
ㅡ 엄마!!! 엄마!!! 엄마!!!
반면, 나는 갑자기 온갖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니. 그냥 암흑처럼 온통 까맣다.
이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 탓에 채팅창을 볼 겨를도 없었다.
나는 왜 도대체 매일 같이 이런 상황에 엮이는 걸까.
한참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형님. 아니. 나 진짜 갇혔다니까!!!”
ㅡ 지금 비제이가 호소력 짙은 연기력으로 후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ㅡ 여러분 우리의 돈미새는 후원만 해준다면 금방이라도 저 두꺼운 냉장고 문을 찢고 나올 것입니다.
ㅡ ㅋㅋㅋㅋㅋ 야. 이 새끼 이거 이젠 욕까지 하네.. 둘리 닮아가냐?
ㅡ 헐... 님들아. 근데 영안실 냉장고에 갇혔는데 너무한 거 아님? 내가 저기 갇혔다고 생각해보셈
ㅡ ㅇㅈ 나는 시벌. 가기도 전에 오줌 똥 다 지렸어 아주.
하지만 채팅창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이 순간을 벗어나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 순간.
띠. 띠. 띠.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어느샌가 핸드폰 배터리까지 수명을 다해간다.
그제야 눈으로 확인한 배터리는 24%.
방송을 켜고 있기에 앞으로 대충 남은 시간은 길어봐야 30분 안쪽이다.
“배터리까지 다 됐다! 시발! 으악!!!”
나는 괴성을 질러대며 또다시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번엔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몸을 반대로 뒤집었다.
불판에 올려놓은 오징어처럼 비틀고 뒤집고 틀었다.
그리고 발로 부서질 듯 세차게 차기 시작했다.
발은 주먹보다 1.5배는 더 강한 충격을 줄 수 있으니까.
쾅! 쾅! 쾅! 쾅!
ㅡ 지금 비제이가 다급하게 후원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ㅡ 여러분 후원입니다. 후원. 누가 저 어린 양을 구해주실 분 없으신가요? 예!?
ㅡ 아... 시발 ㅋㅋㅋㅋ 돈미새 킹 받네. 지금 미션 생각 중입니다.
ㅡ ㅋㅋㅋ 님들 그만 좀 하셈. 비제이 굉장히 심각해 보임.
그때.
그으으으. 우우웅.
갑자기 전력이 도는 것 같은 기계 소리가 귀에 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상하게 냉장고 안이 춥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안돼... 안돼...
나는 재빠르게 냉장고 벽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놀랍게도 정말 차가워지고 있다.
마치 전원 선을 연결해 엔진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냉장고처럼 말이다.
아니야. 내가 잘못 느낀 건가?
나는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억지로 부여잡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손을 다시 가져다 대보지만...
내 느낌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씨발.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냉장고! 냉장고 돌아간다! 냉장고 돌아간다고! 아 형님들 냉장고 돌아가요! 이거 봐. 이거 봐!”
나는 실성한 듯 다시 문을 두드렸다.
있는 힘껏 다리를 오므린 후 세차게 걷어차기를 반복했다.
쾅!
"제발!"
쾅!
"열려라!"
쾅!
"제발에발!!"
쾅!
내 발차기 소리가 지하 영안실 안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견고하게 닫혀있는 냉장고 문은 일절 작은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제는 내가 입을 벌릴 때마다 새하얀 입김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공기까지 부족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공황이 오면 이러할까.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정말 여기가 현실인지 지옥인지 구별을 못할 정도로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ㅡ 여러분 성능 보셨죠? 저희는 물건을 대충 만들지 않습니다. 선착순 주문받습니다.
ㅡ 어머니! 여기에요 여기! 무이자 할부가 36개월까지 된다니까? 안 살 거야? 사은품도 있는데?
ㅡ ㅋㅋㅋㅋ 야잌ㅋㅋ 비제이는 있는 힘 다 짜내서 살려고 발악하는뎈ㅋㅋ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ㅋㅋㅋ
ㅡ 와 비제이 운동했냐? 근데 저거 진짜 튼튼하다. 저 발차기에도 꿈적도 안 하네
ㅡ 헐... 아무리 봐도 연기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띵동.
[ 추적60인분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빨리 주소 불러
그 순간 울리는 후원창에 나는 다급하게 카메라에 대고 소리쳤다.
