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첫 폐건물. 2
엄마가 흐느끼는 소리에 조심스레 눈꺼풀이 움직였다.
어? 어디지?
하얀 천장... 하얀 벽... 그리고 파란 이불까지.
왠지 낯설지 않다. 이 그림.
천천히 시선을 내려보니 각종 의료장비까지 내 몸에 부착되어 있다.
휴.
그제서야 나는 이곳이 병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
그 소리에 엄마가 화들짝 놀라 나를 붙잡았다.
“아이고. 괜찮아 아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거기는 왜 간 거야?”
머리가 어지럽다.
나는 어제의 상황을 인지하기 위해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제 박필준의 무리들에게 폐건물을 끌려가 방송을 했고...
천천히 기억이 되살아나자 마지막에 나와 마주쳤던 그 상황이 다시 생각났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특히나 더 어두웠던 그 지하실.
하늘에 떠있던 희미한 달빛마저도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밝은 화면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후원 알람을 읽던 중.
핸드폰 시야 뒤쪽으로 희미하게 사람의 형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느낌에 천천히 핸드폰 화면을 반대로 비추는 그 순간.
저 멀리 검은 정체가 뚜렷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이목구비였다.
흰 자가 대부분인 눈, 그 눈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형체는 내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와 내 얼굴과 마주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군데군데 피로 물든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여자는 내 얼굴을 정면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화가 잔뜩 난 것처럼 말이다.
그 상황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니 순간 내 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에서 두 발로 벌떡 일어섰다.
“왜 그래! 아들. 아들...?”
엄마가 놀란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서서히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정확하게는 내 다리로.
나도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아마비 후유증을 앓고 있던 터라 제자리에서 두 발로 일어날 수 없었다.
일어나기는커녕 손으로 짚어도 한참이 걸렸다.
그런 내가 자의로 방금 일어선 것이다.
그것도 펄쩍 뛰어서.
“아들. 다리가 왜...”
가벼웠다.
너무나 가벼웠다.
나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그대로 훌쩍 뛰어내렸다.
쿵.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 발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 몸이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꼿꼿하게 선 채로 유지가 된다...
조그마한 통증도 전해지지 않는 이 튼튼한 느낌.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멀쩡한 두 발로 선다는 건 이런 느낌인 건가.
다리 때문에 항상 구부정한 자세를 취해야 했던 내가 허리를 반듯하게 펴니, 마치 키도 훨씬 커져버린 듯했다.
‘뭐야...?’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경을 벗어던지고 창문으로 걸어가 저 멀리 보이는 선착장을 바라봤다.
심각한 근시 장애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이 거리에서는 선착장에 있는 배.
아니. 그 어떠한 것도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데...
보인다.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그냥 봐도 200m가 훌쩍 넘는 거리였다.
선착장에 서있는 사람들, 그 앞에 있는 물건들까지 모두 보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뺨을 꼬집고 두세 번 후려쳐봤지만 그 통증은 아주 생생하게 내 몸에 전달됐다.
그래... 이거 꿈이 아니다.
난 뒤돌아서서 엄마를 번쩍 들어 올렸다.
“와아아악!”
뭔지 몰라도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이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정신없이 내 다리와 내 얼굴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그때였다.
똑똑.
“안녕하세요. 구촌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나는 한참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던 형사님을 따라 어디론가 끌려갔다.
***
구촌 경찰서.
내 앞에 김현수라는 형사가 나를 의심적은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어제 한밤중에 폐건물에 있었던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거긴 왜 갔던 거야?”
“방송... 때문에요.”
“방송?”
“네.”
김 형사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 혹시 BJ 그런 거 하는 거야?”
애들이 시켰다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아니다. 괜히 애들을 엮어 화를 키운다면 추후에 쓰나미처럼 큰 보복이 밀려올 것이다.
나는 대답했다.
“네.”
김 형사님은 한숨을 푹 쉬며 내게 호통쳤다.
“그래도 그렇지 인마. 나이도 어린놈이 혼자 겁도 없이 거길 왜 간 거야?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잖아.”
사실 기절했었기에 기억이 하나도 나는 게 없다.
김 형사님이 내게 얘기했다.
“자살한 함대필이랑은 무슨 관계야?”
“누... 누구요?”
“네가 어제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던 시신 말이야.”
“네...?”
뭐라는 거야.
내가 시신을 끌어안고 있었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김 형사님에게 물었다.
“혹시... 함대필 그분이 여자는 아니겠죠?”
내가 본건 분명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이 새끼가... 함대필이 어딜 봐서 여자 이름이냐. 정신 안 차릴래?”
도대체 뭐야 그럼.
그때.
김 형사님이 한 핸드폰을 꺼내며 내게 들이밀었다.
핸드폰이 어디서 많이 본듯했더니 내 것이었다.
“배터리가 없어서 충전 좀 해놨다. 녹화본 있지? 그것 좀 틀어봐.”
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건네받고 잠금 화면을 열었다.
그리고 곧장 방송이 녹화되어 있는 파일을 재생시켰다.
[ 8. 31. 02 : 04 ].
영상을 누르자 어제 내가 방송을 켜고 지하에 내려가는 영상이 그대로 녹화되어 있었다.
내 기억대로 기절하기 전까지의 딱 그 영상.
그런데... 어?
근데 그 밑에 나도 모르는 영상 하나가 더 있었다.
