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폐병원. 8
나는 번개같은 속도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데들리 형님이 소중한 만 원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또 반지하의제왕 형님 8천 원, 호나오당뇨 형님, 2,000원...”
와. 무슨 로또 맞은 기분이다.
빠른 속도로 후원자들을 호명을 하고 있지만, 끝이 안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1분을 넘게 감사하다는 말만 내뱉었을까.
어느샌가 내 총 후원 내역이 화면의 반을 가릴 만큼 굉장히 많이 쌓였다.
얼마나 될까?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암산을 시작했다.
12만 원에 1만 원을 더하고 2천 원... 13만 2천 원... 19만... 헉.
19만 천 원?
미쳤다. 돌았다 이거.
내가 여태 받았던 금액 중에 최고 금액이다.
그것도 무려 방송을 켠 지 10분도 안 돼서 벌어들인 금액이 말이다.
나는 입이 귀에 걸린 채로 한참을 벙찐 채로 굳어있었다.
그러자 그 수많은 시청자들이 채팅창으로 축하포를 날려댔다.
ㅡ 후~~~ 연우 로또 터졌네! ㅋㅋ
ㅡ 저넘 저거 입 찢어지는 거 봐라. ㅋㅋㅋ 뭐 그래도 이 정도 받을만 하자나?
ㅡ 레알 ㅇㅈ. 아직 100% 믿진 못하겠지만 일단 진정성이 보임
ㅡ ㅋㅋ 그래도 계속 의심해 줘야 재밌는 상황이 많이 연출되긴 함. ㅋㅋ
ㅡ 그나저나 주작 새끼 둘리 놈은 뭐 하냐 지금?ㅋㅋ
ㅡ 글쎄요. 아마 밖에 있던 놈 데리고 집 갈 준비하고 있을 듯?
“하... 형님들. 제가 진짜 이 미천한 몸 하나 바쳐 정말 꿀잼 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둘리 저 사람은 왜 갑자기 조용해졌지?
둘리 방안의 사정을 모르는 나는 그 방에 있던 시청자들을 통해 한참 동안 스토리를 전해 들었다.
그 스토리를 전부 듣고 나서야 왜 둘리님의 애청자분들이 등을 돌렸는지.
그리고 왜 둘리님이 그 방에서 욕지거리를 질러댔는지를 파악했다.
“아... 그래서 둘리님들 팬들이 다 이쪽으로 오셨구나...”
ㅡ 뭐야? 이 반응? 별로 안 기뻐하는 것 같다?
ㅡ 저희가 비제이를 잘못 찾아온 것 같습니다. 다시 다른 방을 찾으러 가시죠.
ㅡ ㅇㅋ. 그럼 이 방은 그냥 영원히 하꼬방으로 보호해 주는 걸로.
나는 다급하게 얼굴과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양쪽 입꼬리를 올려 잇몸까지 활짝 드러나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형님들!”
사실 이 상황이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다.
ㅡ 저희가 제대로 찾아온 거 맞죠? 다시 살며시 구독과 좋아요 알람 설정 누릅니다.
ㅡ 자. 그럼 이방을 유명 비제이의 방으로 새롭게 만들어 볼까요. 여러분들?
ㅡ ㅇㅋ. 달려보즈아!!!
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
다시 한차례 큰 욕지거리가 울리고 나서 성난 발자국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댔다.
쿵. 쿵. 쿵. 쿵.
곧이어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린다.
쾅!
조심스럽게 창문을 통해 바라봤더니, 둘리님이 고용한 알바생과 밖에서 서로 약간의 언쟁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점차 가라앉는가 싶더니 차에 탔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나는 그 광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 형님들...”
ㅡ 왜? ㅋㅋㅋ 막상 혼자 남겨질 생각하니까 갑자기 잡고 싶어졌냐?ㅋㅋㅋ
ㅡ 괜찮아. 가서 잡아. 잡아서 평생 같이 주작질 하면서 살아. 호이 호이 하면서.
ㅡ ㄴㄴ 그건 둘리 꺼니까. 얘는 후루루짭짭 후루루짭짭 해야 할 듯.
ㅡ ㅋㅋ 시밬ㅋㅋㅋ 둘리와 마이콜임? 그럼 나머지 알바생이 고길동 하면 되것네ㅋㅋㅋ
하지만, 시청자들이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난 둘리님의 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모두를 향해 중얼거렸다.
