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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74화 (274/277)

274화

*   *   *

원래라면 지금 나는 우미가 다니는 사립 학교로 전학을 갔어야 했다.

그곳에서 난 한 번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하나 이제는 달라졌다.

나는 운명을 비틀었고, 원래 다니던 학교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왜 또 친구가 없다는 결과는 같은 거지?

‘애초에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기는 한데.’

친구가 있고 없고는 단순히 외로움을 넘어서, 집단에 속하지 못해 약자로 찍히기 쉽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내가 은밀히 따돌려지기는 해도 특별한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는 것.

그리고 오즈월드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즈월드는 내게 시도 때도 없이 접근하거나 말을 걸지는 않았다.

다만 하교는 되도록 함께하는 편이었다.

그러길 벌써 한 달째.

“지우야.”

수업이 끝나자마자 날 부르는 오즈월드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가방을 챙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또 채지우랑 가?”

아이들은 매번 오즈월드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졸랐다.

거기에 수영장이 있다더라, 컴퓨터만 네 대가 있다더라, 없는 게임기가 없다더라, 하는 말이 한참 떠돈 적이 있었다.

이후 주변에서 오즈월드의 집에 놀러 가고 싶어 하는 애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오죽하면 나와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애들도 찾아와서 혹시 오즈월드의 집에 놀러 가봤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내 대답은 “아니.”였다.

나는 아이들의 질투 어린 눈빛을 뒤로하고서 오즈월드와 함께 자전거 보관소로 향했다.

“오늘도 자전거 타고 왔어?”

“응.”

그러자 오즈월드가 자물쇠 두 개로 칭칭 동여매 놓은 내 자전거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나도 오늘은 자전거 타고 왔는데.”

그 말에 오즈월드의 자전거를 확인해봤다.

짙은 붉은색 보디의 자전거는 딱 봐도 값이 상당할 듯한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이거.”

대체 이런 자전거는 얼마나 하려나 구경하는데, 갑자기 오즈월드가 내 머리에 헬멧을 씌웠다.

“이게 뭐야?”

“헬멧 없이 자전거 타는 거, 위험해. 앞으로는 이거 쓰고 타.”

그야 그렇지. 하지만 새아버지는 자전거만 덜렁 사줬고 엄마는 이런 문제에 전혀 관심 없었다.

나는 헬멧을 만지작거리며 조그맣게 말했다.

“고마워.”

우리는 이왕 둘 다 자전거가 생겼으니 하천 옆에 깔린 자전거 도로로 가서 근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약속이나 한 듯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한 뒤, 새로운 맛을 골라 도전하는 일이 우리의 취미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벤치에 앉았다.

“오늘은 여기서 먹자.”

비탈길 아래는 산책로가 펼쳐져 있어 사람들이 돌아다녔고, 햇살을 튕겨내는 하천은 오리 가족이 둥둥 떠다녔다.

꽃피는 4월의 봄날.

벚나무 아래에서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은 상당히 호사스럽다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윽. 난 실패. 넌?”

오늘 고른 아이스크림은 맛이 이상했다.

역시 단발성으로 나오는 신제품치고 맛있는 건 잘 없었다.

오즈월드는 스스로 고른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떠먹어보더니 묘하게 언짢은 기색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실패인 것 같네.”

그가 고른 아이스크림은 토마토 맛이었다.

자전거도 빨간색. 아이스크림도 빨간색. 꽤나 일관성 있는 선택이었다.

“빨간색을 좋아해?”

내 물음에 오즈월드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색이라.”

좋아하는 색을 꼽는 이유로 익숙하단 대답이 나올 수가 있나?

“너 진짜 특이한 것 같아.”

오즈월드가 피식 웃었다.

꼭 ‘그럴 리가.’라고 대답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잉!

그때 뜬금없이 주머니 속에 든 핸드폰이 진동했다.

‘성좌들인가?’

확인해보니 발신자는 박정기였다.

[발신자: 2학년 3반 박정기]

[야 나 새 게임기 삼 ㅋㅋ 너 게임 좋아하지? 시켜줄까?]

‘얘는 지치지도 않나.’

내가 터무니없이 작은 요금제를 쓰는 것도 맞지만, 시시한 내용의 문자에 일일이 답장하기 귀찮았다.

핸드폰을 다시 닫으려는데 또 문자가 날아왔다.

지잉!

[발신자: 2학년 3반 박정기]

[또 씹음?]

지잉!

[발신자: 2학년 3반 박정기]

[너 지금 오즈월드 새끼랑 같이 있지]

화면을 응시하며 미간을 찡그리고 있으니 오즈월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누구야?”

“박정기.”

“아. 친한가 보다. 계속 문자 하는 거 보면.”

“별로.”

그때 갑자기 퍽! 소리가 나며 내 자전거가 비탈길을 타고 하천 쪽으로 굴러떨어졌다.

