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첫 폐건물. 5
어제 저녁.
길 고양이 쥐포를 데려오자 집안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들! 얘는 뭐야 도대체?”
엄마의 반응은 특이했다.
왜 데려왔냐는 짜증 섞인 흔한 어른들의 반응과는 다르게, 이왕 한 생명을 거둬들였으니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보자며 오히려 반가운 반응을 보였다.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
“쥐포.”
“쥐포? 하이고. 별나네.”
게다가 밥은 어떻게 먹여야 하고, 털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밤새 나보다 더 격한 애정을 쏟았다.
역시나 우리 엄마.
***
다음 날. 등교를 위해 집에서 나와 바라본 하늘은 유독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량한 하늘은 마치 고민거리 하나 없는 내 희망사항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내 얼굴에는 금세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박필준. 그리고 그 녀석들과의 만남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거리는 대충 3km 정도의 거리.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나는 내 다리 상태를 생각해서 항상 1시간 전에는 집에서 나와야 했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다.
멀쩡한 몸과 나를 보디가드 해주는 쥐포 녀석이 있지만, 점점 더 가까워지는 학교가 보일수록 내 마음은 다시 공포감으로 서서히 휩싸이고 있었다.
휴. 오늘은 또 어떤 장난으로 녀석들이 나를 괴롭힐까.
창고에 가두는 것은 기본, 거기에 흉가 방송까지.
점점 더 녀석들의 악행에는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거기에 온갖 폭행까지 당할 상상을 하니 자동으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그렇게 끝나지 않는 끔찍한 상상 중에 나는 학교에 도착했다.
무려 일등으로.
놀라운 신체 변화 덕분이었다.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서도 30분 만에 도착해버렸다.
교실은 아무도 없어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 후 한 20분이 흘렀을까.
한두 명씩 반 교실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반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등교한 나를 힐끗힐끗 신기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아무런 신경도 관심도 주지 않았다.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했던 걸까.
그것 말고는 특별하게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웠다.
나는 흔히 말하는 왕따였으니까.
나에게 괜한 관심을 주었다가는 일진 무리 녀석들 눈에 들어 학교 다니는 내내 나와 같은 괴롭힘을 당해야 할 것이다.
그때. 저 멀리 박필준이 문을 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드르륵.
“아. 아침부터 고양이 새끼가 재수 없게...”
평소와 같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들어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워! 시발. 뭐... 뭐야.”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박필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를 나는 그저 눈만 꿈뻑거릴 뿐이다.
다시 천천히 일어나 한참을 위아래로 나를 내려다보던 박필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 너... 어떻게 살아있...”
“...”
그 뒤에 따라 들어오던 박필준의 무리들도 나를 보고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뭐... 뭐야. 시발. 저 새끼 왜 여기 있어.”
그 반응에 반 아이들의 모든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헛기침을 한 박필준이 나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얘기했다.
“너 그때 응급실 실려가서 뒤진 줄 알았잖아... 살아있으면 형한테 연락을 해야지. 얼마나 쫄았는 줄 아냐? 뒤질래 진짜?”
“미안. 난 기절해있어서 몰랐어. 정말이야...”
녀석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금세 안정을 되찾고, 내 뒤통수를 뒤로 잡아당기며 얘기했다.
“그럼 도대체 죽은 사람처럼 흰 천은 왜 뒤집어쓰고 지랄이야.”
“...?”
나도 이제야 그 상황을 이해했다.
이 녀석들은 내가 기절했을 그 당시, 흰 천을 뒤집어쓰고 실려간 그 시신을 나와 착각한 것이다.
연락이 와서 물어보니 격투기를 했던 자살자라고 했던가...
나는 그 시신보다 한참 전, 응급실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고 들었다.
박필준은 얘기했다.
“그나저나 너 멀쩡해 보이네? 잘 돌아왔으면 우리한테 보답이라도 해야지. 너 우리 땜에 방송에서 후원 좀 받았잖아?”
순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역시나 내가 그곳에서 어떠한 공포를 겪었는지 이 녀석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혹시나 하는 불상사로 내가 죽었다 해도 미안함은커녕 그 죄를 들켰을 때의 처벌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악마 같은 녀석들. 언제나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떨리는 몸을 붙잡고 나는 용기 내어 하소연했다.
“나 정말 죽을 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필준이 손바닥으로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
하지만 박필준의 팔이 허공을 휘적거렸다.
놀랍게도 내 머리는 이미 그 손바닥을 한참 벗어난 뒤였다.
나는 순간 움찔거렸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행동이니까.
그 때문에 박필준의 몸이 휘청거리며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렸다.
눈이 휘둥그레진 박필준이 나를 한참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반사적으로 사과를 건넸다.
“미안... 이게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주위의 반응을 둘러보던 박필준은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창피함은 금세 분노로 이어졌다.
“이런. 시발놈이 피해?”
이번엔 앉아있는 나에게 크게 발길질을 해댔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앉아있었던 자리에서 나는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 뒤로 피했다.
덕분에 내가 앉아있던 의자는 저 멀리 나가떨어지며 큰 굉음과 함께 널브러졌다.
콰쾅!
나는 선채로 두 손까지 모아 박필준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
“하지마... 제발 부탁이야.”
그때.
교실 내에 고요하게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놀란 나머지 입까지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야. 쟤 다리...”
박필준도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하고 나의 다리를 살폈다.
“너 뭐... 한 거냐? 도대체?”
아이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뚝뚝 절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놈이 떡 하니 멀쩡한 두 발로 서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순식간에 반응했던 내 1초의 움직임은 나 역시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나는 급하게 그들의 시선에 맞춰 내 다리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모르겠어. 나도 잘...”
한참을 그렇게 황당한 표정들을 짓고 있을 때.