“형님들... 저기 둘리님 차에 여자아이...”
그 순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엔진을 통해 토해내는 차 배기음과 함께 순식간에 차소리가 멀어졌다.
둘리님이 알바생을 태우고 이곳을 벗어나버린 것이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때문에 폐 병원은 다시 소리 하나 없이 적막함이 흐르기 시작했다.
“...”
ㅡ 아니. 뭔 여자아이? 왜 말을 하다 말어? 뭘 본 거야?
ㅡ 차 어디 말하는 거여? 시벌 왜 난 안 보이지?
ㅡ 벌써부터 우리한테 꿀잼 줄 생각에 아주 에너지가 넘치는구만. 분위기 잡을라고 구라 치는 거 아녀?
ㅡ ㅋㅋ그런가? 구라 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손모가지 날라간다.
차가 사라지고 나서 한참 뒤에야 나는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멈춰 선 채로 차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계속 얘기했다.
“아니요... 형님들. 정말 차에 여자아이 타고 있는 거 못 보셨어요?”
하지만 시청자들 중에서는 단 한 명도 그 여자애를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나만 보이는 듯했다.
아니. 아까부터 왜 자꾸 내 눈에만 보이는 거야?
어? 그때부터였나?
아까 1층에서 기절을 한 번 하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희미하게나마 기운이 감지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가 가끔씩 내 눈에 비치기도 한다.
방금 그 건 여자 아이였다.
어깨까지 오는 꾸미지 않은 긴 생머리의 여자아이...
분명한 건 아무 미동도 없이 차에 얌전히 타고 있었다.
그것도 뒷좌석에.
소름 끼치게도 그 여자아이는 내가 쳐다보고 있는 걸 안다는 듯이.
차가 떠나기 전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은 까만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는데, 날 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저 여자아이의 얼굴을 처음 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입을 틀어막고 시청자들에게 소리쳤다.
“맞아. 혀... 형님들. 저 여자애... 아까 214호실에서 둘리 형님 어깨에 타... 타고 있던... 그 여자아이에요.”
ㅡ 뭐? 뭔 소리여 그게 ㅋㅋ 둘리가 그럼 여자아이도 하나 섭외해놨었단 소리야?
ㅡ 아닌데? 둘리는 정말 모르던 눈치였는데?
ㅡ 잘못 본거 아냐? ㅋㅋ 너 아까 1층에서 너무 무리한 것 같긴 하드랔ㅋㅋㅋ
ㅡ 이 새끼 이거... 이것도 계획의 일부분일 수 있다. 많이 피곤한 척해서 대충 빠지려고 그러는 거 아녀?
ㅡ ㅋㅋㅋ 헐 소름. 그게 진짜면...... 배신감 x 100000
“아니에요! 형님들. 제가 왜 그런 짓을 해요. 하... 진짜 있었는데... 못 봤다니까 제가 할 말이 없...”
그때.
갑자기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어!”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2층으로 급히 내려갔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214호 병실.
그 병실로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ㅡ 뭐야. 갑자기. 카메라 왜캐 흔들어싸!! 천천히 좀 걸어!! 이 시캬!!
ㅡ 뜬금없이 왜 2층 다시 옴? 뭔가 생각이라도 났나?
ㅡ 뭔데 뭔데? ㅋㅋ 시청자가 많아져서 그런가 오늘 이상하게 열정이 넘치넼ㅋㅋㅋㅋㅋ
나는 열려있는 214호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았다.
이곳 저곳 모두 뒤져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ㅡ 너 지금 뭐 찾냐?
ㅡ 말 좀 해 봐. 답답하니까 ㅋㅋ
나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비추며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님들... 아까 둘리 형님이랑 방송할 때 침대에서 떨어졌던 인형 기억하시죠?”
ㅡ 어? 맞아. 인형 떨어진 걸로 기억하는데. 무슨 인형이었더라?
ㅡ 노란 생머리 요조숙녀 인형이었자나
ㅡ ㅇㅇ 맞다. 유일하게 멀쩡하게 예쁜 인형은 그거 하나라 기억남.
ㅡ 그런데 그게 왜? 그러고 보니 그 인형이 안 보이네.
