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산속 폐가. 3
“아들. 너 어제 어디서 뭐 했길래 옷이 이래?”
“...”
그건 새까맣게 탄 재의 성분으로 만들어진 여성의 손바닥 모양이었다.
흰 티셔츠 뒷면에 찍혀있는 손바닥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마치 할머니 손처럼.
이건 도대체 언제 찍힌 거야?
나는 어제의 상황을 천천히 떠올려봤다.
그래...
어제 그 폐가 안에 있던 조그마한 그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누군가가 내 등을 쓸어만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날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부랄... 생각하고 나니 이놈의 몸이 또 요동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일단, 놀란 어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대충 둘러댔다.
“아 이거? 친구가 장난친다고 등을 때렸는데 그때 묻혔나 보네. 어휴. 그 자식...”
나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는 어머니는 그 상황을 웃으며 넘기셨다.
“으이그... 친구가 짓궃네. 흰 티셔츠인데... 그나저나 친구 손이 야무지다야.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나는 잽싸게 그 티셔츠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치? 그래서 별명이 할머니야.”
나는 건네받은 티셔츠를 부엌으로 가져갔다.
가져가는 내내 어제의 그 상황이 다시 떠올라 몸에 잔 소름이 쭈욱 올라타기 시작했다.
티셔츠를 빨래통에 던지듯 넣어놓은 나는 다시 방안으로 후다닥 들어와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 15시간.
오늘은 아무래도 각오를 더 단단히 하고 가야 할 것 같다.
또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
하루 종일 그 폐가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학교 수업은커녕, 온종일 그 할머니의 호통소리 생각뿐이었다.
왜 나에게만 들렸던 것인가.
설마 극심한 공포증 탓에 귀신한테 잠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집에 돌아와 확인한 시간은 5: 50분.
앞으로 6시간, 적게는 5시간 남은 상태였다.
뭘 할까?
나는 일단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피폐해지는 폐가 생각을 미뤄두고, 이제 3일밖에 남지 않은 엄마 생신 선물로 어떤 구두를 선물할 수 있을까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여성 펌프스화 구두.
자그마치 96,420원이라는 값어치를 자랑하는 검은색 구두였다.
“오... 예쁘다. 엄마한테 딱이겠는데.”
그 순간.
[ 펌프스화 구두 코디에 딱 맞는 블랙 쉬폰 원피스 함께 보시겠습니까? ]
나는 홀린 듯이 그 원피스를 눌렀다.
[ 블랙 체크 쉬폰 원피스 163,840원. ]
그리고 다시 한번 감탄을 입으로 내뱉었다.
“우와... 미쳤다. 이거까지 같이 입으면 진짜 잘 어울리겠는데...!”
하지만 구두의 거진 두 배의 가격이다.
학생 신분인 내가 삼 십만 원이라는 돈을 어디서 구하지?
전에 쥐포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받았던 후원금은 이미 고양이 사료와 병원 값으로 거진 다 써버렸다.
남은 건 어제 벌어들인 삼만 원. 그리고 선입금 삼만 원.
결론은...
‘오늘부터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남는 시간 동안 심신 단련에 돌입했다.
인터넷에 있는 각가지 좋은 글귀들과 담력을 키우기 위한 댓글들 위주로 읽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한 준비물까지 챙겼다.
자고로 영적인 존재, 즉 귀신들은 소금. 팥, 오곡을 무서워한다고 했다.
집에 보이는 건 소금뿐이기에 아쉬운 대로 소금 한 뭉치를 주머니에 한가득 채웠고, 다섯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그렇게 드디어 11: 50분.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 들키지 않게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역시나 귀신보다 귀가 더 밝은 쥐포가 나를 따라나왔다.
집 앞의 두 갈림길에 섰을 때, 쥐포에게 얘기했다.
“쥐포. 오늘은 조용히 있어. 놀래키면 밥은 없다.”
쥐포는 알았다는 듯이 내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대답은 잘 하네.”
나는 그 폐가로 다시 올라가기 전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아까 인터넷에서 봤던 글귀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 자고로 불교에서는 이 세상은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三界惟心造)이라고 표현한다. ]
그래. 내 마음이 만들어낸 공포일뿐이야.
저긴 그냥 사람이 살던 집일뿐이고, 귀신 따위는 없어.
그렇게 천천히 폐가로 시선을 돌리는데...
어? 불이 또 켜져 있어!?
시부랄. 불교신자가 아니라서 그런 건가.
그래서 내 마음이 전혀 정화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방송을 서둘러서 켜기 시작했다.
그저 내가 만들어낸 공포라면...
저 광경을 들어오는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때쯤이면 불은 거짓말처럼 꺼질 것이다.
ㅡ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ㅡ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ㅡ 하나도안무섭네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나는 미리 들어온 이 세 명에게 저 멀리 보이는 폐가를 비추며 얘기했다.
“보세요. 형님들.지금 가고 있는 참인데 불 켜져 있는 거 보이...”
헉. 놀랍게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불이 유지되고 있다.
머릿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내 온몸에 오싹한 기운이 맴돌았다.
하지만 청개구리 같은 이 시청자 놈들은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ㅡ 오... 개 신기... 라고 해줄 줄 알았음?
ㅡ 더 열심히 한다 드니, 더 열심히 주작을 한다는 거였네?? ㅋㅋ
ㅡ 그래도 노력은 가상함ㅋㅋ
ㅡ 그건 ㅇㅈ
아니라고. 시부랄놈들아.
내가 무슨 인간 발전기냐?
이미 전기 다 끊긴 저 폐가에 내가 무슨 재주로 불을 켜고 오냐고.
“형님들. 하... 답답들 하시네. 속고만 사셨나.”
