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23화 (23/225)

사연 있는 폐병원. 2

“예전에 여기 다리에 부상을 입고 실려온 응급실 환자가 있었대요. 어찌나 상태가 심각한지 병원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결정을 하게 됐나 봐요.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리 절단 수술을 하는 도중, 과다 출혈로 인해 환자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그만...”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어렸을 적 반 아이들이 가르쳐준 방법을 쓰고 있었다.

손바닥을 곱게 펴고 두 귀에 가져다 대고 붙였다 뗐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사연의 이야기는 내 손바닥을 뚫고 스테레오로 박히고 있다.

이곳은 사람 하나 없는 폐 병원.

텅 비어 있는 공간인지라 조그마한 소리에도 복도가 동굴처럼 울어댄다.

마치 공포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둘리님의 목소리는 울림과 동시에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그런 나를 슬쩍 쳐다본 둘리님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환자가 사망한 후에 이 병원에서 12시가 지나면 자꾸 이상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는 거예요. 저벅. 저벅.”

채팅창은 이미 난리다.

ㅡ 정말요? 헐... 혹시 그 과다출혈로 죽은 환자가 귀신이 돼서 누구 찾아다니는 건가?

ㅡ 아니. 근데 그 사람은 다리를 절단해서 다리가 없잖아요? 어떻게 발자국 소리를 내요?

ㅡ 으... 소름 끼쳐.

둘리님의 시청자들의 채팅은 내 시청자와는 다르게 점잖았다.

반대로 잠깐잠깐 보이는 채팅 속의 보이는 내 애청자들은 장난기가 넘치고 거침없었다.

ㅡ 의족이라도 구입해서 찼나 부지 뭐.

ㅡ 존나 긍정적이네요 님아.ㅋㅋㅋ

ㅡ 야 둘리야. 다리 한 개 더 있나 보지. 나도 다리가 세 개라는 말은 많이 듣는데...

ㅡ 다리 세 개랰 미친 새끼 ㅋㅋㅋㅋㅋㅋ

“그 환자는 사망하기 전 이미 다리가 절단된 상태였죠. 그럼 당연히 다리가 없는데 어떻게 발소리가 들린 걸까요?”

ㅡ 아니. 그래서 뭐 어떻게 됐는데 뭐 물구나무 서서라도 걸었다는 거여 뭐여?

둘리님은 침칙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딱!

“정답. 그 12시에 나타난다는 다리를 절단했던 귀신은 똑바로 선 모습이 아닌, 몸을 손으로 질질 끌고 다니는 소리래요. 저벅. 저벅. 저벅...”

둘리님은 귀를 막고 있는 내 앞으로 다가와, 손전등을 얼굴에 치켜든 채 소리쳤다.

“워!”

“아아아악!”

덕분에 나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침을 튀며 땅바닥에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

ㅡ 저 병신 저거. 기 살려주러 왔는데 스스로 동네 망신 다 시키고 앉았네... 휴

ㅡ ㅅㅂ ㅋㅋ 존나 웃기넼ㅋㅋ

ㅡ 둘리 이 새끼 연기자 데리고 온 거 아니냐?ㅋㅋㅋ

ㅡ 그래서 그 환자가 있던 방이 어딘데? 여기 있다는 거야 뭐야? 구라지 이거?

둘리님은 내 침이 얼굴에 튀었는지 슥슥 닦더니 넘어진 나에게 손을 건네며 붙잡아주었다.

그리고 옷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주며 말했다.

“네. 형들. 저는 거짓말, 주작 그런 거 안 합니다. 리얼리티 지향하구요. 저 아시잖아요? 그 사람이 있었던 입원실을 지금 바로 가볼게요. 형님들 저 노 빠꾸 아시죠?”

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둘리님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 진짜요?”

둘리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걱정 말라니까요. 그리고 영가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영가만 있는 게 아니에요. 착한 영가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 아주 하얀 영혼들이요.”

“휴... 그래도... 혹시 그 귀신이 나타나면...”

“걱정 마세요. 소금, 팥, 찹쌀... 그리고 부적까지 비싸게 주고 구입한 게 있으니까요. 저한테 딱 붙어 있으세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둘리님의 옷자락을 아이처럼 움켜잡았다.

나도 모르게 재차 만지작거리는 손을 보며 둘리님이 얘기했다.

“거긴 제 살인데...”

“아. 죄송합니다. 형님.”

나는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허리춤에서 손을 내렸다.

그때. 문득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이 계기로 내 방송에 유입이 생기기는 할까?

아...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집이 멀기에 반강제적으로 참고 있을 뿐이었다.