ㅡ 어!? 씨발. 진짜네. 왜 없어졌지? 둘리가 가져간 거 아냐?
ㅡ ㅋㅋㅋ 도대체 그걸 왜 가져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여자아이가 뒤에 타고 있었다고요. 근데... 그 인형 여자아이가 가슴팍에 꼭 끌어안고 있었어요. 마치 정말 아끼는 인형처럼요...”
그때.
띵동.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와. 시발. 맨날 주작질만 하는 줄 알았는데 개 소름 돋았다 방금?
어? 이놈도 어느샌가 돌아왔네.
순간. 후원 소리에 흠칫 놀랐지만.
반가움에 다행히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얼른 다시 그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계단에 멈췄다.
ㅡ 헐. 연우 말이 진짜면 완전 대박인데? 둘리를 따라갔다는 소리잖아...
ㅡ 으... 소름. 근데 확실하지 않은 거잖아요. 이 비제이 말만 듣고 확정 짓기는 무리가 있음.
ㅡ 그건 ㅇㅈ. 구라 일수도 있다. ㅋㅋㅋ 100% 믿는 건 아까 둘리처럼 뒤통수를 칠 확률 있음
ㅡ 내가 혹시나 해서 둘리 방송 켜져 있나 확인해 봤는데 이 새끼 방송 꺼져 있네 지금.
ㅡ 나중에 혹시나 키게 되면 제가 한번 가서 물어봄 ㅋㅋ
ㅡ 오 감사요. 후기 꼭 들려주셈 ㅋㅋ
그나저나 지금 몇 시지?
바라본 시계는 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시청자의 기대는 실망시키지 않되, 나 역시도 얼른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보자... 한 층에 30분씩 돌아본다 친다면...
적어도 1시간 반.
그리고 영안실은 더더욱 공포스럽기에 1시간으로 넉넉히 잡고.
역시 너무 늦는다. 오늘 여기서 날을 새야 할 판이다.
띵동.
[ 귀신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있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저희 둘리 피해자인 거 아시죠? 끝까지 약속 지키는지 지켜볼 겁니다.
띵동.
[ 귀신과의동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저도요. 둘리 새끼 땜에 병 생긴 거 여기서 치유받을 때까지 안 잡니다.
띵동.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ㅋㅋ 그럼 차례대로라면 이번에는 3층 갈 차례인가요?
하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시청자들은 잔뜩 기대에 빠져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이곳을 다 돌기에는 정말 무리가 있고.
그렇다고 내일 다시 온다고 하기에는 교통수단도 딱히 자유롭지 않고...
흠... 이 사람들을 어떻게 만족시켜줘야 할까?
나는 일단 조심스럽게 시청자들에게 지금 현실을 토해냈다.
“형님들. 지금이 새벽 2시인데, 아무래도 오늘 이곳을 다 돌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ㅡ 그래서 뭐? 내일 뵐게요 하고 빤스런 하는 거 아니지? ㅋㅋㅋ
ㅡ 혹시나 그런 말이면 진짜 지옥까지 쫓아갑니다. 제 별명이 화정동 미저리임
ㅡ 전 괴정동 바퀴벌레임. 물에 빠트려도 살고 불로 지져도 살아서 쫓아갑니다.
ㅡ 세스코 부름 끝인데.
ㅡ 아하?
짧은 시간이지만 엄청난 고민을 했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그래. 짧고 굵게 가자.
이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자신감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나 스스로에게 거듭 칭찬을 해대며 카메라를 들여다봤다.
“형님들. 오늘 새로 오신 분들이 많으니까요. 화끈하게 한방으로 끝내겠습니다.”
ㅡ 뭘 얘기하려는지 나는 대충 예상이 가는데? 나만 그런가? ㅋㅋㅋ
ㅡ 헐..ㅋㅋ 시바. 설마의 그 설마입니까? ㅋㅋ 거기면 인정이다.
ㅡ 미쳤다. 비제이! 일단 존경합니다!!!
ㅡ 역시 이 시대의 진정한 상남자! 근데 다리 좀 떨지 말고 얘기해 주세요! ㅋㅋ
나는 주먹을 꽉 쥐었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우렁차게 그 말을 뱉었다.
“영안실 갑시다.”
그때.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감동받아서 미션 드립니다. 영안실 시체 냉장고에 들어가면 1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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