“60분 형님! 형님! 형님 형님! 나 좀 구해주세요! 형님. 제발요!”
다급한 나머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는 상태였다.
공기도 부족해지는 암흑 같은 공간 안에서 머릿속에 있는 주소를 떠올리려니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차 조수석에 타고 조용히 따라왔기에 정확한 주소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적같이 차를 타고 오는 도중.
눈에 들어왔던 큰 수련원 하나를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일단 횡성수설하는 도중에도 그 수련원의 이름을 떠올리는 데로 내뱉었다.
“형님! 제가 정확한 주소는 모르고... 그... 무, 무, 아! 문아 수련원 근처였어요!”
ㅡ 백마탄 왕자가 나타났다! 지금 이 새벽에 진짜 데리러 가시는 겁니까요!?
ㅡ 이 시부랄넘. 저거 주작이라니까. 연기도 적당히 해야지. ㅋㅋ 그 건물에 전기가 어떻게 들어오냐고
ㅡ 님.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화내지 마셈. 연우는 그냥 생활연기하는 겁니다.
ㅡ 아니... 혹시 진짜 데리러 가면 우리 연우가 공포에 떠는 연기를 더 못 보잖아요 ㅠㅠ
ㅡ 아 그건 좀 그렇긴 하네...
내 눈에 배터리가 말도 안 되게 소모되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현재 배터리 18%.
하지만 그마저도 1분에 1%씩...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
너무 정신이 없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을 못 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 그 자체였다.
덕분에 아예 머리가 잔뜩 굳어버린 상태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 몸이라도 움직여. 거기 춥다매.
그제서야 후원 채팅에 시선이 닿은 나는 몸을 급하게 비벼대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내 몸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이 극심한 공포도 떨쳐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열심히 만져댔다.
“60인분 형님. 혹시 오고 계시나요?”
나는 다시 생각나는 데로 덧붙일 나머지 주소 설명을 위해 시청자를 찾았다.
여긴, 그 수련원에서 자그마치 500m를 더 넘게 와야 하는 곳.
게다가 수많은 양 갈래 길을 헤쳐 들어와야 하는 복잡한 폐 병원이었다.
아마 처음 오는 거면 분명 많이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진 길이었다.
“형님. 운전 중이신가요?”
하지만 대답이 없다.
아. 운전 중에 핸드폰 조작은 불법이지?
게다가 야간 주행이니까...
라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만.
그 이후로 계속 기다려봐도 간단한 대답조차 없었다.
또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시청자 목록을 내 눈으로 일일이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찾아봐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ㅡ 야. 그 형님 아까 나갔는데? 너 설마 그걸 진짜 믿은 거야?
ㅡ ㅋㅋㅋ 뭐야 컨셉질이였어? 난 시골 소년 같은 순수의 결정체였네. 시벌 믿었거든...
ㅡ 그냥 개소리하고 뭐 처먹으러 간 거 아냐? 아이디가 추적60인분 이자너 ㅋㅋㅋ
ㅡ 근데 그 문아 수련원이란 곳은 이 폐 병원 바로 옆에 있는 거임?
ㅡ ㄴㄴ 여기 길 되게 복잡해요. 산길이라 잡다한 길이 많아서 아는 사람 아니면 못 감.
실화냐 이거.
지금 이런 순간에도 장난질을 하는 새끼가 있다고?
말문이 막히고 혈압이 미쳐 터져버릴 것만 같다.
“시발 새끼. 하...”
급한 데로 경찰이라도 부르려 번호를 찍었다.
하지만 문득 엄마 생각에 다시 취소했다.
혹시나 천사 같은 우리 엄마가 내가 이런 고난과 수모를 당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흘릴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기 않기로 나 자신과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일은 내가 해결한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나가냐고! 여길!
시발...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네.
진짜 이대로 영원히 갇혀버리는 건 아니겠지?
ㅡ 그나저나. 우리 연우 어떡하냐? 데리러 가고 싶은데 우리 집이랑 200km가 넘게 차이나
ㅡ ㅇㅇ 저도요. 집이 서울이라 땅에서 땅 끝 정도의 거리일 듯.
ㅡ 야. 주작 그만해 이제. 또 후원 많이 받을 거잖아. 그냥 이만 나와라. 시간도 늦었어.
ㅡ 아님 미션이라도 계속 주리?
그 순간.
끼이이이.
“뭐... 뭐야?”
