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4화 (14/225)

귀목산의 무덤. 4

“형님들 잠시만요... 후... 웁!”

크게 숨을 한번 내뱉고는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사건의 무덤가를 가기 전.

머리를 깨끗하게 비우고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사방이 어두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모든 방향을 경계해야 했기에 생긴 단점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으로 쉬지 않고 여기저기 비춰 되니, 온몸에 잔뜩 힘이 안 들어가고 배기겠나.

“아우... 시바. 팔 아파.”

ㅡ 이 새끼 이거 도중에 빤스런 하려고 스트레칭하네

ㅡ 어? 나 저 체조 복싱체육관 3개월 다녔을 때 관장님이 맨날 시켰는뎈ㅋㅋ

ㅡ 오. ㄹㅇ? BJ 복싱 출신임? 어쩐지 몸이 좋아 보이더라니...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저 복싱 배운 적 없는데...”

그러고 보니 난 이런 스트레칭을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하는 거지?

문득 드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에서 섰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오잉...”

막상 다시 해보려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

팔과 다리가 따로 노는 것 같이 흐물거렸다.

ㅡ 뭐여. 뜬금없이 왜 갑자기 몸 개그를? 그것도 그 체육관에서 가르쳐준 거임?

ㅡ ㅅㅂ. 오징어 갓 잡아 올린 줄 알았넼ㅋㅋ

ㅡ 이제 보니 BJ 양반. 자네 연기도 연기지만, 개그에도 탁월한 자질을 가졌구먼?

ㅡ 개그맨을 해보실 생각이?

나는 다시 한번 멍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저 방금 체조 어떻게 했어요? 그리고 저 사람 웃길 줄 모르는데...”

그렇다.

항상 혼자만 떨어져 지낸 세월만 몇 년이었던가.

말할 상대도 없었을뿐더러, 누군가를 웃길 만큼 재미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떠들 수 있는 상대는 우리 사랑하는 엄마.

그것도 엄마가 퇴근한 저녁에 잠깐이나마 하는 소통 정도였으니까.

ㅡ 아니. 저번부터 그런 걸 우리한테 물으면 어케 대답을 하라는 거임?

ㅡ 정신 차리게나 BJ 양반. 국가대표 체조선수 출신 귀신한테 빙의되기라도 한 겨?

ㅡ 미친ㅋㅋㅋ 체조선수출신빙읰ㅋㅋㅋㅋ

빙의라니... 이 사람들. 무서운 소리하고 있네.

나는 시청자들에게 고개를 꾸벅꾸벅 숙여대며 얘기했다.

“후... 죄송합니다. 그럼 슬슬 가볼게요. 형님들.”

웃고 떠드는 시청자들을 뒤로하고, 나는 그 사건의 무덤가를 찾아가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뗐다.

처음 와보는 곳이기에 정확한 위치를 모르지만, 이곳에서 약 70m 넘짓 떨어진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평평한 지형에 있는 무덤가를 금방 벗어나 5분쯤 걸었을까.

내 눈앞에 갑자기 울퉁불퉁한 험한 길이 나타났다.

저 멀리 손전등으로 길을 비춰보자, 한 눈에 보아도 사람 허리만큼 오는 큰 돌무더기들이 엉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와... 아무리 봐도 사람이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놓은 길이 아닌데?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본능적으로 그 돌무더기들을 아주 가뿐하게 올라타고 있었다.

마치 평평한 지역을 조깅하듯 신속하게 말이다.

ㅡ 워... 이거 길이 진짜 굉장히 험하구만? 나는 못 가겠는데?

ㅡ 그러게 ㄷㄷ... BJ 운동한 게 확실하네. 올라가는 속도가 장난 아님...

ㅡ 컥... 대박이네. 쥐포 보셈. 어떻게 고양이랑 속도가 비슷하냐.

“읏차...!”

숨도 고르지 않고 단숨에 올라오니 다시 제법 평평한 지역이 이어졌다.

그 앞에는 신기하게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돌탑까지 있었다.

“저 말고 여기 올라오는 사람이 있긴 한가 보네요.”

ㅡ 대박. 그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고?

ㅡ 뭐 낮에 왔다고 하면 가능할 수는 있을 것 같음.

ㅡ 그런가? 근데 저기 너무 높지 않음? BJ가 키가 커서 그렇지. 웬만한 사람은 매달려서 올라와야 할 것 같은데?

ㅡ 암벽등반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ㅡ 아... 그럼ㅇㅈ

손전등으로 여러 곳을 비추자 소나무를 비롯해 잣나무, 상수리나무, 자작나무 등등 다양한 나무들이 보인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그 장소의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몇백 년, 그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 말이다.

왜 이렇게 안 보이는 거야?

나름 튼튼해진 몸 덕분에 거진 수직에 가까운 지역을 70m나 올라왔는데, 이제는 그 장소를 찾는 것도 문제가 돼버렸다.

그때.

바스락. 바스락.

내 뒤에서 나뭇잎을 살며시 밟아대는 소름 끼치는 소리.

“아욱! 누구! 누구세요!?”

순간 고개를 재빠르게 돌려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춰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건 없다.

