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폐병원. 3
뭐... 뭐야... 어디서 나는 소리지?
방 전체에 울려대는 통에 종잡을 수 없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침착하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그 소리에 집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어... 어...?”
소리의 위치는 금방 파악됐다.
나는 곧장 복도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문 앞으로 다가가 옆에 있던 협탁으로 문이 열리지 않게 막았다.
철컥.
뒷걸음질을 치던 나는 둘리님의 옆으로 잽싸게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숨죽이고 문을 지켜봤다.
ㅡ 뭐여. 이 소리? 실화냐? 소름 끼치네. 뭔가 다가오고 있는것 같은데...?
ㅡ 헐헐헐헐헐 오빠. 뭐예요 진짜? 문 앞으로 오고 있어
ㅡ 문은 뭐 하러 잠가 이 새꺄. 귀신이면 퍽이나 문 잠겼다고 어? 잠겼네 하고 돌아가겠다.
ㅡ 이게 무슨 개 주작질이냐? 시발... 딱 봐도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 같은데
잠시 후.
114호 병실 안은 말 한마디 없이 적막함이 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밖에선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10초가 그냥 흘렀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둘리님에게 물었다.
“혀... 형님. 그냥 돌아간 거 같은...”
쾅!
“워어어악! 시발!!!”
“워어! 형들! 뭐야 저거.”
문은 정체 모를 충격에 의해 세차게 흔들려댔다.
어찌나 심하게 흔들리는지, 내가 막아놓은 협탁이 금방이라도 밀려 부서질 듯 신음을 잔뜩 토해냈다.
쾅! 타다다닥!
복도 전체를 울리는 그 큰소리는 무려 30초를 넘게 요동치고 나서야 멈췄다.
그 때문에 우리 둘은 온몸은 물론 입까지 굳은 채로 멍하니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시발... 이거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둘리님의 팔을 꽉 붙잡고 그저 문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혹시나 해서 살짝 돌아본 둘리님의 표정도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
이 순간, 기댈 수 있는건 둘리님 뿐이었다.
나는 어떠한 동작도 하지 않고 1분을 그냥 멈춰있었다.
한참 문을 향해 카메라를 대고 있던 둘리님은 그제서야 뒤늦게 용기 내 소리쳤다.
“거기... 누구세요!”
ㅡ 오빠. 하지 마요. 왜 그래요 무섭게 ㅠㅠㅠ
ㅡ ㅅㅂ 갑자기 문은 누가 흔드는 건데? 존나 놀랬네 어우
ㅡ 둘리야. 네가 귀신이면 문밖에서 네. 저 귀신인데요 이러고 대답해 주겠냐? 한심하네...
ㅡ 나가서 확인이라도 해봐라 좀. 저거 백 프로 사람이다. 시벌. 주작질 니미
그렇게 멍하니 또 1분이 더 흘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공포에 잔뜩 질려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때.
“제가 확인해 볼게요.”
“...”
하지만 역시나 강심장 둘리 선배.
카메라를 치켜들더니 선뜻 나섰다.
내가 잡고 있던 팔을 살며시 풀어놓은 둘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한 발짝씩 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
철컥.
드르르륵.
조심스럽게 한참을 복도 밖을 두리번두리번하던 둘리님.
무언가를 확인한 듯 잠시 뒤.
다시 방 안으로 몸을 들여놓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어요.”
“정... 정말요?”
ㅡ 헐. 뭐지? 오빠 그럼 문은 도대체 누가 흔든 거에요?
ㅡ 누가 흔들었긴, 주작하는 넘이 잘 알겠지. 물어봐. 야 둘리야 누가 흔들었냐 문?
ㅡ 아니. 사람이라면 도망갈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안 들렸잖아요.
ㅡ 어휴 답답이. 신발 벗고 걸으면 당연히 소리 하나도 안 세겠지.
ㅡ 저기요. 우리 둘리 오빠 주작 같은 거 하는 사람 아니거든요. 말 조심 좀 해주세요.
ㅡ 아. 예예. 충신 납셨네 아줔ㅋㅋㅋ
둘리님은 채팅창을 둘러보며 얘기했다.
