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폐병원. 6
빛보다도 빠르게 결정된 2차전.
자! 이번에는 2층을 한 번 가볼까?
아까 둘리님이 보여준 내역 탓인지 온몸에 에너지가 샘솟고 있는 게 느껴진다.
1시간 만에 30만 원을 가까이했으니, 앞으로 두 시간을 더 생각한다면...
크...
하지만, 금방 다시 아까 그 꿈이 떠오르며 급격하게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천연 조울증 생성 이벤트 아닌가?
그나저나 2층에는 또 내가 모르는 어떤 영가의 사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차라리 미리 말해줘라.
어차피 기절할 거, 여기서 일단 먼저 하고 시작하게.
툭하면 바닥에 쓰러지는 탓에 조금 있으면 기절도 자연스럽게 조절 가능할 것 같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후... 그래도 이번 2층에서는 부디 멀쩡히 정신만은 유지해 보자.
그때.
순간 첫 폐건물의 기억이 떠올라 둘리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침대로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주머니에 있는 큰 왕 눈깔사탕 하나를 꺼내 침대에 올려두었다.
그 행동에 둘리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나는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절을 두 번 올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인사드리는거 예요. 부디 가지고 계신 원한 풀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ㅡ 야 인마. 귀신이 3살짜리 애도 아니고 눈깔사탕 하나 먹고 잘도 천국 가것다
ㅡ ㅋㅋㅋㅋㅋ 그러게 존나웃기넼ㅋㅋ 아니 저번에는 그래도 포랑 과일 하나는 준비했드만
ㅡ 쯧쯧. 비제이가 배부르더니 금세 달라졌네... 값싼 사탕 하나로 때우려고 하다니
ㅡ 그래도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더럽히고 그냥 가는 사람도 천지인데
ㅡ 그건 ㅇㅈ
나는 죽은 영혼들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 요소적인 절차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죽은 망자와 산 사람이 같이 공존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누군가가 자기 공간에 멋대로 침입해 온갖 장난과 불편한 주문들로 자신을 괴롭히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 이건 내가 했던 무례함을 이해해달라는 사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나는 누군가를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부드럽게 둘리님에게 부탁했다.
“형님. 형님도 인사 한번 드리세요. 절 두 번이면 돼요.”
둘리님은 그런 나의 행동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치 그런 걸 왜 하냐는 듯.
나는 2차적으로 생각했다.
혹시나 우리에게 귀신이 붙는다거나, 2차적인 해코지라도 끼친다면...
둘리님을 몰라도 나로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야 엄마와의 행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으...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제발 그런 일만은 없기를 바란다.
나는 둘리님을 뒤로하고 두 손을 모으고 목례까지 건넸다.
“그래도 그 사탕 어렵게 구한 겁니다. 추억의 왕사탕.”
ㅡ 캬... 오랜만에 듣네 ㅋㅋㅋ 내 어렸을 때는 5원 주고 사 먹었었는데.
ㅡ 저기 아버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5원 개 쌉 오바에요.
ㅡ 이야... ㅎㅎ 저는 나이 40 다 돼가는데 10원 주고 사 먹었던 기억나네요. 추억 돋네요.
ㅡ 컥. 그럼 저 사람은 50대란 소리? 근데 말투는 급식인데
ㅡ 크... 미쳤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확보 중인 서프라이즈 흉가 방송.
나는 주머니에 있는 남은 사탕을 꺼내 확인했다.
4개.
혹시나 해서 챙겨온 사탕이지만 모자랄 수 있으려나?
“연우 씨. 그만하고 얼른 가시죠.”
둘리님은 내 행동이 답답한지 살짝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를 향해 길을 안내하며 곧바로 채팅창을 바라봤다.
“형들. 처음에 찍은 레전드만큼 2층에도 강한 사연이 준비돼있으니까요. 좋아요랑 구독. 알람 설정까지 부탁해요.”
잠시 후.
나는 둘리님의 뒤를 따라 2층에 올라왔다.
이쪽도 나름 여러 사람들이 왔다갔다 했는지 양옆 벽면에 새빨간 스프레이로 온갖 낙서질을 해놨다.
[ 이리 와 여기야 ]
[ 따라가면 죽는다 ]
[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으...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이런 장난은 누가 해놓았는지 참 얄밉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흠...
나는 2층을 올라오자마자 자꾸 힐끗힐끗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잘못 느낀 건가?
2층에 올라올 때부터 목덜미가 자꾸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당연히 그 이유가 아까 114호실의 그 꿈에 나온 영가 때문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하... 왕사탕이 마음에 안 들었나...?’
나는 그 기분을 억지로 꾹꾹 참으며 마음속으로는 연신 사과를 해댔다.
사실 여기 오기 전.
혹시나 해서 사탕을 미리 하나 까먹어봤었다.