자전거를 발로 찬 사람은 박정기였다.

“무슨 짓이야?”

박정기는 본인 생각보다 자전거가 너무 먼 데까지 요란하게 굴러떨어지자 살짝 놀라더니, 버럭 소리쳤다.

“…그러게 왜 나 무시하냐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한테 일일이 답장할 만큼 내 요금제는 넉넉하지 않아서.”

“오늘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잖아. 그건 왜 무시하는데?”

“내가 왜 너희 집에 놀러 가야 해?”

박정기는 뚱하게 입을 다물었다.

명분도 없이 생떼를 쓴 것에 불과하니 할 말이 없겠지.

“또 이러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나는 박정기에게 경고한 후 자전거를 가지러 산책로까지 내려갔다.

혹시 자전거가 망가지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럽게 바퀴를 굴려보고 브레이크도 잡아보았다.

‘흠집이 좀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장 나지는 않았어.’

다행이다. 고장이 났다면 최근 부쩍 예민해진 엄마가 훈육을 핑계로 어떤 화풀이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안도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아악!”

난데없이 자전거가 떨어진 길로 박정기가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박정기!”

나는 황급히 박정기에게 가려고 가파른 비탈을 기어오르려 했다.

하나 언제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를 오즈월드에게 손을 붙들려 제자리에 멈춰서야 했다.

“위험해, 지우야.”

오즈월드는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정기가 저기 있는데 도와줘야지. 다쳤으면 어떡해?”

“죽은 것도 아니잖아.”

“…뭐?”

그는 평온한 얼굴로 박정기를 응시했다. 사물을 확인하듯 무심한 눈빛이었다.

“그냥 좀 다친 것뿐이잖아. 딱 자전거에 흠집 난 만큼만.”

그러고선 날 보며 동의를 구했다.

“안 그래?”

천사 같은 얼굴에 그려낸 미소가 너무나도 완벽해서 섬뜩할 정도였다.

나는 오즈월드의 손을 탁, 쳐내며 경직된 얼굴로 물었다.

“네가 밀었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오즈월드는 미소를 지우고서 날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그렇다면?”

더는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나는 박정기가 끙끙거리며 기어 내려온 자리로 걸어갔다.

“괜찮아?”

다행히도 박정기는 어디 부러지진 않았는지 쓰라린 상처를 붙든 채 어깨를 움츠렸다.

내 곁으로 다가온 오즈월드의 눈치를 보는 거였다.

“지우야, 화났어?”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오즈월드를 노려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할 말이 그런 거야?”

오즈월드는 대체 자신이 뭘 잘못 했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빈정거렸다.

“너한테 중요한 자전거잖아. 크게 망가지진 않았어도 표면이 다 까져서 더러워졌어. 그러면 혼날 텐데?”

“내가 혼나는 것 때문에 얘를 비탈길로 밀었다고?”

“정기가 계속 널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기도 했으니까.”

아, 이게 이 애의 원래 모습이구나.

지금까지 상냥하고 대화가 잘 통하던 오즈월드의 모습은 다 꾸며진 가짜였구나.

“앞으로 엮이지 말자.”

“왜?”

“너 소름 끼쳐.”

오즈월드는 섬뜩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가만히 둬야 해? 내버려 두면 이것도 괜찮겠지, 저것도 괜찮겠지, 하면서 더 심한 짓을 할 텐데?”

“본 것처럼 말하네, 꼭.”

“…….”

“상관없어. 적어도 네 행동보다는 덜 비상식적일 것 같아.”

나는 박정기를 부축해 일으킨 후 오즈월드를 지나쳤다.

그때 뒤에서 성가시다는 기색이 역력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하아.”

화를 낼 사람이 누군데 적반하장이지?

순간적으로 발끈한 나는 눈을 뾰족하게 뜨며 뒤를 돌았다.

그 순간 오즈월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   *   *

“누구야?”

나는 흐리멍덩하게 뜬 눈으로 옆을 쳐다보았다.

오즈월드가 핸드폰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의 눈짓에 저절로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게 되었다.

[발신자: 2학년 3반 박정기]

[너 지금 오즈월드 새끼랑 같이 있지]

“……박정기.”

긴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몽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혼과 육체가 미묘하게 어긋난 것처럼 주변을 인지하는 감각이 둔탁했다.

한데도 내게 말을 걸어오는 오즈월드의 목소리만큼은 선명해서 이상할 정도였다.

“아. 친한가 보다. 계속 문자 하는 거 보면.”

나는 정해진 대사를 읊는 배우처럼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읊었다.

“별로.”

그때 갑자기 퍽! 소리가 나며 내 자전거가 비탈길을 타고 하천 쪽으로 굴러떨어졌다.

자전거를 발로 찬 사람은 박정기였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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