“자자. 형들. 싸우지 마세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저는 주작 같은 거 안 합니다. 찐 리얼이구요. 이런 폴터가이스트 현상 같은 건 폐가에 흔한 현상입니다.너무 그렇게 의심하지 말아주세요.”
폴터가이스트 현상?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나는 둘리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그게 뭐예요?”
“어떤 거요?”
“그 폴터갸라도스 현상이라는 거요.”
“아. 폴터가이스트요. 해석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예를 들면 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정령의 일종. 혹은 그런 현상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이에요.”
어라? 나도 굉장히 많이 겪어봤다.
폐건물에 있을 때도, 산속 폐가에 있을 때도.
심지어 무덤가에 갔을 때도 겪었다.
“허... 그게 다 귀신이 한 짓이었어...”
“그것도 맞는 말이겠죠.”
그래도 이 정도로 강한 현상을 본 적이 있던가?
해봐야 누군가가 벽을 쿵 하고 치는 정도.
아니면 무언가의 물건이 떨어지는 정도.
딱 그 정도였었다.
나는 문득 든 생각에 둘리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형님... 이렇게 센 현상이 나타난다는 건... 그만큼 강한 귀신이라는 건가요?”
“네. 근데 아마도 역귀 같아요.”
“역귀요...?”
“네. 영가도 종류가 있어요. 일단은 잡귀 ( 雜鬼 ), 흔하게 떠돌아다니는 귀신을 말하죠. 그리고 두 번째로는 역귀 ( 疫鬼 ), 사고로 죽거나 신체적인 학대를 받거나 가학적으로 피해를 받아 죽은 귀신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액귀 ( 厄鬼 ) 병을 주는, 고통을 주는... 또 사고를 당하게 한다거나 몸을 아프게 하는 귀신들을 얘기해요. 그 밖에도 뭐... 수살귀...”
나는 다급하게 손바닥을 올려 둘리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고개도 세차게 흔들었다.
“형님, 그만 들어도 될 거 같아요.”
저 얘기를 다 들었다간 온갖 공포에 밤 잠을 설칠 것 같은 기분이다.
뭔 놈의 귀신이 이렇게 다양한 거야?
베스킨라빈스도 아니고.
ㅡ 이 새끼 이거. 손 떠는 거 봐라. ㅋㅋ 미치것다..ㅋㅋㅋ
ㅡ ㅋㅋ 이 오빠 나보다 겁이 더 많은 것 같네요. 은근 귀여운 매력이 ㅋㅋㅋ
ㅡ 우리 비제이에게 이상한 얘기를 주입하지 마세요. 순수한 영혼이라 오줌 쌉니다.
ㅡ 순수?언제부터 순수라는 단어가 뜻이 이렇게 변질됐냐? 저놈 잔머리 굴리는 거 못 봄?
근데 역귀라...
사고로 죽었다는 귀신이라면...
어? 설마 114호의 사연의 그 주인공을 말하는 건가?
원한이 굉장히 깊어 이렇게 강한 현상이 일어난 거고...
분명한 건 지금껏 만나왔던 현상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에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44분.
드디어 내가 기다렸던 30분이 지났다.
나는 살며시 둘리님의 옆에 다가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달했다.
괜히 시청자 앞에서 말했다가 아까와 같은 방해를 받을까, 염려하여 한 행동이었다.
둘리님은 날 보며 씩 웃더니 마침내 가방을 열어 나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소금.
‘캬...’
소금을 건네받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걸 느꼈다.
그래. 역시 이거지.
[ 오천년의 신비. 명품 천일염. ]
자신감이 차오르며 전투력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마치 게임 속,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전설의 검이라도 득템한 듯 나는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ㅡ 저 새끼 저거 얼굴봐랔ㅋㅋ 손에 소금 쥐여주니 근엄한 표정의 이순신 장군이 돼버리넼ㅋㅋㅋ
ㅡ 푸하핰ㅋㅋ 이 오빠 매력쩌네 진짜.ㅋㅋㅋ
ㅡ 물론 당연하지. 매력 넘치지! 개 쫄보 중에서는...
ㅡ 하... ㅋㅋ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저 표정 보니까 존나 괴롭혀주고 싶네...
ㅡ ㅋㅋ 이 방송을 보는 모두가 느끼는 감정 중 하나 아닐까? ㅋㅋㅋ
소금을 건네받고 30초가 흘렀을까.
