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25화 (25/225)

사연 있는 폐병원. 4

재촉하는듯한 둘리님을 맞춰 얼떨결에 바닥에 앉았다.

매서운 한기가 둘러진 듯 아주 차가운 바닥.

그 밑바닥에 있는 O, X가 크게 그려진 새하얀 종이 위에 펜을 잡았고 내 손도 올렸다.

채팅창을 쳐다보던 둘리님은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자... 일단 준비부터 할게요.”

언제 준비를 해왔는지 둘리님은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양초 4개를 꺼냈다.

그리고 초에 하나씩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불을 다 붙인 양초들은 내 주위.

즉. 정 사각형의 모양으로 나를 중간에 가두고 감싸는 형식으로 둘렀다.

“...”

이게 무슨 짓이야. 진짜...

초에 불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내 긴장감을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펜을 잡고 있던 내 손이 벌벌 떨어댔다.

땀은 어느샌가 잔뜩 차올라 자꾸만 내 손에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런 둘리님은 내 표정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리고 채팅창에 들어오는 후원을 보며 피식피식 웃어댔다.

띵동.

[ 이한나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헐. 오빠 이거 뭐 강령술 같은 건가요?

둘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귀신을 부른다는 강령술 ( 降靈術 ).

말 그대로 죽은 자를 불러내서 어떻게 하는 행위 전반을 일컫는다.

죽은 자를 불러내는 목적은 단순히 대화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뭔가를 시키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흉가체험을 위해 공부를 하던 중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위험한 썰들은 항상 결말이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금기사항을 지키지 못해 귀신에게 홀려 다친다거나, 심하게는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이런 건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본 것 같은데...

그새 모든 준비를 끝낸 둘리님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자... 연우 씨. 이제 눈을 감아주세요.”

둘리님은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을 보이며 신호를 주는 듯했다.

내가 공부했던 기억의 말에 따르면 이건 주술의 개념과 같다.

장난삼아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영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부르는 주문이라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혹시나 원한을 품고 재앙이나 복수를 하러 오는 나쁜 영혼을 불러들인다면 상황을 심각해질 테니까...

하지만, 나는 쫄보같은 이 성격 때문에.

아니. 앞으로의 더 나은 내 미래를 위해 거절하지 못했다.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꾹 참고 둘리님의 지시에 따라 억지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오로지 들리는 소리만을 향해 귀 기울였다.

“그리고 펜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빼주세요.”

그래. 둘리님도 옆에 있는데 큰일이야 나겠어?

나는 둘리님의 말에 따라 펜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도 뺐다.

펜은 내 손안에서 그저 살짝 걸쳐있었다.

둘리님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 혹시 누가 있나요?”

둘리님이 질문을 끝내자 114호 병실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남았다.

나를 둘러싼 촛불은 미동도 없이 곱게 선채로 타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초를 기다렸지만...

반응이 없다.

ㅡ 펜이랑 종이 쪼가리 하나 갖다놓고 뭔 대답을 하라는 거여? 귀신한테 나 여기 있다고 직접 쓰라고?

ㅡ 저기요. 분위기 깨는 소리 좀 하지 말아 주실래요? 하... 진짜.

ㅡ 그나저나 연기자 잘 데려왔네. ㅋㅋ 표정 씹 오진다 진짜.

ㅡ 얌마. ㅋㅋ 저 새끼 왜캐 떨어대는 거야? 접신하는 거 아니냐 지금ㅋㅋㅋ

채팅창을 확인한 둘리님은 조용히 다시 중얼거렸다.

“형들. 역시 반응이 없네요. 이게 죽은 망자를 부르는 주문이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조금만 천천히 기다려주세요.”

둘리님은 다시 한번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리고 내게 뜬금없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해댔다.

“영가님. 여기 계시나요? 근처에 계시면 O가 그려진 곳을 동그라미를 그려주세요.”

하지만, 역시나 반응은 없다.

당연했다.