그나저나 폐가에 다가갈수록 배터리가 눈에 훤히 보일 만큼 빨리 소모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러진 않았는데...
한층 더 공포스러워진 마음으로 폐가를 향할 때였다.
띵동.
[ 귀신잡는해병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뭐여 이건. 뭐 하는 방이여?
왠지 든든해 보이는 아이디의 시청자가 나타났다.
“어. 안녕하세요. 해병대 형님. 유튜버 정연우라고 합니다. 제 방송은 흉가탐험이 주 컨텐츠입니다. 좋아요. 구독 부탁드려요.”
ㅡ 에이. 이봐 동상. 귀신 그런 걸 믿는가? 그런 건 없어야.
네. 저도 없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폐가 안에서 불이 꺼졌다.
나는 다급하게 시청자들에게 카메라를 비춰주며 얘기했다.
“어? 지금 폐가에 불이 꺼졌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폐가 앞 마당 안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튀어나갈 쥐포는 약간 힘을 주어 잡아두기까지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옥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어라. 집 한옥문이 닫혀있다?
저 문 내가 어제 놀라서 뛰쳐나오면서 활짝 열어두고 왔었잖아?
부리나케 도망치다 뒤를 한 번 더 돌아봤었기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뭐야. 도대체...
“형님들... 이거 문을 누가 다시 꽉 닫아놓은 것 같은데요...”
잠시 후. 문 앞에 다가가 살며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 순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문. 어중간한 자연의 힘으로 닫힌 게 아니다.
쿵. 쿵.
가볍게 흔들어보지만, 역시나 전혀 미동조차 없다.
누군가가 이 문을 힘으로 눌러 닫아놓은 게 확실했다.
그럼 이 집을 왕래하는 사람이 있는건가?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닫힌 문에 대고 가볍게 외쳐봤다.
“혹시. 여기 누구 계신가요?”
내 목소리가 산속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하지만, 1초... 그리고 3초.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없는 것 같은데...”
문고리를 쳐다보자 손에 땀이 흥건하게 차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디뎠다.
ㅡ 공포영화를 찍는 거냐 지금? 빨리 좀 들어가자. 답답시럽네.
ㅡ 근데 쫄깃쫄깃 하긴 함. BJ 때문에 내가 더 긴장됨.
ㅡ ㅇㅈ. 뭐라도 튀어나올까 봐 개 무서움.
“형님들. 저 기절하면 꼭 경찰 불러주셔야 됩니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한옥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자 시커멓게 그을린 벽과 천장이 나를 블랙홀처럼 빨아당기듯 맞이해주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어제 영정사진이 있었던 미닫이문으로 다가갔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곤두선 솜털에 몸이 간질거린다.
- 빨리 안 들어 가고 뭐 함?
- 여러분 여기 주작 맛집임
- 아 빨리 좀 들어가라고 개스캬!
너희들이 여기 있어 봐라.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주는지.
"진정하세요.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주작 아니라니깐요."
- 주작 주작 주주주주 작작작작
- ㅋㅋ 왜 그럼.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은딬ㅋㅋ
- ㅇㅈ 아무리 연기라도 넘 감칠맛 나게 해서 자연스러움
나는 엄마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미닫이문에 손을 가져갔다.
쾅.
나는 목을 죄여오는 긴장감을 날려 버리기 위해 일부러 호기롭게 문을 열어젖혔다.
순간.
코를 찌르는 비릿란 냄새가 덮쳐왔다.
“웁!”
설마. 이 냄새...
나는 손전등으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비췄다.
영정사진과 과일 제사상이 없어졌다?
툭. 툭.
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천장으로 손전등을 천천히 치켜세 웠다.
천장엔는 검은 닭들이 거꾸로 매달려 목이 베인 채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다.
“와아아아악! 다... 닭 닭!!!”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놀란 마음에 뒷걸음질 치며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ㅡ 와. 시발 뭐지 저거? 오골계인가?
ㅡ 헉. 이거 주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하드한데?
ㅡ 워메. 동상. 이런 취미가 있을 줄은 몰랐는디... 겁나 19금이구마.
다행히도 방송 카메라에는 바닥까지 자세하게 담기지 않아, 시청자들은 보지 못했다.
그건 분명 피였다.
그것도 흘린 지 얼마 안 돼 아직 채 굳어버리지 못한 검붉은 피.
무엇보다 그 냄새는 비릿하다 못해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12: 30분.
나는 놀란 마음에 시청자들 향해 되려 물었다.
“형... 형님들. 저게 왜...”
ㅡ 주작 한 사람이 잘 알지. 왜 우리한테 물음?
ㅡ 뭐지. 저거? 인형은 아닌데?
ㅡ 오골계 존나 비쌀 텐데. 왜 저렇게 죽여서 매달았지?
시청자들의 비난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비난이 내 눈에 닿을 여유는 없었다.
집에 들어가기 십 분 전에 꺼진 불은 무엇이며, 저 공간 안의 참혹한 광경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때.
띵동.
[ 귀신집에히터틀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아직 25분 남았습니다. 선입금 잊은 건 아니죠? 빨리 다시 고고.
내 마음도 모르고 어제 선입금 때린 놈이 닦달해댄다.
하지만 시발. 진짜 오줌을 지릴 것 같다.
떨려오는 다리와 온몸이 멈추지 않는다.
이거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것 같은 느낌인데...
도저히 내 말을 믿지 않는 시청자들을 향해 나는 간절함을 담아 부탁했다.
“형님들. 여긴 아닌 것 같아요. 시발. 이게 주작이면 손모가지 자를게요.”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세차게 흔들어대며 다시 한번 얘기했다.
“아니. 시발. 부... 부랄이라도 떼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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