든든했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사그라 들었다.
나를 지켜보던 둘리님이 건넨 말 때문이었다.
“근데... 연우 씨. 지금 여기 있는 이 영가가 역귀라면 그 소금도 소용없어요. 워낙 기운이 강해서.”
“...”
아니. 그걸 왜 주고 나서 얘기 해?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면 그런 얘기 안 할수도 있었던 거잖아!
이제 보니 이 사람은 내 편이 아닌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든든함이 서서히 의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때.
와장창!
“끄악!!!”
“어?”
바깥 복도에서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리님은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며 다급하게 복도로 뛰어나갔다.
깨진 창문은 다름 아닌 우리가 있던 114호 바로 앞 창문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집어 들고 만지작거리던 둘리님은 채팅창을 향해 중얼거렸다.
정말 심각한 얼굴이었다.
“형들. 이 정도 현상이라면 정말 심각해 보이는데...”
뒤늦게 따라간 복도에는 처참하게 깨진 창문과 유리조각이 바닥에 널려있었다.
하지만, 깨진 원인을 알 수 없다.
무언가에 맞아 깨진 창문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았다.
그 순간.
삐. 삐. 삐. 삐. 삐.
“으아아아악!!!”
“워우 깜짝이야. 뭐야 도대체?”
잠시 비웠던 114호 병실 안에 EMF2 측정기가 또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오가 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소리만 질러댔다.
복도와 병실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들.
이 현상으로 진짜 귀신이 하나가 아닌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때.
띵동.
[ 귀신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있네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둘리야. 거긴 좀 위험한 것 같다. 차라리 딴 데 가라.
구세주다.
마치 눈앞에 널린 썩은 동아줄 속에 한줄기 빛처럼 솟아오른 금 동아줄 같았다.
오. 시벌. 집에 갈 수 있는 건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둘리님은 카메라를 향해 검지를 들이밀었다.
“에이. 그러면 둘리가 아니죠!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무조건 형들한테 꿀잼 드릴게요.”
내 입에서 금방이라도 욕이 튀어나갈 것처럼 혓바닥이 움찔댔다.
점점 더 심해지는 이 폴터가이스트인가 뭔가 하는 현상 앞에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가.
하... 정말 한숨만 나온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리님에게 물었다.
“형님... 여기는 좀 진짜 위험한 것 같은데... 다음...”
띵동.
[ 귀신과의동거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여윽시 마음에 드는구만. 둘리야. 이제부터는 화끈하게 가자잉! 후원 빵빵하게 해준다
둘리님은 카메라에 대고 한쪽 눈을 감았다.
윙크까지 하며 고개를 푹 숙인 다음,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걸 준비했어요 형들.”
둘리님이 뜬금없이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114호 병실 안으로 거침없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그 사연이 있다는 침대 앞까지 끌려가서는 겨우 걸음을 멈췄다.
“형님. 여긴 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둘리님은 가방에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 한 장과 펜을 꺼내고 씩 웃어댔다.
“형들. 그냥 제가 하면 재미없잖아요? 오늘은 게스트가 직접 주문을 거는 걸로... 어떠세요?”
“뭐... 뭐라고요 형님...?”
나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채팅창만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뭔가를 기다리는 듯이.
그때.
띵동.
[ 귀신과의동거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그렇지. 그거지 ㅋㅋㅋ 좋다!
띵동.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재밌으면 더 쏜다!
흐뭇하게 채팅창을 바라보던 둘리님이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 손에 살며시 종이와 펜을 건네주었다.
“연우 씨. 별거 아니에요. 영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당연히 해본 적이 없다.
난 지구 최강 개쫄보였으니까.
터무니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이런 시발 새... 아니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요 둘리님아..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다.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둘리님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반강제적으로 펜까지 손수 쥐여주었다.
나는 당연하게 거절하고 싶었다.
아니. 거절해야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머릿속으로는 아니라고 외치지만, 몸은 그동안 습관처럼 베여있었던지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다.
둘리님의 행동 지시에 따라 펜을 살며시 움켜쥐었고, 천천히 돌리고 있다.
그... 절대 금기시된 그 귀신을 부르는 주문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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