그곳은 내가 방금 올라온 수직에 가까운 직벽 언덕이었으니까.

나는 핸드폰에 비친 시계를 확인했다.

12시 04분.

큰일 났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내 계획으로는 재빨리 두 시간 만에 모든 걸 끝내고 1시가 되기 전 집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사건의 시간대랑 일치되는 상황을 막아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아까 그 무덤가에서 괜한 잔머리를 쓰며 시간을 많이 소비한 탓에 도착할 즘 되면 그 사건의 시간대랑 비슷해질 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아까보다는 한층 더 싸늘해진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쉬이이이.

아까 그 일반 무덤가와는 다르게 바람도 더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ㅡ 와... 바람 소리 보소. 얼마나 세차면 마이크에 그대로 담기네 ㄷㄷ

ㅡ 거진 태풍 수준인데요?ㅋㅋㅋ

ㅡ BJ 고추 안 떨어지게 잘 붙잡고 있으셈.

ㅡ 저 새낀 아까부터 고추 타령이냐?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나는 시청자들에게 부탁했다.

검지를 이마에 갖다 댔고 세게 짓눌렀다.

그리고 입꼬리를 최대한 내렸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형님들... 이거 오늘 기상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은데... 위험할 것 같으니 다음에 오는 게 어떨...”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아직 미션 안 끝났습니다.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다. 나 미션 중이었지.

그제서야 엄마의 생신날도 바로 코앞이라는 게 다시 한번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네... 형님들. 갑니다. 갑니다.”

작은 나무들이 우거져있어서 그런지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대는 소리가 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잊을만하면 자꾸 나뭇잎 밟아대는 소리가 들린다.

바스락. 바스락.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쥐포를 조용히 살펴봤다.

하지만 역시나 고양잇 과라 그런지 쥐포에게서는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럼 대체 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뭐지?

10분쯤 앞만 보고 걸었을까.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에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앞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몸이 심하게 벌벌 떨리기 시작했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으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내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내가 들고 있는 손전등이 긴장으로 미친 듯이 흔들린다.

“형님들... 이거...”

ㅡ 제대로 좀 비춰봐!

ㅡ 헐... 대박 미쳤네... 이게 가능한 일인 가?

ㅡ 와. 대박 나 지금 온몸에 소름 돋았어... 시발. 뭔데 저거.

ㅡ 저거... 아까 처음에 봤던 그 돌탑 아님?

ㅡ ㅅㅂ. 시청자들도 주작하는거 아님?

ㅡ ㄴㄴ 분명 얘 직진만 하고 있었음

아까 언덕을 올라 마자마자 봤던 돌탑이다.

워낙에 특이했던지라 그 돌무덤의 돌 개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확하게 4개.

큰 돌부터 시작해 크기가 살짝 작은 그 돌들로 쌓여져있던 작은 돌무덤.

같은 장소로 돌아와버린 것이다.

입을 틀어막은 나는 도망갈 곳도 없는 그곳에서 옆에 있던 급하게 쥐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냥 생각나는 데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지만 그 공포는 사라질 생각이 없었다.

목뒤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소름은 가라앉을 생각이 없었다.

그때.

뜬금없이 선녀 보살이 머릿속에 스쳤고, 난 급하게 허공에 대고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고개를 꾸벅꾸벅 숙여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화내지 마세요! 이러지 마세요!”

ㅡ 으... 나 너무 소름 돋아서 방에 불 켜고 벽에 붙어서 이불 덮고 있는 중

ㅡ ㄹㅇ 나도요. 와... 나는 저거 보자마자 소리 질러서 엄마한테 등짝 맞음

ㅡ 오늘 대박 레전드인데?

ㅡ 아니 그나저나... BJ 양반. 자네 가톨릭 신자인가?

나는 채팅창을 바라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저는 무교인데...”

ㅡ ㅂㅅ. 근데 가톨릭 기도문을 왜 외우고 있음?

ㅡ 그러니까 효과가 일절 없는거짘ㅋㅋ ㅅㅂ

ㅡ BJ 이 양반. 상습범이네. 저번에는 기독교 주기도문 어설프게 외우더니만...

ㅡ 하느님 아버지가 밥을 사다 주시고 그거요?ㅋㅋ

머리에 띵하고 망치를 때려맞은 듯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그 물건을 찾기 위해 손으로 뒤적거렸다.

그리고 잡히자마자 재빨리 뚜껑을 열어젖히고 이리저리 뿌리기 시작했다.

“훠이! 훠이! 귀신아 물러가라!”

이건 생각 못 했을 거다.

소금 뿌리기.

이 방법이 있었다는 걸 깜빡했다!

부랴부랴 열심히 뿌리고 난 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뛰었던 심장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 것 같았고, 빨랐던 심호흡이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때.

띵동.

[ 선녀보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천일염인가요? 천일염이 아니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샌가 찾아온 반가운 얼굴, 선녀보살이다.

ㅡ 선녀보살 컨셉 지대로 잡았넼ㅋㅋ

ㅡ 천일염 이지랄 ㅋㅋㅋㅋ

하지만 그의 후원창을 천천히 읽고, 내 맥박수는 다시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시바. 큰일 났다.

이거 맛소금인데...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