[ 8. 31. 04: 44 ].
뭐지 이거?
내가 한참 기절해있을 시간인데...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그 영상을 재생시켰다.
녹화화면에는 손전등을 바닥에 놓은 채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장면이 재생되었다.
손전등이 없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안쪽으로.
“어디 가는...”
잠시 후.
파일 뒤에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장면이 더 재생되었다.
빛 하나 없는 어둠에서 누군가를 팔에 안아 들고 오고 있었던 것이다.
육안으로 봐도 나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중년 남성을.
다리가 불편한데다 몸에 근육이 하나도 없어 또래 여자보다도 힘이 없던 나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는 분명 기절했었다.
동공이 잔뜩 커진 채로 화면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데 더 충격적인 장면은 뒤에 있었다.
영상 속에 나는 그 시신을 똑바로 앉혔다.
그리고 그 시신의 얼굴을 한참을 쓰다듬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어루만지듯이.
시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나는 잠시 후 서글프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몸은 조금씩 들썩거리더니 결국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손전등으로 살짝 비치는 그 모습은 끔찍할 만큼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
[ 으흐흐흑... 대필씨. ]
!?
영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고 김 형사님과 내가 황당한 눈으로 마주쳤다.
김 형사님이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김 형사님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영상 속 나는 남자라고는 볼 수 없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중년의 한 여성의 목소리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 중년 여성의 목소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답이 없다.
“형사님. 죄송한데... 저는 분명히 기절했었어요.”
김 형사님도 표정을 보아하니 굉장히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기이한 현상에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보이는 영상은 내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 낼 수도 있다고 쳐보자.
여자 목소리를 내는 성악가, 가수들도 TV에서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믿을 수 없는 힘은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남자의 시신은 족히 80킬로는 넘어 보였다.
나보다 2배는 더 큰 몸.
나는 고작 고등학생이다.
거기에 삐쩍 말라 50킬로도 안 나가며, 다리 장애까지 앓고 있는 몸이었다.
김 형사님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네 집에 혹시 신내림 받은 사람 있냐? 무당 같은 거 하는 사람 말이야.”
나는 그 흔한 친척도 없었다.
내 남은 인생은 엄마 한 명이 끝이다.
“없어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김형사님은 내게 명함 하나를 쥐여줬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고 나중에 연락할 테니 다시 와.”
***
나는 집에 와서도 놀라움 반, 걱정 반으로 한참을 생각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대체 뭘까?
모든 것이 의문이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내 몸부터 살폈다.
정말 멀쩡해졌다.
내 다리는 아주 반듯하게 쭉 펴져있고 시력 역시도 아직 뚜렷했다.
나는 TV에서 봤던 한 장면이 생각나 핸드폰을 켜고 검색창에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빙의.
검색에 대한 결과는 이랬다.
1. 다른 것에 몸이나 마음을 기댐.
2. 영혼이 옮겨붙음.
나도 모르게 몸을 뺏긴 것 같지만 마음을 기대진 않았다.
그렇다면 영혼이 옮겨붙었다?
이건 나름 신빙성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을 김 형사님과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까.
그럼 나는 정말 빙의가 된 걸까?
내가 기억하는 TV 속의 장면들은 한이 맺힌 영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빙의를 하는 순간 하소연이 시작되고, 어느 상황에서는 화가 극에 달해 굉장히 폭력적인 경우를 보이는 게 다반사였다.
게다가 무당들은 영가를 몸에 싣고 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여러 번 시도를 할 수 없을 만큼 체력적으로 많은 리스크가 존재하는 것처럼.
또, 영가를 몸에서 내보내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었다.
그렇다면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때. 옆에서 빨래를 개던 엄마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두 손으로 엄마를 번쩍 들었다.
놀랍게도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가볍게 엄마를 공중에 띄웠다.
덕분에 놀란 엄마는 공중을 날며 내게 얘기했다.
“하늘이 도왔나? 우리 아들 정말 나았나 보다. 의사 선생님들도 기적이라고 하시던데...”
어머니가 큰 미소를 만드셨다.
놀랍게도 유지되고 있다.
이게 귀신의 영향일까.
분명 그 귀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내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
근데 무슨 이유로...? 도대체 왜?
생각만 해봐야 답은 없을 것이다.
다음 날 토요일.
학교 쉬는 날이라 나는 일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전등과 핸드폰, 그리고 거치대까지 몰래 챙겨 준비하고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 나 좀 나갔다 올게.”
“어디 가게 아들.”
“형사님이 물건 놓고 갔다고 가져가라 시네. 갔다 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집을 빠져나왔다.
나는 어쨌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답도 돌려줘야겠지.
근데 무섭다.
정말 무서워 미치겠다.
하지만 포라도 하나 사서 감사의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엄마가 그랬다.
하나를 받으면 둘은 못 해도 꼭 하나는 돌려주라고...
나는 무작정 달려 폐건물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아직 철문 앞엔 폴리스라인이 그대로 쳐져 있다.
그런데 철문에 다가서자마자 나는 생각이 짧았단 걸 느꼈다.
이 철문... 네 명이서 겨우 밀었던 문이었다.
다시 돌아가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문에 대고 한 팔로 살며시 힘을 주었는데...
끼이이익-
철문은 마치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아주 손쉽게 열려버렸다.
갑자기 두려움에 내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후들거렸다.
호흡도 거칠어졌다.
하지만 난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 건물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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