ㅡ 저 새끼 표정 보니 금방 튈 거 같은데? ㅋㅋㅋ 발 비춘 것 보니 뒤꿈치에 힘이 잔뜩 실렸는데?

ㅡ ㅇㅇ 님 존나 예리하시네. 혹시 저번에 그 독심술사 분인가요? ㅋㅋ

ㅡ 네. 제가 그 독심술사입니다. 오늘도 잘 한번 꿰뚫어볼게요.

ㅡ 잘 부탁드립니닼ㅋㅋㅋ

그 순간.

둘리님의 EMF 측정기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램프는 한 칸 또는 두 칸에서 왔다 갔다 움직였다.

총 5단계 중에 파란색을 넘어 초록색.

즉, 2단계까지 반짝거린다는 얘기다.

잔뜩 놀라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어쩐지 둘리님의 표정은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역시 프로 방송인.

고개를 한번 갸우뚱거리던 둘리님이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1층 입구는 약하네요. 다 어디 갔지? 어디 여행이라도 갔나?”

와. 저런 장난도 치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유다.

그때.

탁!

무언가의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건은 어딘가에 부딪혀 2차적으로도 소리를 냈다.

챙, 쿵.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소리가 나는 곳은 병실 맨 끝 방이었다.

둘리님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그 방을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나 역시도 무서움을 조금이라도 쫓기 위해 둘리님 뒤에 바짝 붙어 따랐다.

복도 좌우 벽엔, 이곳을 찾아왔던 사람들이 방명록처럼 흔적이 남겨져있다.

[ 죽어. 죽어. ]

[ 거기 들어가지 마라. ]

[ 키키키키키키 ]

경고의 문구와 함께 새빨간 손자국도 보였다.

부적 같아 보이는 종이도 낙엽처럼 발을 훑고 지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114호.

병실 앞에 멈춘 둘리님은 천천히 미닫이문을 열었다.

드르르륵.

미닫이문의 룰러가 덜컹덜컹 거리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더 자아낸다.

‘미치겠네...’

열자마자 수많은 먼지가 공중에서 휘날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입과 코를 막으며 한참을 공중에서 손을 휘젓고 나서야 들어간 병실.

그 안은 평범한 분위기였다.

4인실로 보였다.

병실 침대, 오래된 탁자, 깨진 TV, 그리고 거미줄이 잔뜩 쳐진 선풍기까지.

우리는 그 안에서 주위를 둘러보다 소리의 정체를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둘리님이 가위를 집어 들었다.

“가위...”

두꺼운 고기도 자를 수 있을 법할 가위가, 벽에 박힌 못에 걸쳐져 있던 가위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로 인해 밑에 있던 탁자를 2차적으로 가했고...

하지만, 이상하다.

가위가 걸려있던 못은 여유 공간이 한참 나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위를 건네받아 못에 걸어봤지만, 어중간한 바람으로는 절대 떨어트릴 수 없는 구조다.

심지어 창문은 다 굳게 닫혀 있다.

까악- 까악-

밖에서 까마귀 소리가 흘러들어 옴과 동시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기분이 마치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더 머무르다간 이 공간에 블랙홀처럼 잡아먹혀, 빛 한 점 없는 곳에 갇힐 것 같은...

“이... 이게 어떻게 떨어졌지?”

둘리님이 가위를 다시 못에 걸고 흔들어 보았다.

가위는 못 대가리에 걸려 정말 떨어질 수 없는 구조였다.

“잠시 만요.”

둘리님은 이번엔 다시 EMF1 측정기를 꺼내 손에 들었다.

그러자 램프는 순식간에 두 칸이나 들어왔다.

“여기... 뭔가 있는 건가.”

그 말에 순간, 나는 두 다리가 굳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뭐... 뭐라고요? 뭐가 있다고요...?”

“잠시 만요.”

둘리님은 가방을 열어 다른 심령 장비를 꺼냈다.

그것은 아까 꺼낸 EMF1 측정기와 비슷한 크기였다.

하지만 뭔가 다르게 생겼다.

일단 보이는 것만 얘기하자면 아까 측정기와는 다르게 색깔 램프가 없다.

“그... 그건 뭐예요?”

“이것도 똑같은 EMF 측정기인데요. 전자기장 수치가 일정 이상 올라갈 시에 빨간 화면과 함께 소리가 울려요.”

아직 측정기를 켜지도 않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나댄다.

손엔 땀이 차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둘리님이 측정기를 가위가 있던 곳.

그 밑에 전원을 켜고 살며시 올렸다.

삐. 삐. 삐. 삐. 삐.

EMF2 측정기가 요동쳤다.