사람도 취향이 다양 각색인데, 영가들이라고 다를까.
맛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어른들이라면 당연하게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져온 건.
바로 박하사탕 맛.
그렇게 계속 찜찜한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문득 다시 이상하다 느낀 것은.
누군가가 자꾸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을 때였다.
‘어? 씨...’
아주 거슬릴 만큼만 살짝 잡아당기는 그런 느낌.
마치 작은 어린아이가 장난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괜한 헛기침을 하고선 둘리님의 옆에 바짝 붙었다.
“형님. 이번엔 몇 호실인가요?”
그 순간.
둘리님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옆에 있는 214호를 향해 카메라를 비췄다.
“여기 같은데요.”
“...”
또 14호다.
층만 바뀌었지. 아래층 천장 바로 위에 있는 214호실이다.
허... 이놈의 귀신 사연은 구석에 있는 호실에서만 생성되나?
ㅡ 야. 저 새끼 벌써부터 힐끗힐끗 뒤돌아보면서 연기 들어간다.
ㅡ ㅋㅋ 진짜 방송은 쟤가 다한다. 저넘 땜에 방송 감칠맛 오짐.
ㅡ 근데 어차피 어떤 호실인지 다 알면서 왜 뻔뻔하게 그렇게 묻는 거임? ㅋㅋ
ㅡ 여기선 또 뭔 주작을 준비했는데? ㅋㅋ 문이나 얼른 열어봐
쿵!
드르르륵.
둘리님은 거침없이 그 문을 열어젖혔다.
1층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먼지가 공중에서 휘날리며 퍼졌다.
그렇게 미닫이문이 열리며 214호실 안의 광경이 드러났다.
작은 침대가 4개가 있는 걸로 보아 4인실로 보이는 병실.
방 전체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장난감들과 수많은 인형들이 널브러져 있다.
눈알이 빠진 요조숙녀 인형, 배가 찢겨져 솜이 튀어나온 동물 인형, 그리고 영화에서나 보던 살벌한 인상의 외국 인형까지.
ㅡ 뭐여? 인형이 왜 이렇게 많아? 아무래도 망하기 전에 애들이 썼던 방 같은디?
ㅡ 그러네. 근데 누가 저렇게 인형을 죄다 헤집어놓은 거야? 괜히 무섭게
ㅡ 헐... 오빠 저 인형 나도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인데 눈알을... 왜...
ㅡ 둘리 저 새끼가 주작해놨겄지. 아니면 저 옆에 연기하는 부하 놈이나
ㅡ 오우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 좀 어수선하다. 방 느낌이
사실이다.
나 역시도 다른 방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굉장히 정신 사납고 어수선한 그런 느낌.
그때.
둘리님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또 한 번 검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윙크까지 해댔다.
“형들. 맞아요. 이번 사연은 안타깝게 죽은 꼬마 영가 사연이에요.”
그 순간. 나는 느꼈다.
그래... 이 방 때문이었구나.
아까부터 자꾸 옷 뒷자락을 잡아당기는 느낌.
그리고 이 방문을 열자마자 자꾸 내 시선이 구석과 침대 옆.
모서리에 본능적으로 가는 걸 보면 확실히 무언가가 숨어 도망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굉장히 신기하다.
똑같이 한기가 서린 방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 방은 가벼운 느낌이다.
아주 얕게 공중에 떠흐르는 느낌.
근데 나 어떻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거지?
아까 1층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공포에 질려 이곳저곳을 눈치 봐야 했던 아까와는 정 반대의 느낌이다.
왠지 모르게 자꾸 뛰어놀고 싶고 웃고 싶고...
이상하게 해맑은 느낌이다.
나는 둘리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근데 혹시 이쪽 방 꼬마 영가가 여자아이였나요?”
둘리님은 화들짝 놀라며 내게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ㅡ 뭘 어떻게 알아. 이 새꺄. 저 인형이랑 장난감만 봐도 딱 여자애인데
ㅡ 아주 둘이서 주고받고 최고의 콩트질을 하구 있구만 ㅋㅋㅋ
ㅡ 그러겤ㅋㅋㅋ 진짜 알바생 하나 제대로 된 놈 데려왔넼ㅋㅋㅋ
그 순간.
툭.
침대에 놓여있던 인형 하나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요조숙녀 인형.
그때.
둘리님이 성큼성큼 다가가 그 인형을 주웠다.
그리고 채팅창에 대고 웃으며 얘기했다.
“형들. 이게 그 사연 속 주인공이 가지고 놀던 실제 인형이에요.”
아니... 1층에서는 나보고 만지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더니.
이런 미친 인간. 너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너는 되고 나는 안 되고, 뭐 내로남불도 아니고.
나는 말없이 둘리님을 지켜봤다.