띠링. 띵. 띵.
다행히도 수업을 위한 종소리가 울리며 나를 살렸다.
하지만 박필준은 분하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나에게 얘기했다.
“너 학교 끝나고 그쪽으로 잽싸게 텨와라.”
순간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그냥 맞았어야 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몸이 반사적으로 대응했을 뿐인데 일이 더 커져버렸다.
나는 수업하는 내내 심각한 고민을 해댔다.
달리기도 잘 하는데,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튀어볼까?
아니야. 그랬다가는 점점 더 녀석들의 보복이 심해질 거야.
그럼... 쉬는 시간 될 때마다 빌어볼까?
별의별 생각을 다 했지만, 결국 나는 단 하나의 실행도 옮기지 못한 채 녀석들을 향해 뒷산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학교 뒷 산.
저 멀리 박필준과 녀석들이 보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오늘은 세 명뿐이다.
두 명분의 팔 다리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나에게도 정말 큰 행운이었다.
저 멀리서 녀석들 중 하나가 나를 파악하고는 담배를 껐다.
“필준아. 저 새끼 왔다.”
박필준은 평소보다 더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아마도 아까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상황 때문이었던 것 같다.
녀석은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생각보다 심각한 분위기에 나는 다짐했다.
아까처럼 피하지 말고 이번엔 그냥 맞자.
그리고 최대한 더 아픈 척을 하자.
퍽!
박필준은 오자마자 내 배에 주먹을 지르고, 연달아 니킥으로 걷어찼다.
“어흑!”
하지만 생각보다.
아니. 전혀 아프지 않다.
오랜 시간의 괴롭힘을 당한 탓에 입에서는 당연하게 리액션이 터져 나왔지만.
왠지 모르게 몸의 반응이 이상했다.
이것도 변화가 생긴 건가?
순간 나는 잔머리를 굴려 저 녀석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해서 리액션을 만들어냈다.
왠지 그리하면 금방 끝내줄 것도 같아서 말이다.
박필준은 아까의 그 상황이 다시 떠올랐는지 열심히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런 씹새끼가 애들 다 보는 앞에서 나한테 쪽을 줘? 어!?”
남은 두 녀석은 뒤에서 실실거리며 웃고 있다.
그런 박필준의 기분이 풀리기를 기대하며 나는 온갖 리액션을 추가했다.
바닥에 쓰러지고 두 손을 싹싹 빌며, 몸을 질질 끌고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렇게 주먹과 발길질이 들어오는 데로 한참 맞아주기를 10분째.
하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서 나타났는지 쥐포가 박필준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내가 말릴세도 없이 이미 쥐포는 박필준의 종아리를 물어뜯었다.
“아악! 시발! 뭐야 이 고양이 새끼! 야! 야! 이것 좀 떼봐! 빨리!”
당황한 두 녀석이 박필준에게 붙어 이리저리 주먹으로 때리고 겨우겨우 떼내어 쥐포를 내팽개쳤다.
그 때문에 큰 나무에 부딪힌 쥐포는 충격에 잠시 주춤거렸다.
잠시 후. 박필준이 확인한 종아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따뜻한 액체가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린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자 박필준이 얼굴이 심하게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쳐 날뛰었다.
녀석은 움직이지 못하는 쥐포를 걷어차기 위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병신 같은 고양이 새끼가 아까부터 뒤질라고!”
그때였다.
내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댔다.
팔을 아주 꼿꼿하게 세워 뻗었고, 주먹은 송곳처럼 빠르게 박필준의 턱에 가져다 댔다.
퍽!
철푸덕.
그 한방에 박필준은 우스꽝스럽게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녀석들은 눈을 수차례 껌뻑거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개새끼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본능에 몸이 스스로 움직여댔다.
발차기를 하는 녀석의 발을 잡고 순식간에 녀석의 품에 파고들어 간장을 후려쳤다.
퍽!
그리고 뒤따라오는 녀석의 주먹질에는 맞주먹을 내질러 부딪히게 했다.
그러자 녀석들의 몸과 손에서는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드드득.
“읍!.”
“아악! 내 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 겪는 얼떨떨한 상황에 내 심장은 튀어나올 듯 요동치고 있었다.
나 지금 뭐 한 거야?
학교 다니는 내내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이 나에게 맞아 내 발 앞에서 뒹구르고 있다.
두 놈 중 하나는 갈비뼈를 붙잡고, 또 나머지 한 녀석은 주먹을 감싸 쥐고 애처럼 벙찐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리고 마지막 한 놈 박필준.
이 녀석은 턱을 맞은 탓에 몸이 경직되어 굳었다.
바닥에 누운 채로 엉덩이만 높게 들려 있는 그 모습은 몹시도 우스꽝스럽다.
자존심이 유독 센 박필준은 끙끙 앓는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지 매섭게 눈으로만 나를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아니. 그마저도 초점이 맞지 않아 허공을 째려보고 있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정신을 차린 쥐포를 손에 안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도망갈까?’
박필준을 포함한 일진을 셋이나 때려눕혔다.
그것도 맨손으로.
무엇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정말 많은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박필준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너무 고마웠다.
무엇 하나 집안에 도움 되지 않는 골칫거리로써 매일 밥만, 그리고 힘겹게 벌어온 엄마의 월급만 병원비로 축내기 바빴다.
19살. 어찌 보면 평생을 힘겹게 했던 지독한 근시와, 내 다리를 멀쩡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 아닌가.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어떻게 답례를 해줘야 만족스러울까.
나는 박필준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3m, 5m, 그리고 10m까지.
그리고 있는 힘껏 달려가 놈의 엉덩이 사이로 내 발을 갖다 박았다.
퍽!
나는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박필준에게 얘기했다.
“고맙다. 이 시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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