어느샌가 내가 쥐고 있는 펜은 누군가의 힘으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 힘이 잔뜩 들어가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너무 긴장한 탓에 내가 꽉 쥐어버린 탓이었다.

잠시 후.

나는 눈을 살짝 뜨고 눈치를 살폈다.

정면에는 둘리님이 나에게 카메라를 비춘 채로 떡하니 서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다.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져 가고 있다.

둘리님은 카메라에 대고 큰 한숨을 쉬었다.

“휴... 형들. 오늘 만만치 않은데요.”

초에 켜둔 불은 이미 1/4를 깎아 먹을 만큼 빠르게 흘러내렸다.

둘리님은 답답한 나머지 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리님은 급하게 마이크가 고장 났다는 핑계를 시청자에게 둘러댔다.

그리고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는척하며 내게 복화술로 얘기했다.

“연우 씨. 눈치껏 분위기만 맞춰요. 그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눈치요...?”

무슨 눈치?

눈치껏 도대체 무슨 분위기를 맞추라는 거야...?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다시 한숨을 크게 쉬더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내가 영가한테 질문하면 O에다가 동그라미만 가져다 대는 연기를 하면 된다고요. 쉽죠? 그것만 하면 돼요.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요리할 테니까.

뭘 요리한다는 거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둘리 형님 이 방송. 리얼리티 아니에요?”

둘리님은 나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얘기했다.

“아니. 방송인데 다 그렇게 얘기하는 거죠.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요? 연우 씨도 방송에서 주작질 잘하면서 뭘 새삼스럽게...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유튜버들도 다 이렇게 해요. 그러니까  하던 대로 하면 돼요. 알죠?”

“아니... 전 모르는...”

둘리님은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중간에 자르며 얘기했다.

“돈 벌고 싶은 거 아니에요? 유명해지고 싶은 거 아니에요? 오늘 잘만 하면 나처럼 될 수 있어요.”

당연히 돈을 잘 벌고 싶었다.

당연히 유명해지고 싶었다.

그리되면 우리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제안에 따를 수 없었다.

애초에 나는 주작질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는 용납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돈이랑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거짓된 행동은 도저히 마음에서부터 내키질 않았다.

뭐... 사실 공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 한몫했지만.

ㅡ 후원은 후원대로 처받고 뭐 하는 거냐 둘리야. 애들 소꿉장난하는 겨?

ㅡ 아니. 마이크 안 들린다니까 이 십새야. 뭐 하는거여. 지금 주작질 준비하냐?

ㅡ 저기요. 좀 차분하게 기다리세요. 저희 둘리 오빠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ㅡ 하이고. 어이 아가씨. 너도 한패여? ㅋㅋ 조심해라 손모가지 콱 날라가붕게

ㅡ 에휴. 미친놈은 상대를 말자.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ㅡ 이런 시벌. 내가 똥이라는 거여?

결국 잠시 후.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벌던 둘리님이 불만 가득한 내 표정을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화로 이어진 것이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정말 생긴 것만 봐도 사람이 선해 보이고, 나한테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하게 대해줬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말도 안 되는 주작질 선동에 딱딱한 저 말투까지.

마치 두 얼굴을 가진 사람 같았다.

그때.

띵동.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마이크 빨리 고쳐봐.

재촉하는 시청자들을 향해 둘리님은 어느샌가 다시 찌푸렸던 인상을 풀고 웃는 모습으로 얘기했다.

“형들. 들리나요? 오. 된다! 하... 여기 터가 너무 세네요. 술사도 긴장 좀 푸시고. 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볼게요.”

어느샌가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살며시 주물렀다.

아니. 얼굴은 웃고 있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손으로 세게 압박해왔다.

그렇게 둘리님은 잠시 내게 멀어졌다.

그리고 굵고 묵직한 목소리로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영가님.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혹시 여기에 계시나요?”

그때였다.

삐그덕.

갑자기 눈앞에 있던 침대가 움찔댔다.