갑자기 정체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분명 내 바로 왼쪽 밑 냉장고.
A - 101 김요한이라고 쓰여있던 냉장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끼익.
내 밑에 B - 201 박성희이라고 쓰여있는 냉장고도.
또.
끼이이익.
내 바로 오른쪽 밑 C - 301 신경훈이라고 쓰여있는 냉장고까지.
표식이 있던 냉장고들이 일제히 동시에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차는 발차기에도 꿈쩍 않던 그 냉장고들이 말이다.
끄으으. 끄으익. 끼이익.
문에 물려있던 낡은 연결고리 부분은 아주 서서히 열리며, 억지로 마찰되는 듯한 신음을 잔뜩 토해냈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고스란히 내 고막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ㅡ 어. 시발? 방금 문 열리는 소리 들리지 않았나?
ㅡ 나도 들은 것 같은... 아. 우리 집 망할 오빠 녀석 소리였네
ㅡ 나는 못 들음. ㅋㅋㅋ 뭐야 이젠 비제이한테 중독돼서 시청자가 분위기 조성 하는 거 아녀?
“형님들... 다른 냉장고 문이 스스로 열렸...”
저벅. 저... 저벅. 저벅. 저... 저벅.
나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그저 숨을 쉬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단지 고개만 살짝 들어 문 쪽만을 뚫어지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긴장하며 숨을 죽인 그 1분 동안은 온 신경을 귀에 전부 쏟았다.
그런데.
“...”
다행히도 1분이 지나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신이 없어서 이상한 환청이 들렸던 걸까?
멈췄던 숨을 내뱉고 새로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똑 똑.
“와아아아악!! 씨발 뭐야. 뭐야 뭐야?”
냉장고 문을 노크하듯 두드린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문 앞에 그건, 분명 나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원망하듯 두드리며 외쳤다.
“형님들! 형님들!”
그 순간.
정체 모를 그 누군가가 거침없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 때문에 쇠 연결 부분의 마찰 소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어. 어!?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세요! 제발!”
덜컹! 덜컹!
밖에서 분명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목이 쉴 정도로 그 안에서 괴성을 질러댔다.
무려 아까부터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그 큰 괴성을 질렀는데 목이 멀쩡할 리가 있나.
내 목은 완전히 쉬어버려 쇠가 갈린 듯한 목소리를 희미하게 뱉어냈다.
“제... 제발. 살려주세...”
새벽 3시 34분.
소리 지를 힘도 없이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린 나는...
“하아... 하아...”
‘아... 눈 감으면 안 되는데... 감으면 안 되는데...’
이기지 못하고 결국 눈이 감기려는 찰나.
‘우리 연우, 우리 잘생긴 아들. 우리 아들은 엄마 옆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기만 하면 돼? 알았지?’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엄마의 목소리가 끊길 듯한 내 정신 줄을 붙잡았다.
덜컹, 덜컹.
끼이이익-
마침내 문틈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리려고 하고 있을 때.
“이런 시바아알!”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문을 박차버렸다.
텅!
문이 아가리를 활짝 벌리자 나는 빠른 속도로 꿈틀대며 냉동고를 빠져나왔다.
아니.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기진맥진한 탓인지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것보다.
“하아... 하아... 뭐야. 뭔데 시발...”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여자 인형 위로 검은 인형이 하나 더 겹쳐 있었다.
“하아. 뭐야... 시발 뭐지...”
내가 보는 광경은 끔찍했다.
아니. 저질스러웠다.
그 검은 인형은 여자 인형을 마치 성추행이라도 하는 듯 위에서 포개고 꿈틀거렸다.
금방이라도 저 검은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 덮쳐 올 것 같았지만.
“시벌, 커헉! 하아. 하아. 집... 집에 가야 돼... 가야 된다... 쿨럭!”
나는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핸드폰, 내 핸드폰...”
나는 아직 약정 기간이 13개월 남아 있는 핸드폰을 필사적으로 주워들었다.
그리고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핸드폰 조명이 영안실을 훑고 지나간다.
게다가 검은 인형까지... 어?
나는 검은 인형을 보고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인형 위에 멍청하게 누워 있는 정체를 보며 눈을 껌벅였다.
“너...”
그곳엔 나를 괴롭혔던 일진 박필준.
놈이 눈을 감은 채로 쌍코피를 흘리며,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 듯 히쭉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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