무엇 때문인지 잔뜩 신이 난 둘리님은 카메라에 대고 열심히 사연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목소리를 아주 가늘게 그리고 얇게 깔았다.
“여기 있던 환자는 고작 9살. 해봐야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되는 천진난만한 여자아이였어요. 남들처럼 해맑게 웃고 떠들던 것도 잠시. 그 여자아이에게는 치명적인 병이 찾아왔어요. 바로 그... 뭐더라. 아! 백혈병 ( 白血病 ). 형들도 아시다시피 백혈병은 지금 의학이 발전이 엄청나게 되었기 때문에 연간 치료방법이 개선되어서요... 음... 몇 프로였지...”
한참 머리를 쥐어 짜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던 둘리님은 잠시 카메라를 갑작스럽게 나에게 비추었다.
그리고 종이에 적혀있던 무언가를 잽싸게 읽고서 다시 카메라를 돌렸다.
“네! 70%! 생존율을 보이고 있어요.”
“...”
아니... 저걸 못 외워서 종이에 써 온거야?
ㅡ 허이구야... 둘리 공부 많이 했네. 주작질하느랴... 공부하느랴... 머리 괜찮냐??
ㅡ ㅋㅋㅋ 이 새끼 이거 딱 봐도 학교 다닐 때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사고만 쳤것네
ㅡ 어휴...ㅋㅋ 야 고작 그것도 못 읽어서 컨닝을 하냐 이 새꺄. 접싯물에 코 박고 뒤져라
ㅡ 차라리 앞에 있는 조수놈한테 플랜카드라도 들고 있으라고 하지 그랬냨ㅋㅋㅋ
둘리님은 뒤통수에 손을 가져다 대고 쓱 훑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 형들 미안해요. 사연이 리얼이다 보니 자꾸 긴장돼서 말이 엉키네요.”
이상하게 둘리님을 보면 볼수록, 말을 하면 할수록 꺼림직스럽기 시작했다.
뭐랄까 시청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생존율이 70프로나 되는 그 와중에 왜 그 여자아이...”
둘리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연을 이어가고 있는 그때.
둘리님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내 시야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검은 형체 비슷한 작은 무언가가 둘리님의 어깨에 어슬렁거리는 것이었다.
순간 오싹함을 느꼈지만 숨죽이고 말없이 지켜봤다.
잘못 본 걸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그 형체는 점점 진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얼굴을 드러내고 결국 둘리님의 귀에 손을 가져다댔다.
‘뭘 하려는거야...?’
그 형체는 나를 보고 웃으며 귀에다가 같은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반복하여 속삭여댔다.
나는 놀란 마음에 재빠르게 검지로 둘리님의 어깨를 가리켰다.
그리고 눈으로 신호를 주었다.
하지만 둘리님은 당연하게도 내 행동을 깡그리 무시했다.
그렇게 그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얘기하는 입모양을 지켜보기를 30초 째.
나는 들리지 않는 그 입모양의 뜻을 서서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 저...’
조심스럽게 중얼거리던 나는 드디어 그 문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놀라 입 밖으로 크게 내뱉어 버리고 말았다.
“아저씨. 같이 놀자.”
“...?”
갑작스러운 아저씨 소리에 사연을 읽어주다 말고 둘리님이 멈췄다.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를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ㅡ 둘리 오빠... 저 오빠 이상해요...
ㅡ ㅋㅋ 저 하꼬 새끼 학습 반영이 굉장히 빠르넼ㅋㅋ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연기 들어가누?
ㅡ 뭐라고? 아저씨 나랑 놀자? ㅋㅋ 누군데 이번에는? 이 정도면 프로접신러 인뎈ㅋㅋ
ㅡ ㅋㅋ 야 뭐 할 말 있나 본데 얘기나 좀 들어보자.
“뭐라고 했어요 방금?”
나는 손을 덜덜 떨며 둘리님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어깨로 시선을 돌렸는데...
어? 사라졌다.
뭐지? 내가 헛것을 본 건가?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쳐다봤다. 역시나 없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둘리 형님 어깨에 분명...”
둘리님이 눈을 찡그리며 나에게 엑스 자를 만들어 보인다.
아직 아니라는 듯 얘기하는 듯 싶었다.
아니. 이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인데...
나 때문에 갑자기 맥이 끊겨버린 분위기를 둘리님은 다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어잡았다.
“70프로나 생존율이 가능한데 이 여자아이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ㅡ 70프로니까 나머지 30프로의 확률로 죽었다는 거 아냐?
ㅡ 에이 님아 그런 이유였으면 물어보기나 했겠어요?
ㅡ 아니. 뭐 그럼 다른 이유가 있나? 뭐 합병증이라든지...
ㅡ 그럴 수 있겠네요. 비정상적인 백혈구 과다로 인해서 정상적으로 면역을 유지 못하니까...