“시바아아아아알!”

놀란 마음에 나는 저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건물 전체가 나의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놀란 건 나뿐이 아니었다.

둘리님까지 덩달아.

“왁! 씨발 깜짝이야! 야 이 미친 새끼야!”

잠시 후.

EMF2 측정기의 소리가 멈췄다.

그제서야 우리 둘은 민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뒤통수에 손을 얹고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둘리 형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어후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욕이... 원래 욕 안 하는 사람인데.”

그 덕분에 나의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ㅡ 인간 서라운드네 ㅋㅋㅋ 미친 새끼가 복식 호흡하나? ㅋㅋㅋㅋ

ㅡ 아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ㅡ 헐. 둘리 오빠 욕 하는 거 처음 봄. 인간적이네... ㅋㅋ

ㅡ 이야... 시발. 천하의 둘리도 욕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낰ㅋㅋㅋ

ㅡ ㅋㅋㅋㅋ 존나 웃기넼ㅋㅋ 나도 같이 소리 질렀네 ㅅㅂ ㅋㅋ

ㅡ 이 새꺄. 소리 좀 그만 처질러!!! 이럴 거면 성악가를 했어야지

ㅡ 개 흥미진진하닼ㅋㅋ 오늘 개꿀잼이여ㅋㅋㅋ

머쓱해진 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울려 댔던 측정 장치가 지금은 잠잠해졌으니까.

“형님. 지금 여기 영가가 있다가 간 걸까요?”

둘리님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상하네. 다시 한번 해 볼게요”

EMF2 측정기를 들더니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켰다.

그리고 잠시 후.

“......”

반응이 없다.

아까와는 다르게 주위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래. 차라리 울리지 마라.

휴... 진짜 기겁할 뻔했다.

근데 둘리님의 표정이 이상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측정기를 쳐다본다.

“이거 왜 이러지? 형들, 원래 EMF2 측정기에서는 소리가 안 나야 정상이거든요? 단계가 구별 가능한 램프도 없는 데다, 이 장비 같은 경우엔 EMF1 측정기 장비의 3단계 정도는 돼야 반응하는 장비거든요. 형들도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났다가 멈췄다는 건...”

말하지 마. 그 입 다물...

그냥 지금 소리가 안 나는 게 좋은 거잖아요.

귀신이 왔다가 그냥 갔으면... 그냥 자기 갈 길 가게 두는 게 좋은 거잖아요...

“형님... 귀신도 스케줄이 있어서 어디 간 게 아닐까요...?

ㅡ 헐. 아니면 오빠. 혹시 귀신이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있는 거 아니야?

ㅡ 야. 이현지. 무섭게 하지 마. 씨...

ㅡ 뭔 개소리여. 하꼬 비제이 놀리고 싶어서 안달 난 것 같은뎈ㅋㅋ

ㅡ 또 설마 귀신이 하나가 아니라고 해라.

둘리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영가가 한 명이 아닌 것 같아요.”

내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애인처럼 둘리님의 옆에 바짝 붙어 물었다.

“정... 정말이에요?”

“네.”

ㅡ 훗... 역시...

ㅡ 헐. 이 양반 이거 진짜 독심술사 맞넼ㅋㅋㅋ

ㅡ 저 새끼 게이다.

나는 놀란 마음에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둘리님에게 다급하게 부탁했다.

“혀... 형님. 저 소금 좀 주실 수 있나요? 소금이라도...”

그때.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저 새끼한테 30분간 소금 안 주면 만 원.

저런 시벌. 항문에 마데카솔을 꼼꼼하게 발라 버릴까 보다.

새살이 돋아나 막혀서 천천히 죽어버리게.

그나저나 우리 같은 가족 아니었어?

남의 방송까지 와서 이래야 되는 거냐고...

나는 든든한 둘리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 이 형님 돈 많으니까 이런 미션 따위는 뭐...

둘리님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하... 시발.

인상이 선하고 뭐고, 돈 앞에서는 장사 없는 건 매한가지구나.

소금이라도 쥐고 있어야 마음이 쥐똥만큼이라도 놓일 것 같은데.

나는 잔뜩 떨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한 침대에 걸려 자연스럽게 멈춰졌다.

그때.

내 모습을 지켜보던 둘리님이 갑자기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거 손대지 마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움찔한 나는 입도 굳어 멍하니 둘리님을 쳐다봤다.

둘리님은 크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 침대... 아까 그 사연 속 다리 절단된 환자가 쓰던 겁니다.”

염병할... 벌써 닿아버렸는데.

시발...

그때, 나는 듣고 말았다.

저벅. 저벅. 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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