그리고 30초 뒤...

스스슥. 스스슥.

내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던 그 순간.

내 양 어깨에 무거운 느낌이 쿵 하게 내려앉으며 내 몸을 구속했다.

양초에 붙은 불들이 침대쪽으로 일정하게 요동치기 시작하며, 내 손은 그 방향에 맞춰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

ㅡ 어? 뭐야 시발. 촛불 움직였어! 지금!

ㅡ 헉... 진짜다. 손도 같이 움직여요!!!

ㅡ 뭐래는 거여. 이제야 연기자 놈이 연기를 시작한 것뿐이지. 방금 전까지는 도움닫기였을 뿐.

큰일났다.

마치 내 몸은 마리오네트가 된 것 같았다.

누군가가 뒤에서 원격조종이라도 하듯 자동으로 움직여댔다.

너무 놀란 마음에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힘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근육이 긴장한 탓에 온몸이 잔뜩 움츠러 들은 탓일까.

덕분에 내 머릿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있었다.

‘시발... 뭐야 이거?’

나는 다급하게 둘리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입까지 구속된 탓에 도와달라는 한 단어조차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려줘. 살려주세요. 형님.

하지만, 둘리님은 날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이제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표정이다.

“어? 어? 형들. 드... 드디어 왔어요!"

그렇게 둘리님은 나를 한참 흐뭇하게 지켜봤다.

내 손이 새하얀 종이 위에 적힌 O에 멈추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채팅창을 향해 외쳤다.

“형들. 오늘 진짜 역대급입니다. 질문 하나당 오천 원씩 받습니다. 원하시는 질문 있으시면 얼른 던져주세요.”

말하기가 무섭게.

띵동.

[ 이현지 님이 5,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헐. 혹시 원래 여기 있었던 영가인가요?

둘리님은 채팅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그 질문을 다시 자기 입으로 내뱉었다.

“영가님. 혹시 원래 여기 계셨던 영가신가요?”

놀랍게도 그 질문에 맞춰 내 손은 또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슥. 스스슥.

내 살갗은 하얀 종이에 쓸리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토해냈다.

그리고 아주 서서히 O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

등 뒤로 소름이 타고 오르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와서 후회해보지만, 이 강령술이란 거...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순간. 모든 게 누군가에 의해 제한된 느낌이었다.

팔, 다리, 몸, 게다가 입까지.

정체 모를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내 손만 따라갈 뿐이었다.

ㅡ 어? 어? 움직인다! 진짜 움직여! 꺅!!!!!

ㅡ 이야. 진짜 둘리 연기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데려왔닼ㅋㅋ 메소드 연기 시발...

ㅡ 와... 이건 백상예술대상 대상 후보도 뺨때기 후려칠만한 표정연기다

ㅡ ㅋㅋ 이러니 내가 요즘 영화관을 안 간다. 이 새끼 보면 되니깤ㅋㅋㅋ

둘리님은 내 표정을 바라보며 그제야 만족감 어린 얼굴이다.

내가 본인의 말을 듣고 주작질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상황은 꿈에도 모른 채 채팅창을 향해 고개를 천천히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들... 이거 주작 아니에요. 찐 리얼입니다. 더 놀라운 건... 지금 찾아온 영가가 아까 그 사연의 역귀 ( 疫鬼 ) 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시발! 뭔 개 같은 소리야.

정체 모를 힘에 구속당한 나는 안간힘을 쓰느라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알만 재빠르게 굴려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때.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소리쳤다.

“두, 둘리 형님! 그만!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쓰벌. 형님들 지금 제 몸이 말을 안 들어...”

불행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 정신은 이유 없이 혼미해져갔다.

"연우 씨. 진정하세요. 진정!"

둘리님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오고 마치 수면제라도 들이킨 듯 눈이 스르륵 잠기려는 그때.

띵동.

[ 선녀보살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지금 하는 거 당장 멈추세요!

내 구세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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