ㅡ ㅋㅋ오... 님. 혹시 의과신가봄... ㅋㅋ
둘리님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시청자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사실...”
그 순간.
쿵. 쿵. 쿵.
“으읍!”
“뭐야? 이 소리?”
1층에서와 같이 의문의 발자국 소리가 또 들려왔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둔탁하게 복도 타일을 짓밟는 이 소리가 남자라는 걸 확신했다.
근데 굉장히 깨림칙한 느낌이었다.
한차례 공포를 겪고 나니 무언가 마음이 단단해져서인가.
아까와는 다른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용기 내어 반사적으로 복도를 뛰쳐나갔다.
그리고 복도 중간 계단 쪽을 향해 재빠르게 고개를 꺾었다.
“...”
어? 사람?
계단을 향해 뛰어내려가는 그건 분명 사람이었다.
뭐지? 이 시간에 웬 사람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그 와중에 둘리님을 돌아봤지만, 평온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웃고 있는 듯했다.
둘리님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얼굴은 웃으며 심각한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누... 누구 있어요?”
근데 희한하게도 손짓으로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오라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둘리님에게 얘기했다.
“사람이 있는데요...?”
둘리님이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더니 목소리까지 떨며 내게 얘기했다.
“무슨 소리예요... 여기에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어딨어요? 폴터가이스트 현상일 거예요. 여기 터가 세서.”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둘리님을 보고 얘기했다.
“아니... 곰돌이 그려진 검정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흰 색깔 구찌 명품 신발 신었다니까요.”
그 순간
채팅창이 또 난리가 났다.
둘리님이 다급하게 마이크를 끈 것이다.
ㅡ 야 이 개나리 신발 색깔아... 이 중요한 순간에 마이크 또 맛탱이 갔네.
ㅡ 에라이 똥물에 튀겨 죽일 새끼. 방송 점검 제대로 안 할 거야? 마이크 왜 그래 몇 번씩이나
ㅡ 하... 분위기 무엇... 왜 또 고장 난 거죠?
ㅡ 지금 발자국 소리에 소름 돋을뻔했는데 뭔가 팍 식어버린 찌개가 돼버렸네
욕투성이인 채팅창을 바라보며 둘리님이 손을 뒤통수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쓱 훑으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마치 왜 고장 났는지 모른다는 제스처를 하는 듯싶었다.
한참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는 척하더니 입으로는 아까처럼 내게 얘기했다.
“하... 아까 잘했잖아요. 왜 이렇게 눈치가 없지? 척하면 척! 몰라요?”
“뭐가요...?”
“아니. 그걸 나가서 왜 확인해요? 아까처럼 겁에 질릴 표정만 하고 리액션만 하면 되는데. 그 친구 알바비를 얼마나 줬는데 진짜...”
내 친구?
그 순간.
복도 중간 계단에서 다급하게 도망치던 그 사람과 1층에서 있었던 희귀한 현상들의 정체가 매칭되었다.
그 발자국 소리들... 깨진 창문... 흔들리는 문까지.
설마 친구가 한짓인거야?
내 얼굴이 실시간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건... 방송을 보러 와주는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행동이다.
나는 살면서 사람을 기만해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송은 도저히 내 뜻과 맞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나는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둘리님에게 당당하게 얘기했다.
“형님. 저 방송 그만하겠습니다.”
“뭐라고요?”
“더 이상 형님이랑 방송 못 하겠다고요. 차라리 제 방송을 켜서 혼자 할게요.”
둘리님이 흠칫 놀랐다.
솔직히 아까 자기가 만들어놓은 이 주작 현상에 맞춰 내가 무서워서 호들갑을 보여주었기에 이만한 시청자들과 후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후원을 더 받기 위해서는 내 힘이 절실히 필요했다.
“잘하다가 왜 그래요? 30%가 적었나? 더 줄 수 있는데.”
“아니요. 저는 주작같은 거 할 줄 모르고요. 형님이 자꾸 카메라 안 보이게 수신호로 강요하시는 행동들도 찝찝했는데, 아까 1층에서 있었던 희귀 현상들... 그거 다 형님 친구가 만들어낸 소리라면서요.”
둘리님은 카메라를 돌리고 가슴팍을 팍팍 쳤다.
그리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내게 얘기했다.
“답답해죽겠네. 진짜 방송 처음 하냐? 누가 하꼬새끼 아니랄까 봐... 가서 해.”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반말과 막말에 멈칫했지만, 더 말다툼을 길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근데요 형님... 인생 그렇게 살지 마십쇼.”
그리고 바로 방을 빠져나왔다.
나는 방송을 켜고 내 손을 비추었다.
그리고 내 가운뎃손가락을 둘리가 있는 방을 향해 곱게 폈다.
나를 따라와 준 고마운 시청자들을 보며 말했다.
"형님들, 연우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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